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초의 작곡가이자 페미니스트, Hildegard von Bingen

우리가 아는 역사적인 인물들은 절대 다수가 남성이다. 극소수, 아주 희귀한 경우가 아닌 한 모든 사상가, 문학가, 과학자는 다 남성이며,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거의 100%에 가깝게 수렴한다. 그래서 '최초'라는 영광을 가지는 위인들도 당연히 남성이고, 그걸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 무슨 특별한 저주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지구상에 남성이 태어나는 수만큼 여성도 태어났을 테고, 천재적인 남성이 태어날 때도 역시 천재적인 여성이 태어났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이 생물학적으로 지능의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한 쪽이 진화가 덜 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역사 속에는 남성들의 이름만 있는가?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에 정말 뛰어난 여성들이 많은 걸 보면, 과거에도 계속 그런 여성들은 존재했을 것이다. 다만 모두가 예상하듯이, 확고한 남성 위주 사회에서 재능 있는 여성들은 그들의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을 테고, 설사 용감하게 투쟁하여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역사 속에서 잊혀졌을 것이다. 마치 예전 사람들은 예술가의 이름을 후세에까지 알려지도록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전의 남성들은 성별이 여성인 사상가나 문학가, 과학자의 이름을 굳이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불행하게도 그렇게 역사 속에서 한 번 사라진 여성들의 이름을 우리가 다시 알기는 거의 불가능하며, 지금까지도 남성들의 역사만 남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듯이, 역사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도 있다. 이번에 이야기할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1098~1179)도 그 중 한 사람인데, 그녀는 역사상 최초의 서양음악 작곡가 중 한 사람이며 작가이자 철학자이자 과학자이며 의사이고, 기독교 역사에서 처음으로 독립된 수녀원을 만들어 수장이 된 인물이다. 그녀가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을 보면 아마도 역사적으로 남아있는 최초의 '성별이 여성인' 천재라고 할 수 있을 듯 싶고, 우리가 알고 있는 창조적 인간의 대표격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할머니 정도로 봐도 될 것 같다.

서양의 역사를 웬만큼 아는 사람이라면, 기독교가 그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는 다들 알 것이다. 서양음악의 시작도 역시 교회였으며, Hildegard의 음악도 교회음악이었다. 수녀였던 힐데가르트는 자신의 시에 성가를 작곡했으며(가사와 곡을 함께 쓴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하는데, 이것도 그녀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인 듯하다), 그녀의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연주되고 음반으로 발매된다. 우리가 '음악의 아버지'라고 알고 있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도 개신교를 위한 음악을 전문적으로 작곡했는데, 그가 태어난 해가 1685년인 것을 감안하면 1098년에 출생한 Hildegard von Bingen이 서양 음악 역사상 얼마나 초창기의 작곡가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그녀의 작품을 하나 들어볼 텐데, 흔히 말하는 고음악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고 우리가 자주 듣는 '신동'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나 '악성'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클래식보다 무려 600여 년이나 앞선 작품이니, 그 역사를 생각하며 명상하듯이 차분하게 들어보자.

- O Tu Illustrata(오 광명을 받는 이여)

어떤가, 서양 고음악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 않나? 지금 우리는 이 성가를 편하게 듣지만, 힐데가르드 폰 빙겐이 자신의 음악을 사람들 앞에 내놓았을 때에는 참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어쩌면 현재의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고난 끝에 작품이 빛을 보았을 수 있고,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만들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녀가 살았던 시대에는 여성이 그런 식으로 주목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만에 하나 가부장제의 틀을 조금이라도 위반했을 시에는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방적이고 무시무시한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ildegard von Bingen이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녀의 일생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1098년에 태어난 힐데가르드는 독일 라인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10형제 중 막내로 자랐다. 교회의 십일조에 따라 8살 때 부모에 의해 베네딕트 수녀원에 바쳐졌고, 여성 은자로부터 글쓰기와 읽기, 기도서와 노래를 배웠다. 그녀는 5살 때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는 환상을 경험했다고 하는데, 이를 시작으로 Hildegard는 평생 신성한 영감을 통해 창작 활동을 하게 된다. 이것은 그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점인데, 만약 이런 환상의 진정성을 교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면 힐데가르트의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여성이 원래 열등하게 태어났고, 연약한 정신과 지성을 가졌으며, 남성으로부터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통용되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아무리 재능 있고 특출한 여성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어떤 권위를 부여받거나 특별히 인정을 받는다는 게 불가능했다. 여성 스스로도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자신의 능력이 가져올 불행한 결과를 두려워했고, 그것은 자신의 재능과 권리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게끔 만들었다. 여성들은 자기 열등감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사실상 자신의 창조력을 증명하기보다는 항상 방어적으로 숨기고 변호하는 데에 과도한 정력과 시간을 소모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힐데가르트는 자신의 모든 창작의 원천이 신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믿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창작물을 교회에 제출했고, 교황은 그 창작을 가능케 한 그녀의 환상(신의 계시)에 대해 진정성을 확인한 것이다. 결국 Hildegard von Bingen은 당시의 절대 권력인 교회로부터 (여성으로서는 정말 흔치 않은) 권위를 인정받은 셈이 되었고, 드디어 자신의 재능을 온 세상에 펼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물론, 그녀는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와중에도 남성 창작자들과는 달리, 자신과 주변 여성들의 안전를 위해 겉으로는 가부장제의 한계를 최대한 거스르지 말아야 했으며, 언제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야만 했다.

