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VS 세로 콘텐츠의 대전환, 이제 우리는 세상을 가로가 아닌 세로로 본다.

 

지난 7월 중순, 세계 IT업계의 중심에 서있는 구글 · 마이크로소프트 · 애플의 2015년 2분기(4~6월) 실적 발표가 있었다. 그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애플의 승승장구 · MS의 와신상담 · 구글의 유비무환 정도가 될 것 같다. 요즘 애플은 명실상부한 최강의 선두기업이다. 아이폰6의 대성공을 발판으로(매출의 60% 이상) 최고 실적은 물론이고, 상징적인 측면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모바일 운영체제인 iOS 기기 판매량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PC 판매량을 따라잡았다.

 

구글은 이번에도 큰 기복 없이 무난한 성장세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2005년에 미리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Android)를 인수하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애플이나 MS와는 다르게 '검색 & 광고' 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수익원이 없는 구글이, 만약 안드로이드를 품지 못했다면 상황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참고로, 안드로이드 기기는 2012년에 윈도우 PC 판매량을 앞질렀다.

 

그리고 3사 중 유일하게 손실을 기록한 마이크로소프트는 휴대폰 사업 적자로 큰 손해를 봤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등 다른 사업에서는 썩 괜찮은 실적을 올렸지만, 노키아의 휴대폰 부문 인수 때문에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MS로서는 '모바일 퍼스트'를 전면에 내세우며 절치부심 끝에 최근 내놓은 윈도우10이 모바일 운영체제로서 얼마나 어필할 수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다.

[윈도우10 모바일 버전은 노키아의 윈도우폰 브랜드인 '루미아(Lumia)'에 가장 먼저 적용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모바일 분야의 성공 여부가 대표적인 IT업체 세 곳의 명암을 결정적으로 가른 셈이다.

 

지난 7월 22일 CNNIC(China Internet Network Information Center)가 발표한 '제36차 중국인터넷발전상황통계보고서'만 봐도 모바일의 중요성은 금방 드러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총 6억6800만 명인데(전 분기 대비 1,894만 명 증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비중이 무려 88.9%다(전 분기 대비 모바일 인터넷 인구 3,679만 명 증가).

 

[출처: 제36차 중국인터넷발전상황통계보고서(중국인터넷네트워크정보센터, 2015. 07)]

 

한국 역시 2015년 3월 기준으로 스마트폰 보급률이 자그마치 83%(세계 4위)다. 한국의 성인 10명 중 8명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말이고, 이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아침에 출근할 때 지하철 안에서 웹툰(세로 스크롤 방식의 디지털만화)을 보고, 점심식사 시간에는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거나 모바일게임을 하며, 퇴근 시간에는 하루의 주요 뉴스도 읽는다.

 

이제 콘텐츠 소비의 중심이 모바일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한 사실이다.

 

 

모바일 시대 이전과 이후, 가로 콘텐츠 VS 세로 콘텐츠

 

이제까지 우리는 '가로보기'에 익숙했다. 영화 스크린도 가로로 길쭉하고, PC 모니터도 가로로 길다. 예전에 TV 브라운관은 가로가 약간만 길었지만(4:3), 고화질 TV 등장과 함께 와이드(16:9)로 선명한 영상을 볼 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디스플레이는 가로 길이가 세로 길이보다 훨씬 더 길었고, HD 화면이 기본 포맷이 되면서 가로로 더 넓어졌다. 심지어는 16:9보다 가로 세로 비율이 더 극단적인 21:9 디스플레이도 나온다. 언제나 가로본능이 대세였던 셈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세로보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각종 소셜미디어를 위아래로 스크롤하면서 보고, 요즘 급부상하는 웹툰도 세로로 길게 콘텐츠가 이어진다. 물론 스마트폰을 옆으로 눕히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면 가로 콘텐츠도 전체화면으로 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어쨌든 스마트폰은 일반적으로 위아래가 길쭉하게 세워서 사용한다(전화 통화나 충전도 세로가 기본이다). 이건 한마디로, 스마트폰의 모든 디자인 자체가 세로에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채팅을 하고 댓글을 남기거나 공유 또는 좋아요를 누를 때도 세로가 훨씬 더 자연스럽다. 카카오톡을 가로로 사용하면, 전체 얘기의 흐름을 보기도 어렵고 스크롤을 빨리하기도 힘들다. 만약 인스타그램을 가로로 본다고 상상해 보면, 그게 얼마나 끔찍할지 금방 이해가 되지 않나? 실제로, 인스타그램은 가로 화면을 지원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가로로 보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어색한 것이다.

 

[출처: 서울시 공식 인스타그램 갈무리]

 

또 결정적인 차이 중 하나는, 우리가 이제 스마트폰 하나로 창작과 감상을 둘 다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다들 기억하다시피, 예전에는 창작장비와 감상장비가 달랐다. 예를 들어서 영상을 찍는 건 카메라였지만, 그 결과물은 다른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봤다. 거의 모든 콘텐츠는 창작과 감상 사이에 여러 단계가 있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형태가 달라지는 게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감상하는 시대다. 스마트폰으로 뭘 하든 세로가 편한데, 감상할 때만 가로로 눕히는 건 여러모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세로로 보다가 가로로 돌리면 크기나 모양이 달라지고, 연속성이나 동일성 등 사용자 경험의 측면에서 굉장히 불리하다. 안 그래도 모바일 시대에는 짧은 동영상이 많은데 볼 때마다 스마트폰을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하는 건 상식적으로도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감상하는 거의 모든 콘텐츠는 가로 스크롤보다는 상대적으로 세로 스크롤이 더 편하다.

