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일반적으로 고생대(5억 4천만 년 전~ )는 '양서류의 시대', 중생대(2억 3천만 년 전~ )는 '파충류의 시대', 신생대(6천 5백만 년 전~ )는 '포유류의 시대'라고 불린다. 양서류는 수중생활에서 처음으로 육상생활을 하게 된 '척추동물'로서, 어류와 파충류의 중간단계이다. 파충류는 뱀·도마뱀·악어·거북 등과 이미 멸종한 공룡류를 포함하고, 수많은 고등동물들과 함께 인간은 포유류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시대 구분과는 별개로, 육상세계의 진정한 지배자는 따로 있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시점에서 지구 전체의 지배자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현생인류)'라는 한 종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다. 하지만 인류와 함께 육상세계를 지배하는 건 양서류도 아니고 파충류도 아니고 다른 포유류도 역시 아니다. 우리 지구의 또다른 지배자는 바로 진정한 사회적 조건(진사회성)을 갖춘 '사회성 곤충'이다.

 

개미·흰개미·벌 등의 진사회성 곤충은 인류 외에 가장 복잡한 '사회'를 이룬 사회성 동물로서, 도시를 건설하고 가축을 기르며 농사를 짓는다. 흔히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도시, 가축, 농사.. 잘 믿겨지지 않겠지만, 진사회성 곤충의 진화단계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또 개미를 예로 들면, 이들은 모든 육상 척추동물(조류, 파충류, 양서류, 포유류)을 다 합친 것보다 몸무게가 무려 4배나 더 나간다.

 

진사회성 곤충은 인류보다 거의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오래된 존재이다. 현재 육상 무척추 동물세계의 지배자인 이들은 대부분 1억 년 전에 진화했고, '그 진화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과 함께 진화하면서 지구 생태계는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오늘날 이들이 지배하는 생태계는 지속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지배자인 인간은 분별없이 지구 생물권을 파괴하고 있으며, 우리 자신의 영속 가능성까지 없애고 있다.

 

인류는 겨우 수십만 년 전에 출현하여 지난 6만 년간 전세계로 퍼졌고, '다른 생물들과 함께 진화할 시간'이 없었다. 지구 생태계는 인류의 대량 학살에 대비할 시간이 없었으며, 이 때문에 인류를 제외한 나머지 생물 다수는 곧 끔찍한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바로 이 비극, 이 지점이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 지성'으로 손꼽히는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 1929~ )'의 최근작 <지구의 정복자(The Social Conquest of Earth, 2012)>가 가진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l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은이) | 이한음 (옮긴이) | 최재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3-11

원제 The Social Conquest of Earth (2012)

 

서양미술사의 걸작 '폴 고갱(Paul Gauguin, 1848~ 1903)'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D'où venons-nous? Que sommes-nous? Où allons-nous?, 1897)>에서 그대로 따온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고갱 최후의 역작이다), 이 책은 지구의 정복자인 인류의 기원과 진화를 정면으로 탐색한 대작이다. 단순히 곁다리로 인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양념처럼 건드린 게 아니라, '사회생물학'을 창시했고 '통섭(Consilience, 지식의 통합)'을 주창한 대학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내놓은 인류 역사의 종합적 탐험이다(어쩌면 에드워드 윌슨 최후의 역작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사고의 깊이와 범주는 통섭을 주창한 에드워드 윌슨의 저작답게 우리가 다루고 있는 거의 모든 학문의 경계를 넘나든다 ... 이 책은 현존하는 최고의 통섭형 학자가 그의 학문 여정의 정점에 다가서며 내놓은 걸작이다."

-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국립 생태원 원장)

 

