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 사회 / 과학 / 예술 분야 주목할 만한 책 추천 프리뷰.
"이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작가다. 그는 시인일 수도, 소설가일 수도, 시나리오 작가일 수도, 라디오 방송작가일 수도 있다. 글 써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대개 다 비슷하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선 서평자라고 하자. 종이 더미 속에는 묵직한 소포 꾸러미가 반쯤 감춰져 있고, 그 안에는 편집자의 쪽지 왈, '일맥상통'할 거라는 다섯 권의 책이 들어 있다. 그게 도착한 것은 나흘 전이었지만, 서평자는 48시간 동안 도덕성이 마비되었던 탓에 소포를 열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굳게 마음먹은 일순간, 소포 끈을 확 풀어버리고 다섯 권의 책을 확인한 것이었다 ... 서평자는 원고를 들고 나서야 할 때를 3분쯤 남겨두고 정확한 분량으로 마친다. 그리고 그사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시시한 책들이 우편으로 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같은 일은 또 반복된다. 하지만 이렇게 심신을 고문당하고 짓밟히는 이도 불과 몇 년 전에는 고상한 포부를 품고서 이 일을 시작했다."
- 조지 오웰(Eric Arthur Blair, George Orwell, 1903~1950), <어느 서평자의 고백> 중에서..
[피카소(Picasso), <한국에서의 학살>, 1951, 110 x 210cm, 패널에 유채, 파리 피카소미술관]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지은이) |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긴이) | 이미지프레임(길찾기)
2013-07-10 | 원제 El Arte de volar(비행의 기술)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직접 '공화파 의용군'으로 참전한 뒤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 1938)>라는 소설을 썼고,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는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파를 지원한 나치'의 게르니카 지역 폭격 참사를 보고 <게르니카(Guernica, 1937)>라는 그림을 그렸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프랑코파에 맞섰던 아버지를 둔 스페인의 두 아들, 안토니오 알타리바(Antonio Altarriba, 1952~ )와 킴(Joaquim Aubert I Puig-Arnau, 1941~ )이 지은 '문학-만화'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안토니오 알타리바(소설가, 만화 시나리오 작가)의 아버지인데, 그는 스페인에서 1910년에 태어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젊은 시절 내전을 겪었고 전쟁 이후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다가, 2001년에 자살했다고 한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저자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스페인 내전에 고통받은 세대의 아픔을 글로 썼으며,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은 킴(만화가)의 그림으로 표현된 1인칭 독백의 역사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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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오웰과 피카소가 21세기에 만났다면, 아마 안토니오와 킴과 같은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이 작품은 2010 스페인 국립 만화대상을 비롯해 자국내 만화 관련 상을 거의 독식했다고 하며,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도 번역 출간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번역서로서는 드물게 2011년 프랑스 ACBD 비평대상 최종후보에 올랐으며 2012년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발 본선 경쟁작으로도 출품되었다고 하니, 평단의 극찬을 받은 이 문학-만화가 대단한 '물건'이긴 한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 역시 동족상잔의 비극과 독재를 겪었으니,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들도 분명히 이 작품을 보며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스페인의 '프랑코'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한국의 '아버지와 딸'이 지배하는 2013년이 아닌가..
"20세기 초 스페인내전에서 20세기 중반 한국전쟁을 연상해내기란 어렵지 않다. 프랑코 독재에서 박정희 독재를, 피카소의 <게르니카>에서 <한국에서의 학살>까지. 이베리아반도와 한반도, 유럽과 동북아시아의 지리적 거리는 멀되, 동시대를 살았던 아버지 세대들의 삶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래서 이 책은 그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우리들 자녀와 손자세대에 대한 헌정일는지 모른다."
