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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언론의 시대에 절실한 한국언론사, 언론의 자유와 [폭력의 자유]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민주화 시대와 이명박 시대의 한국 현대언론사 집대성.

 

요즘처럼 언론의 타락이 심각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듯싶다. 1900년대 초 일제의 신문지법(1907)과 출판법(1908)이 제정된 이래 100여 년 동안을 봤을 때 언론이 탄압 받은 경우도 물론 많았지만, 이토록 언론 스스로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가히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만큼 '눈에 띄게' 부정적인 상황인 것이다. 굳이 지난 몇 년 동안의 실제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2013년 지금 이 순간 한국 언론이 얼마나 언론 같지 않고 또 한국 기자들이 얼마나 기자 같지 않은지는, 웬만큼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직접 목격해서 알고 있는 상황 아닌가? 현재 우리 사회는 '정론지'보다는 '찌라시'의 시대이고, '저널리스트'라기보다는 '기레기(기자+쓰레기)'가 판을 치고 있다.

 

이렇게 타락한 언론의 시대에는, 일제하 독립운동가들이 다름 아닌 '역사'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것처럼, 어쩌면 '언론사'를 제대로 보는 게 참 중요할 수 있다. 모든 종류의 역사가 다 그렇듯이, 한국 언론사를 들여다보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으며 또 어떻게 문제가 처리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란 건, 현재의 거울을 통해 인간에게 어떤 통찰력과 교훈을 제공해 주는 것 아닌가? 사실 얼마 전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친일 독재' 세력의 역사 왜곡 시도도, 따지고 보면 역사의 이런 권능을 그들도 인정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올바르게 아는 게 중요하고, 한국 언론의 타락이 심각한 바로 이때 언론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는 노력이 모두에게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폭력의 자유 -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
김종철 (지은이) | 시사IN북

 

올해 7월에 출간된 <폭력의 자유>는 지금 우리에게 무척 절실한 책이다. 부제가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인데, 1944년에 태어난 김종철은 1967년 동아일보사 기자로 들어갔다가 (서슬 퍼런 박정희 독재 시절인) 1974년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로 1975년 동료 기자 110여 명과 함께 강제해직 당한 언론인이다. 이후 그는 한겨레신문 창간에도 동참했으며, 민주화 시대에는 연합뉴스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현재는 동아일보사 해직언론인 모임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군사독재 시대에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해직 당한 기자가 쓴 한국 언론사라면,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현재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언론을 바라보면서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 아닐까 싶다.

 

일제 강점기에 창간된 '친일' 신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최근에 나온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논란' 보도와 동아일보의 '채동욱 아버지 前 上書'를 보면, 과연 이 두 신문을 '정상적인' 언론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언론의 가장 기본이라고 볼 수 있는 사실 확인 자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건 물론이고 아예 막무가내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걸 보면, 이들은 찌라시와 기레기로서의 병증이 중기를 넘어 말기로 넘어가는 단계인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이런 수준의 출판물이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에게 읽히고 또 무시 못할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인데, 사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역사를 보면 이런 의문은 상당 부분 저절로 해소가 된다. 과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지금부터 좀 정리해 보도록 하자.

 

[이미지 출처: 미디어오늘]

 

우선, 1920년 4월 1일 창간된 동아일보는 그해 1월에 열린 발기인 총회에서 '합병 공로로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고 조선귀족회 회장이 된 박영효'를 사장으로 선출했다. 한마디로, 처음부터 '친일파의 거두'가 동아일보 창간에 주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6일에 창간된 조선일보의 창간 허가를 받은 예종석이라는 사람은 친일 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의 이사였으며, 총독부는 그 단체의 기관지로 조선일보 발행을 해가해준 것이라고 한다. 결국, 조선일보는 출발 자체가 '친일파 신문'인 것이다. 게다가 동아일보는 조선 반도 최대의 친일 지주였던 '김성수'가 사실상의 경영주였고, 평안북도 정주에서 광산업으로 갑부가 된 '방응모'는 1932년에 조선일보를 인수한다. 벌써 이 무렵부터 동아일보 사주 '김씨 일가'와 조선일보 사주 '방씨 일가'의 전횡이 시작된 것이다.

