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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α

천녀유혼(1987)이 아닌, 천녀유혼(2011) 자체만 본다면..

천녀유혼(倩女幽魂, A Chinese Fairy Tale, 2011) 리뷰.

 

어떤 문화예술 분야에서든지 원작이 있는 작품을 다시 만드는 건, 그걸 만드는 사람은 물론이고 보는 사람 역시 일종의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문화예술이란 것 자체가 태생적으로 새로움에 대한 희구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이것은 만드는 사람의 욕구이기도 하며 보는 사람의 욕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당연히 그것이 '처음'일 때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이고, 다름 아닌 '처음'이기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진정 새로운 작품은 완성도 면에서 조금 흠결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 용서 되는 부분이 있는 반면에, 이후의 아류작들은 고유한 이득도 획득하지 못한 채 가혹하고 가시 돋친 평가를 받기 일쑤이다. 감히 원작보다 더 나은 찬사를 받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며, 정말 극소수의 행운아들에게만 허락된 일인 것이다.

저작권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개별 연주자의 색깔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재즈라는 아주 특수한 분야 외에, 이러한 족쇄는 우리가 영위하는 모든 문화예술 분야에서 거의 진리에 가까우며 그것은 매체를 변화시키더라도 여전히 유효하다.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이 그림자는 피할 수 없으며, 영화를 원작으로 게임을 만들어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물며 일반 대중에게 전설적인 작품으로 남아있는 영화를 동일한 매체로 다시 만든다는 건,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리메이크가 계속 행해지는 것은 바로 자기만의 생명력을 지닌 '원작의 힘'일 테고, 그에 대한 우리의 향수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양날의 칼이긴 하지만) 광고효과가 있기도 하고 상업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하기에, 대단한 원작일수록 리메이크는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리메이크를 하더라도, 과거의 시각이 아닌 현재의 시각으로 원작을 재해석하고 변주하려는 노력은 응당 '필수적'이라고 할 만한 시도일 것이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문화예술의 태생적 특성으로 봐도 당연한 귀결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남과 다르게 하려는 충동이 예술가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또는 가장 본질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이러한 요소를 무시하는 경우도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과는 다른 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있게 마련이며, 이런 뭔가 다른 측면이 바로 리메이크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천녀유혼에 대한 많은 리뷰들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천녀유혼에 대한 두 번째 리뷰: 1987년과 2011년의 유사점과 차이점 [클릭] 


사실, 원작과의 변별성과 차별성만으로 리메이크를 규정하는 건 다소 일방적인 서술이 될 수도 있고 바라보는 시야 자체가 협소해질 수도 있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어쨌든지 간에 문화예술은 누가 직접적으로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며 필사적으로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이렇게 창작자의 고통을 통해서 만들어졌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떤 결과물이든 존중 받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이리하여 '정당한' 평가를 위해 우선, 원작이 아닌 현재 이 작품 자체를 보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이 포스트에서는 2011년의 천녀유혼에 대해서만 주로 글을 쓰고자 한다.


천녀유혼 (倩女幽魂, A Chinese Fairy Tale, 2011)
SF, 판타지, 로맨스/멜로 | 중국 | 98 분 | 감독: 엽위신, 출연: 고천락, 유역비, 여소군


팸플릿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요괴 섭소천과 퇴마사 연적하, 나라관리 영채신이다. 과거에 섭소천과 연적하의 로맨스가 있었는데, 몇 년 후 기억을 잃은 섭소천과 새로 만난 영채신의 현재 로맨스가 펼쳐지고, 이 세 사람의 관계가 요괴의 대모인 목희를 비롯해 최강의 퇴마사 하설풍뢰와 그의 사촌동생 하빙, 흑산마을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면서 벌어지는 판타지가 주된 이야기이다.

 

주요인물로 요괴와 퇴마사가 등장하고 시대적 배경도 옛날이기에 특수효과가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요즘의 다른 블록버스터들이 시각적 쾌감 자체를 중요시하며 또 관객들도 그런 효과를 원하기 때문인지 제작비도 200억 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보아 오던 서양적 액션과는 좀 다른) 동양적인 액션이 보여주는 색다른 느낌이 외형적인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국 본토 쪽 블록버스터의 장대한 스케일에서 오는 쾌감보다는 홍콩 쪽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소규모적이고 밀도 있는 액션에 가깝다.

 

제작비 자체만 봐도, 물론 적은 건 아니지만 최근의 추세를 봤을 때 딱히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 보통 수준이라고 볼 수 있으며 시각적으로 특별한 감흥을 준다기보단 특수효과가 꼭 필요한 장면에서 그저 무리 없을 정도의 표현을 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각적 쾌감만으로는 관객에게 크게 어필하거나 차별성을 갖긴 좀 힘들 듯하고, 이런 상황 하에서는 도리 없이 요괴와 퇴마사의 멜로 코드가 내용적인 면을 확실히 채워줘야 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면의 색감이나 액션에 색다른 맛이 있긴 하지만, 특수효과 자체는 고만고만한 수준]

그럼 판타지 멜로로서의 천녀유혼(2011)을 좀 더 살펴보자.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섭소천과 연적하 그리고 영채신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섭소천이 여자캐릭터이고 연적하가 과거의 연인, 영채신이 현재의 연인으로 등장하므로 굳이 따지자면 삼각관계에 가까운 구도이다. 어차피 여자를 가운데 둔 삼각관계 영화에서는 여자주인공의 외면적인 매력도 꽤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는 섭소천 역의 유역비가 어느 정도는 충족을 시켜주는 편이다.

