재즈 스탠다드 [My Funny Valentine], [Autumn Leaves] 두 가지 버전으로 듣기.

이제 11월 중순이 넘어서면서 점차 찬바람이 강해지고, 정식으로 늦가을이 시작되어 서서히 겨울옷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한 10여 년 전만 해도 이 때쯤이면 거의 초겨울이었던 것 같은데, 불안정한 날씨가 계속되고 기후 변화가 현실화되면서 요즘은 겨울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10~20년 뒤에는 학생들의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 자체가 변경되어야 할 테고, 무덥고 긴 여름에는 흔히 오침(午寢)이라고 말하는 (점심시간을 겸한) 2시간 내외의 휴식시간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만성적인 기후 불안정이 끝내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약칭 IPCC)' - 기후 변화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목적으로 세계기상기구(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와 유엔환경프로그램(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이 1988년에 세운 국제 기구 - 특별 보고서는 1950년 이후 지구온난화가 급격히 진행됨에 따라 폭우와 홍수, 폭염과 가뭄 등 극단적인 기후 현상의 발생이 앞으로 훨씬 더 심화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사실, 불과 한 1~2주 전까지만 해도 전국 주요도시의 낮 기온이 20도를 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11월인데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모기떼들이 극성을 부려서 각 시군구청에는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여름이 차츰 길어지고 겨울은 차츰 짧아지는 사이에 가을 역시 점점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벌써 한 달쯤 전에 '가을에 듣기 좋은 재즈 음악'이라는 제목으로 관련 글을 썼을 테지만, 별로 사라질 생각이 없어보이는 모기의 윙윙거림 속에서 이제서야 이런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아무튼, 찬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들으면 좋은 재즈곡들을 이번에 소개하려고 하는데 그냥 아무 기준도 없이 말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재즈 스탠다드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 두 개를 골라서 그것을 각각 두 가지 버전으로 듣고자 한다. 이 중에는 보컬 재즈도 있고, 콰르텟(quartet, 네 명으로 구성된 밴드) 연주곡도 있으며, 퀸텟(quintet, 다섯 명으로 구성된 밴드) 연주도 있고, 피아노 트리오(trio, 세 명으로 구성된 밴드) 연주곡도 있다. 네 곡 모두 재즈 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작품이며, 재즈팬들 사이에서는 무척 유명한 연주이고, 같은 곡을 다르게 연주하는 재즈만의 즐거움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가을의 필청 재즈 속으로 들어가보자.


- My Funny Valentine

Chet Baker - My Funny Valentine

My Funny Valentine

Sweet Comic Valentine
You Make Me Smile With My Heart
You're Looks Are Laughable,
Unphotographable
Yet You're My Favorite Work Of Art
Is Your FigureLess Than Greek

Is Your Mouth A Little Weak
When You Open It To Speak
Are You Smart
Don't Change A Hair For Me
Not If You Care For Me
Stay Little Valentine Stay
Each Day Is Valentine's Day

가사 출처 : Daum뮤직

[Chet Baker Sings (1956)]

Russ Freeman - Piano
Carson Smith - Bass
Bob Neal - Drums
Chet Baker - Vocals, Trumpet

Chet Baker - Sings & Plays Greatest Hits [재발매] - 10점
쳇 베이커 (Chet Baker) 노래/포니캐년(Pony Canyon)

첫 번째로 들어볼 작품은 쳇 베이커(Chet Baker, 1929~1988)의 보컬을 들을 수 있는 재즈 스탠다드 넘버 My Funny Valentine이다. 이 곡은 1954년 2월 15일에 녹음되었으며, 1956년에 발매된 앨범 [Chet Baker Sings]에 실렸다. 쳇 베이커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등의 웨스트 코스트 재즈(West Coast jazz)를 대표하는 백인 트럼페터인데, 그는 여리고 감수성이 풍부한 보컬리스트로서도 굉장히 유명하다. 흔히 말하는 쿨 재즈(Cool jazz)의 중심에 서있던 쳇 베이커는 마치 노래하는 듯한 트럼펫 연주뿐만 아니라 유연하고 달콤한 그의 보컬까지 더해져 한 동안 거의 모든 재즈 인기투표를 휩쓸었다고 한다. 고독과 슬픔이 진하게 묻어나는 쳇 베이커의 목소리에 My Funny Valentine은 정말이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비극적인 그의 죽음 이후에도 Chet Baker의 우울한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쳇 베이커는 오랜 약물중독과 음주 끝에 1988년 5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호텔에서 추락사했다. 그의 방에서는 코카인과 헤로인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대부분의 기록에는 실족사로 되어 있지만 (다른 많은 예술가들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그의 미스테리한 죽음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Gerry Mulligan - My Funny Valentine