 

"천황 폐하께옵서 육군 관병식 행행으로부터 환행하시는 어료차의 로부가 앵전문 앞에 이르렀을 때에 어경위 사고가 발생하였다 ... 본일 오전 11시 40분경 로부가 국정구 앵전정 경시청 앞에 이르렀을 적에 ... 어료차 전방 약 18간에 수류탄과 같은 물건을 던진 자가 있어서 궁내 대신 마차의 좌후부 차륜 부근에 떨어져 차체 바닥에 엄지손가락만 한 손상 두셋을 나게 하였으나 어료차 기타에 이상이 없이 오전 11시 50분에 무사히 궁성에 환행하시었다" (<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 <폭력의 자유>에서 재인용)

 

1931년 1월 8일, 이봉창 열사가 일본 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다. 비록 폭탄은 빗나가고 말았지만, 이봉창은 조선인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친일을 일삼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바로 다음 날인 1월 9일에 위와 같이 똑같은 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이 기사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 쓴 것으로 추정된다는데, 이것만 봐도 소위 말하는 주류 보수언론의 역사적 실체가 어떤지를 금방 깨달을 수 있지 않나?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 신문은 여전히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여기서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겠지만, 이 책은 흔히 말하는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의 '진실'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혹시 서점에 가서 <폭력의 자유>를 보게 되면,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폭력의 자유 - 10점
김종철 지음/시사IN북

 

친일 청산 실패와 이승만의 언론 탄압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친일 청산에 실패했다. 그리고 해방 후 북위 38도선 이남의 남한에서 실시된 미군정은 (자신들이 친일파였기 때문에 친일파 처단을 결사 반대한) '한국민주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군정 고문'을 임명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동아일보 사주 김성수를 중심으로 한 한민당의 주축 세력(동아일보계)은 미군정의 비호를 받으면서 세력을 키워나갔고, 실제로 친일파가 적지 않았던 한국민주당은 검찰과 법원 등의 요직은 물론이고 도지사나 군수 등의 지방 관직도 많이 차지했다고 한다. 요즘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듯이 미군이 손을 대서 제대로 된 나라는 없으며, 미군정청의 통치를 받았던 남한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나중에 '반민특위'도 좌절하게 되지만) 사실상 바로 이 시점부터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 매국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린다'는 대한민국의 치욕스런 역사가 본격화된 셈인데, 이런 시대와 사회의 왜곡은 2013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 이승만 정권의 <언론정책 7개항>

(1) 대한민국의 국시·국책을 위반하는 기사

(2) 정부를 모략하는 기사

(3) 공산당과 이북 괴뢰정권을 인정 내지 비호하는 기사

(4) 허위의 사실을 날조·선동하는 기사

(5) 우방과의 국교를 저해하고 국위를 손상하는 기사

(6) 자극적인 논조나 보도로써 민심을 격앙 소란케 하는 외에 민심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기사

(7) 국가의 기밀을 누설하는 기사

 

1948년 8월 15일에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고, 이즈음 (한반도가 두 동강 나기 전에) 공산당을 피해서 북의 친일 지주와 자산가 · 일제 강점기에 친일 행위를 한 전직 관료와 경찰관 등 다수가 남으로 내려왔다(반면, 남한의 사회주의자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은 북으로 넘어갔다). 48년 8월과 9월의 바로 이 '대이동'이 어쩌면 한국전쟁과 군사독재를 비롯한 한반도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예고한 것일 수도 있을 텐데, 당장 1948년 9월 이승만 정권이 발표한 '언론정책 7개항'은 (마치 국가보안법처럼) 온통 모호하고 비합리적인 용어로 가득차 있다. 이승만은 이런 언론 탄압 정책을 발표하자마자 '진보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던 신문들을 가혹하게 몰아붙였고, 이런 진보언론 탄압의 흐름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를 거치며 1980년대까지 이어진다.