- 최재천(독서인, 19대 국회의원)
상상박물관 - 상상의 힘으로 서양미술사를 재구성하다
필리페 다베리오 (지은이) | 윤병언 (옮긴이) | 휴먼아트 | 2013-07-16
원제 Il Museo Immaginato (2011년)
<상상박물관>의 저자 필리페 다베리오(Philippe Daverio, 1949~ )는 이탈리아 팔레르모 대학 건축학과 정교수다. 잡지 <Art e Dossier(예술과 담론)>의 발행인이며, 이탈리아 국영 방송 Rai 3의 작가이자 진행자이고, 2013년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예술평론가라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만의 완벽한 박물관을 짓고 그 안에서 서양 미술사의 명작들을 재구성한다는데, 다재다능한 건축학과 교수로서 무척 뛰어난 기획력을 가진 듯하다. 자신의 건축 지식을 활용해서 상상 속의 박물관을 짓고, 그 안에서 유명 작품들로 미술 평론을 한다? 알자스 지방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자랐으며 잡지 발행인과 방송 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저자보다 이런 식의 서양미술 안내를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 저자의 출신 성분과 프로필에 안성맞춤인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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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필리페 다베리오가 지은 '상상박물관'은 지상 3층에 지하 1층인데, 총 열 두 개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건축학과 교수답게, 그는 박물관의 전체적인 구조를 그린 다음 각 방들에 전시할 작품들과 관람 순서를 결정했으며, 각기 개성이 분명한 방들을 어떤 가구와 조명으로 장식할지도 세심하게 고려했단다. 저자는 각 공간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놓고 움직이고, 모든 공간은 그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그림들로 채웠다. 보통 우리가 유명 미술관에 가면,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서 아무리 좋은 그림이라도 제대로 감상할 만한 물리적 시간과 감성적 여유를 갖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상상박물관>은 미술에 조예가 깊은 건축가가 오직 독자 한 사람만을 위해 잘 만들어 놓은 전문 미술관이며, 아무런 제약 없이 서양미술사의 명작들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해 준다. 게다가 현학적인 학자가 아닌 대중적인 방송작가로서, '누구나 자기만의 이상적인 박물관을 지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가이드한다. 우리도 이 책을 읽으면서 각자 자신만의 완벽한 박물관을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땅에 사는 아름다운 꽃도감 - 개정판
신응섭 (지은이) | 여우별 | 2013-07-07
<우리땅에 사는 아름다운 꽃도감>에는 151종의 풀꽃들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으며, 부록에는 수생식물ㆍ약용식물ㆍ양치식물ㆍ원예식물ㆍ재배식물 꽃ㆍ식물 새싹 등 181종이 담겨 있다고 한다. 풀꽃들은 대부분 우리 나라가 원산지인 야생화들이라는데, 모두 332종의 꽃을 1,300여 장의 생생한 사진으로 담아냈단다. 자연생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신응섭은 사진 한 장 한 장을 오랜 기간 정성을 들여 준비했으며, 본문 디자인도 여타 도감류의 딱딱한 배열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꽃 자체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비슷한 종류의 서적들에서 일단 사진부터가 좀 조잡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아예 저자가 사진작가이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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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싹이 자라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터뜨리기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게 식물의 성장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점이 <우리땅에 사는 아름다운 꽃도감>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제대로 된 국내 꽃 도감을 잘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다. 사실 평소에 길을 걷다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꽃들 중에 그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는 무척 드문데, 332종의 꽃과 1,300여 컷의 방대한 사진자료를 10여 년의 노력 끝에 만든 도감을 읽으면 아무래도 꽃에 대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보는 눈'을 우리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를 보니, 야생화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금낭화'의 아름다운 자태를 좋은 사진과 설명으로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참 좋았다.
