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부코스키의 우체국은 지금 바로 여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괴테의 말에 의하면, "극도로 예민한 사람만이 아주 차갑고 냉정할 수 있다." 예민하게,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보자.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긴 편에 속하는 나라지만,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별로 높지 않은 곳이다. 쉽게 말해, 남들보다 오랜 시간 일을 하면서도 그렇게 길게 일하는 만큼의 돈은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한 정규직과 똑같이 일을 하고도 정규직의 절반 정도밖에 임금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서 아주 높은 축에 드는 반면, 이를 상쇄시킬 수 있는 복지제도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무척이나 취약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출생률은 가장 낮고, 자살율은 가장 높은 나라.. 이토록 치명적으로 극단적인 사회가 우리 말고 또 존재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면 이제, 냉정하게 얘기를 한 번 해보자. 노동자들이 지금보다도 더 열심히 일을 해서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한들, 일반 노동자들의 생활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몇몇 노동자들이 개인적으로 월급을 좀 더 받을 수 있을진 몰라도, 전체 노동자들의 삶이 더 좋아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사실, 기업들의 수출이 잘 되고 내수시장이 어느 정도 살아난다고 해도 일자리는 그다지 많이 늘어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미 기본적인 경제구조가 달라졌기 때문에, 과거처럼 일자리가 그렇게 쉽게 증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경제발전이 된다고 해도 현재의 실업률이 급격히 낮아질 일은 없고,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이 크게 높아질 가능성도 그리 많지 않다. 한마디로, 경제 자체만으로는 서민의 삶을 구제할 수 없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허울 좋게 내세우며 온갖 미사여구로 요란하게 치장했던 대통령선거가 끝났지만, 노동자들은 이 엄동설한에 수십 미터 철탑 위에서 새해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얘기해 보면, 도올의 말대로 "정치는 민생을 해결하지 못한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새로운 방향을 잡고 그 길을 지속적으로 걸어가는 데에,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경제발전이든 정치개혁이든,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서민과 노동자의 삶은 언제나 그대로인 셈이다. 그럼,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발걸음의 시작을 위해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가 했던 것처럼, 사회의 가장 근원적인 병리에 대해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면서 이에 관한 창조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겐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으로 비춰지며 실현 가능성을 부정 당하더라도, 어쨌든 이반 일리히는 뛰어난 지성으로 자신의 복음을 전세계에 끊임없이 전파했다.

 

 

이번에 리뷰할 장편 소설 [우체국(Post Office, 1971), 박현주 옮김/열린책들]의 작가 찰스 부코우스키(Charles Bukowski, 1920~1994)는 이반 일리치와는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는 대신에 최대한 솔직하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고, 창조적인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그저 인간적인 연민을 보여준다. 지극히 솔직하고 인간적이며 모든 서민과 노동자의 삶에 대한 성실한 동정(同情, sympathy)이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 속에는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겐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비춰지며 일견 '쓰레기'로 취급 당하더라도, 아무튼 찰스 부코우스키는 평생 그런 작품을 쓰며 실제로 자기 스스로도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 비주류 언더그라운드 작가의 분신인 '헨리 치나스키'가 최초로 등장하는 장편 데뷔작 [우체국(Post Office)]에 대한 서평에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겠다.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찰스 부코스키(Henry Charles Bukowski)의 1971년작 [우체국]을 펴면, 내용이 시작되기도 전 맨 첫 페이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이며 비인간적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바치는 솔직한 노동가(勞動歌)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밤낮없이 우체국에서 일하는 하급노동자 '헨리 치나스키(Henry Chinaski)'인데, 작가 역시 우체국 직원으로 10년 넘게 일한 전력이 있다. 찰스 부코우스키는 불안정한 비정규직 우체국 노동자로서 젊은 시절에 풍요로운 미국 사회의 밑바닥 생활을 했고, 그의 작품들에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냉소와 기존 권위에 대한 철저한 무시가 가득하다.

