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과 다양성, 21세기 건강한 사회의 척도.

 

지난 8월 11일 트위터가 2015년 상반기 투명성 보고서를 공개했고, 13일에는 애플이 올해의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적인 IT업체들은 일 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다양성이나 투명성에 대한 보고서를 매년 공개하는데, 마침 두 핵심기업의 관련 보고서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것이다.

 

보통 '투명성(Transparency)' 보고서에는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각 국가 사법기관의 개인정보 제공 요구 · 게시물 삭제 요청 · 저작권 및 상표권 관련 고지 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트위터의 투명성 보고서에는 한국에 관한 통계(2012~2015)도 인포그래픽과 도표로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다양성(Diversity)' 보고서에는 여성과 소수인종 채용 등에 대한 통계가 고용 다양성의 측면에서 담겨있다. 21세기의 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IT업체들도 최근 1~2년 사이에 이런 보고서를 처음으로 발간하기 시작한 경우가 많은데, 이를 통해서 사회적 약자의 고용 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애플, 2015년 다양성 보고서 갈무리]

 

다양성과 투명성이라는 가치가 특히 더 중요해진 이유

 

요즘 유럽사회는 동유럽이나 중동 · 아프리카로부터 유입되는 대규모 난민들로 인해 큰 고민에 빠져있는데, 사실 외부인 이민과 다양성의 문제는 인류의 오랜 과제였다. 언제나 외부세계와의 충돌은 불가피한 일이었고, 그 결과 표면적인 승패가 나눠지더라도 기존 시민과 외부 이주민 사이의 갈등은 거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류 역사의 주요 화두였던 셈이다.

 

 

이 문제를 가장 슬기롭게 대처한 걸로 알려져 있는 로마제국은, 겉으로는 엄격한 신분 사회를 유지하는 듯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히 개방적인 사회였다고 한다. 대개 고대 국가들은 점령 당한 나라의 주민들을 노예로 취급했다. 반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스페인, 동쪽으로는 시리아까지 지배한) 거대제국은 이들을 로마시민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펼쳤다.

 

로마의 중흥기 지도자들은 다양한 인종을 포용하고 사회 내적으로 통합하는 게 더욱 부강한 제국 건설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물론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과 문화적 우월주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새로운 인재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기존의 로마시민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은 광대한 영토를 오랜 세월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데에 강력한 밑거름이 되었다.

 

역사학자들이 최소한 500년 이상은 지속됐다고 말하는 로마제국도 이랬는데,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국경이 사라지며 다양한 인종이 함께하는 지금은 어떤가? 다들 일상생활에서 항상 느끼고 있겠지만, 21세기는 지구촌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서로 연결되는 '초연결사회(Hyper Connection Society)'다.

 

스마트폰을 계속 들고 다니면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다른이들과 소통한다. 통신기술의 발달로 전세계 곳곳에 있는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온갖 정보를 주고받고, 공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사적인 얘기도 데이터로 기록된다. 이런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남기며, 내가 모르는 사이에 경제활동에서부터 인간관계 심지어 이념과 사상까지 노출될 위험이 있다.

 

[출처: 트위터, 2015년 상반기 투명성 보고서 갈무리]

 

그래서 이제는 다양성에 대한 배려, 투명성에 대한 원칙이 특히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어디서든 여성 · 소수인종 등과 함께 어울릴 수 있고, 언제라도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침해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거의 사라졌다. 사이버공간과 현실사회를 막론하고, 지금 나와 상대하는 사람의 성별이나 인종을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 우리 시대 행위의 정당성은 상대방의 Privacy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본격 IT시대, 한국의 투명성과 다양성 보장 수준

 

2015년 3월 기준으로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83%(세계 4위)다. 대한민국의 성인 10명 중 8명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대부분 하루 24시간 스마트폰을 바로 옆에 두고 살아간다. 누구든지 스마트폰과 빅데이터의 도움만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한 번 상상해 보라. 자신의 카톡 대화내용과 쇼핑 목록, 검색 리스트와 방문 기록을 누군가 엿본다면 어떨지를..

 

 

우리가 게시판에 쓴 글이나 소셜미디어에 남긴 댓글 · 주고받은 이메일이나 추천한 콘텐츠를 살펴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만약 여기에 여러가지 신상정보까지 더해진다면, 그건 정말 본인도 깜짝 놀랄 만큼의 파괴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의 스마트폰과 개인정보가 더해진 빅데이터, 이걸 통해서 파악할 수 없는 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그런데 다들 알고 있다시피, 국내 사법기관들의 개인정보 사찰 행태는 무척 심각한 상황이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만 해도 통신사업자들이 각종 수사기관(경찰ㆍ검찰ㆍ국정원 등)에 협조한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 건수는 문서 수 기준으로 25만 9184건에 달하고, 전화번호(또는 ID) 수 기준으로는 무려 1028만 8492건이라고 한다.

 

작년에 카카오톡 사찰 논란에 이은 사이버망명이 벌어졌는데, 최근에는 대표적인 국내 포털들이 해외 IT업체처럼 투명성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기관들의 주타겟이 되는 이동통신사들(KT, SK텔레콤, LG유플러스)은 아예 이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시민단체에서는 통신사들도 투명성 보고서를 발표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현재 그런 계획을 밝힌 곳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출처: 다음카카오, 2015년 상반기 투명성 보고서 갈무리]

 

세계적인 IT기업들이 몰려있는 미국의 경우, 2013년에 컴퓨터 기술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 NSA)의 무차별적인 개인정보 수집 사실 폭로 이후 여러 업체들의 투명성 보고서 발간이 이어졌다. 여기에는 2010년에 최초로 각국 정부의 개인정보 요구 현황을 공개한 구글을 비롯해, 애플 · 마이크로소프트 · 페이스북 · 트위터 등은 물론이고 미국의 주요 통신사인 AT&T와 버라이존도 포함된다.

 

이런 기업들 중에는 고용시장에서 차별 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하는 기업도 많다. 2011년에 동성애자 '팀 쿡(Tim Cook, 1960~ )'이 CEO로 취임한 애플도 2014년에야 처음으로 다양성 보고서를 공개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은 초기여서 백인남성 편중현상이 두드러지지만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상황이 개선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만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일반기업은 고사하고 국가기관에서조차 다양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일례로 지난 8월 초 대법관 후보추천 결과 이번에도 역시나 3명의 후보 모두 '50대 남성'이었다. 전혀 다양성이 없는 이런 획일성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뭐든지 기득권을 가진 강자에게만 편하게 돌아가는 2015년 현재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개인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비약적으로 확장된 본격 IT시대에 프라이버시가 존중 받지 못하는 사회는 뒤쳐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사람들의 욕구를 알지 못하고 반영할 줄 모르는 서비스는 외면 받는 게 당연하며, 개인정보 보호에 소홀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고 정보 투명성이 부족한 집단이 21세기 글로벌 사회에 과연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는 다양한 사람들의 투명한 참여가 필수적인 시대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다양성은 강력한 무기이고, 개인정보 관리가 투명하게 이뤄질 때만이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지난 8월 9일 발표된 OECD 조사에서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정부를 불신하며, 특히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최하위권으로 결과가 나왔다. 요즘도 지극히 획일적인 한국사회는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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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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