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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혁명의 최신 지침서 <반란의 조짐>

보이지 않는 위원회 <반란의 조짐>

역사의 주무대에 다시 등장하고 있는 아나키즘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시민혁명과 관련된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놀라운 속도로 확장하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와 아나키즘을 연관지어 아나코노미(anaconomy)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는 바로 이때. 북부의 공산주의와 남부의 자본주의가 다른 이데올로기를 전혀 허용치 않고 첨예하게 대립하며, 남한 내에서도 수구꼴통과 빨갱이 사이에서 아나키즘적 기반이 거의 없는 바로 이곳. 한반도의 우리에게 <반란의 조짐>은 어쩌면 상당히 괜찮은 핸드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란의 조짐(원제: L'Insurrection qui vient)
보이지 않는 위원회 (지은이) | 성귀수 (옮긴이) | 여름언덕 | 2011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의 맨 앞에 붙은 소개글을 먼저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08년 11월 11일 동트기 전, 프랑스 중부 타르낙Tarnac의 산골 마을에 대테러진압 경찰부대가 헬리콥터들의 호위 속에 들이닥쳤고, 모두 20명을 연행했다. 당국은 그중 9명을 ‘테러계획과 연관된 범죄조직’이자 최근 철도 사보타주의 용의자라고 발표했다. 그들은 모두 파리의 중산층 출신으로, 부족함 없이 성장하여 대학원 이상의 교육을 받은 27~34세의 젊은이로 밝혀졌다. 곧이어 프랑스 내무부장관 알리오 마리는 이들이 ‘극좌 아나키스트 자치조직’이자 ‘반란의 조짐’의 저자인 ‘보이지 않는 위원회’이며, ‘반란의 조짐’은 “테러리즘의 매뉴얼”이라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9명은 ‘타르낙Tarnac 9’이라 불렸으며, 그중 쥘리앙 쿠파Julien Coupat는 조직의 리더이자 ‘반란의 조짐’의 핵심 저자로 지목됐다.
그러나 자급자족의 공동체 생활을 꿈꾸며 시골에 정착하여 가끔 지나가는 행인을 위한 구멍가게를 열고, 이웃한 산골 마을을 위한 영화 상영을 하던 이 젊은이들을 테러리스트로 단죄할 증거가 없어 (이들이 휴대전화를 소지하지 않은 것도 추적을 피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경찰은 주장했다) 2009년 3월 쥘리앙 쿠파를 마지막으로 모두 풀려났다. 이와 관련된 일련의 수사와 조사는 결국 ‘반란의 조짐’이란 문건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반란의 조짐>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처음 출간되었을 당시만 해도 그 영향은 미미했으나, 곧 이 책은 익명의 번역자들에 의해 여러 언어로 소개되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고 한다. 결국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후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맹주가 된 미국에서도 논란의 중심이 되었으며, 영어권 최대 서점인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동과 아프리카 사태를 맞이하여 미국의 보수 논객들이 폭스뉴스에서 현 상황과 이 책의 연관성 및 영향력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니, <반란의 조짐>이 현 시점에서 얼마나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서문, 제1부 '일곱 개의 동심원'과 제2부 '반란' 그리고 해명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다시 자아, 관계, 노동, 도시화, 경제, 환경, 문명으로 나뉘고, 2부는 출발, 만남, 조직, 반란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은 이 책의 기본적인 현실 인식이 담겨 있고, 맨 뒷부분에는 영어판 서문이 '해명'(<반란의 조짐>과 관련하여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위원회'의 유일한 입장이라고 한다)이라는 이름으로 붙어 있다.

사실, <반란의 조짐>은 그렇게 쉬운 책이라고 보긴 좀 어려울 듯하다. 원문이 본래 그렇게 쓰였는지 아니면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에 금방 읽히는 책은 아니다. 책 자체는 160쪽 정도로 상당히 얇고 가벼운 축에 속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간단하게 정리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 두껍지는 않으니 처음부터 끝까지를 몇 시간만에 읽고 그저 표피적으로 요약을 한다면 그건 가능할지 몰라도,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전체 흐름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주 들고 다니면서 몇 번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반란의 '메뉴얼'이고 '핸드북'이니, 대충 한 번 보고 처박아둘 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을 말할 때, 어느 한 부분을 떼어서 말하긴 쉽지 않다. 각 문장들의 표현 자체는 구체적이지만, 맥락이 없이 한 문장을 따로 뽑아서 보면 혁명가가 아닌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오히려 더 추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반란의 조직 부분에 다음과 같은 하이라이트가 등장한다.

