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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행복의 함정에 대한 값진 충고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행복의 함정에 대한 값진 충고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1873년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론 Das Kapital]을 찰스 다윈에게 보냈는데, 다윈은 그 책을 읽고 "영광스럽다"고 표현한 뒤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나는 우리 둘 다 지식의 확장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과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책이 인류의 행복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인물, 사회주의의 마르크스와 진화론의 다윈에 관한 일화이다.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책에 대해 '지식의 확장'뿐만 아니라 '행복에 보탬'이 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인식이 이런 위대한 과학자에게도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그렇듯 행복은 진정 특별하며, 항상 수많은 학자들의 중심 테마였다. 이와 같은 생각이 여기에서 리뷰할 책 [행복의 함정(원제-Happiness: Lessons From The New Science)]의 기본적인 시각이며, 저자인 리처드 레이어드(Richard Layard, Baron Layard, 1934~ )가 따르고 있는 관점이다. 그는 책에 위의 일화를 인용하면서 행복은 충분히 진지한 것이며, 행복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영문판 표지와 Lord Richard Layard]

리처드 레이어드는 영국의 경제학자이고, 런던정경대 교수이며, 2010년 <더 타임스>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물'로 꼽힌 사람이다. 2009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OECD 세계포럼'에서 '삶의 질 측정'을 주제로 연설과 회의를 진행 {책 안에도 GDP(국내총생산 Gross Domestic Product)보다 국민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새로운 가치 시스템에 대한 언급이 있다}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행복 운동 Action for Happiness'을 창설해 전세계에 전개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저자의 서문에 언급되어 있듯이, '경제학에서는 보통 한 사회 안에서 발생하는 행복의 변화와 구매력의 변화를 동등'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리처드 레이어드는 이러한 관점에 찬성할 수 없었고, 서구 선진국의 지난 50년 역사 자체가 이 고정관점이 틀렸음을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든다. 여러 가지 다양한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실제로, 서구 사회 사람들 대부분이 느끼는 행복은 1950년대 이후로 더 나아지지 않았으며, 더 많은 돈을 가진 선진국의 국민이 제3세계 국민보다 더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님이 여실히 드러났다. 소득분포 범위 전체에서 실질소득이 크게 증가했는데도 더 큰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행복의 함정]의 한국어판 부제는 '가질수록 행복은 왜 줄어드는가'이고, 이런 문제의식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리처드 레이어드는 '경제적 성장을 지속하는 것은 우리가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더 잘 사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는데, 그는 이 책을 두 부분으로 나눠서 앞부분인 Part 1에서 '무엇이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 뒷부분인 Part 2에서는 '행복에 대한 새로운 처방'을 알려준다. 이를 위해 저자는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으로 대표되는 18세기 계몽주의 철학과 자신의 전공인 현대 경제학,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 행복에 관한 현실적인 통찰력을 제공해주는 최신 심리학과 사회학, 신경과학 이론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쉽게 말해, 이 책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이라는 기본 원리 위에 경제학과 심리학을 접목해서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즉 행복의 비밀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리처드 레이어드는 '무엇이 사람들을 정말로 행복하게 만드는지' 살펴보기 위하여 최근의 과학적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세 가지 정도 전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뇌의 활동을 표준화한 과학적 방식을 통해 행복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기분을 말할 때 그것이 뇌의 다른 부분들의 활동과 실제로 관련돼 있음을 알고 있으며, 뇌 활동과 기분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감정과 '진짜' 뇌에서 느끼는 감정 사이에는 차이점이 없으며, 한 종류의 고통은 다른 고통과 비교할 수 있고 한 종류의 기쁨도 다른 기쁨과 비교할 수 있다.


-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는 행복과 관련된 여러 요소들에 관한 조사 결과를 다양하게 예시하며, 그것들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은 각기 다른 국가에서 실시한 다양한 연구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한다. 행복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객관적인 타당성을 지니기 때문에 행복의 측정 또한 객관적이고 타당하다는 것이다.