<지구의 정복자>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목차상 1부와 2부는 인간의 조건과 인류의 기원에 대한 부분이고, 3부와 4부는 (인류의 진화 역사에 참조할 수 있는) 사회성 곤충의 발달 과정을 '자연과학자'로서 정리한 내용이다. 그리고 5부와 6부는 인간의 본성과 문화의 기원, 인류의 미래를 한 사람의 명망 있는 노학자로서 인류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대서사시로 조망한 부분이다. 전문적인 생물학자 외에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첫 번째와 세 번째 내용이 이 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도 5부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사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내용이 다 기나긴 인류 진화의 발자취를 총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그저 일부분을 요약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인류가 육식을 하게 된 원인에 대한 저자의 분석만 해도 그렇다.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식량 다양화가 필요했고(기후가 달라지면, 획득할 수 있는 식량도 변화될 수밖에 없다), 식물성 식량보다 에너지 효율이 훨씬 더 높은 고기를 먹음으로써, '잡식성'이 된 인류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결국 생존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단순히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으로서의 육식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전체적인 발달 단계의 측면에서, 육지 생활 ·  커다란 몸집과 상대적인 비이동성 · 움켜쥐기에 알맞은 손과 발 · 잡식 · 불의 제어 · 야영지 마련 등을 통합적으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집단을 형성하고 분업을 하며, 더 나아가 요리한 음식을 나눠먹는 행위가 사회적 유대형성의 보편적 수단이 되는 순간(요리 나눠먹기의 의미)까지도 함께 떠올려야 한다. 이게 바로 에드워드 윌슨의 탁월한 통찰력이고,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다.

 

또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면, 진사회성 군체는 같은 생태적 지위를 놓고 경쟁할 경우 단독생활을 하는 개체들보다 훨씬 유리하다. 그런데 왜 진사회성은 생명의 역사에서 그렇게 드물게,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출현하게 되었을까? 이의 대답을 위해서 에드워드 윌슨은 외부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의 성공 여부, 준비된 학습과 혁신의 필요성, 균형과 협동, 보금자리의 중요성, 외부적 위험의 역할, 대립 유전자 출현의 의미, 개체선택과 집단선택, 초유기체 형성, 유전자 가소성, 후성규칙과 문화적 변이 등등 이런 통섭적 지식들을 총망라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되지 않으려면, 전체 내용을 차근차근 다 읽어봐야만 하는 것이다.

[저자는 퓰리처상을 2회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저술가이기에, 일부 전문적인 내용을 제외하고 책 자체는 참 재밌다]

 

지구의 정복자(The Social Conquest of Earth) - 10점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사이언스북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흥미로웠던 내용들을 여기에 몇 가지만 그대로 옮겨보자 다음과 같다.

 

-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울트라마라톤 세계 기록을 세운 배른트 하인리히는 <우리는 왜 달리는가>에서 마라톤이라는 주제를 깊이 탐구했다. 그는 25킬로미터 달리기 2000년 미국 챔피언인 숀 파운드의 말을 인용하여 장거리 달리기의 원초적 기쁨을 표현한다. "장거리 달리기를 체험할 때, 당신은 ... 사냥을 다시 체험한다. 장거리 달리기는 단거리 질주에서 당신을 이길 수 있는 먹잇감을 약 49킬로미터에 걸쳐 추적하여 잡아 마을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굉장하지 않은가."

 

- 오늘날 전세계의 사람들은 전쟁에 대해 점점 더 신중해지고 전쟁의 결과를 두려워하면서 그것의 도덕적 등가물인 단체 운동 경기(대중 스포츠)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집단의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자기 집단이 우월하기를 원하는 욕구는 단체 운동 경기라는 의례화한 싸움터에서 자기편 전사들이 승리할 때 충족된다 ... 그들은 승리한 뒤에 벌어지는 의기양양한 축제에 참석한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전사나 처녀 같은 연령대에 속한 이들은 자제력을 모두 버리고 전투의 분위기와 전투가 끝난 뒤에 흥에 겨워 벌이는 요란한 행동에 참여한다.

 

- 인간의 감각계와 뇌는 가시광선의 연속적인 파장들을 나누어 우리가 색깔 스펙트럼이라고 부르는 분리되어 있는 단위로 배열한다. 이 배열은 생물학적으로 보면 근본적으로 임의적이다. 수십만 년에 걸쳐 진화했을 수 있는 수많은 배열 중 하나일 뿐이다 ... 생물학적 현상으로서의 색깔 지각은 가시광선이 가진 진동수 이외의 또 다른 주요 특성인 빛의 세기에 대한 지각과 대조적이다. 조광기 스위치를 부드럽게 돌려 빛의 세기를 서서히 바꾸면, 우리는 실제 그대로 그 변화를 연속적인 과정으로 지각한다. 하지만 단색광을 사용해 한 번에 한 가지 파장만을 비추면서 한 파장에서 다른 파장으로 차례로 옮겨 가면, 우리는 연속적이라고 지각하지 않는다.