1136년에 힐데가르드는 여성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고, 1150년경 빙엔 근처에 자신의 수녀원을 창설하며(그래서 Hildegard of Bingen이다) 최초의 독립적인 수녀원 원장이 되었다. 처음으로 여성의 공적인 역할을 새롭게 만들어낸 그녀는 117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점점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다른 여성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녀의 활약상은 조금 뒤에 살펴보도록 하고, 이쯤에서 최초의 작곡가가 만든 음악을 한 곡 더 들어보자.

- O Frondens Virga(For the Virgin)

공개적으로 창작물을 발표할 수 있게 된 힐데가르트는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설교를 하고, 수도원을 방문했으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설교집을 나눠주었다. 그녀는 세 권 정도의 신학서를 저술했으며, 의학과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책을 냈고 광물질(보석)을 이용한 치료법과 약초학을 소개했는데, 그녀의 약초학은 오늘날까지도 서양에서 널리 활용되는 민간요법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Hildegard는 또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덕극으로 알려진 희곡 [오르도 비르투툼(Ordo Virtutum, 도덕의 의식)]을 썼으며, [심포니아 아르모니 첼레스티움 레벨라티오눔(Symphonia armoniae celestium revelationum, Symphony of the Harmony of Celestial Revelations)]이라는 제명으로 묶인 수많은 가사와 극시도 집필했다고 한다. 힐데가르드의 선율은 이 시대의 다른 교회음악들과는 달리, 매우 창의적이고 상당히 복잡하며 장식적인, 아주 독창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의 서한 모음집에는 당시의 저명한 정치, 종교 지도자들인 영국의 왕과 여러 교황들, 황제 그리고 대주교들과 주고 받은 많은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여러 수녀원장들이나 평신도들과도 서신 왕래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했고, 도덕과 신학에 대한 질문에 답했으며, 정치적 결정과 관련된 발언을 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이러한 편지들에 나타난 그녀의 어조는 권위있고 확고했으며 어떠한 소심함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데, 이때쯤 되면 힐데가르드 폰 빙엔은 교황과 황제만큼이나 높은 권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이며, 또 그 힘을 기꺼이 사용했다. 성직 매매를 이유로 자신의 상관인 대주교를 대담하게 비판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자기 내면의 신념에 따라 교구의 명령에 강하게 저항한 일도 있다고 한다.


Hildegard von Bingen의 작품은 의학, 자연과학, 우주학, 신학, 윤리학 등 여러 분야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 깊이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철학자로서 칭송받는 다른 남성들과 비견되고 있다. 그녀의 저술은 그녀가 살아 있을 당시에 뿐만 아니라 훗날 르네상스 시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아마 이렇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예술가이자 사상가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신에 대해 여성적인 상징을 사용했는데 기독교 이전의 고대 여신들과 계속적으로 연결되는 상징성을 표현했으며, 그녀의 저술에 나타난 여성들은 활동적이고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고 한다.

힐데가르트는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 신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 현실적인 것과 신비로운 것을 통합하는 사상을 가졌는데, 신과 우주 그리고 인간이 유기적 관계 속에서 하나가 된다는 세계관을 설파했다고 한다. 동양의 자연친화적 세계관과 일맥상통하는 그녀의 자연주의는 근래에 와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으며, 남성주의적 시각과는 구별되는 전체성과 포용성의 철학은 조화를 중시하는 21세기 여성의 시대에 점점 더 각광받는 사상이 될 것 같다. 진정 Hildegard von Bingen은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표현한 최초의 여성이며, 모든 여성주의자들의 효시라고 할 만할 것이다.

이상으로 역사상 최초의 작곡가이자 페미니스트인 힐데가르트 폰 빙겐에 대해 알아보았다. Hildegard와 그녀로부터 영향을 받은 많은 후배들이 있었기에 독일이 좀 더 양성평등적인 사회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서구에 이런 여성이 있었듯이 과거 한반도에도 분명 뛰어난 재능과 용기를 가진 여성들이 살았을 텐데, 우리는 그걸 제대로 확인할 길이 없다. 고려시대에는 조선시대보다는 여성들의 입지가 훨씬 더 나은 편이었다고 하는데, 고려의 천재적인 여성에 대한 발굴도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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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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