 

조지 오웰 이래, 이처럼 실감나게 존재의 궁핍을 기록한 예가 없다   -뉴욕타임스

 

마치 백인들에 의해 아프리카로부터 아메리카로 끌려온 흑인들이 '필드 홀러(Field holler)'와 같은 노예들의 노동요를 불렀듯이(필드 홀러는 나중에 가스펠과 블루스가 되고, 재즈를 거쳐, 리듬앤블루스와 로큰롤이 된다), 1920년에 독일 안데나흐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Charles Bukowski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부랑자에 가까운 하급노동자로서 오랫동안 미국 전역을 떠돌다가, 마침내 쉰 살이 넘어서야 자전적인 노동가 [우체국(1971)]을 장편 데뷔작으로 내놓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이 때의 미국은 일관된 작업방식의 빈틈없는 구축과 기계적 반복작업의 강도 높은 실행을 바탕으로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포드주의(Fordism)'가 지배하던 시기였는데, 작가의 분신이자 주인공인 헨리 치나스키는 비인간적인 작업환경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주변사람들을 보며 유일하게 이 체제에 반항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미지 출처: www.poetryfoundation.org]

 

그런데 이 '반항'이 드러나는 통로로 주로 이용되는 것이 바로 섹스와 술이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숙취에 쩔어 사는 치나스키는 여자들과의 섹스를 표현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고 동료들의 무너짐을 표현할 때에도 거침이 없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여자와 동료는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억지로 신성하게 여겨지는 '노동'이나 '사랑'이 실제로는 얼마나 허약이고 비참할 수 있는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데, 그 추악한 맨얼굴을 드러내는 방식을 잠깐 살펴보면 이런 식이다.

 

「우체국 업무는 하룻밤 열두 시간 근무에다가, 현장 주임을 더하고, 우편 사무원들을 더하고, 살덩이들 틈에서 제대로 숨도 쉴 수 없는 분위기를 더하고도, 거기에 <비영리> 식당에서 만든 쉰 음식까지 참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여자, 같이 자기 좋은 여자였지만 그런 여자들이 다 그렇듯이 서너 밤 자고 나자 재미도 시들해져 다시 가진 않았다.」

 

「정규 집배원들은 주로 비 오는 날이나 찌는 듯이 무더운 날, 배달 물량이 두 배로 느는 휴일 다음 날이면 아프다고 전화를 했다.」

 

하지만 찰스 부코우스키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드러내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것이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인간성을 말살시키는지를 똑똑히 그리고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에서 그는 탁자에 팔을 괴고 앉아 고개를 묻고 있었다. 이제는 흐느끼지 않았다. 훌쩍대다가 울부짖었다. 온몸이 발작적으로 흔들렸다. 멈출 줄을 몰랐다.

.........

"G.G.가 정신이 확 나가 버렸어요! 그런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위층에서 울고 있단 말입니다! 도와줘야 해요!"

"그 사람 순로는 누가 맡기로 했나?"

"그딴 걸 누가 압니까! 말했잖아, 그 사람 아프다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 순로를 맡으라고 해야 해!"

.........

그 이후로 G.G.를 다시 보지 못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사람 이름을 꺼내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 <착한 사람>을. 그 헌신적인 사람을. 동네 시장에서 보낸 전단지 정리하는 일이 그 사람 목에 칼을 꽂았다. 3달러 이상 구입하면 쿠폰과 함께 유명 상표 세탁비누 한 상자를 준다는 특별 판매 전단지 묶음이.」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그 선생님 소리 좀 집어치워요! 저 사람이 만약 대통령이나 주지사나 시장이나 부잣집 개자식이거나 했다면 의사들이 바글바글 몰려와 뭘 하고 있겠지! 어째서 사람이 죽는데도 가만히 있는 거요? 가난한 게 죄요?"」

 

「어느 날 밤 부치너 옆자리에 배정을 받았다. 그는 우편물을 하나도 끼워 놓지 않았다. 그저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계속 지껄였다.

