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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이세돌, 인공지능 혁명시대의 교훈

인간은 기계와 다르다.


현재, 우리는 인간이 육체적으로 기계에 맞설 수 없다는 걸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은 자동차와 경주를 해서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를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불과 2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육체적으로 기계와 경쟁하는 인간들이 있었고, 적지 않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2016년에도, 우리는 지능적 측면에서 기계와 경쟁하는 한 인간을 보며 열광했다. 세계적인 바둑기사 이세돌이 구글 DeepMind 社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와 대국을 펼쳤고, 그 결과 이세돌은 5전 1승 4패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대패한 셈이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1승을 올린 이세돌에게 환호했다. 아마 2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구글 DeepMind 社 로고]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하던 산업화 초기에는 '운 좋게' 기계보다 조금 더 나은 육체적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때는 기계 관련 기술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으니 여러 허점이나 오작동도 많았을 테고, 숙련된 인간이 기계를 이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술은 급격히 발달했고, 얼마 뒤부터 인간은 육체적으로 기계와 경쟁할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않게 됐다.


60전 전승의 알파고, 이세돌 "인간이 이길수 없을 것"


이세돌과의 대결 이후 '인공지능' 알파고는 단 10개월 만에 눈부시게 발전했고, 2016년 12월 29일부터 지난 1월 4일까지 인터넷 바둑사이트 2곳에서 세계 최고수들과 총 60판의 바둑을 둬서 한 판도 지지 않고 전부 다 이겨버렸다(한국랭킹 1위 박정환 9단: 5패, 중국랭킹 1위 커제 9단: 3패). 200년 전에는 기계가 인간의 항복을 받아내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지만, 이젠 단 1년도 걸리지 않은 셈이다.



최근의 진보된 알파고와 톱기사들의 대국 기보를 살펴본 이세돌 9단도 "작년 3월 대국했던 알파고는 초읽기 상황에서 다소 약점을 보였으나 지금은 이 부분이 보완됐다. 실수가 없다"라고 말했단다. 동일한 조건에서는 인간이 알파고에게 승산이 없다며, 인공지능에 핸디캡을 부여하면 인간이 5판 중 1판은 이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서 어쩌면, 이세돌은 동일한 조건에서 핸디캡 없이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인간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보다 다양하고 더 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머신러닝(machine-learning, 기계학습, 주어진 데이터를 활용해 일정한 패턴을 파악하고 학습하여 스스로 성능을 향상시키는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알파고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데, 전혀 실수를 하지 않는 완벽한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그 누구든, 적어도 바둑에서는 알파고를 핸디캡 없이 이길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않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출처: 구글]


"우리는 인간이 기계의 진보에 희생되도록 용납하면 안 됩니다"


영국의 대표적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은 기계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산업화에 대해, 어느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상황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고, 바이런은 그로 인해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는 데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이다.


이제, 인공지능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바이런의 시대에는 산업기계가 생산현장에서 인간의 자리를 대신했지만, 향후에는 인공지능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인간을 대체할 것이다. 벌써 일본의 Fukoku라는 생명보험 회사가 오는 3월부터 보험 환급액 담당부서의 직원 34명을 인공지능인 'IBM Watson'으로 교체할 계획임을 밝혔다.


당장 3월부터 보험 환급액 담당직원 수십 명을 인공지능으로 대신한다는 말은, 이미 더 단순한 업무에서는 굳이 인간을 채용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역시 로봇과 인공지능의 부상으로 15개 주요국가에서 향후 5년 동안 51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대체될 거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세돌처럼, 우리도 알파고와 대면해야 할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인간이 자동차와 달려서 이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는 이 시점에서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인간 이세돌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단 알파고는 인간이 아니라고 전제한 그는, "인간이 자동차와 달려서 이길 수는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한다. 어쩌면, 200년 전에 어떤 철학자도 이런 말을 했을지 모른다. 이때는 육체적인 측면에서 그랬고, 지금은 지능적으로도 인간이 기계를 이길 수 없게 됐다. 기술 발전에 따른 시간 차이가 있을 뿐, 이세돌의 이 단순명료한 선언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사실, 최근까지 고도의 인공지능 기술은 대부분 극소수 과학자만이 인지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은 수많은 상용서비스 내에서 대단히 정제된 형태의 '사용자 경험'으로서 간접적으로만 느낄 수 있었던 셈이다. 아마도, 이세돌은 인공지능을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직접 체험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인류를 향해 나름의 통찰력을 제시한 최초의 인간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래서 알파고를 대하는 이세돌의 여유로운 태도는 우리에게 참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출처: 구글]


결국, 인간은 기계와 다르다. 다들 알다시피, 인간의 육체는 웬만한 다른 동물들보다도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육상에서 인간은 맹수와 1:1로 힘을 겨뤄서 이기기 힘들며, 해상에서도 헤엄을 쳐서 더 빠르게 움직이기 어렵고, 공중에서 역시 날 수 없는 인간은 적수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기계는 어떤 목적에 따라,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도 훨씬 더 육체적 능력이 뛰어나게 만들 수가 있다.


어떤 인간도 맨몸으로 맹수와 힘을 겨루지 않고, 물고기보다 더 빠르게 헤엄치려고 하지 않으며, 새처럼 높이 날아다니려고 하지 않듯이, 우리는 육체적으로 기계와 경쟁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세돌은 이제 더 이상 바둑으로 (핸디캡 없이) 알파고를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알파고는 인간이 아니고, 이세돌은 인공지능과 다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 양상이나 분야는 좀 달라질지언정, 어쨌든 인공지능은 인공지능끼리 경쟁하고 인간은 같은 인간끼리 경쟁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도 결국 인간에 의해


지난 2014년부터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는 인공지능에 관한 100년간의 장기 연구 프로젝트에 착수했고, 바로 그 첫 번째 보고서가 2016년 9월에 발표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요즘 우리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태동한 때는 1956년이라며, AI 기술 전반에 기초가 되는 연구도 1950~70년대에 많이 이뤄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에는 관련 아이디어를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기술도 없었고, 믿을 만한 하드웨어를 제작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80년대에는 인공지능 연구에 침체기가 찾아오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고 한다. 90년대 이후에야 인공지능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데, 이는 '인터넷'의 등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한 덕분에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걸 바탕으로 인공지능 관련 여러 난점의 해법을 비로소 모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연, 인류가 인터넷을 광범위하게 사용하지 않았다면 인공지능이 이토록 급격히 부상할 수 있었을까?



알파고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기보 빅데이터가 없었다면 절대 지금처럼 강해질 수 없었다. 알파고는 머신러닝으로 바둑 기보를 스스로 익히고 실력을 향상해나가는 한편, 이세돌과의 대전에서는 승리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를 탐색하는 정교한 기술을 십분 활용했다고 한다. 이세돌의 적극적인 협조(60전 전승은 인터넷 바둑사이트 2곳의 전폭 지원)가 알파고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 셈이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 채팅봇 '테이(Tay)'는 다수 사용자들이 부적절한 발언(각종 차별과 혐오, 욕설 등)을 학습하도록 유도하는 바람에 공개된 지 만 하루도 안 돼서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만들고, 또 어떤 식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능동적 자세, 이런 협조적 태도가 바로 인공지능 혁명의 열쇠다. 스탠포드 보고서의 결론에서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듯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이 인류의 삶과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활발하고 심도 깊은 토론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