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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영화 추천] 트리오브라이프(The Tree of Life), 나인송즈(9 Songs), 돼지의 왕

볼 만한 11월 상영 영화, 개봉작 추천

전에도 한 번 말했지만, 누구에게든지 영화를 추천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각 개인의 취향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우리가 그 작품의 객관적인 탁월함을 찾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괜찮은 영화를 추천할 수는 있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11월에 볼 만한 영화를 세 편 정도 추천하고자 한다. 이 영화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 의미가 있는 작품들인데, 최근에 제작된 영화도 있고 몇 년 전에 제작되었으나 이제서야 한국에서 개봉되는 영화도 있다. 또한 실사영화도 있고 애니메이션도 있으며, 외국영화도 있고 한국영화도 있다.

여기에서 소개할 영화들은 바로 [씬 레드 라인(The Thin Red Line, 1998)]을 연출했던 테렌스 맬릭(Terrence Malick, 1943~ ) 감독의 신작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 2011)], 2004년에 제작되었으나 성적 묘사의 수위로 인해 등급을 받을 수 없어서 개봉되지 못하다가 뒤늦게 우리의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된 마이클 윈터바텀(Michael Winterbottom, 1961~ ) 감독의 [나인 송즈(9 Songs)] 그리고 최근 [마당을 나온 암탉 (2011)]의 흥행으로 다시금 주목 받고 있는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기대작이자 2011년 한국 영화계의 문제작 [돼지의 왕 (2011)]이다. 세 작품 모두 정말 특별한 영화들인데,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한 작품씩 살펴보도록 하자.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 2011)
미국 | 드라마 | 137 분 | 각본, 감독: 테렌스 맬릭(Terrence Malick)
출연: 숀 펜(Sean Penn), 브래드 피트(Brad Pitt)

평단의 열렬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은둔자에 가까운 삶을 살며 '영상 철학자'로서 거의 40여 년 동안 (2012년의 감독 계획까지 포함해서) 단 6편의 장편 연출만 해온 테렌스 맬릭. 그는 20대에 하버드(Harvard University)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영국 옥스포드(University of Oxford)에서 공부하기도 했으며,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프리랜서 기자로서 뉴스위크(Newsweek)나 뉴요커(The New Yorker) 등에 글을 기고했고, 이 무렵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기도 한 영화 예술가다.

출처: [트리 오브 라이프] 공식 블로그(http://blog.naver.com/treeoflife11)

이런 Terrence Malick이 70년대 자신의 걸작 두 편을 뒤로 하고 사라진 후 20년, 그는 1998년에 [씬 레드 라인(The Thin Red Line)]이라는 전쟁영화의 명작으로 다시 돌아왔다.

 
   관련글 - 테렌스 맬릭(Terrence Malick)의 [씬 레드 라인(The Thin Red Line)]


테렌스 맬릭의 최신작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 2011)]는 제64회 칸영화제(2011)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올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도 '월드시네마' 부문에 초청되어 상영됐다.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평론가나 일반 관객이나 할 것 없이 호평을 쏟아냈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트리 오브 라이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무튼, 이 작품의 객관적인 탁월함을 부정할 순 없을 듯하다. 미국 영화가 대단한 건, 블록버스터 감독들뿐만 아니라 Terrence Malick 같은 감독도 같이 동시대에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트리 오브 라이프] 공식 블로그(http://blog.naver.com/treeoflife11)

게다가 이 영화에는 할리우드 최고의 연기파 배우 숀 펜(Sean Penn, 1960~ )과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배우 브래드 피트(Brad Pitt, 1963~ )가 주연으로 함께 출연하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황무지(Badlands, 1973)]와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 1978)]의 바로 그 테렌스 맬릭의 영화이고, 이상의 이유들만으로도 11월에 이걸 꼭 봐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명약관화(明若觀火)해 보인다. 그럼, 'The Tree of Life'의 정말 감동적인 영상을 보면서 다음 영화로 넘어가자.



두 번째로 추천할 영화는 몇 년 전에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 깊게 본 영화인데, 그 동안 한국에서 상영되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개봉 일정을 잡은 작품이다. 예술에 있어서 언제나 중요한 화두 중에 하나인 표현의 자유, 더 직접적으로 말해서 섹스에 대한 묘사 때문에 [나인 송즈(9 Songs, 2004)]는 상영 등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던 영화가 드디어 7년만에 상영된다고 하는데, 과연 이번 개봉에서 (원본에 비해) 어느 정도까지 손상되지 않고 보일지 꽤나 기대가 된다.