[What Is There to Say? (1959)]

Gerry Mulligan - Baritone saxophone
Art Farmer - Trumpet
Bill Crow - Bass
Dave Bailey - Drums

앞의 곡과 짝을 이뤄서 비교하며 들어볼 작품은 1952년에 Chet Baker와 함께 재즈 역사에 있어서 아주 기념비적인 '피아노가 없는' 콰르텟을 결성하여 활동한 바 있는 색소포니스트 게리 멀리건(Gerry Mulligan, 1927~1996)이, 1959년에 탁월한 트럼페터 아트 파머(Art Farmer, 1928~1999)와 같이 발표한 앨범 [What Is There to Say?]에 실린 '보컬이 없는' My Funny Valentine이다. 아마도 보컬 재즈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 콰르텟의 연주가 재즈 악기들 자체의 기본적인 '맛'은 더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수입] Gerry Mulligan - What Is There to Say? - 10점
게리 멀리건(Gerry Mulligan)/Sbme Special Mkts.


어떤가? 쳇 베이커의 보컬이 들어간 My Funny Valentine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지 않은가? 이것은 보컬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흑인의 Soul이 느껴지는 표현력과 강한 재즈 필링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아트 파머의 트럼펫 연주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웨스트 코스트를 대표하며 쿨 재즈를 대중화시킨 백인 연주자인 게리 멀리건의 바리톤 색소폰 연주가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음은 당연하다. 쳇 베이커와 함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쿨 재즈 그룹을 결성했던 Gerry Mulligan은 여기서도 Art Farmer와 같이 피아노가 없는 콰르텟의 정말 뛰어난 결과물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쳇 베이커의 목소리가 My Funny Valentine을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시켰다면, 게리 멀리건과 아트 파머의 환상적인 앙상블은 My Funny Valentine을 또 다시 예술적으로 크게 확장시켰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 Autumn Leaves

Cannonball Adderley - Autumn Leaves

[Somethin' Else (1958)]

Cannonball Adderley - Alto saxophone
Miles Davis - Trumpet
Hank Jones - Piano
Sam Jones - Bass
Art Blakey - Drums

과연 Autumn Leaves를 빼놓고 가을에 듣기 좋은 재즈를 논할 수 있을까? 정말 그러기는 쉽지 않아 보이고, 찬바람이 불며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에는 으레 이 곡이 생각나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것이 많은 평론가와 재즈팬들이 하드 밥(Hard bop)과 쿨 재즈(Cool jazz) 시대의 가장 위대한 앨범 가운데 하나라고 뽑는 데에 전혀 주저함이 없는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1926~1991)와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 1928~1975)의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말 그대로 popular song인 Autumn Leaves를 자신이 제대로 들어봤다고 말하려면 최소한 이 역사적인 녹음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Cannonball Adderley - Somethin' Else - 10점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이엠아이(EMI)