젊은 아가씨가 와서 복도 끝에 앉았다. 부치너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냄비! 내 물건을 네 보지 속에 박아 줄까? 네가 원하는 거 아니야, 냄비?"

나는 계속 우편물을 끼워 넣었다. 현장 주임이 지나갔다. 부치너가 말했다. "내가 너 찍었어, 언니! 너 꼭 내가 따먹을거야, 추잡한 년! 썩어 빠진 년! 남자 좆이나 빠는 년!"

현장 주임은 부치너를 말리지 않았다. 말리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때 그가 지껄이는 소리를 또 들었다. "이런! 네 얼굴 표정이 마음에 안 드는데. 내가 너 찍었다고, 언니! 네가 첫 번째라고! 네 똥구멍을 찔러 주겠어. 어이, 너한테 말하잖아. 내 말 안 들려?"

.........

나는 부치너를 쳐다보았다. 그는 천장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말했잖아. 넌 내가 일 순위로 찍었다고. 너를 먹어 주지. 통째로 먹어 줄 거다!"

아, 맙소사, 생각했다. 정말 신물 난다, 신물 나! 직원들은 아주 잠잠했다. 그 사람들 탓을 할 순 없었다.」

 

그리고 결국, 인간이라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기계부속품처럼 되어버린 등장인물들은 점점 더 늙고 병들어가며 스스로를 파괴하기에 이른다.

 

「지나간 11년이 머리를 뚫고 지났다. 이 일이 사람을 갉아먹는 것을 봐왔다. 사람들은 흐늘흐늘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도지 우체국에 지미 포츠라는 직원이 있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지미는 흰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사내였다. 이제 그때 그 사람은 사라졌다. 그는 바닥에 가능한 한 가까이 붙어 앉아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로 버티고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이발도 못 했고 3년 동안 똑같은 바지를 입었다. 일주일에 두 번 셔츠를 갈아입었고, 아주 천천히 걸었다. 우체국이 그를 살해한 것이다. 그는 쉰다섯 살이었다. 퇴직까지는 7년이 남아 있었다.

"난 못 버틸 거야." 지미는 내게 말했다.

사람들은 녹아 버리거나 살이 뒤룩뒤룩 쪘다. 특히 엉덩이와 배가 비대해졌다. 줄곧 스툴에 앉아 있어야 하고 같은 동작과 같은 걸음걸이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됐다. 어지럼증이 생기고 팔, 목, 가슴, 안 쑤시는 데가 없었다. 일하려면 좀 쉬어야 하기 때문에 낮에는 종일 잠만 잤다. 주말에는 일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다. 여기 올 때는 84킬로그램이었다. 지금은 101킬로그램이었다. 고작 오른팔만 움직일 뿐이니까.」

 

「우리는 좀 더 술을 마시고 침대에 들었지만 이전과 같진 않았다. 같을 수가 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틈이 있었고,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가 욕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쳐다보다 엉덩이 볼기 아래 잡힌 주름과 처진 살을 보았다. 불쌍한 것. 불쌍하고 불쌍한 것. 조이스의 몸매는 탄탄했는데. 손에 잡으면 감촉이 좋았다. 베티의 감촉은 좋지 않았다. 슬펐다. 슬펐다. 슬펐다. 베티가 돌아왔을 때 우리는 노래를 부르거나 웃지도 않았고 말싸움조차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이전처럼 내 발을 그녀의 몸 위에 올려놓지 않았고 그녀도 내 몸 위에 발을 올려놓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손도 대지 않고 잤다. 우리는 둘 다 뭔가 빼앗겨 버렸다.」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 1971년에 나온 작품이다. 찰스 부코스키는 자신의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냈고, 이와 동시에 하급노동자와 그 주변 여성들에 대해 깊은 동정을 보여준다. 겉보기에 아귀가 잘 들어맞고 빈틈없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산업사회는 그의 소설 속에서 피라미드 하층부라고 할 수 있는 각 노동자의 삶이 내부에서부터 이미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으며, 때론 조롱하고 때론 반항하던 헨리 치나스키는 마침내 그 폭력적인 컨베이어 벨트를 박차고 나온다. 그래서일까? 세계대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군림한 미국은, 최근에 와서는 세계 경제위기의 원흉으로 추락하며 사회적으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오죽하면 1%에 착취당하던 99%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시위까지 벌였겠는가.. 만약 Charles Bukowski가 살아있었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과연 어떤 말을 했을지 무척 궁금하기도 하다.

