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안 재즈 프로젝트,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의 한국 팝을 노래하다.



재즈는 자유로운 즉흥연주(improvisation)와 편곡, 다양한 재해석이 그 본질적인 특성이자 Jazz만의 매력이기에, 어떤 곡을 연주하느냐보다 어떻게 연주하느냐가 기본적으로 더 중요한 장르다. 그래서 저작권이 비교적 느슨한 편이고, 연주자 중심의 음악이며, 동일한 곡도 연주할 때마다 계속 달라지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재즈 스탠다드(Jazz standard)도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으며, 수십 년 동안 무수히 많은 재즈 음악가들이 계속 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것도 서로 똑같지 않다. 설사 같은 사람이 연주했더라도, 그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Jazz이고, 그렇기 때문에 재즈는 항상 살아서 움직이며, 언제나 새롭다.

여기서, 서로 연관되어 있는 음악 두 곡을 듣고 넘어가는 게 좋을 듯하다. 그 중 하나는 alto saxophone 연주자 찰리 파커(Charlie Parker, 1920~1955)의 'Ornithology'라는 곡이고, 나머지 한 곡은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1917~1996)가 부른 'How High the Moon'이다.

Charlie Parker - Ornithology


The Legendary Best of Ella Fitzgerald [2CD] [재발매] - 10점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노래/포니캐년(Pony Canyon)

Ella Fitzgerald - How High the Moon

사실, 찰리 파커의 연주와 엘라 피츠제럴드의 노래는 같은 곡이면서도 다른 곡이다. 그 이유는, 1940년에 처음 발표된 스탠다드 넘버 'How High the Moon'의 코드 진행을 기본 바탕으로 해서 그대로 'Ornithology'가 연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목 자체가 다르고, 언뜻 들어서는 같은 곡이란 걸 알아채기도 쉽지 않다. 이와 같이, Jazz에서는 원래 같은 음악을 가지고 얼마든지 전혀 다른 변화가 가능하고, (가사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이런 식의 자유로운 표현은 항상 계속되어 왔다.


자 그럼, 이번에 리뷰할 '비안 재즈 프로젝트'의 [The Great Korean Songbook] 음반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앨범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Songbook'이라는 단어다. 왜냐하면, 재즈계에서 Songbook이라고 한다면 정말 역사적으로 길이 남은 유명한 작업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엘라 피츠제럴드가 세상에 내놓은 일련의 Songbook 시리즈다. [Ella Fitzgerald Sings the Duke Ellington Songbook (1957)], [Ella Fitzgerald Sings the Irving Berlin Songbook (1958)], [Ella Fitzgerald Sings the George and Ira Gershwin Songbook (1959)] 등, 진정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Songbook이라는 이름을 보고 누구나 Ella Fitzgerald의 걸작 앨범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녀의 이 Songbook 음반들은 여러 차례 Grammy Award를 수상하기도 했다]

엘라 피츠제럴드의 Songbook은 앨범명에 제시된 어느 한 작곡가의 음악들만 한데 모아서 발표한 음반이며, 그녀의 목소리로 재해석된 '작곡가의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명작 시리즈에 빗대어 본다면, Vian의 음반 [The Great Korean Songbook]도 (앨범명에서 짐작되는 대로) 한국의 대중음악 명곡들을 비안 재즈 프로젝트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재즈로 연주한 '대중음악 작품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앨범 부클릿(booklet)에 수록되어 있는 비안의 Prologue를 잠시 살펴보는 게 이 음반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앨범은 2011년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있었던 EBS 스페이스 공감의 기획공연이 계기가 되어 탄생하였다. '재즈, 한국 팝을 노래하다'라는 공연의 제목이 말해주듯, 컨셉은 가요를 재즈로 편곡하는 것이었다... 노래의 가사는 물론이거니와 멜로디 또한 한국인의 정서에 밀착되어 있는 가요를 재즈의 음악 어법으로 풀어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음악 애호가나 재즈 뮤지션이 찾는 '한국적인 재즈'의 한 축을 감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Vian이 직접 적은 대로, [The Great Korean Songbook]은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구축했던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의 명곡들을 재즈로 편곡해서 채워넣은 앨범이다. 그러면서 비안은 '한국적인 재즈'에 대한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으며,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의 레파토리'들을 Jazz로 재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에 밀착되어 있는 노래들이 Songbook 작업의 결과, 과연 어떻게 연주되었을까? 그리고 이 음악들은 우리에게 어떤 감흥을 안겨 줄까? 이것이 바로 이 음반의 제작 동기이자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비안 재즈 프로젝트의 구성원에 대해서도 좀 더 상세히 알아보자. Vian Group에는 피아니스트 비안, 색소포니스트 켄지 오메(Kenji Omae), 기타리스트 정수욱, 베이시스트 이순용, 드러머 션 피클러(Shawn Pickler)가 있으며, 피처링(featuring)에는 고상지(bandoneon: 육각형의 작은 아코디언), 효기(vocal), 써니 킴(vocal)이 참여하고 있다. 이 그룹의 구성 자체는 재즈에서의 일반적인 퀸텟(quintet, 다섯 명으로 구성된 밴드)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앨범의 총 아홉 트랙 중에 세 곡은 보컬이 들어간 재즈로 편곡되었고, 3번 트랙의 짧은 인트로곡을 빼면 전체 여덟 곡이다.

