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소설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2006)]과 영화를 둘 다 추천할 수 있는 작품.

 

세상에는 좋은 영화들이 참 많다.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상영회'를 연 이래로 영화는 무수히 만들어졌고, 120여 년의 영화 역사를 지나며 좋은 영화들도 지속적으로 쌓여 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영화가 계속 제작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전세계 극장에서도 다양한 영화들이 언제나 상영되고 있다.

 

하지만 재벌 독과점 상태인 한국 영화시장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극히 한정되어 있고, 좋은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생각보다 그리 자주 오진 않는다. 물론 소위 말하는 시네마테크도 있고 요즘은 온라인 영화 감상도 무척 흔해졌지만, 우리들 각자가 좋은 영화를 찾아 보려는 의지가 없다면 이런 것들도 사실상 다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시네마테크는 특별히 시간을 내서 일부러 찾아가야만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좋은 영화 가운데는 아예 한국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작품들도 많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2008)>도 그 중 하나인데, 제작국가인 영국과 미국에서는 2008년 하반기에 개봉했지만 국내에서는 끝내 극장에 걸리지 못했고, 벌써 몇 년이 지났으니 현실적으로 이 작품을 한국 극장에서 볼 가능성은 이제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2008)
드라마 | 영국, 미국 | 94 분 | 각본, 감독: 마크 허먼(Mark Herman)
출연: 아사 버터필드(Asa Butterfield, 브루노 役), 잭 스캔론(Jack Scanlon, 쉬미엘 役), 베라 파미가(Vera Farmiga, 어머니 役), 데이빗 튤리스(David Thewlis, 아버지 役)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l 블루픽션(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3
존 보인 (지은이) | 정회성 (옮긴이) | 비룡소 | 원제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2006)

 

하지만 운 좋게도 2009년에 이 영화는 국내에 DVD로 출시되었고, 입소문을 타고 영화광들은 꽤 보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이 작품은 전세계적으로 300만 부 이상 팔린 아일랜드 작가 존 보인(John Boyne, 1971~ )의 동명 베스트셀러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2006)>를 스크린으로 옮긴 '홀로코스트(대학살)' 드라마인데, 원작은 2007년 중반에 한국에 번역 출간되어서 최근까지 18쇄가 나왔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 10점
존 보인(John Boyne) 지음, 정회성 옮김/비룡소

 

소설은 2007년에 아일랜드 독자들이 뽑은 '올해의 책'이자 카네기 상 후보작이었고, 영화 역시 2008년 제44회 시카고 국제영화제에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 2008)>와 함께 '관객상'을 공동 수상했다(공교롭게도 둘 다 원작 소설이 있는 각색 영화였다). 전체 줄거리는 소설과 영화가 거의 비슷하며, 시간적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후반기이고 장소적 배경은 독일 베를린과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다.

 

 

이 작품에서 무척 인상적인 게 바로 음악인데, 스타트렉 · 장미의 이름 · 가을의 전설 · 타이타닉 등 정말 대단한 영화들의 음악을 담당했고 이 작품 직후에는 아바타의 음악도 맡았던 '제임스 호너(James Horner, 1953~ )'의 솜씨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한참 동안 음악이 귓전을 맴돌았고, 나중에 원작소설을 읽을 때도 이따금씩 멜로디가 생각났다.

 

 

주인공 소년인 브루노 역으로 열연한 '아사 버터필드(Asa Butterfield, 1997~ )'는 이 영화 이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휴고(Hugo, 2011)>에서 타이틀롤을 맡았고(요즘 가장 핫한 클로이 모레츠도 나온다), 최근에는 해리슨 포드 주연의 <엔더스 게임(Ender's Game, 2013)>에도 출연했다고 한다. 우연히도 휴고에서는 ‘휴고’를 엔더스 게임에서는 ‘엔더’를 연기했는데, 두 영화 모두 벤 킹슬리가 동반 출연하고 있다. 아마 이 소년을 우리는 앞으로도 꽤 자주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브루노의 어머니 역을 맡은 베라 파미가의 연기도 뛰어나다).

 

 

사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단순하면서도 상당히 깊이 있는 얘기이기 때문에, 내용 자체를 그대로 말하기는 좀 조심스럽다. 상황 설정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약간만 말해도 어쩌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위 이미지에서 왼쪽에 앉아 있는 아이가 누가 봐도 피해자인 유태인 소년 '쉬미엘'이고, 오른쪽에 서있는 아이가 독일 소년 '브루노'이다. 유태인 학살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만난 유태인 소년과 독일 소년..

 

 

그런데 독일 소년의 아버지는 나치 독일의 유능한 군인이며, 히틀러로부터 직접 아우슈비츠 임무를 부여받은 최고급 장교다. 베를린에 살던 브루노가 아버지를 따라 폴란드 아우슈비츠로 이사하고, 새 친구를 찾던 이 소년은 집 근처를 탐험하다가 유태인 수용소에 갇혀 있는 쉬미엘과 만나게 된다. 공교롭게도 두 소년은 생년월일이 똑같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흥미롭게 시작된다.
[1934년 4월 15일생(소설 기준), 세부적인 설정에서 영화와 소설은 약간 차이가 있다]

 

 

자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10살도 안 된 두 소년이 생년월일이 똑같다는 걸 알게 되고, 서로 말이 잘 통하며, 다른 친구가 없을 때 발생하는 일이라면 짐작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고, 만난 장소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이며, 한 명은 나치 독일의 포로 수용소 책임자의 아들이란다. 기본적인 줄거리 얘기는 여기까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자면 이 작품은 '비극'인데, 개인적으로는 우선 영화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소설을 보길 추천하고 싶다.

 

"브루노와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적어도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에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인 것이다."
- 소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의 마지막 문단 발췌

 

존 보인(John Boyne)의 원작소설은 이제까지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들과는 좀 다르다. 직접적인 피해자나 가해자의 시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아이의 눈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순수한 시선으로 사건을 표현하고, 일단 친구와의 우정과 가족간의 사랑이 중심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미 야만의 역사를 다 아는 독자들은 각 사건의 이면을 능히 유추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기본 설정상의 거리감 덕분에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휩쓸리지 않는다. 그로 인해 우리는 전쟁의 비인간적인 실체를 보다 냉정하게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좀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묘사와 다양한 기술적 장치들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다]

 

영화는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게 각색되었고, 연출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호들갑스럽거나 요란하지 않다. 전반적인 줄거리 자체가 친구와 가족에 중점을 두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비극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데, 마지막의 충격적인 결말로 향하는 과정이 영화적으로 매우 적절한 톤을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설보다 영화가 시간적으로 훨씬 짧은 경험을 제공하는 반면 활자보다는 이미지가 훨씬 더 강렬한 인상을 준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뭔가 한 발 물러서 있는 듯한 연출은 바로 위에서 말한 원작소설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영화의 스타일만 놓고 보면 대체로 익숙하고 표준적이어서 굉장히 자연스러운 분위기인데, 꼭 필요한 등장인물과 장면만으로 채워진 밀도 있는 구성은 영화적으로 아주 경제적이고 참고할 만하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은 탄탄한 이야기 구조 위에 군더더기 없는 연출, 그리고 훌륭한 연기가 잘 결합된 수작이다. 완성도의 측면에서 소설과 영화 둘 다 뛰어난 작품이며, 원작이 있는 영화로서 이처럼 깔끔하고 조화롭게 영화화된 사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 개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숨어있는 명작 영화로서 강력 추천하는 바이며, 영화를 본 다음에는 소설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 소설과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약간 우울한 기분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묵직한 전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극도 이렇게 제대로 만들면, 더 이상 비극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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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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