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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α

집단자살을 다룬 영화, 소노 시온 [노리코의 식탁] 줄거리

노리코의 식탁 (Noriko's Dinner Table, 2005)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인 한국. 2011년에는 전국에서 집단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에는 경북 성주군에서 집단자살로 추정되는 남녀 4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경찰은 이들이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난 것으로 보고 있단다.

 

앞서 지난 2월21일 아침에는 충북 청주의 한 빌라에서 20대 남자 3명이 숨져 있는 것을 119구급대와 경찰이 발견했고, 3월4일 울산의 한 공원에서는 30대 남자와 20대 여자 등 2명이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4월 9일 충북 제천에서는 20~30대 남성 3명이 차 안에서 연탄을 피워놓고 숨졌고, 같은 달 12일에는 부산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20대 초반과 10대 후반의 여성이 숨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2011년 5월 19일 경향신문 보도 내용]

언론에서는 언제나처럼 판에 박힌 말들, 이를 테면 사회적 관심과 배려, 심리상담과 전문적 치료, 주변 사람들의 꾸준한 애정과 관찰이 필요하다고 떠들어 댄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이 한국의 자살률을 실제로 낮출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건 마치 출산율이 낮은 것이 금전적인 출산 지원책이 부족해서이며, 출산장려금만 많이 주면 출산율은 금방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같다. 젊은이들이 왜 결혼을 자꾸 미루게 되는지, 결혼한 여성들이 왜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는지, 한창 일할 나이의 부부가 왜 아이를 낳은 뒤에는 맞벌이를 포기하게 되는지를 고민하지 않는 출산장려정책은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왜 한국인들이 행복할 수 없는지를 깊이 있게 고찰해보지 않고 단순히 표피적인 처방만 지껄이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자살률을 낮출 수 없다.

 

[2011년 1월 17일 한겨레신문 보도 내용]

한국인의 불행에 대한 직접적인 얘기는 다음 기회(할 말이 참 많을 것 같다)에 본격적으로 하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집단자살을 다룬 영화인 [노리코의 식탁 (Noriko's Dinner Table, 2005)]의 줄거리를 나름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회원국 중에 거의 한국 다음으로 자살률이 높은 일본에서 만든 이 작품은 제1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2006)에서 관객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정식으로 개봉한 것으로 안다. 그럼,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를 지금부터 정리해보자.

 


노리코의 식탁 (Noriko's Dinner Table, 2005) 
일본 | 공포, 드라마 | 158 분 | 각본, 감독 : 소노 시온(園子温, Shion Sono)


인생, 연애, 어른이 되는 것이 다 걱정인, 가출을 한 17살 여자 아이, 나는 노리코..

 

Chapter 1. 노리코
아버지 테츠조, 어머니 타에코, 여동생 유카와 함께 지방 소도시에 살고 있는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의 노리코이다. 대학진학 문제로 아버지와 자주 다퉜다. 내가 즐겨 찾는 사이트는 폐허닷컴이고, 그 곳의 내 닉네임은 미츠코이다. 내 나이 또래인 ‘폐인5호’, ‘목이긴괴물’, ‘심야’, ‘파괴댐’과 친구가 되었다. 절규와도 같은 여고생들의 말을 자상하게 들어주는 언니이며, 사이트의 여왕 같은 존재인 ‘우에노역54’와도 가까워졌다.

 

갑작스런 정전이 있던 날 밤, 나는 정전인 동안 짐을 싸서 가출했다. 나는 도쿄로 갔고, 우에노역54를 우에노 역에서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쿠미코. 반 년 후, 평범한 여고생 54명이 신주쿠 역에서 집단 자살했고, 나는 그 자리에 쿠미코와 함께 있었다. 쿠미코는 돈을 받고 가족 역할을 해주는 일을 하며 살아 가고 있었고, 나도 미츠코란 이름으로 그 일을 함께 했다.

 

 

Chapter 2. 유카
언니가 가출한 뒤, 나도 폐허닷컴에 접속했다. 그 곳에서 나의 닉네임은 요코이며, 나는 언니가 우에노역54와 교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와 관련 있는 자살 클럽이 존재하고, 폐허닷컴이 회원을 모으는 곳이다. 이 사이트의 화면상에 나타나는 흰 구슬과 빨간 구슬은 자살한 사람의 수인데, 흰색이 남자이고 빨간색이 여자이다.

