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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40년 전, 파리의 여론과 [시인을 체포하라]

로버트 단턴 <Poetry and the Police>,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오늘날 우리는 소위 말하는 '여론'을, "정치와 사회 어디에서나 작용하는 하나의 능동적인 동인이자 피할 수 없는 현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론에 관심이 있고, 특히 정부나 언론은 항상 여론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매일같이 수많은 여론조사가 실시되며 언론발표가 동반되고, 최근엔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대해 흔히 말하는 빅데이터 분석도 복잡하게 이뤄진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여론의 실체는 분명하지 않고, 우리들 모두는 그것을 간접적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지극히 한정된 부분의 일시적인 수학적 수치만 알고 있는 것이며, 여론에 가장 민감하다는 정치인들 역시 (모든 선거에서 보듯이) 여론에 대해 아는 거라곤 거의 모험에 가까운 짐작이 전부다. 그만큼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어렵고, 항상 우리 주변에 존재하며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그 자체가 모순적이거나 다른 지표들과 모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계몽사상가들이 18세기 후반에 여론의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기 전('여론'이라는 용어 자체가 등장하기도 전), 그러니까 사람들이 여론이라는 걸 분명하게 인식하기 전에는 과연 어땠을까?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입장에서 보면 여론을 구성하는 담론은 하나의 복잡한 과정인데, 거기에는 지각의 질서가 포함되고 대상은 담론적으로 구성되기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다('여론'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전까지 여론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쉽게 말해, 18세기 후반 이전에 '여론'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또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 )의 입장에서 보면, 여론은 사회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고 사회적 영역을 형성하는 여러 기구들에서 '공적인 문제에 대한 사적인 개인들의 자유로운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영역은 18세기에 처음 출현했으며, 결국 여론은 18세기적 현상이다. 푸코의 입장이든 하버마스의 입장이든, 우리가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알고 있으며 그 이전에 이미 여론이 존재했었다는 걸 만약 인정한다면, 참 쉽지 않은 문제지만 어쨌든 18세기(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론이 본격적으로 개념화되는 18세기 후반 직전)는 인류 여론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임을 절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단순하게 말해서 "'여론'이라는 게 없이 과연 '혁명'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라는 가장 기본적인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론이 개념화되기 직전, 18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계몽사상가들은 도대체 뭘 보고 '여론'이란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게 되었는가? 우리가 신이 아니듯, 이들도 신이 아니다. 분명히 뭔가 사회적인 변화의 흐름이 있었을 테고, 그걸 보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인식론의 좌표에 근거한 근본적인 범주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로부터 20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도 여론의 실체는 불분명한데, 이것이 최초로 출현한 18세기에는 오죽했을까? 그런데도 '여론'이라는 용어는 기어이 등장하고야 말았다. 도대체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시인을 체포하라 -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로버트 단턴 (지은이) | 김지혜 (옮긴이) | 문학과지성사 | 2013-12 | 반양장본 (264쪽)
원제 Poetry and the Police (2010년)

 

 

위의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추적하는 책이 바로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 1939~ )의 <시인을 체포하라(원제: Poetry and the Police, 2010)>다. 저자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유럽사를 가르친 후 하버드 대학교의 도서관장에 취임했는데, 이 책 이전에 이미 역사학 부문에서 유명한 몇 권의 책을 썼으며 '책의 역사가'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로버트 단턴은 저명한 역사학자이고, 또 탁월한 저술가인 셈이다. 그렇다면 '실험적 역사서'라는 꼬리표가 붙은 <시인을 체포하라>는 과연 어떤 책이고, 무엇을 다루고 있을까? 프랑스 혁명 40년 전의 파리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의 부제는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이다.

 

수없이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14인 사건'에 대해서도 우리는 전혀 모른다. 그래서 <시인을 체포하라>의 초반에 로버트 단턴 교수가 가르쳐주는 14인 사건의 개요를 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사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입문서가 아니라 일류 대학의 나이 많은 교수가 쓴 역사서이기에, 전체적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친절하게 다 설명해주는 편은 아니다]

 

"1749년 봄, 파리 시 치안총감에게 '검은 분노의 괴물'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의 지은이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경찰에는 '모르파의 유배'라는 시의 제목 말고는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4월 24일, 루이 15세는 해군과 왕실의 업무를 관장하는 대신으로서 정부를 장악하고 있던 '모르파 백작'을 해임하고 유배시켰다. '괴물'은 루이 15세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므로 왕을 공격하는 그 시는 모르파의 편에 선 사람이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쓴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경찰이 동원된 이유였다. 공공연히 회자되는 시로 왕을 비난하는 것은 역모였고 왕권모독이었다."

 

시인을 체포하라(Poetry and the Police) 8점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 지음, 김지혜 옮김/문학과지성사

 