 

 

하지만 멜로드라마는 관객이 주인공을 보며 설레어 하고 매력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연기의 디테일과 감정표현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는 유역비가 약간 부족한 것 같고,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멜로의 나머지 두 축인 남자 주인공들이 그걸 채워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연적하 역의 고천락은 연기 자체는 그런대로 괜찮다 하더라도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경직되어 있고, 영채신 역의 여소군은 무게감도 낮고 외형적으로 매력도 없다. 쉽게 말해, 전자는 전사캐릭터로서는 훌륭할지 몰라도 멜로드라마 주인공으로서의 캐릭터적 매력이 떨어지고, 후자는 실질적인 멜로의 표현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로맨틱 코미디에 더 가깝다면 이런 문제들이 다소 상쇄될 수도 있었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영화는 그보다는 멜로적 색채가 훨씬 강하다. 요괴와 퇴마사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메인플롯이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눈물과 희생이 중심이 된다. 연적하는 과거의 아픔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눈물을 흘리고, 영채신은 현재의 사랑으로 인해 피와 땀으로 범벅되며, 섭소천은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관객들의 감정이입이 잘 되려면 주인공의 외모에 동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정의 디테일이 제대로 살아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게 잘 안 된다. 그저 돌(연적하)과 스펀지(영채신) 사이에 어울리지 않게 꽃(섭소천)이 놓여있을 따름이다.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점은, 이야기의 가장 중심에 서있는 섭소천 캐릭터 자체의 약점이다. 실제로 표현되는 분량은 없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삼각관계 구도의 중심이고 이 모든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캐릭터가 섭소천인데, 이 주인공이 너무나 수동적이다. 그저 사탕을 주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뿐, 그 어떤 적극적인 행동도 거의 없이 주변 인물들에게 휘둘리기만 한다.

 

연적하가 동료 퇴마사들을 배신하게 될 때에도 그 존재 외에 직접적인 역할이 없고, 영채신이 흑산마을 문제를 해결할 때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절대적인 안타고니스트인 목희에 대해서도 공세적인 행동을 전혀 취하지 않고, 하설풍뢰에게는 꼼짝없이 당하기만 한다. 기껏해야 연적하를 자극함으로써 기억을 잃게 되고, 영채신이 요괴들에게 당하지 않도록 그들의 주의를 돌리는 게 고작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섭소천은 요즘 영화의 여자주인공 캐릭터로서 별로 인상적이지도 않고 흥미롭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순한(?) 캐릭터여서 반대로 더 남자들의 로망을 자극할 수 있는 측면이 있을 수도 있고 그것이 오히려 이 캐릭터의 매력을 반증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힘이 너무 떨어진다. 주인공이 주도력을 갖고 영화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휩쓸리기만 하는 것이다.

좀 더 능동적으로 활동을 해서 그 다음 장면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섭소천이 기대감을 갖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다른 인물들의 등장에 수세적인 반응만 하고 있는 형국이니 이야기 자체의 재미가 반감된다. 세 축 중에 하나인 여자주인공이 이런 상황이니, 나머지 두 축에 있는 남자주인공들도 덩달아 흔들리고 만다. 오히려 목희와 하설풍뢰가 더 강력해 보이고, 심지어는 대사도 별로 없는 하빙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정도다.

 

[사건의 흐름에 핵심적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방어적인 태도만 보여주는 여자주인공]

이런 저런 말들을 많이 했지만, 2011년의 천녀유혼은 이 작품 자체만 놓고 보면 그런대로 볼만 한 작품이다. 특수효과도 괜찮고, 전반적인 미술이나 액션도 준수한 편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설정도 상당히 매력적이고, 여자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유역비도 예쁘게 나온다. 다만 유역비는 물론이고 남자주인공들까지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뽀샤시한 몇몇 장면이 좀 거슬리긴 했다.

 

그리고 앞에 썼듯이, 뭔가 2% 부족한 디테일과 시대에 뒤떨어진 여자주인공은 이 영화의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런닝타임이 조금 길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초반에 주인공들의 애절한 로맨스와 (등장인물의 수를 늘리고) 주요인물들 간의 갈등과 관계 형성에 좀 더 공을 들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블록버스터로든 멜로드라마로든, 어중간하지 않게 명확한 위상을 정하고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천녀유혼(2011)만을 놓고 오로지 이 작품에만 집중하려고 신경쓰며 리뷰를 해보았다. 굳이 따지자면 작품 내적인 것들 위주로 살펴보았으며, 다른 관객들이 많이 한 외적인 리뷰, 이를 테면 1987년의 천녀유혼과 비교하는 식의 분석은 이번엔 의도적으로 좀 피했음을 다시 한 번 밝혀 둔다. 물론 다음 기회에 좀 더 깊이 있는 두 영화의 비교를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천녀유혼에 대한 첫 리뷰 포스팅은 여기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