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 + α

대중을 위한 철학, 버트런드 러셀 [인기 없는 에세이]

경험론적 자유주의와 세계정부, 전쟁과 냉전, 철학과 정치에 관한 러셀의 종합선물세트.

 

이 사람은 영국의 유력한 귀족가문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위대한 정치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에게 아이의 대부가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10대 후반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장학생으로 들어갔으며, 20대 초반에는 학교를 최우등 졸업한 뒤 선임연구원이 된다. 20대 중반에 자신의 첫 저서를 출간하면서 명망가로서의 긴 삶에 첫 발을 내딛고, 런던 경제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다. 30대 중반에는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으며, 얼마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 강사가 된다. 여기서 나중에 위대한 철학자가 되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전형적인 천재인 비트겐슈타인을 돌보며 학문을 하도록 권유한다.

 

40대에 접어든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전운동가'로 활동하다가 학교에서 해고되고, 벌금까지 선고받는다. 이후에도 참전 반대 강연으로 인해 징역형을 선고받아 실제로 복역했으며, 1차 대전이 끝난 다음에는 러시아 혁명을 조사하다가 뛰어난 혁명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Влади́мир Ильи́ч Ле́нин, Vladimir Ilyich Lenin, 1870~1924)'을 만나 1시간에 걸쳐 토론을 하기도 한다. 40대 후반에는 러시아에 이어 중국과 일본을 방문하고(미국은 수시로 드나들었다), 50대부터 60대에 걸쳐 엄청난 양의 강연과 수필과 잡지 기고문과 책을 발표하면서 거대한 명성을 쌓는다. 이와 동시에 하원 선거에 출마했으며, 재혼을 했다가 또 이혼하고 세 번째 장가를 드는가 하면, 그 와중에 아이를 셋이나 낳고서 스스로 학교를 열기까지 한다.

 

60대 중반에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영국 정치에 실망한 그는 미국에서 자발적인 망명자 신세로 단기 교수직을 맡았고,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70대 초반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 대학교의 특별연구원으로 오랜만에 복직한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저작 중에서 제일 많은 인세를 벌어줄 <서양 철학사(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1945)>를 출간한다. 이 책의 놀라운 성공은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어 주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 강의는 가장 큰 강의실을 다 채우고도 넘칠 만큼 많은 학생들이 몰려 들었다. 곧 '현존하는 영국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영국의 상징'이 된 그는 이후 10여 년 동안 사상가로서 최고의 존경을 받게 된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중적 지식인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70대 중반, 그는 부단한 강의와 방송 출연을 하면서 종전 이후 세계 각지를 돌며 대단한 인기를 얻는 한편 '핵무기 반대 운동'과 함께 '세계 평화 운동'도 열성적으로 펼친다. 마침내 70대 후반이 되자 애증의 관계였던 자신의 조국 영국에서 그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공로 훈장을 수여하고, 1950년에는 노벨 문학상까지 받는다. 이때 출간되어 비평가들의 찬사와 독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은 책이 바로 이번 포스트에서 소개할 <인기 없는 에세이(Unpopular Essays, 1950)>다. 철학자이자 수학자, 예술가이자 과학자, 시민운동가이자 정치가, 여성 해방 운동가, 우아하고 재치 있는 문장가, 능란하고 섬세한 논객.. 이 사람은 20세기 최고의 지성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3rd Earl Russell, 1872~1970)'이다.

 

 

인기 없는 에세이 -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버트런드 러셀 (지은이) | 장성주 (옮긴이) | 함께읽는책 | 2013-08-26
원제 Unpopular Essays (1950년)

 

<인기 없는 에세이 -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는 제목 그대로 수필이다. 이 세상 어떤 수필이든 그 태생적 특성상 '누가 썼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에세이 자체가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 따위를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기술한 산문 형식의 글'이기 때문에, 저자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가가 이를 이해하는 데에 핵심적인 단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포스트는 버트런드 러셀의 소개부터 시작했고, 아무래도 책을 읽기 전에 그의 삶에 대해 좀 알고 있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우리가 Bertrand Russell 이라는 한 인간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출신 성분부터 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인기 없는 에세이(Unpopular Essays) - 10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지음, 장성주 옮김/함께읽는책

 

"빅토리아 여왕 시대 절정기의 영국에서 러셀 가문의 자제로 태어난다는 것은 곧 영국 사회 및 정치계에서 지배층의 자리를 예약한다는 뜻이었다. 전직 총리의 손자인 동시에 백작 작위 계승권자로 태어난 버트런드 러셀은 영국 자유당 지도부에서도 가장 위세 높고 존경받는 집안 출신이었다."

- Unpopular Essays 2009년판 서문, 커크 월리스 (조지아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마디로 러셀은 선택받은 인간이었다. 유력한 귀족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최고 명문대학인 케임브리지 장학생을 거쳐 최우등 졸업생이 된다. 대단한 집안 자제에다가 머리까지 좋았고 유머와 재치가 넘쳤으며 (철학자들은 평생 혼자 사는 경우도 많은데) 세 번이나 결혼을 했다고 하니, 의심의 여지 없는 '엄친아'였던 셈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바로 그에게 따라붙는 타이틀이다. 반골 시민운동가, 신식 도덕의 열혈 지지자, 진보적 지식인, 여성 성해방 운동가, 영국 노동당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 등등..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버트런드 러셀의 출신 성분과 각종 타이틀의 만남은 오히려 그의 위대함에 대한 증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최고위 지배층이었고 백작 작위 계승권자인데도 여성 성해방 운동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남성, 영국 자유당 지도부에서도 가장 위세 높고 존경받는 집안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인 러셀은 무척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또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저작을 남겼다. 그는 거의 한 세기에 이르는 삶을 살았고, 엄청난 명성을 얻었으며,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게다가 버트런드 러셀은 행동하는 지식인이었고, 엄밀한 논리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진보적 가치를 전투적으로 수호해 나갔다. 그래서 그에게는 항상 칭송과 욕설, 존경과 경멸, 동조와 비난이 다같이 따라다녔다. 결국 자신의 수필 모음집에 <인기 없는 에세이>라는 이상한(?) 제목을 다는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서도 역시 그의 위트가 번뜩인다.