나인 송즈(9 Songs, 2004)
영국 | 로맨스/멜로, 드라마 | 61 분
각본,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Michael Winterbottom)

마이클 윈터바텀의 [나인 송즈]를 처음 알게 된 건 2005년 10월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의 메가박스에서 열렸던 제6회 서울유럽영화제-메가필름페스티벌이었다. 무려 6년 전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직접 봤고, 한동안 쉽게 잊히지 않았다. 명색이 '영화제'였으니 특별히 다른 문제가 없었다면 무삭제판이었을 테고,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무척 늦은 심야상영으로 봤던 것 같다. 그 때 유럽영화제 자체가 좀 인기가 있긴 했지만, 아무튼 강남 한복판의 극장 안에는 그렇게 늦은 시간인데도 관객이 퍽 많았던 편이었고, 충격적인(?) 영상과 함께 모든 관객이 숨죽이고 봤던 상영관 내부의 풍경도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하나도 가리지 않고 다 보여주는 영화다. 그냥 장사를 더 해먹으려고 주목을 끌기 위해 하는 흔한 광고 멘트가 아니다. 진짜 포르노처럼 다 보여준다. [나인 송즈]에서 섹스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행위이며, 그걸 그대로 보여주는 것 역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표현한다. 널리고 널린 보통의 평범한 영화에서처럼 상체만 보여주거나 뒷모습의 하체만 보여주는 식으로 씬이 뚝뚝 끊기지 않는다. 연인의 섹스를 그저 물이 흐르는 것처럼 부드럽게 한 화면에 온전히 다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아홉 번의 멋진 공연 실황과 함께 계속 이어지는 아홉 번의 아름답고 적나라한 섹스. 그러니, 2005년 가을 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가운데에서 어두컴컴한 극장 안의 그 많은 성인들이 그토록 조용하게 집중해서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고 [나인 송즈(9 Songs)]가 완전히 저질 영화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그냥 Rock과 Sex를 솔직하게 다뤘을 뿐이다. [인 디스 월드(In This World, 2002)]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2003)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관타나모로 가는 길(The Road to Guantánamo The Road To Guantanamo, 2006)]로 또 다시 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2006)에서 감독상을 받을 정도로 사회성 짙은 작품들을 만드는 영국의 예술가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영화가 그럴 리 있겠는가? 전 세계에서 열린 각종 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영된 [나인 송즈] 역시 분명히 괜찮은 영화다. 언뜻 보면 줄거리(첫 눈에 사랑에 빠진 연인의 만남과 사랑)가 단순해 보이지만,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진한 사랑 이야기인 것이다.


11월 개봉작 영화리뷰 리뷰 더보기
이 포스팅은 애드젯과 함께 합니다.

6년 전에 이미 극장에서 직접 본 사람이 이렇게 보증한다! 단지, 그 때 우리는 (어디 변두리의 무허가 동시상영관이 아닌) 도심의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포르노에 나오는 것처럼 그대로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영화가 스크린에 펼쳐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좀 놀랐을 따름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어떤 예술작품이든 그걸 아예 못 보게 하는 게 오히려 더 문제지, 막상 본다고 해도 특별히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벌써 몇 년 전에 무삭제로 상영된 영화를 이제서야 상영하면서 약 10분 가량 러닝타임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9 Songs]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연인들의 자연스러운 섹스씬이 삭제되었을 텐데, 그러고도 이 영화를 제대로 봤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의 '성인'들은 고작 영화 하나 마음대로 볼 자유조차도 없는 것인가? 과연 중요한 부분이 삭제된 영화를 보고 2011년의 한국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고 볼 일이다..


돼지의 왕(The King of Pigs, 2011)
한국 | 애니메이션, 스릴러 | 96 분 | 각본, 감독, 편집: 연상호
목소리 출연: 양익준, 김혜나, 김꽃비, 박희본, 오정세

마지막으로 소개할 영화는 한국의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The King of Pigs)]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력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 불운한 처지에 놓여 있었고, 그리 큰 주목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200만을 동원했다고 하는 [마당을 나온 암탉 (2011)]에 연이어,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2011)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감독상과 무비꼴라쥬상, 넷팩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등 3개 부문이나 수상한 '돼지의 왕'이 개봉하게 되면서 참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인 잔혹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품으로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일단, 예고편을 보고 얘기를 시작하자.