북학의 - 완역정본
박제가 (지은이) | 안대회 (옮긴이) | 돌베개 | 2013-07-08 | 원제 北學議
드디어 '완역 정본' 북학의가 나왔다. 우리가 교과서에서나 보던 바로 그 북학의가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에 의해 이번에 제대로(작품 전체를 빠짐없이 완전하게 번역) 출간된 것이다. <북학의>는 '내편'과 '외편'으로 구성되며 이와는 별도로 정조(正祖)에게 진상한 '진상본'도 있다는데, 원래 출간되지 않은 채 필사본으로 널리 읽혔다고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본의 수는 대략 20여 종이며, 안대회 교수는 국내는 물론 국외의 다양한 이본까지 널리 수집해서 철저한 교감 작업을 거쳐 진정한 정본을 만들었다. 물론 이제까지 번역본은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완역'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1971년에 처음으로 완역된 북학의 번역본도 일부 내용 누락과 오역으로 인해 제대로 된 완역이라고 부르기 어렵단다. 그런데 바로 이 불완전한 번역본이 이전까지 널리 이용되었다고 하니, 이번에 출간된 안대회 교수의 <북학의>가 사실상 최초의 '완역정본'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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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사상서 가운데 대표적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학의가 어째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완역이 나오지 않았는지 참 어처구니가 없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에는 지난 1000년 동안 출판된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손꼽히는 마르크스의 <자본(Das Kapital, Capital, 자본론)>조차 원전 번역본 완전체가 나온 게 겨우 2010년의 일이다. 영어판을 중역한 것이거나 번역하다가 만 것 또 요약본 등은 있었지만, 완전한 번역이 이루어진 건 고작 3년 전인 것이다. 그러니 박제가의 <북학의>도 명실상부한 완역정본이 이제서야 나온 걸, 씁쓸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교과서에서 배웠던 바로 그 북학의가 이번에 제대로 출간되었고, 우리는 조선왕조 500년의 사상서 중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문화유산을 마침내 완전체로 지금부터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책을 외면한다면, 그건 한국의 출판문화 발전을 외면하는 것 아닐까?
페어푸드 - 깨어 있는 소비자에서 참여하는 음식시민으로
오랜 B. 헤스터먼 (지은이) | 우석영 (옮긴이) | 따비 | 2013-07-16
원제 Food Fair: Growing a Healthy, Sustainable Food System for All (2012년)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의식주'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부터 정보화사회가 된 현재까지, 지구인의 의식주는 크게 잘못되어 왔다. 과학기술은 발전했을지 몰라도,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심각하게 왜곡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21세기인 지금도 마찬가지고, 단순히 몇몇 문제점이 있는 게 아니라 아예 시스템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렸음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드들의 값싼 패스트패션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3세계 약자들의 노동력 착취 속에서나 가능한 얘기고, 저유가 시대의 혜택으로 유지되고 있는 교외의 단독주택들과 도심의 대형 주상복합아파트는 언제고 고갈될 수밖에 없는 화석연료의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먹거리' 문제 역시 무척 심각하다. '웰빙'이니 '유기농'이니 말들은 많이 하지만, 이런 개념들조차 원래 가졌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채 그저 장사치들의 수익창출 수단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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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먹거리 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원칙부터 설명하기 시작해, 진정 제대로 먹기를 바라는 시민들에게 실질적 가이드를 제공하기 위해 출간된 책이 바로 '오랜 B. 헤스터먼(Oran B. Hesterman)'의 <페어푸드>다. 다들 느꼈겠지만, 이제 단순히 깨어 있는 '소비자'로는 부족하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시민 소비자'가 되어야 하고, 직접 참여하는 '음식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작물학 교수에서 캘로그 재단의 먹거리 프로그램 리더를 거쳐 '페어푸드 네트워크'의 의장이 된 저자는 잘못된 먹거리 체계를 새로운 'fair food system'으로 전환하는 데에 필요한 이론적, 경험적 기반을 충실히 제공해 줄 것이다. 또한 푸드 생태계의 최전방 격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운동가로서, 일반 시민들이 실제로 어떻게 조직화하고 먹거리체계를 혁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정말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싶다.
"책을 무차별적으로 평하는 일을 오랫동안 한다는 건 유난히 달갑지 않고 짜증스럽고 피곤한 노릇이다. 그것은 쓰레기를 칭찬하는 일일 뿐 아니라 그냥 두면 아무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을 책에 대한 반응을 계속해서 '날조'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 모든 책이 서평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당연시하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되기 어렵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서평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책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 내가 보기에 최선의 방법은 대부분의 책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중요해 보이는 소수의 책에 긴 서평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곧 나올 신간 서적에 대해 짧은 소개를 해주는 건 유익할 수 있되...."
- 조지 오웰(Eric Arthur Blair, George Orwell, 1903~1950), <어느 서평자의 고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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