 

 

'친일과 독재의 아이콘' 박정희와 언론 자유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오랜 군사독재 시대를 겪었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 친일과 독재를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박정희'는 5.16 군사 쿠데타(1961년 5월 16일 새벽)를 일으켰고, 당일 오전 9시 '군사혁명위원회'는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 뒤 '포고 제1호'를 통해 언론 활동을 규제했다. 계엄령 제3항은 '언론·출판·보도 등의 사전검열'을 강제하면서, 아래와 같은 내용들은 보도를 일절 금지한다고 명시했다. 친일 청산을 좌절시켰던 권력자 이승만이 발표한 1948년 9월의 '언론정책 7개항'처럼, 장기간의 군사독재를 시작한 권력자 박정희가 발표한 1961년 5월의 계엄령은 온통 비합리적이고 모호한 용어로 가득차 있다. 기본적으로 언론 자유가 생명인 신문과 방송 · 출판물에 이런 금지사항을 적용하는 게 도대체 가당키나 한가? 이것은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든 언론에 치명타나 마찬가지였다.

 

(1) 적을 이롭게 하는 사항

(2) 군사혁명위원회의 제 목적에 위반되는 사항

(3) 반혁명적 여론 선동·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사항

(4) 치안 유지에 유해한 사항

(5) 국민 여론 및 감정을 저해하는 사항

(6) 군 사기를 저해하는 사항

(7) 군 기밀에 저촉되는 사항

(8) 허위 및 왜곡된 사항

(9) 기타 지시하는 사항

 

결국 5.16 군사 쿠데타로 인해 전국에서 1천 170개 언론기관이 폐쇄되었고, 쿠데타 직후부터 1962년 6월까지 약 1년 여 동안 포고령이나 반공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되거나 구속된 기자는 무려 960명에 달했다. 앞에서 이 책 <폭력의 자유> 저자인 김종철이 1967년에 동아일보사 기자로 들어갔다고 말했는데, 그는 곧바로 2년 4개월 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1970년 7월 초 동아일보사에 복직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종철은 '한국 현대언론사'를 집필함에 있어, 일제 강점기부터 박정희 정권 전반기까지는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사실 관계를 명확히 정리하고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었던 진실(대표적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절대 '민족 신문'이 아니고 사실은 '친일 반민족 신문'이었다는 것)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 자신이 언론인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부터는(박정희 정권 후반기부터는) 역사적 사실을 그저 나열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도 '에세이' 식으로 첨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내가 1971년 대통령선거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가장 뼈아프게 느낀 것은 권력과 언론의 '지역감정 부추기기'였다. 이 '작전'은 박정희의 승리에 결정적 작용을 했다" 또는 "나는 1971년 한여름의 '광주대단지 사건'을 계기로 진정한 언론인이 되려면 전문적 기능보다는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처럼..

 

이런 식의 서술은 일반적인 역사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인데, 단순 지식 서적보다 훨씬 더 '공감' 지향적인 구성인 듯하고 또 (언론자유 같은) '가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 좋은 방식이 아닐까 싶다. 이건 다름 아닌 우리 한국사회의 진짜 언론 역사니까 말이다.  

[이 점이 바로 38년째 해직기자인 김종철이 보고 듣고 적은 <폭력의 자유>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이 책은 기자가 쓴 최초의 한국 언론 현대사라고 한다]

 

 

노무현을 거쳐 다시 이명박근혜 시대로, 그리고 언론의 타락

 

다들 알다시피, 박정희 다음엔 전두환·노태우였고 김영삼과 김대중을 거쳐 노무현에 이르렀다. 위의 목차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언론사를 집대성한 이 책은 당연히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시절의 언론 상황도 정확히 다루고 있으며, 부록으로 해외 '언론재벌'과 위키리크스의 '언론혁명'도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박근혜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현재 가장 의미 있는 '친일 독재'와 더불어,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언론사가 제일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소위 말하는 보수 신문인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와 대통령 노무현의 충돌에 눈길이 많이 갔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적어도 언론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한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 먼저, 2001년 말 민주당 경선주자로서 노무현이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를 설명한 한겨레 인터뷰 내용을 한 번 살펴보자.

