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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추종자들을 위한 책, 미셸 옹프레 [우상의 추락]

단 한 명의 진정한 프로이트학파, 1939년 9월 23일 런던의 자기 침대에서 죽다.

 

버트런드 러셀이 1937년에 쓴 <억압받는 자들의 미덕>이라는 에세이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어른들이 스스로를 위해 마련할 수 있었던 유일한 위한은 새로이 아동 심리학을 고안하는 것이었다. 전통 신학에서는 사탄의 수족으로, 또 교육 개혁가들의 머릿속에서는 신비롭게 윤색된 천사로 여겨졌던 아이들은 다시금 어린 악마의 자리로 돌아갔다. 사탄에게 조종당하는 신학적 악마가 아니라 무의식에 지배당하는 과학적이고 프로이트적인 혐오 대상이 된 것이다. 아이들은 카톨릭 수사의 가열한 꾸짖음을 들을 때보다 더욱 사악한 존재가 되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오늘날의 교과서에서 아이들은 못된 공상을 꾸미는 데에 영특함과 고집을 발휘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과거의 사례 가운데 여기에 비교할 만한 것은 오로지 성 안토니우스의 시련뿐이다. 이 모두가 객관적 진리일까? 아니면 그저 어린 골칫덩이들을 두들겨 팰 수 없게 된 어른들이 그 보상으로 만들어 낸 상상일 뿐일까? 각 질문의 답은 프로이트 심리학의 추종자들한테서 듣기로 하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 1959~ )가 쓴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적 평전'이라는 <우상의 추락(Le Crepuscule D'une Idole: L'affabulation Freudienne, 2010)>을 읽은 다음, 개인적으로 딱 하고 싶은 말이 바로 버트런드 러셀 에세이 인용구의 마지막 문장이다. "각 질문의 답은 프로이트 심리학의 추종자들한테서 듣기로 하자."

 

 

우상의 추락 - 프로이트, 비판적 평전
미셸 옹프레 (지은이) | 전혜영 (옮긴이) | 글항아리 | 2013 
원제 Le Crepuscule D'une Idole: L'affabulation Freudienne (2010년)

 

심리학이라는 용어가 적합할지 아니면 정신분석학이라는 용어가 적합할지 잘 모르겠지만(미셸 옹프레는 하나의 과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상' 내지 '철학'의 관점에서 프로이트를 바라본다), 어쨌든 <우상의 추락>은 프로이트 추종자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싶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과연 '우상'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미셸 옹프레가 '비판적 평전'을 쓰는 것의 의미 자체를 우선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저자는 꽤 긴 '서문'을 통해 자신에게 있어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있지만, 솔직히 프로이트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리 공감이 잘 되지는 않는다. 그저 상식적인 수준에서 일종의 '스토리'로서 받아들이는 것일 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프로이트와 관련된 '디테일'을 이해하며 보는 건 아닌 것이다.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미셸 옹프레에게 있어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내 우울한 청소년기를 견디게 해준 천재'인데 이 당시 그를 사로잡은 책 세 권은 니체의 <적그리스도>,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프로이트의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라고 한다. 게다가 저자는 철학자이고, 철학교사이며, 50권이 넘는 책을 펴낸 저술가이다. 그러니, 쉰 살이 넘은 미셸 옹프레가 프로이트와 관련해 <우상의 추락>에 담은 내용들은 상당히 디테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우상'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 수준이 그렇게 낮은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의 '이야기'로서 읽으면 그 나름대로 괜찮다. 하지만 그 디테일과 볼륨 때문에, 완전히 몰입하기는 사실 만만치 않다.

 

결국 <우상의 추락>은 소위 말해 '아는 만큼 보이는' 책이 되기가 쉬운 것이다. 아마 프로이트라는 한 인간과 그의 정신분석학에 대해 관심이 많은 독자가 보면 참 훌륭한 만찬이 될 테고(단, '비판적' 평전이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별로 그렇지 못한 독자에게는 좀 지루한 오찬이 되기 십상일 듯하다. 불행히도, 개인적으로는 만찬보다는 오찬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상'의 의미에 대해, 두 가지 방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로 우상이라면 흔히 말하는 '아이돌'인데, 여기서는 약간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는 아이돌일 것이다. 일단, 프로이트가 과연 아이돌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만한 인물인가? 솔직히, 이것부터 좀 고민이 된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무시하면 추종자들은 대부분 동의할 테지만, 그외 사람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이 한때 굉장한 유행이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므로, 요즘 텔레비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바로 그 아이돌 가수와 비슷한 의미라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와 동시에 아이돌 가수들과 유사한 특성을 가질 수도 있다. 팬들에게는 아이돌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소중하지만, 팬이 아닌 이들에게는 별아닌 일이 되는 셈이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추종자들에게는 <우상의 추락(Le Crepuscule D'une Idole: L'affabulation Freudienne)>에 나오는 디테일한 내용들이 모두 중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저 한 스토리상의 섬세한 설정처럼 받아들여질 뿐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가지고 프로이트에 관한 소설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쓴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상당히 버거울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셸 옹프레가 학자보다는 좀 더 작가적인 입장에서 전반적인 서술을 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어차피 정신분석에 대한 학술서가 아니라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평전(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필자의 논평을 겸한 전기)이니까, 약간 그런 식으로 풀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애초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가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프로이트와 관련된 놀라운 디테일들을 읽으면서 잘만 구성하면 상당히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정도의 차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저자의 서술을 보고 드라마틱한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너무 많은 인용과 직접적인 설명이 몰입에 방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기본 소재 자체가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설사 불가피하다손 치더라도, 일반 독자 입장에서 이걸 장점이라고 보긴 힘든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추종자들에게 이는 다른 책에서는 찾기 힘든 탁월한 '미덕'일 수 있다.

