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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α

상업영화로서의 눈치보기와 가족영화로서의 미덕,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상업영화로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미덕이 많은 가족영화.

 

자주 그렇듯이, 어떤 영화를 볼 때 그것이 사회적 이슈와 결부되면 작품 자체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기대하기는 좀 힘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말도 안 되게 거품이 끼어서 흥행이나 평점의 측면에서 기이할 정도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기도 하며, 또 반대로 어이없는 외면과 저평가를 받아서 비운의 걸작이 되기도 한다. 굳이 특정 영화를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이건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느껴봤을 법한 일이 아닐까 싶다.

 

사실 원론적으로는 전자든 후자든 둘 다 불행한 일이긴 한데, 어쨌든 현실세계에서는 강자와 약자로 나눠지다 보니 실질적인 성패와는 별개로 (그리고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도 약간 다르게) 특정 영화에 대해서 과도한 비판이나 비정상에 가까운 호의가 난무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우리 사회에서 파장을 일으킨 작품에 대한 상식적인(?) 평가를 찾아보기가 생각보다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어떤 창작물이든지 간에 항상 나름대로의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며, 그게 상업적인 성공과 실패 또는 예술적인 성취 수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게 당연하다. 어차피 인간세계에서 같은 인간이 다른 사람의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고, 그 어떤 사회적 영향도 받지 않는 진공상태의 순수한 인간이란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라는 가장 보편화된, 그러니까 일상적으로 누구나 편하게 보고 언제라도 한마디씩 할 수 있는 창작물에 대한 평가는 훨씬 더 다른 사람들의 시각에 부화뇌동하기 쉬운 것이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How to Steal a Dog, 2014)
드라마 | 한국 | 110 분 | 감독: 김성호 | 2014-12-31 개봉
출연: 이레(지소 役), 이지원(채랑 役), 홍은택(지석 役), 김혜자(노부인 役), 이천희(수영 役), 강혜정(정현 役), 최민수(대포 役)

 

자, 여기 영화 한 편이 있다. 이 작품이 상영되는 과정에서 별 다른 문제가 없었으면 괜찮았겠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영화산업 수직계열화(제작, 배급, 상영을 전부 극소수 대기업과 그 계열사가 수직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독과점하며 그 외의 영화들에 대해서는 차별적 지위를 부여하는 행태)의 희생양이 됐고 TV 메인뉴스에 나올 만큼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급기야 이 작품은 첫 개봉한 지 40여 일 만에 '재개봉'하는 이례적인 상황을 맞았고, 다수의 '영화선택권'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

 

영화팬의 한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의 재개봉과 나름대로의 선전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인데(좀 더 길게 좀 더 많은 관객과 만나길 기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이런 사회적 의미에 너무 함몰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이와 같은 '상대적' 비주류 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길게 보면 더 나은 방향일 테고, 작품에 대한 예우에도 더 맞는 것 같다.

[지금 포털사이트 영화섹션에서 이 영화의 네티즌 평점을 보면, 약간 과열됐다 싶을 정도로 호의적인 분위기와 추천이 없지 않아 있는 듯하다]

 

 

예술영화와 다양성 영화, 상업영화로서의 눈치보기

 

흔히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처럼 상대적인 비주류 영화를 '다양성 영화'와 연결시키는데, 이런 다양성 영화라고 해서 모두 다 소위 말하는 '예술영화'는 아니다. 말 그대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필수적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탄생한 용어가 다양성 영화일 뿐, 다양성 영화라는 것 자체가 그 작품의 예술적 측면을 나타낸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다양성 영화 중에 많은 작품들이 예술영화에 속하기는 하고, 특히 다른 나라에서 만든 영화가 한국까지 수출되어 다양성 영화라며 개봉했다면 아마도 대부분 예술영화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다양성 영화는 곧 예술영화'라는 건 맞지 않는 얘기고(다양성 영화지만 오락영화도 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도 다양성 영화라고 부를 수는 있을지언정 소위 예술영화라기보다는 상업영화에 가까운 작품이다. 솔직히 이런 이분법을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나 캐릭터들의 움직임 · 표현 방식 등이 보통의 상업적인 가족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굳이 따지자면 상업영화 쪽으로 가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 적당한 (동화적이면서 감동과 유머가 있는) 오락영화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상업영화로서의 눈치보기 흔적도 곳곳에 드러난다. 극장 런닝타임을 줄이기 위한 과도한 편집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편집 능력의 부족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몇몇 시퀀스에서 씬의 흐름이 난데없이 끊어지는 경우도 보이고, 자연스럽게 감정이 연결되기 어려울 정도로 (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부분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장면들도 있다. 헐리우드 가족오락영화의 형태를 많이 가져왔지만 그 스케일은 역부족이어서 그저 소품 수준에 머문 것 같기도 하고, 출연배우들의 연기는 다 좋았지만 (애들이 보기에도 쉽게 만들기 위해서인지) 각 캐릭터의 성격이 너무나 평면적이어서 아쉽기도 하다.

