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소설가와 영화감독, 두 거장이 만든 지독하고 냉정한 비극 [Counselor(2013)].

 

진정 무서운 영화가 나왔다. 물론 이 작품은 'Horror'가 아니라 'Thriller'다. 최근 몇 년 동안 본 스릴러 중에서 가장 대단한 영화다. 몰입해서 보다 보면 굉장히 섬뜩하고, 살이 덜덜 떨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대놓고 사람을 놀라게 하거나 끔찍한 장면을 계속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깊이 있는 대사와 밀도 높은 화면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카운슬러(The Counselor, 2013)>를 만든 두 거장은 참 냉정한 사람들이다.

 

현대 미국문학의 4대 소설가로 손꼽힌다는 '코맥 맥카시(Cormac McCarthy, 1933~ )'가 시나리오를 쓰고, 장장 30년 넘게 계속해서 전세계 영화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아온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1937~ )'이 감독한 영화. 그 누구든 리들리 스콧과 코맥 맥카시를 싫어하거나 또는 좋아할 수는 있어도, 이 두 사람이 탁월한 영화감독이고 소설가라는 것을 쉽게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진정으로 소설과 영화를 좋아한다면 말이다.

 

다만 두 개인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이들이 함께 만든 영화가 별로일 수는 있다. 아무리 Michael Fassbender, Cameron Diaz, Penelope Cruz, Javier Bardem, Brad Pitt가 출연한다 한들, 각본과 연출이 제대로 하모니를 못 이루면 작품 자체는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1930년대에 태어난 '마스터' 두 명은 2013년에 무려 여든이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둘은 참 지독한 사람들이다.

 

 

카운슬러(The Counselor, 2013)
스릴러 | 미국, 영국 | 117분 | 각본: 코맥 맥카시,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카운슬러 役), 카메론 디아즈(말키나 役), 페넬로페 크루즈(로라 役), 하비에르 바르뎀(라이너 役), 브래드 피트(웨스트레이 役)

 

이 영화의 주인공은 카운슬러, 즉 변호사다. 마이클 패스벤더와 페넬로페 크루즈가 연인으로 나오고, 카메론 디아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이 또 한 쌍이다. 브래드 피트는 마약 중개인이고, 범죄에 연관되지 않은 등장인물은 거의 없다. 영화의 주무대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이며, 마약을 사이에 두고 마치 서부극처럼 서로 죽고 죽인다. 그렇다고 멋진 액션씬이나 낭만적인 플롯을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 작품은 전혀 그런 영화가 아니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비극'이다. 'Sin is a choice' 코맥 맥카시는 이 한 문장으로 무척이나 지적이면서도 굉장히 살벌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카운슬러, 그에게는 결정적인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심지어 타락한 사업가도 몇 번씩 되묻고 마약 중개인도 말리지만, 카운슬러는 이미 자기 분에 넘치는 다이아몬드 반지로 약혼자에게 청혼을 한 상태다. 그의 사랑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진심이지만,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자기가 한 선택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만 한다. 설사 그것이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 작품은 아주 냉정하다. 리들리 스콧은 주요 인물들의 비참한 죽음에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것 역시 일종에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듯이 과감하고 리얼하게 그냥 스쳐 지나가게 내버려 둔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개개인의 삶이 아니다. 하나의 세계 속에서 한 인물의 선택이 전체 그림의 일부분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키고, 그것이 다른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또 그런 연쇄 반응이 결국 그 사람에게 어떻게 되돌아오는지를 무심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코맥 맥카시가 정교하게 선을 그었고, 리들리 스콧이 강렬한 색을 입혔다.

 

 

그래서 <카운슬러(The Counselor)>는 지독한 영화다. 코맥 맥카시는 자비 없이 인간의 본성을 파고 들고, 리들리 스콧은 당연하다는 듯이 인간 군상들을 검붉게 물들인다. 만약 감독이나 작가가 겁을 먹거나 흥분했다면 이 작품은 그저 혐오스러운 슬래셔 무비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실제로 그럴 만한 장면들이 몇 번 등장한다), Ridley Scott과 Cormac McCarthy는 그런 애송이가 아니다. 이미 소설가로서 일가를 이룬 작가는 전혀 흔들림 없이 끝까지 선의 날카로움을 잃지 않으며, 감독은 명실상부한 대가의 솜씨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제되고 순도 높은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미덕 중에 하나가 바로 두 거장의 '뚝심'일지도 모른다. 코맥 맥카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법의 스릴러 스토리텔링(컷 하나에 거의 소설 반 페이지 분량의 긴 대사, 이런 장광설에도 불구하고 그 깊이와 무게감으로 정면승부하며 긴장감 유지)을 구사함으로써, 비록 일반 관객들은 좀 낯설 수 있지만 전체 시나리오적인 완성도는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리들리 스콧 역시 대규모 자본이 드는 영화로서 자칫 잘못하면 지루하고 사변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언제나 그랬듯 자신의 밀도 높고 감각적인 연출력으로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서스펜스를 놓치지 않고 있다.

 

카운슬러(The Counselor) - 10점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 지음, 김시현 옮김/민음사

 

리들리 스콧 연출이 아니었던들 그리고 코맥 맥카시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니었던들, 과연 헐리우드에서 이런 작품이 상업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제작될 수 있었을까? 게다가 브래드 피트, 하비에르 바르뎀, 페넬로페 크루즈, 카메론 디아즈, 마이클 패스벤더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을까? <카운슬러>에서 배우들은 철저하게 자신만의 색깔이 탈색된 채 오로지 영화 속 캐릭터에 충실하게 표현된다. 각 인물에게 아무리 결정적인 장면이라도, 너무나 무심하게 전체 이야기에서 딱 필요한 정도로만 드러난다(각 배우의 팬들은 좀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이건 Cormac McCarthy와 Ridley Scott이 배우들의 이름에 전혀 개의치 않고 마스터의 의지를 끝까지 지켰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닐까 싶다. 아마 배우들도 언감생심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카운슬러(The Counselor)>는 진짜 무서운 영화다. 인간의 본성에 관해 정말 냉정한 비극을 보여주고 있으며, 영화적으로도 지독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리들리 스콧과 코맥 맥카시는 헐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자본이나 배우들에 눌리지 않았으며, 최소한의 타협으로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걸 그대로 밀고 나갔다. 개인적으로는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비교적 준수하다고 생각하며, 어쩌면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이 영화의 이름을 여러 번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한국 관객들은 약간 불편할 수 있는데, 자신이 진정으로 소설과 영화를 좋아한다면 한번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한 영화가 바로 두 거장 코맥 맥카시와 리들리 스콧이 만든 <카운슬러>다. 꼭 모험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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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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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장지기 2013.12.02 1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사만 드리고 갑니다^^
    행복한 저녁 되세요^^

  2. 그녀석 2014.04.25 1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정말 뚝심있고 살벌한 영화라 생각했죠.
    물론, 대중이 바라보는 영화에 대한 느낌도 중요하지만,
    분명히 나중에 시간이 지난뒤 이 영화를 다시 볼때면
    그 살벌함을 공감할 날이 올거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글 매우 잘 읽었습니다. 깔끔하고 잘 정리해주셔서 오랜만에
    카운슬러 다시 떠올려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