 

우상의 추락 - 6점
미셸 옹프레 지음, 전혜영 옮김/글항아리

 

"스타나 아이돌은 대중의 욕망을 샤워처럼 많이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무대에 올랐을 때, 많은 대중들의 욕망을 대변해 줄 수 있다."

-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

 

글쎄.. 프로이트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위와 같은 인용을 하는 게 잘 어울릴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우상'에 관한 두 번째 논의는 '대중의 욕망'을 중심으로 하고자 한다. 프로이트나 그의 정신분석학이 그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 역시 대중의 욕망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텐데, 이에 대해서는 미셸 옹프레도 분명히 동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얘기를 참 많이 하지만, 마지막 결론 '변증법적 망상'에서 저자는 정신분석학이 성공을 거두게 된 핵심 키워드 다섯 가지를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1. 성(性)

2. 유럽문화의 공세

3. 종교

4. 역사적 분위기

5. 사상적 오해

 

사실, 이 다섯 가지가 다 프로이트가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 이후 얼마간 대중의 욕망을 대변한다. 당시 성 담론의 폭발은 물론이고, 1차 대전을 전후한 전세계적 유럽문화의 확산, 그럼에도 아직 종교적 관념을 전방위적으로 적용하는 것, 전쟁 이후의 혼란과 허무, 기존의 사상과 신념 붕괴 속에서 새로운 사상으로서의 지위 장악 등..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역시 역사적 맥락과 인류의 변화 위에서 발흥한 것이다.

 

그럼, 지금 이 '아이돌'은 어떻게 됐나? 시대가 변했고, 대중의 욕망도 바뀌었다. 이미 성(性)은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다뤄진 주제이고, 유럽 중심의 세계관도 꽤 옅어졌으며, 종교적 관념은 더이상 큰 문제가 안 된다. 전쟁을 겪은 사람보다 겪지 않은 사람이 이제 훨씬 더 많을 것이며, 마르크스처럼 프로이트도 지금은 기존 사상으로서 무수한 책 속에 그저 '존재'한다. 결국 대중적 욕망의 중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어쩌면 그래서 <우상의 추락>과 같은 책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물론 프로이트는 그 이후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정신분석학 역시 전영역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자본(Das Kapital)>을 읽지 않았다고 요즘 경제문제를 논할 수 없는 게 아니듯,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모른다고 심리 분석을 아예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조용필 음악을 전혀 안 들어 봤어도 아이돌그룹의 음악을 만끽할 수 있고, 고전영화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도 최신개봉작을 맘껏 즐길 수 있다.

 

다만 소위 말하는 '깊이'가 문제인데, 인간사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깊이를 달성하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다. 단언컨대, 프로이트가 100년 뒤에 태어났다면 분명히 다른 일을 했을 것이다. 대중의 욕망이 언제나 변화하듯이, 그 욕망을 대변하는 아이돌도 항상 다르게 나타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상의 추락'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자면,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의 <우상의 추락>은 어쨌든 위시리스트의 맨 끝에 위치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추종자들에게는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을 자기 나름대로 최대한 사유한 다음에 읽기에 좋고, 그외 사람들에게는 프로이트가 살았던 당대 학자들의 유산을 섭렵하고 난 다음에 모자이크의 빈 부분을 채우는 과정에서 스스로 어떤 중요성이 느껴질 때 읽기에 좋다.

 

자신의 욕망을 대변해줄 아이돌을 굳이 처음부터 추락시킬 이유도 없으며, 아이돌 자체가 아닌데 굳이 추락의 관점에서 볼 이유도 없지 않은가.. 종교와 비슷하게, 우상의 존재 의의도 결국 우리의 필요에 의한 것이니까 말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