1. Autumn Leaves
2. Love For Sale
3. Somethin' Else
4. One For Daddy-O
5. Dancing In The Dark
6. Bangoon

재즈 마니아들 사이에서 감히 '반드시 필청해야 할 역사적 명반'이라고 불리는 앨범의 첫 번째 트랙에 수록된 Autumn Leaves는 이 음반의 정수이자 바로 [Somethin' Else (1958)]를 듣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 곡이다. 11분이나 되는 상당히 긴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무조건 들어야 하는 곡임은 물론이고, 색소폰과 트럼펫, 피아노,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되는 전형적인 재즈 퀸텟 연주의 전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재즈계의 수퍼스타인 마일스 데이비스가 캐논볼 애덜리와 같이 연주한 이 콜라보레이션은 바로 다음 해인 1959년에 그 영향력 측면에서 재즈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전체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앨범 [Kind of Blue]까지 그대로 이어지기에 분명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Miles Davis와 쌍벽을 이루는 또 다른 재즈계의 수퍼스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1926~1967)까지 두 사람과 함께한 Kind of Blue는 2003년에 Rolling Stone magazine으로부터 'The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 리스트의 12번째로 선정되기도 했다]

Bill Evans - Autumn Leaves

[Portrait in Jazz (1959)]


Bill Evans - Piano

Scott LaFaro - Bass
Paul Motian - Drums

마지막으로,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Autumn Leaves를 들어보자. 이것도 보통 트리오가 아니라 그 이름도 유명한 빌 에반스 트리오의 작품이다. Bill Evans Trio의 [Portrait In Jazz (1959)] 앨범은 재즈계의 영원한 스테디셀러이자 불후의 걸작으로 남아 있으며, 재즈 입문자와 마니아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필청 음반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곡들이 담겨 있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연주곡들로 채워져 있다. 그 중에서도 Autumn Leaves는 1959년에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에 피아니스트로서 참여했던 빌 에반스(Bill Evans, 1929~1980)가 바로 그 직후에 녹음한 곡인데, 전혀 다른 악기 구성으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과연 재즈 명인들의 퀸텟으로 듣는 Autumn Leaves와 피아노 트리오로 듣는 Autumn Leaves는 어떤 다른 매력이 있는지 비교하면서 한 번 들어보자. 재즈에서 곡의 분위기나 전체 길이가 도대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또 관악기가 주도하는 곡과 피아노가 주도하는 곡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관련글 - 재즈 피아노의 매력, 피아노 트리오 음악 듣기


이상으로, 기후 변화로 인해 잃어버린 우리의 가을을 위한 추천 재즈 음악을 4곡 들어보았다. 먼저 My Funny Valentine을 두 가지 버전으로 들었는데, 처음에는 쳇 베이커(Chet Baker)의 보컬 재즈였고, 두 번째는 게리 멀리건(Gerry Mulligan)의 콰르텟 연주였다. 그 다음에는 Autumn Leaves를 두 가지 버전으로 들었는데, 하나는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와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가 함께 한 퀸텟 연주를 들었고, 마지막으로 빌 에반스(Bill Evans)의 피아노 트리오 연주를 들었다. 네 곡 모두 발표될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며, 예술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최고의 평가와 판매 기록을 세운 음악들이다. 재즈는 우리가 진정으로 가을을 흠뻑 느낄 수 있게 해주며, 같은 곡을 가지고도 이렇게 다양한 포맷으로 여러 가지 매력이 있는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디, 앞으로도 재즈로서 뿐만 아니라 실제 날씨로도 진짜 가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나날이 계속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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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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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efferson 2011.11.21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빌에반스는 외모도 그렇고 피아노 스타일도 그렇고, 약간 기계같은 느낌이 좀 있어요 ㅋ

  2. 이오니아 2011.11.22 13: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즈도 상당히 좋은 음악이군요 매일 댄스음악만 듣고있었는데 신선하네요^^
    좋은 음악 듣고 갑니다`^^

  3. soo 쑤 2011.11.22 1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빌에반스 팬 이라는... ㅎㅎ

  4. 택이 2011.12.08 1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보고 갑니다~^^

  5. say00 2012.06.22 16: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좋은노래듣고갑니다.
    그냥 가기 아쉬워서 보컬재즈 음악 하나 추천해 드리고 가요
    http://blog.naver.com/ssm060228/110134611440 ^^

  6. 모스제로 2012.08.22 14: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원한 밤이 이어지는 가운데 좋은 음악 발견하고 가네요^-^
    추천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잘 듣고 갈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