보면 알겠지만, 이제까지 사람들이 많이 봐왔던 픽사나 지브리의 어여쁜 애니메이션들과 비교해서 많이 이질적인 모습이다. (가족용이나 아동용이 아닌 성인용이니) 내적으로도 작품의 톤이나 스타일 자체가 전혀 다르고, (1억5000만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외적으로도 제작 방식이 상당히 다르다. 이와 관련해서는 얼마 전에 있었던 씨네21의 기사를 좀 참고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돼지의 왕>의 시작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상호 감독이 군대에 있을 때 간략한 시놉시스를 썼고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등을 그린 만화가 최규석 작가와 의기투합하면서 본격적인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최규석 작가는 <돼지의 왕>의 초기 캐릭터 디자인 역시 담당했다. 제작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연상호 감독의 말에 따르면 “철이의 경우는 최규석 작가가 디자인한 그대로 <돼지의 왕>에 등장한다.” 연상호 감독은 2006년 <지옥: 두개의 삶>이라는 중편애니메이션이 끝나면 바로 <돼지의 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은 쉽지 않았다. 묵혀두고 있던 <돼지의 왕> 시나리오가 빛을 보게 된 건 김종관 감독의 <조금만 더 가까이> 등을 지원한 KT&G 상상마당의 ‘2010 상상메이킹 장편프로젝트’ 투자지원을 받아내면서부터다. 서울독립영화제의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제작 전반을 관장하는 프로듀서로 ‘돼지의왕 제작위원회’에 참여했다. 제작에 조영각 집행위원장이 있다면 <돼지의 왕>의 목소리 출연진은 또 다른 면모를 보인다. 연상호 감독의 전작 <사랑은 단백질>에도 목소리 출연한 양익준, 오정세가 각각 어른 종석과 경민을 연기한다. 한국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들인 김꽃비, 박희본, 김혜나도 어린 종석, 어린 경민, 철이의 목소리를 맡았다."   - 2011년 6월 23일, 씨네21 기사 중에서 -


출처: 씨네21(http://www.cine21.com) 기사 '이것이 바로 본격 성인애니메이션' 중 연상호 감독

이렇듯, [돼지의 왕]은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이고, 연상호 감독이 다른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사업성보다는 연상호라는 사람의 취향이 많이 들어간' 만화영화다. 1억 원이라는 예산 안에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만들어진 [돼지의 왕]. (그토록 한국의 영화투자사들이 꺼려하던) 말 그대로 장편 애니메이션인데 7~8년의 제작기간도 소요되지 않았고, 몇 십 억 단위의 제작비도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위에서 언급했듯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개 부문을 수상할 정도로 괜찮은 작품이 나왔다. 흥행은? 제작비가 적게 들었으니 흥행에서도 약간은 자유로운데, 현재까지의 소문들을 지켜보면 상당히 호의적인 것 같다. 개봉관만 잘 잡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흥행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CGV 무비콜라쥬상'을 받아서 그런지, CGV에서는 상영 확정이 된 걸로 보인다. 롯데시네마는 어떨지..]

이미지 출처: 연상호의 스튜디오 다다쇼(http://www.studiodadashow.com)

정리하자면, [돼지의 왕]은 겨우 1년 만에 고작 1억 원 남짓한 제작비로 만들어진 성인용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이고, 영화제에서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바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돼지의 왕] 개봉을 기대하고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이 영화가 극장 상영에 성공한다면, 향후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정도의 제작 기간이나 비용으로 이런 긍정적인 결과물이 가능하다면 투자자나 영화제작사들이 굳이 애니메이션 제작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돼지의 왕(The King of Pigs)]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비교적 긴 트레일러(1분 55초)를 보며 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얘기는 끝내기로 하자.



이상으로, 11월에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 중에 다양한 측면에서 모두 의미가 있는 세 작품인 테렌스 맬릭(Terrence Malick)의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 2011)], 마이클 윈터바텀(Michael Winterbottom)의 [나인 송즈(9 Songs, 2004)],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The King of Pigs, 2011)]을 다 정리해 보았다. 이 정도면, 곧 개봉하는 영화들 중에서 볼 만한 영화로 자신 있게 추천하는 데에 정말 손색이 없을 듯하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 의미(영상철학자의 신작, 무삭제판과의 차이, 성인 잔혹 스릴러 애니메이션의 역작)로 관심이 많이 간다. 아무튼 세 작품 다,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볼 수 있는 상황이 되길 바라고, 다들 만족스러운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기대한 만큼 즐거운 관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