"단체들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
모든 기존 조직을 경계하고
무엇보다 그중 하나로 포섭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평소에 이런 얘기들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 이 문장들은 아무 의미 없는 구호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래의 내용을 같이 읽으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것들이 생긴다.

"...조직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눈에 드러나는 안정성에 있다. 이른바 조직의 연혁과 하드웨어적 의미의 본거지, 명칭, 각종 수단들, 우두머리, 전략 그리고 담론까지 갖춘 구체적인 체제 말이다... 아무리 위대한 뿌리를 갖추었어도 이제 와 그것을 존경심만으로 지탱하기는 어렵다. 모든 단계별 사안에서 조직의 관심은 오로지 조직으로서의 생존 그 자체일 뿐, 그 이상의 다른 무엇도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패거리 문화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것들은 어느 것이나 진실에 대한 물타기 작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문단이라는 패거리 문화는 글의 자명함을 흐리는 역할을 한다. 아나키스트 서클은 직접적인 행위를 지연, 무마시킨다. 학계라는 곳 역시 연구 내용을 대중들로부터 유리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스포츠계는 각종 형태의 스포츠가 낳을 다양한 생활 형태를 오로지 자기들 체육관 안에만 모셔두고 있다... 문화계가 하는 일이란 이제 막 태동하는 격한 사태에 눈금을 매기고, 그걸 낱낱이 설명한답시고 의미를 퇴색시키는 데 모아진다. 그런가 하면 사회 운동가들의 모임은 즉각적인 행동에 앞서 에너지를 빠져나가게 만드는 일을 할 뿐이다... 그들의 무능함과 닳고 닳은 상태로 볼 때, 현재의 가능성을 재빨리 거머쥐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남루함을 억지로 채워 넣느라 말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 치안 당국으로부터의 신뢰도 또한 현저히 떨어진 상태다. 그들한테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허망한 일이듯, 그들의 경직된 모습에 실망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이렇듯 이 '최신 반란 설명서'는 정독을 할 필요가 있고, 조금 먼저 읽은 사람으로서 이 책은 그럴 가치가 충분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러니 이 사회에 대해서 '그래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꼭 읽어보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반란의 조짐>의 서문에 있는 글들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현재와 겹쳐지는 아픔과 공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란의 조짐 - 10점
보이지 않는 위원회 지음, 성귀수 옮김/여름언덕

"어디를 둘러봐도 탈출구가 없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현재 상황은 어떻게든 희망을 품고 싶어 하는 자들이 의지할 만한 모든 것을 박탈해버린다. 해결책을 보유하고 있다 주장하는 자들은 조만간 환멸에 부닥치고 만다...

정치적 대의의 장은 폐쇄되었다. 좌든 우든, 때로는 거물인 척 때로는 깨끗한 척할 뿐인 똑같은 허섭스레기에 불과하며, 커뮤니케이션의 최신 경향에 맞춰 그때그때 표제를 갈아 치우는 매장 전시대 같은 존재들이다. 아직도 투표를 하는 사람들은 순전히 항의의 표시로 표를 던지다 못해 결국에는 투표함을 박살내고픈 의도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계속해서 투표하는 것이 사실상 투표 자체에 대한 반감의 표출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한다. 현재 확인되는 그 무엇도 작금의 상황을 감당하기엔 한참 역부족이다...

현재 상황에 대한 사회적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우선은 반어적으로 '사회'라 불리는 환경과 제도, 개별적 세포들의 모호한 집합체에 구체적인 실체가 없기 때문이고, 나아가 공통의 경험을 위한 언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를 공유하지 않고서는 부 또한 나눌 수 없는 법이다...

결국엔 '현재 이상 무!'를 위한 압박과 더불어 경찰력의 증강 배치만이 해결책으로 더욱 부각되어갈 것이다...

현재 상황의 총체적인 난맥상은 도처에서 인지됨과 동시에 또한 부정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심리학자나 사회학자, 문학자가 이 문제를 나름대로 진단하고는 있지만, 매번 알아듣기 힘든 전문 용어나 주워섬기면서 결론 없는 얘기들만 뱉어낼 뿐이다...

작금의 상황이 워낙 급진적인 만큼, 이야기가 혁명으로 귀결되는 것은 적절한 논리의 추이라 하겠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말하면서 결론을 회피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