 

 

신주쿠 역에서 여고생 54명이 집단 자살했던 날, 폐허닷컴의 빨간 구슬이 54개 늘어났고, 그 후로 연쇄 자살은 끊이지 않았다. 언니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언니가 가출한 다음 해, 나도 집에서 가출했다. 신문 기자인 아버지에게 폐허닷컴과 집단자살에 관련된 단서들을 남겨둔 채… 나는 유카에서 요코가 되기로 결심했고, 쿠미코와 함께 있는 언니를 도쿄에서 만났다.

 

 

Chapter 3. 쿠미코
신생아 때 나는 우에노 역 54번 사물함에 버려졌다. 난 ‘주식회사 IC’라는 렌탈 가족 회사를 하고 있는데, 나의 과거는 모두 렌탈 가족 회사를 하며 날조된 것이다. 손님의 호출을 받아 일정 시간동안 가족으로 지내고, 나는 돈을 받는다. 동료였던 ‘파괴댐’은 아내를 저주하는 사내에게 아내 역할로 갔다가, 그 임무를 마치고 행복하게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폐인5호’, ‘목이긴괴물’, ‘심야’는 신주쿠 역에서 다른 51명의 여학생들과 함께 철로에 뛰어 들어 자살했다. 사물함에 버려진 후 25살 생일도 지났는데, 5년 전 엄마라는 사람이 찾아왔었다. 그 사람은 나를 ‘미츠코’라고 불렀는데,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다. 몇 년 후 미츠코라는 이름을 쓰는 여자애가 나를 찾아왔고, 나는 그녀와 함께 렌탈 가족 일을 했다.

 

 

Chapter 4. 테츠조

큰 딸이 가출하고, 그 다음 해에 작은 딸마저 가출 해버렸다. 유카는 나에게 ‘딸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아버지’라는 글과 함께, 여러 단서를 남겨 두고 가출했다. 그럼에도, 지역신문의 편집장이자 기자인 나는 계속 직장에서의 임무를 완수했다. 결국엔, 죄책감을 느끼던 아내가 자살했고, 나는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다.

 

단서를 조사하다가 나는 폐허닷컴과 자살클럽 · 렌탈가족에 대해 알게 되었고, 도쿄로 딸들을 찾아 나섰다. 두 딸을 만날 때까지 절대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노리코를 큰 딸로, 유카를 작은 딸로, 쿠미코를 아내로 정해 렌탈을 의뢰했고, 원래 살던 집과 똑같이 꾸며서, 그들을 기다렸다. 친구를 아버지로 내세워 그녀들을 불러냈고, 마침내 2년 만에 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Last chapter. 주머니 속의 칼
- 노리코, 유카와 만나는 테츠조.
- ‘아버지’라 부르길 거부하는 두 딸.
- 공황상태에 빠져, 신주쿠 역의 집단 자살과 사라진 친구를 떠올리는 노리코.
- 아내가 자살할 때 썼던 칼로, 자살 클럽 사람들을 죽이는 테츠조.
- 자신을 죽여서, 편안하게 해달라고 말하는 쿠미코.
- 역할극의 시간을 연장하길 바라는 유카.
- 딸들에게 사과하며, 다같이 다시 태어나자고 말하는 테츠조.
- 어머니 역할과 큰 딸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 쿠미코와 노리코.
- 식탁에 둘러 앉아 행복감을 느끼는 노리코 가족.
- 모두가 잠든 새벽, 노리코가 그랬듯 전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서 집을 떠나는 유카.

잘 가라, 유카. 잘 가라, 나의 청춘. 잘 가라, 폐허닷컴. 잘 가라, 미츠코. 나는 노리코..

 

이렇게, 집단자살을 다룬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았다. 어떤 영화는 그 내용을 보고 있으면 정말 저런 일이 현실에서도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또 다른 영화는 그저 가상의 세계 속에서만 존재하고 현실에서는 전혀 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노리코의 식탁 (Noriko's Dinner Table, 2005)]은 말할 것도 없이 후자의 경우인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요즘 뉴스를 계속 보다 보면 이 영화가 자꾸 떠오른다. 과연, 이런 일이 우리 주변사람들에게는 절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 바로 주위를 둘러보면 노리코와 유카, 쿠미코와 테츠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의미이고, 우리에게 그들은 어떤 의미인가? 서로가 서로에게 집단자살을 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 있을지, 각자 생각해볼 일이다.

 

"자살은 서툰 실험이다. 왜냐하면 질문을 하고 나서 그 대답을 들을 의식의 동일성마저 이 실험은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