 

[2011년 10월 17일 경향신문 김용민의 그림마당]

 

노력하지 마라.. 하지만 친절해져라

 

많은 이들로부터 20세기 미국 언더그라운드 대표 작가로 불리는 찰스 부코스키는 <정치만큼 지저분한 것은 없다(Politics is like Trying to Screw a Cat in the Ass)>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독자 여러분이 허락해준다면 앞으로도 나는 창녀들, 경마, 술과 함께 세월을 보내련다. 그래서 맞이하게 되는 죽음은 자유니, 민주주의니 하는 단어로 치장된 그 어떤 죽음보다도, 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내가 볼 때는 성실한 것이다.

 

또 그의 묘비명은 <노력하지 마라(Don't Try)>다. 이것만 본 사람들은 찰스 부코우스키에 대해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미국이라는 사회 자체의 부조리함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지성 '노암 촘스키(Noam Chomsky, 1928~ )'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나? 미국이라는 나라는 '불의' 위에 서있다고.. 찰스 부코스키는 위의 글에서 이런 말도 한다.

 

정치나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것인가? 베를린의 위기, 쿠바 사태, 첩보기, 첩보선, 베트남, 한반도, 행방 불명된 수소폭탄, 미국의 도시 폭동, 인도의 기아, 중국의 문화혁명에 대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인가? 항상 거짓말만 하는 사람과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인가?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가 있다는 것인가? 아니다. 좋은 정부라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나쁜 정부와 그보다 더 나쁜 정부일 뿐이다.

 

명료한 선과 악 이분법이 마음은 편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더 속아 넘어가기도 쉽다. 김기덕의 영화에서 흑과 백이 확실히 구분되는가? 아니다. 그저 넓은 구역의 회색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회색이 아니다. 우리가 좀 더 예민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사회 현실을 보도록 만드는 회색이다. 우리는 그 회색을 통해 전에는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갔던 내부의 모습, 이 사회의 실체를 다시 보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 부조리한 것과 삶의 진실을 보다 더 분명하게 구별하게 되는 것이다. 이분법의 허상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절대 이렇게 세심한 시선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일 보고 있지 않은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을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붙이며 자신과 구분하고, 적으로 만드는 인간들을..

 

이 소설 속 Henry Chinaski의 지나친 솔직함은 이런 회색구역들을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도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인간 본연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끝까지 잃지 않는다. 지극히 인간적으로 모든 주변인들을 대하고, 선과 악을 폭력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실제로 찰스 부코스키는 <친절해져라(Be Kind)>라는 시도 썼다는데, '미국의 양심'이라고 불렸던 '하워드 진(Howard Zinn, 1922~2010)' 역시 생전에 "우리가 평생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에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관대한 것,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평생을 저항하고 투쟁해온 실천적 진보지식인이 가장 소중한 가치로 꼽은 게 정의나 평등, 자유 같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찰스 부코우스키도 말했던 바로 그 '친절함'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우체국]을 읽고 흔치 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마도 찰스 부코스키의 이런 위대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공교롭게도 이번 포스트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네 사람 이반 일리치·노암 촘스키·하워드 진 그리고 찰스 부코스키는 모두 다 1920년대에 태어났는데, 이들은 젊은 시절에 세계대전을 겪었다]

 

우체국(Post Office) - 10점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지음, 박현주 옮김/열린책들

 