(원제인 [Happiness: Lessons From The New Science]를 봐도 저자가 얼마나 새로운 과학의 결과물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다)
- 뉴사이언스(new science, 지금까지의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새로운 방향에서 과학을 모색해보자는 동향)


2. 인류는 행복을 좇아 진화해왔으며, 행복은 인류의 절대선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은 실제로 존재하며 인간의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생존 전반에 동기를 부여한다. 좋은 느낌을 찾는 것은 인류가 보존하고 발전해온 생존 메커니즘이고,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 스스로 얼마나 행복한지 평가하는 능력이 있으며,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는 접근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피한다. 이렇듯 우리가 스스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이유가 없이 그냥 자동적으로 중요한데, 보편적으로 행복은 목표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지는 유일한 선이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리처드 레이어드는 인간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기 바라며 고통을 피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없었다면, 인류는 오래전에 멸종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은 대개 생존하는 데도 도움이 되며,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좋은 느낌을 지니고자 하는 열망 없이는 인간의 행위와 생존을 설명할 수 없고,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3. 진정한 변화를 원하는 모두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에는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요인들도 있고, 외부의 상황이나 관계에서 영향을 받는 측면도 있다. 우리는 보다 나은 가치체계를 증진시키고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우선순위를 다시 정함으로써, 전반적으로 잘못된 문화를 바꿀 수 있고 현재의 제로섬 게임(zero sum game, 참가자가 선택하는 행동이 무엇이든, 참가자들의 이득과 손실의 총합이 제로가 되는 게임)에서 벗어나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 sum game, 제로섬 게임의 반대 개념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게임)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 각자가 모두의 행복에 대해 바람직한 태도를 정립하고 국민의 행복을 정책의 목표로 삼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스스로 더 만족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살펴 보았듯이 [행복의 함정]은 경제학자가 쓴 행복증진론이며, 사람들이 대부분 더 많은 돈을 원하고 갈망하는데도 불구하고 소득의 증가가 행복의 증진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모든 논의의 출발점을 이 문제로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부자나라의 우울한 국민들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에 대부분의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경제 발전을 이미 이룬 서구 선진국의 입장에서 책의 전체적인 서술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이 책의 특징이자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의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1. 지극히 서구적인 관점에서 행복을 판단하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정신세계와 많은 관련이 있으며, 이런 측면에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서양과 동양은 좀 다른 관념이 있을 수 있다. 동양의 위대한 고전인 [장자(莊子)]에는 이런 말이 있다.

" 오늘날 세속에서 행하는 쾌락에 대해
나는 그것이 과연 즐거움인지
또는 아닌지 알 수 없다.
내가 보기에는
세속의 쾌락은 군중의 손짓을 따라
죽도록 달리며 그칠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모두들 즐거움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즐거움인지
또는 즐거움이 아닌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과연 즐거움은 없는 것인가?
나는 무위만이 진실로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속세는 크게 고통스런 곳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지극한 쾌락은 즐거움이 없고
지극한 영예는 기림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천하에 시비는 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무위만은 시비를 정할 수 있다.
지극한 안락은 몸을 살리는 것이며
오직 무위에서만 있을 수 있다."
                                                       - [장자(莊子)] 외편(外篇) 제18장 지락(至樂) 중에서

"지극한 쾌락은 즐거움이 없고, 지극한 영예는 기림이 없다"를 과연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행복의 함정]은 행복에 관해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뇌과학까지 망라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서양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좌: 각국의 인간개발지수, 우: 2011년 1월 17일 한겨레신문 보도 내용]

- 다만, 지구상에 절대 다수의 국가는 대부분 서구화가 진행되었으며 한국도 전혀 예외가 아니다. 실제 삶의 방식과 사회의 모습 자체가 서구의 것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으며, 행복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는 이 책에서 서술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우리 행복관의 근간은 좀 달랐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한국인들 역시 상당히 서구적인 행복관으로 변했고,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이런 점이 리처드 레이어드의 글을 우리 사회에 직접 적용해도 되는 이유를 제공한다.