"루이 15세를 비방하는 시를 낭송한 혐의로 한 의대생이 체포되면서 '14인 사건'이 시작되었다. 바스티유에서 취조를 받는 동안 그 학생은 자신에게 시를 건넨 사람을 자백했고 그 사람이 구속되었다. 구속된 이 역시 시의 출처를 자백했고, 경찰은 불법적인 시 암송에 가담한 혐의로 밀고된 14인을 잇달아 체포해 바스티유의 감방에 집어넣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탄압하는 것은 경찰의 일반 업무에 속한다. 하지만 경찰은 14인을 추적하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했다. 게다가 경찰에 체포된 사람들은 평범하고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파리 시민들이었고 베르사유의 권력투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경찰의 수사는 분명한 질문을 유발한다. 파리 당국은 물론이고 베르사유 당국은 왜 시를 추적하는 일에 그토록 열을 올렸을까? 이 질문은 여러 다른 질문들로 이어진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따라 단서를 추적해가면 우리는 복잡한 의사소통망을 밝혀낼 수 있고, 글을 아는 사람이 절반도 안 되는 사회에서 정보가 유통되었던 방식을 연구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저자가 직접 설명하는 이 책의 주제다. 그래서 제목도 <Poetry and the Police>이고, 책의 전반적인 내용도 14인 사건 앞뒤를 둘러싼 인물들과 권력관계 · 당시 사회의 풍경과 역사를 굉장히 미시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박물관과 도서관에 아직도 남아있는 시의 원문은 물론이고, 260여 년 전에 파리와 그 주변에 살았던 관련 인물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사건을 세밀하게 파헤친다. 로버트 단턴은 14인 사건의 수사기록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문헌은 모조리 동원하며 독자를 18세기 초중반의 구어 세계 의사소통망 속으로 순간이동시키고, 마치 영화를 보여주듯 우리 앞에 생생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물론,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일은 무척 어렵고 또 상당히 불확실한 작업이다. 아무리 저자가 탁월한 저술가이자 저명한 역사학자라고 해도, 그 시대 · 그 사건을 직접 겪은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거시적 통설이 아닌 미시적 분석의 측면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는 아예 모르고 있는 부분이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14인 사건은 무슨 국가 차원의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약간 이례적인 시국 사건에 좀 더 가깝기 때문에, 전체적인 그림을 한 눈에 볼 수는 없고 여러 조각의 모자이크를 여기저기서 짜맞추는 식으로 사건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러니 260년의 세월 동안 어쩔 수 없이 사라진 조각도 있고, 근본적인 시대상부터가 지금과 다른 부분도 많을 것이다. 결국 '실험적 역사서'라는 말은 이 책의 태생적인 한계를 내포하는 동시에, 여기서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독자가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는 게 아닌가 싶다. 계몽사상가들이 신이 아니듯 로버트 단턴도 신이 아니고, 그 역시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현재의 인물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도 책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전문가로서 독자들이 계속 상상하는 데에 유용한 단서들을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어쩌면 이런 흥미로운 탐구과정 자체가 <시인을 체포하라>의 가장 핵심적인 미덕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결론을 좀 내려보자. 도대체 1740년대 말부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는 1790년 즈음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나? 낭만주의적으로 생각한다면 14인 사건을 비롯해 수많은 혁명적 도전들이 있었고, 결국 1789년에 완전히 폭발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아마도 상당히 비학문적인 추측일 테고, 소설가가 아닌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은 그렇게 말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여길 것이다. 실제로 14인 사건으로 체포된 인물들의 면면을 봐도 이런 체제 전복적인 사상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있고, 관련된 여러 편의 시들 중에는 그저 별 의미 없이 말장난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도 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혁명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건 아무래도 무리한 시도일 수밖에 없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정말 눈여겨 봐야 할 점은, 여론과 대중 · 의사소통망과 같은 일종의 사회 체계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다. 비로소 이때부터 파리 시민들은 어렴풋이나마 왕이나 귀족 같은 일부 극소수 권력자들의 생각뿐만 아니라, 그저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주변사람과 같은 다수 일반인들의 생각이 어떤지가 중요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그만큼 르네상스 시대 이후 인문주의의 발달과 인쇄술의 발명을 위시해 근대적 사상들의 발전은 이때쯤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시와 노래를 통해 대중을 관찰하고 또 스스로 대중으로서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었다. 당시 파리는 유럽의 수도나 마찬가지였고,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14인 사건처럼 상징적인 일이 가장 먼저 벌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 무렵부터는 최고 권력인 루이 15세조차 파리 시민들이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얼굴이 수척해'질 정도로 진정 스트레스를 받았고, 귀족과 관료들은 매일같이 여론의 향배를 주시하며 진심으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여론이라는 것이 정책 결정에 실질적인 압력으로 작용하는 게 가능해졌고(물론 실제로 '여론'이라는 말을 사용하진 않았다),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권력자들을 비판했다. 바야흐로 대중의 여론이 어떤 힘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며,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그로부터 40여 년이 더 걸렸다) 뭔가 혁명의 인프라가 구체적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18세기 중반 파리는 혁명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하나의 효율적인 의사소통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대중에게 사건을 알렸으며 그에 대해 나돌던 세간의 논평을 전했다. 의사소통은 심지어 정보를 전파하고 받아들이는 행위가 공적 사건에 개입한다는 공통된 의식을 구축함으로써 '대중'을 형성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로버트 단턴은 수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14인 사건을 깊이 있게 분석하며 구어 세계의 의사소통망을 복원하고 (여론에 관한 역사 연구를 지배하는 두 가지 입장인 미셸 푸코와 위르겐 하버마스의 입장을 검토하는 것을 포함해) 여론의 형성 과정을 추적한다. 그가 <시인을 체포하라>에서 보여주는 18세기 초중반의 이런 역사적인 여정이 없었다면, 과연 프랑스 혁명이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혁명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원래 변화되기가 정말 어렵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대부분의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고통을 받지만, 그래도 사회는 그대로일 때가 더 많다. 그래서 혁명이란 건 원래 실패하는 것인데, 만약 혁명이 성공했다면 그건 이미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1740년 말부터 1790년 즈음까지 이어진 변화의 결과가, 마침내 프랑스 혁명이라는 놀라운 이정표를 세운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로버트 단턴의 <시인을 체포하라>는 바로 그 시작점에 대한 책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