 

"조선일보가 반민주적인 특권집단이라는 본질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조선일보의 권위와 신뢰를 높여주는 어떠한 인터뷰에도 응할 수 없다. 나는 조선일보의 장사거리가 되지 않겠다. 민주당과 조선일보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통해 비정상적 적대관계임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조선일보가 편파와 왜곡보도를 통해 끊임없이 정부와 여당에 상처를 입히는 한 일상적인 협조는 불가능하다. 나는 조선일보의 편파와 왜곡 보도로 많은 피해를 본 피해자의 한 사람이다. 조선일보의 특권과 공격에 짓밟혀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 도리의 차원에서도 조선일보의 인터뷰에는 응할 수 없다. 조선일보는 민주화 과정에서 남은 마지막 특권세력이자 성역이며, 이 특권세력을 실질적 법치주의의 지배 아래 놓이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민주화운동이다" (2001년 11월 19일자 한겨레 인터뷰, <폭력의 자유>에서 재인용)

 

김종철이 지적하는 것처럼,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들에게 언론의 인터뷰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조선일보의 인터뷰에는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굉장한 모험인데, 그런데도 기적적으로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수구·냉전·기득권 세력'인 보수 신문들은 노무현에 대한 공격을 그만두지 않았고, 결국 일련의 비극적인 사태가 잉태됐다.

 

그리고 바로 지금 2013년 9월, '언론의 특권과 공격에 짓밟혀 고통 받는 사람들'중에는 대한민국의 검찰총장 채동욱과 그와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는 어린 남학생도 포함된다.

[국제아동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9월 17일 성명서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논란을 둘러싼 언론보도에 대한 세이브더칠드런의 입장> "누구보다도 존중 받고 보호받아야 할 아동의 권리가 침해 당하는 폭력적인 보도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언론의 각성과 자제를 촉구합니다"]

 

"국가가, 정부가, 이렇게까지 조롱거리가 된 적이 한국의 근대사에는 없다 ... 노무현 권력은 막무가내다. 권력에 취해 나라를 총체적으로 결딴내고 물러갈 심산인 것 같다. 아니 물러가지 않으려고 애를 더 쓰고 있으니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다 ... 난맥의 뿌리는 국가적 리더십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 대통령은 그동안 받아든 시험지마다 부실답안을 작성했다. 마지막 시험시간, 그는 시험을 포기하는 학생 같다 ... 실권이 두려워, 4년 반 누렸던 영화가 달아나는 게 두려워, 벌벌 떨면서 정신을 잃고 있다 ... 나라는 철부지들의 권력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2007년 9월 12일자 중앙일보 사설, <폭력의 자유>에서 재인용)

 

중앙일보의 이 사설은 2012년 9월 12일이 아니라 2007년 9월 12일에 나온 것이다. 결국 이명박이 대통령이 됐고, 노무현이 죽은 뒤에도 조·중·동은 여전했으며, (4대강 사업을 가장한) 한반도 대운하나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한 수많은 의혹에도 보수 신문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완전히 실패한 4대강 사업은 한반도의 대재앙이 됐고, 합리적인 의혹조차 제대로 제기할 수 없게 된 천안함 침몰 사건은 이제 <천안함 프로젝트> 같은 영화 하나도 편하게 볼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가 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이명박근혜 시대의 보수 언론은 흉기이고, 이런 사회와 시대의 왜곡 속에서 '언론의 자유'는 단지 '폭력의 자유'로 추락해 버렸다. 도대체 그 누가 동아일보의 사설 '채동욱 아버지 前 上書'를 보고 이를 정상적인 '언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건 그저 파렴치한 '폭력'일 뿐이다.

 

현재 시점에서, <폭력의 자유>의 저자 김종철은 이렇게 말한다. "보수 언론을 대표하는 조선·동아·중앙일보의 행태를 보면 세 신문은 단순히 정치권력의 비위를 맞추면서 온갖 특혜를 누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선거철이 되면 보수 언론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처럼 치밀하고도 교활하게 '작전'을 벌인다. 그런 사례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이 2012년 4월의 19대 총선과 12월의 18대 대통령선거 기간이었다."

 

이 순간, 뭔가 강하게 떠오르는 게 있지 않나? 바로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사건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중대한 사건은 없을 텐데, 사실 이것만큼 우리가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문제가 보수 신문의 일상적인 '왜곡'이다! <폭력의 자유>를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어보면, 보수 언론이 저지른 뻔뻔한 왜곡의 역사를 책 한 권으로 일목요연하게 다 정리할 수 있다. 폭력의 자유를 언론의 자유로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이렇게 '기억'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