2.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의 나라에 적합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소제목 중 <국민소득 2만 달러의 함정>을 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는 국가에서는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감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하면서, 행복에 이바지하는 소득 효과는 국민이 최저생활수준을 영위하는 최하위 빈곤국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보통 2만 달러를 기준으로 국민소득이 그 이하인 국가에서는 소득이 증가할수록 행복도가 대체로 높아지는 반면에, 2만 달러 이상인 부유한 나라에서는 소득이 늘어나도 행복에는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국 경제학자인 저자는 바로 여기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으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 책을 썼고 절대적인 동기가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2만 달러 이상인 서구 선진국을 모든 서술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책의 독자층 자체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인 부를 이미 누리고 있고 복지에 대해서도 소위 말하는 선진적인 의식을 어느 정도는 갖고 있는 국민들로 상정하고 있다. 물론, 철학과 심리학 등을 동원해서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다룰 때에는 이런 시각이 좀 옅어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2만 달러 미만의 후진국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분석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만약에 저자에게 60~70년대 한국의 상황과 개발 독재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묻는다면, 그가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2011년 6월 1일 데이터뉴스 보도 내용]

- 그렇지만 한국은 어쩌면, [행복의 함정]의 내용을 가장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하는 나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막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이르렀지만, 아직 다른 선진국에 비해 복지지출이 유난히 적은 반면 우울증과 조울증 환자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자살율은 유별나게 높고, 행복지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문제점들과 관련해 유효한 시사점을 많이 보여주고 있고, 특히 앞으로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것인지에 대해 아주 적절한 방향을 알려주며 또 그렇게 가야만 하는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3. 개인적인 차원보다는 사회적인 지향점에 더 무게중심을 뒀다.

리처드 레이어드는 본인이 직접 적었듯이, 개인이 실제로 추구해야 할 것을 정확히 지적하기보다는 최고의 사회를 설명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세부적인 방법보다는 사회적인 차원에서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전체적인 논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의 함정]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고 싶은 사람보다는, 우리 사회가 좀 더 행복도가 높은 사회가 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에게 정말 유용할 듯싶다. 그래서 정치인이나 공무원들 같은 정책입안자들이 반드시 읽어봤으면 하고, 저자가 교육 또한 특별히 강조하고 있기에 한국의 교육자들도 한 번쯤은 꼭 읽었으면 좋겠다.
(출판사의 소개에 따르면 영국의 캐머런 총리,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 등 선진국 행복정책의 기반을 제공한 책이라고 한다)

행복의 함정 - 8점
리처드 레이어드 지음, 정은아 옮김, 이정전 해제/북하이브(타임북스)

리뷰를 마치기 전에, 더 나은 사회에서 온전히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리처드 레이어드가 말한 게 있는데, 그것들 중에 몇 가지를 그대로 한 번 옮겨보겠다.

- 우리에게는 더 나은 교육, 도덕적 교육이 필요하다.
- 우리는 높은 실업률을 낮춰야 한다.
- 우리는 지역사회의 사교생활을 촉진할 수 있는 활동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 가족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일터에 더 많은 가족 지원책을 도입해야 한다. 탄력적 노동시간, 육아휴직 증가 그리고 보육시설 확충 등에 더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우리는 정신질환의 치유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 세금이 우리의 일과 생활의 균형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성과급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부추기는 측면을 걱정해야 한다. 이동성에 대해서는 범죄와 가족 해체의 증가 그리고 지역사회의 힘을 약화시키는 경향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리처드 레이어드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제일 인상적인 부분을 보며 이 포스트를 끝내고자 한다. 아래 글을 보면 [행복의 함정]의 저자가 국경을 초월해 얼마나 뛰어난 식견을 가졌는지 알 수 있고, 이명박 정권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진정 귀 기울여 들어볼 만한 충고임을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었으며, 세계 경제규모 13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여러 조사에서 한국인의 행복도가 하위권인 것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겪는 과정에서 돈과 행복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효율성과 생산성 그리고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 연구결과를 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는 국가에서는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감에 별 차이가 없었다. 한국인들은 이제 부의 증가가 행복과 직결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고민해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