 

대격변은 이미 시작됐다

 

닐슨코리아클릭에 따르면, 2017년에는 모바일 트래픽 중 영상이 약 74%를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영상이 정말 중요한 시점인데,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가 지난 7월 23일부터 안드로이드 공식앱에 세로로 찍은 동영상을 전체화면으로 볼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원래 유튜브에서는 세로 동영상은 전체화면으로 확장시켜도 크기가 작았고, 가로로 된 동영상만 꽉찬 화면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로 동영상도 그냥 전체화면 아이콘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스마트폰 가득히 세로 동영상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됐고, 스마트폰을 옆으로 눕힐 필요도 없어졌다. 비단 유튜브뿐만 아니라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큰 '동영상 생중계' 애플리케이션들도 요즘 세로 화면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모바일 생중계 앱들 중에는 애초부터 세로만 지원하며 모든 인터페이스가 세로 동영상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트위터가 만든 모바일 생중계 애플리케이션 '페리스코프(Periscope)는 오직 세로 화면만 지원한다. 페리스코프의 CEO는 "(세로 화면이) 사용자가 일반적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동영상에 있어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직접 생중계를 하는 방송 진행자나, 역시 스마트폰으로 댓글과 하트를 보내며 방송에 참여하는 시청자 양쪽 모두 세로 동영상이 훨씬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국내의 판도라TV도 모바일 생방송 앱 '플럽(Plup)' 출시를 통해 최근 세로보기와 자동재생 기능을 추가했는데, 기존 앱 대비 동영상 스트리밍이 40%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CNN과 야후뉴스·데일리메일 등 미국 주요 언론사들이 뉴스를 제공하는 미디어 플랫폼 '디스커버(Discover)'의 기본값은 아예 세로 화면이라고 한다. 또 사용자들은 가로 화면보다 세로 화면으로 제작된 동영상 광고를 끝까지 볼 확률이 9배나 더 높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작년에 에픽하이는 'BORN HATER' 뮤직비디오를 처음부터 세로로 제작하기도 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이돌그룹의 팬들이 공연에 가서 직접 동영상을 촬영해 올리는데 실제로 적지 않은 영상이 세로 화면이다. 세계 곳곳에서 대격변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세로 콘텐츠의 급부상, '세로본능'의 출발점

 

각종 동영상 사이트에는 4:3 화면 비율의 오래된 영상들이 종종 보인다. 예전에 텔레비전 브라운관이 4:3 비율이었을 때 생산된 동영상인데, 이걸 요즘 보면 좀 어색하다(무성영화나 흑백영화도 원래 4:3 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평생 TV를 4:3으로만 보다가 갑자기 16:9 화면을 접하게 된 노인들도 처음엔 좀 이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태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접하고 앞으로 세로 동영상을 계속 보게 될 어린아이들은 어떨까? 이들은 가로로 길쭉한 영상보다 세로로 긴 화면을 더 익숙하게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피벗기능(pivot, 디스플레이를 세로로 돌려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이 없는 16:9나 21:9 디스플레이에 불만을 터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최신 카메라에 1:1 비율 촬영 모드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주목되는 변화다.

 

물론 이론적으로 가로 화면은 안정감이 높고, 원근감 표현에 유리하다. 여러 사람을 찍기에도 더 낫고, 피사체 간의 관계와 배경도 더 잘 담아낼 수 있다. 시각적인 편안함이 두드러지며 상대적으로 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와는 달리 세로 화면은 동적이고, 깊이감을 표현하기 좋다. 초상화처럼 한 인물을 담기에 적합하고, 관계와 배경보다는 개인에 집중하게 된다. '가로(horizon)'는 넓지만 주의가 분산된다면, '세로(vertical)'는 좁지만 하나에 몰입하기 쉽다.

 

자, 바로 이런 차이점들에서 '가로 VS 세로' 대격변의 본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모바일 세상에서는 개인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비약적으로 확장됐다. 애플리케이션만 있으면 누구든지 개인방송도 할 수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1인언론이 될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든 제약 없이 뉴스를 전할 수 있으며, 원하는 건 뭐든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방송장비고, 스마트폰이 윤전기다.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다.

 

 

심심하면 셀카를 찍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카톡을 하며, 배고프면 맛집이나 레시피를 검색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모바일 쇼핑을 하면 된다. 개인방송도 세로로 찍으면 되고, 셀카는 세로 화면으로 충분하다. 긴 글보다는 짧은 글이 훨씬 더 많고, 채팅 내용도 길게 안 쓴다. 각 물품을 하나씩 설명하는 쇼핑 화면이 굳이 가로 화면일 이유는 없으며, 요리 방법을 알려주는 동영상이 와이드일 필요도 없다.

 

다들 '1인 가구'이고, 혼자 음식을 해먹는 사람들은 음식 사진을 찍어 1:1 비율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먹방은 음식과 그걸 먹는 사람에 집중한다. 얼굴 아래쪽에 음식이 있고, 그걸 먹는 사람을 한 화면에 고스란히 보여준다. 먹방도 세로보기로 충분하며, 언제 어디서나 항상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나 혼자 하니까 옆사람은 찍을 필요가 없고,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있는 시간도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셀카를 많이 찍는다.

 

대부분의 활동이 모두 다 '셀프(Self)'로 이뤄진다. 중세에는 '신(神)'이 이야기의 중심이었고 근대에는 '인간(人間)'이었다면, 모바일 혁명의 시대인 지금은 바로 '개인(個人)'이다.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세로 콘텐츠의 급부상은 이제까지 인류가 익숙했던 가로감성을 뛰어넘어 세로본능을 대등한 위치로 끌어올릴 것이다. 앞으로 세로 콘텐츠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올 테고, 가로가 아닌 세로에 맞는 미장센이 '집단지성'을 통해 급격히 발달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스마트폰을 가진 각 개인이 '스스로' 대격변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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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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