 

- 창작 예술은 인류가 추상적 사유능력을 계발했을 때 가능해진 진화적 발전의 한 유형이다.

 

이 외에도 무척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으니, 웬만하면 이 책을 사서 찬찬히 읽어보길 권한다. <지구의 정복자>에 관최재천 교수도 이렇게 말했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고 또 읽을 책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smithsonianmag.com]

 

앞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이 바로 5부 '우리는 무엇인가'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에드워드 윌슨은 인류가 가진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와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다. 그는 이 부분에서만큼은 단순히 과학자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호모 사피엔스 동료로서, 도덕과 명예 · 종교와 같이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주제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어루만지며 자기 목소리를 그대로 내고 있다. 유명한 학자로서 자신의 명망이 손상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애매한 태도나 망설임 없이 곧장 문제의 중심으로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마치 돈키호테 같은 분위기마저 풍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5부 뿐만 아니라 전체 책 내용에서 뽑았다). 저자에 따르면 (단순하게 말해서) 우리의 선행 인류 조상들이 지구의 정복자가 된 건, 선택된 것도 아니고 위대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고, 우연이다. 전쟁과 대량학살은 어느 특정한 시대나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보편적이고 영속적인 것이다. 족벌주의와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우리가 확보하게 될) 우생학적 조작 기술을 이용하려 들 테고, 그것은 결국 사회를 좀먹을 것이다. 그리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회는, 가장 부유한 사람과 가장 가난한 사람의 소득 차이가 가장 적다.

 

 

또 도덕에 대한 자연주의적 이해는 절대적인 교리와 단정적 판단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및 이데올로기적 교리에 맹목적으로 기대지 말라고 경고한다. 종종 그렇듯이, 그런 교리가 오도될 때에는 대개 '무지'에 토대를 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가 '인공 피임'을 금지한 것도 지식 부족 때문에 교조적인 윤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고, '동성애 혐오증(homophobia)' 역시 마찬가지다. 심리학과 번식 생물학에서 나온 많은 증거들은 성교에 또 다른 추가 목적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으며(성교의 목적은 아이를 잉태하는 것만이 아니다), 동성애의 존재는 인류의 다양성에 어떻게 건설적으로 기여하느냐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드워드 윌슨의 얘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기적 개인이 이타적 개인을 이기는 반면, 이타주의자들의 집단은 이기주의자들의 집단을 이긴다"는 말이다. 이것은 이 책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개체 선택'과 '집단 선택'에 관한 내용인데, 개체 선택이 선호하는 행동의 요소들과 집단 선택이 선호하는 요소들 사이에는 (인류 역사를 영원히 관통하며) 계속해서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저자는 자신있게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됐는데, 유전적인 사회성 진화의 냉엄한 법칙이 바로 일종의 '영구적 모호함'인 셈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D'où venons-nous? Que sommes-nous? Où allons-nous?)>, 폴 고갱(Paul Gauguin), 1897. 유화, 141 x 376cm, 미국 보스턴미술관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지성'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의 특성을 이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지구의 정복자>는 고갱의 그림 앞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저자가 고갱에게 전하는 말을 끝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에드워드 윌슨은 이렇게 말한다. "그림은 답이 아니다. 질문이다." 그는 한 사람의 자연과학자로서 인류의 기나긴 진화 역사를 최대한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으며, 또 한 사람의 동족으로서 현재 인류의 사회 문제를 나름대로 분석하는데, 심지어 사회적으로 굉장히 복잡한 사안인 '조직적인 불의에 맞선 개인과 소수집단의 저항'까지도 다루고 있다(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들었던 부분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에드워드 윌슨의 '예언'을 옮기며 리뷰를 마친다. 최근에 읽었던 책들 중에 가장 놀라운 명저로서 <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강력 추천한다!

 

"이제 내가 지닌 맹목적인 믿음을 고백해야겠다. 우리가 몹시 원한다면, 22세기쯤이면 지구는 인류의 영원한 낙원이 되거나 적어도 그 초입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자기 자신과 다른 모든 생물들에게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입히겠지만, 서로에게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소박한 윤리관, 이성을 가차 없이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 태도, 우리가 진정 무엇인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게 된다면, 우리의 꿈은 마침내 이곳 지구에서 실현될 것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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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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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ephia 2014.01.22 0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봐야 제맛인 책이네요.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2. 포장지기 2014.01.30 1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명절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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