"아침이 되자 아침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자 이제, 우리의 현실 얘기를 마지막으로 좀 해보자. 대통령선거 직후 일 주일 동안 무려 5명의 노동·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명을 달리했다. 대선 이틀 뒤인 21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복지회관 내 노조 사무실에서 최강서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이 소방용 비상기구에 목을 매 자살했고, 22일에는 이운남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초대 조직부장이 아파트에서 투신해 사망했으며, 같은 날 서울민권연대 최경남 청년활동가도 자취방에서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25일에는 경기도 용인시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내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이호일 노조지부장이 목을 매 숨졌고, 그 빈소를 지키던 이기연 수석부위원장마저 급성 심근경색으로 26일 오후에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왜 절망했고 끝내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헨리 치나스키가 살았던 1960~70년대 미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21세기인 지금 웬만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그런 행태 자체가 이젠 경제발전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명백해졌고, 정치적으로도 전혀 올바르지 않다는 걸 시민들이 모두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이와 비슷한 방식들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몇 년 전에 개인적으로도 야간에 12시간씩 일하는 블루칼라 노동을 해본 적이 있는데, [우체국]을 읽으면서 나의 예전 기억과 소설 속 상황이 절묘하게 유사하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비슷한 경험이 있는 한국 노동자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분명히 과거의 치나스키와 그 동료들처럼 일하는 노동자들이 꽤 많을 것이다. 이들도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처럼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심한 비약일까? 불행하게도, 별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비인간적인 포드주의에 대한 환멸을 찰스 부코스키는 '반노동'의 정서로 표현했고, 헨리 치나스키는 섹스와 술, 도박에 탐닉했다. 대한민국의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런 유사한 기류가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취업 자체를 포기하고 소위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3포세대(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게 된 20~30대)가 되며 온라인게임에 빠져드는 젊은이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그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지, 한국에도 또 다른 헨리 치나스키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또 대선 이후 일주일간 '절망사'한 활동가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은 이 작품 속의 소설적 상황보다 결코 더 낫지 않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우리들은 섹스도 맘껏 즐길 수 없는 처지다. 기껏해야 마스터베이션하고, 소주를 마시며, 컴퓨터게임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자살하기는 너무 억울하지 않나? 사실, 정답은 없다. 다만, 우체국을 박차고 나와 멘붕에 빠져있던 헨리 치나스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

 

「아침이 되자 아침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현재 한국에는 번역된 찰스 부코우스키의 장편 소설 세 편이 판매 중이다. 여기서 리뷰한 [우체국(Post Office, 1971)]을 포함해서 [팩토텀(Factotum, 1975)]과 [여자들(Women, 1978)]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세 편에 더해서 2000년에 출간된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찰스 부코스키 단편소설 모음집도 한 권 소장하고 있지만(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책 중에 하나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이미 절판되었기 때문에 이 책은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몇 권이 있는데, 이 서평에 공감하는 이들은 기회가 되는 대로 꼭 찾아서 위 작품들을 읽어보길 바란다. 그러고 나면 저 마지막 문장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의 내면이 좀 더 단단해졌다고 느낄 수 있을 테고, 분명히 뭔가 특별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괴테의 말을 다시 한 번 되뇌어 보자.

 

"극도로 예민한 사람만이 아주 차갑고 냉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둘러싸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그 껍질은 총알도 뚫지 못할 만큼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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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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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ansik's Drink 2013.01.03 0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
    알찬 하루를 보내세요 ~

  2. 작토 2013.01.07 1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읽어보고 싶어졌네요..
    40년전 소설이 던지는 화두가 지금에서도 이렇게 잘 적용이 되다니..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 것인가요?
    씁쓸하네요..

  3. jjm 2014.05.06 2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튜브에서 우연히 찰스 부카스키를 보게 되어 검색으로 이 글을 보았습니다.

    부카스키의 책을 읽어 보고 싶군요 글 잘 봤습니다.

  4. Shiggy 2015.02.12 15: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보고 갑니다. 소설들에 대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이 포스팅을 보니 새록새록 기억들이 돌아오네요 :) 고맙습니다~~

  5. 날아라 비 2015.03.27 1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위터에 퍼나라도 될까요?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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