[어쩌다가 혼자서 이 영화를 보게 된 성인관객 중에는 그냥 '아동용'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이런 류의 오락영화가 한국에서나 상대적으로 비주류에 속하지,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보면 주류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우선 온가족이 볼 수 있으면 흥행의 측면에서도 유리하고, 작품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이야기부터가 별로 극단적이지 않으니 일정 수준 이상만 할 수 있다면 비교적 위험 부담이 적은 편이다. 그리고 만약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투자배급사가 CJ나 롯데였다면 어땠을까? 결과적으로 이 작품이 한국 영화산업 수직계열화의 피해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영화 자체의 평점을 곧장 10점으로 만들어줄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네티즌 평점 한 페이지 전체가 연속해서 전부 다 10점인 경우도 있다).

 

 

비정상적인 한국 영화시장에서 가족영화로서의 미덕

 

재벌의 횡포 속에서 어렵게 상영 중인 작품에 대해 좀 냉정하게 말했지만,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가족영화로서의 장점을 많이 가진 영화다. 소재면에서나 내용을 풀어가는 방식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는 무척 훌륭하며, 대자본이 개입하지 않아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이 작품은 상당히 순수한 아우라를 간직하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 오락영화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억지 눈물과 웃음도 꽤 절제되어 있고, 비교적 군더더기가 적으며 깔끔한 연출도 장점이다. 주제가 약간 고리타분할 수도 있는데 이야기를 심플하게 밀고 나가는 힘도 괜찮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적당히 밝고 적당히 젊은 감각의 미장센을 보여주는 것 역시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편집에 아쉬움이 많은 '극장판'이 아니라, 제대로 정리된 '감독판'을 다시 보고 싶다]

 

한국사회의 슬픈 현실이 반영되어 있지만 판타지를 적절히 가미해서 너무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같이 보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작품이다. 또 김혜자나 최민수 · 강혜정과 이천희는 말할 것도 없고, 아역배우들도 진짜 주연으로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에 동물이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면 때론 위화감이 들 수도 있는데, '성인연기자-아역배우-동물' 이 세 출연진들의 어울림도 자연스러운 편이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각 캐릭터들은 다 확실한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알고 보면 정말 심각한 악당은 없이 (결론적으로 모두에게 해피엔딩인)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족영화로서의 미덕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상하게 한국 영화시장에서는 이런 류의 영화들이 별로 많지 않은데(온가족이 함께 볼 만한 작품은 대부분 외국영화다)[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일반적인 가족오락영화의 휴머니즘과 유쾌함을 큰 무리없이 잘 담아내고 있다. 앞서 지적한 바대로 극장판의 전체적인 완성도 자체에는 분명히 허점들이 있지만(네티즌 평점에서 외로운 누군가의 외침대로 "만점짜리 영화는 아니다"), 관객의 기본적인 선택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한국 영화시장에서 만듦새가 괜찮은 다양성 영화로서 의미 부여를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듯싶다(순수한 가족영화로서 확실히 추천할 수 있다).

 

만약 이 작품이 나중에라도 상업적인 고려를 걷어냄으로써 단점들을 어느 정도 보완하는 게 혹시 가능하다면(상업영화로서 눈치를 보기보다는 작품 내적인 힘을 믿고 차라리 더 충실하게 알맹이를 채우는 방향으로 나갔다면), 오히려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진정한 재개봉 또는 재편집이 이뤄진다면, 사회적 이슈로 인한 호의가 아닌 진짜배기 평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여기에 수직계열화가 악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독과점 영화시장 안에서 공정한 투자와 배급이 이뤄지지 않으니 여러 다양한 상황에서 무리수와 부조리가 나타나는 셈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12월 31일에 개봉해서(가족오락영화로서는 개봉일이 좀 늦은 감이 있다. 적어도 크리스마스 이전인 12월 중순에는 개봉했어야 하지 않나?) 이제 두 달 가까이 상영 중이다. 대기업의 횡포 속에서 스크린수나 상영횟수가 많지는 않지만, 어쨌든 영화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상영관이 좀 확대되기도 했고 비교적 호평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긍정적인 상황도 관객들이 지속적으로 극장을 찾지 않는다면 금방 사그라들 테고, 한국 영화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한 채 그냥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준수한 가족영화 한 편 보러 가는 게 어떤가? 스스로 깨닫고, 직접 행동하길 바란다. 우리의 영화선택권을 지키기 위한 실천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