 

"지난 15년 동안 이런저런 상황에서 쓴 다음의 에세이들은 대부분 투쟁의 기록으로서, 그 목표는 이제껏 우리의 비극적인 세기를 특징지었던 교조주의가 좌파에서도 우파에서도 성장하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막는 것이었다. 간혹 경망스러워 보이는 글이 있을지언정 원래의 목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진지했다. 경망스럽게 쓴 까닭은 엄숙하고 오만한 자들을 상대로 더욱 엄숙하고 오만하게 싸워봤자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노벨 문학상 수상을 비롯해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 일반 대중을 위해 쓴 글 모음이고, 버트런드 러셀은 교조주의와 회의주의의 중간에 위치하는 '경험론적 자유주의자'인데, 철학자로서 그는 "자신의 믿음에 과학적 증거를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저런 정당이나 신념보다 인류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철학은 경험론적 자유주의뿐"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러셀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인기 없는 에세이>는 그가 특유의 명료함과 재치를 듬뿍 담아 써내려간 참 재밌는 책이다(출간 즉시 러셀의 책들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책이라고 한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러셀의 '독설'을 만끽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Unpopular Essays>는 버트런드 러셀이 15년 동안 주제도 길이도 제각각으로 쓴 글을 모은 책이다. 먼저 그가 1937년에 쓴 글 세 편은 '철학자들의 은밀한 속셈', '억압받는 자들의 미덕', '스스로 쓴 부고'이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에 쓴 글 두 편 '인류에 도움이 된 관념들'과 '인류에 해를 끼친 관념들'은 딱 제목만 봐도 서로 짝을 이룬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모든 게 정치와 무슨 상관인가? (1947)'는 이 책의 전체적인 성격을 규정하는 듯하고, 1950년에 쓴 나머지 글들은 출간될 당시 인류의 희망과 전망을 논한 것이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글을 쓴 순서대로 편집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연계되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각자 마음에 드는 글부터 읽어도 된다.

 

 

사실 <인기 없는 에세이>에 담긴 글들은 그 하나 하나가 다 버트런드 러셀의 지성이 응축되어 있는 엑기스이자, 철학과 정치 · 전쟁과 냉전 · 경험론적 자유주의와 세계정부 등에 관한 그의 견해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담겨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 중 일부 주제에 대해서만 파편적으로 논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고, 또 쉽게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차라리 각 글 별로 깊이 있게 사유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고, 그러려면 반복해서 읽을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노벨 문학상까지 받을 정도로 탁월한 문필가이자 사상가의 글이니(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유명 철학자들 중에서 거의 마지막에 위치하는 인물 아닐까?), 12개의 글 모두 충분히 여러 번 읽을 만한 수필이다.

 

다만 사회문제에 직접 뛰어든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Bertrand Russell 답게 모든 글에 1차와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식인의 현실 인식이 짙게 배어있고, 2013년 현시점에서 보면 약간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안들도 있다. 대표적인 게 '인류의 미래'에 나오는 '세계 정부'라는 개념인데, 옮긴이도 지적했듯이 러셀이 이런 개념을 내세운 이유는 당시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던 문제가 바로 '나치'와 '원자폭탄'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 역사와 마찬가지로, 한참 지나서 결과를 이미 아는 상태로 과거를 분석하는 일과 당장 그때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고민하는 건 참 많이 다른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인기 없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 정도만 감안한다면, 특별히 어색한 부분 없이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많은 '철학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1970년에 사망한 20세기 최고의 지성이 마치 2013년의 대한민국을 향해 남긴 말처럼 느껴지는 문단을 하나 읽어보고 끝내자.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의 비극을 정확히 예견하고 있다.

 

"나는 정부가 행동에 나서서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믿게 할 수 있는 헛소리의 영역에는 한계가 없다고 확신한다. 만약 적절한 규모의 군대와 이들에게 평균보다 나은 급여 및 식사를 제공할 권한이 있다면, 단언컨대 나는 30년 안에 대다수 사람들로 하여금 어떠한 허튼소리도 믿게 할 수 있다. 2 더하기 2는 3이라거나, 물은 뜨거워지면 얼어붙고 차가워지면 끓는다거나, 그 외에도 국가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헛소리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물론 이러한 믿음이 일반화되더라도 사람들이 음식을 끓이기 위해 냄비를 냉장고에 넣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냉기가 물을 끓게 한다는 믿음은 일요일에만 지키는 교리처럼 경외심이 밴 목소리로 읊어야 하는 성스럽고 신비한 것일 뿐, 나날의 삶에서 실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실생활에서는 그 신비한 가르침을 소리 내어 부정하는 행위가 불법화되고, 완고한 이단자들은 말뚝에 묶여 '동결형'에 처해질 것이다. 공인된 신념을 열렬히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교직 또는 어떠한 권위를 가진 직책에 종사하는 일이 금지될 것이다."

- 버트런드 러셀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중에서..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