[왼쪽부터 켄지 오메, 션 피클러, 비안, 이순용, 정수욱]

비안 (Vian) - The Great Korean Songbook - 8점
비안 (Vian)/소니뮤직(SonyMusic)


1.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 이영훈 작사/곡, 이문세 노래 (7:56)
2. 그대 내 품에 - 유재하 작사/곡, 유재하 노래 (6:13)
3. 거리에서 intro (1:04)
4. 거리에서 - 김창기 작사/곡, 동물원 노래 (7:22) featuring 고상지 & 효기
5. 골목길 - 엄인호 작사/곡, 신촌블루스 노래 (5:57)
6. 오후만 있던 일요일 - 이병우 작사/곡, 어떤날 노래 (7:33) featuring 써니 킴
7. 가시나무 - 하덕규 작사/곡, 시인과 촌장 노래 (4:17)
8. 샴푸의 요정 - 장기호 작사/곡, 빛과 소금 노래 (5:31) featuring 효기
9. 그것만이 내 세상 - 최성원 작사/곡, 들국화 노래 (7:44)

트랙 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전체 수록곡이 모두 다 주옥같은 작품들이다. 일상 생활에 퍽퍽해진 우리의 감성을 언제나 다시 일깨워주며,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한 감동을 전해주는 명곡인 것이다. 앨범에 담긴 곡들 중에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고, 이 원곡들은 요즘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명실상부한 '스탠다드 넘버(standard number)'들이다. 일단, 그 중에서 여섯 번째 트랙 '오후만 있던 일요일'의 원곡과 재즈버전을 같이 들어보고 이야기를 계속 하자.

어떤날 I - 10점
어떤날 노래/신나라뮤직

어떤날 - 오후만 있던 일요일

오후만 있던 일요일 눈을 뜨고 하늘을 보니

짙은 회색 구름이 나를 부르고 있네
생각 없이 걷던 길 옆엔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나를 바라보던 하얀 강아지 이유 없이 달아났네
나는 노란 풍선처럼 달아나고 싶었고
나는 작은 새처럼 날아가고 싶었네

작은 빗방울들이 아이들의 흥을 깨고
모이 쪼던 비둘기들 날아가 버렸네
달아났던 강아지 끙끙대며 집을 찾고
스며들던 어둠이 내 앞에 다가왔네
나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 한없이 걸었고
나는 빗속으로 들어가 마냥 걷고 있었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예쁜 비가 왔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포근한 밤이 왔네

가사 출처 : Daum뮤직

 

Vian (featuring 써니 킴) - 오후만 있던 일요일

어떤가? Charlie ParkerElla Fitzgerald의 작업처럼 새로움이 느껴지는가? 개인적으로는 재즈버전도 상당히 마음에 든다. 원곡도 물론 좋지만, 세련된 편곡과 마치 뷔욕을 연상시키는 써니 킴의 목소리가 단순히 조용함에 그치지 않고 원곡의 나른함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남성 보컬의 약간 밋밋한 느낌이 재즈버전으로 오면서 입체적인 연주와 몽환적인 매력이 있는 여성 보컬로 잘 채워져 있는 느낌이다. 이 정도면 익숙한 대중음악 명곡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통해 한국적인 재즈의 감성이 제대로 표현된 것 같다.

앨범의 다른 곡들 역시 신선하고 흥미롭다. 아무리 명곡이라고 해도 20여 년 전에 창작된 곡들이라, 전체적인 코드 진행이나 멜로디가 지금 현재의 감각으로 듣기에는 좀 어색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재즈버전은 그런 약점을 말끔히 날려 버릴 정도로 (촌스럽지 않게) 풍성하고 고상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연주곡들은 물론이고, 특히 '거리에서'나 '샴푸의 요정'처럼 피처링이 들어간 곡들은 원곡의 보컬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재즈라는 장르 자체의 월드뮤직적인 색깔이 저절로 배어나기에 가능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평소에 재즈를 즐겨 듣지 않는 이들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원곡과 비교하면서 함께 들어보는 즐거움도 포함해 누구에게나 편하게 추천할 수 있는 앨범이 된 듯하다.



이상으로, 같으면서 다른 재즈곡 찰리 파커의 'Ornithology'와 엘라 피츠제럴드의 'How High the Moon'을 들어봤고, 어떤날과 비안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도 들었다. 이런 식의 재해석이 Jazz에서는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한국의 대중음악 명곡들을 재즈로 새롭게 해석한 Vian의 이번 앨범 [The Great Korean Songbook]은 (재즈마니아이든 대중음악팬이든) 분명 재즈의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비안이 말했듯이, 한국 대중음악의 '스탠다드 넘버'에는 한국의 문화와 한국인의 정서가 그대로 담겨 있고, 이것은 곧 한국적인 재즈로 제일 잘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함과 신선함이 공존하는 이 음반을 통해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Jazz를 보다 많이 즐기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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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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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빛이드는창 2011.09.16 16: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곡이 좋아 재즈버전으로 바꿔도 좋네요^^ 재즈곡을 잘 듣지않았는데..관심이 갑니다^^

    • Arthur Jung 2011.09.16 1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렇게 방문해주시고,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공부문 최우수블로그 빛창, 다른 시정처럼 블로그를 잘 운영하는 것도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2. 작토 2012.02.06 0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즈는 즉흥연주도 매력이지만 이렇게 색다르면서 본 멜로디를 유지하는 편곡으로 듣는것도 일품인 것 같아요..
    정말 유익한 포스팅 잘 봤습니다! 요즘 대중음악과 달리 이렇게 여백이 짙은 노래들은 오랫만에 듣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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