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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범죄극과 판타지 스릴러의 만남, 팀 보울러(Tim Bowler)의 [블러드차일드(Bloodchild)]

뭔가 잘못되어 있는 우리 시대 병든 마을의 미스터리, Tim Bowler [Bloodchild].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독창적인 청소년 문학 작가라고 소개되고 있는 팀 보울러(Tim Bowler, 1953~ )는 2007년에 한국에서 출간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성장 소설 [리버 보이(River Boy, 1997)]로 유명한 작가이다. '리버 보이'는 1997년에 경쟁작이었던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을 제치고 영국 내에서 권위 있는 청소년(children and young adults) 문학상인 카네기 메달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팀 보울러는 1994년에 첫 소설 [꼬마 난장이 미짓(Midget)]을 출간했으니 비교적 초기 때부터 주목을 받은 작가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이번에 리뷰할 [블러드차일드(Bloodchild)]는 2008년작이고, 한국에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최근에 [Buried Thunder (2011)]라는 작품이 새로 출간되었다.


꼬마 난장이 미짓(Midget) - 10점
팀 보울러(Tim Bowler) 지음, 김은경 옮김/다산책방

팀 보울러(Tim Bowler)의 [블러드차일드(Bloodchild, 2008)]는 열 다섯 살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데, 굳이 청소년 소설이라는 범주에 넣고 바라보지 않더라도 그냥 심리 스릴러로서도 충분히 읽을 만한 작품이다. [블러드차일드]의 주요 사건 자체는 범죄극의 형식을 띄고 있으며, 주요 인물의 반응은 판타지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는데,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과 사건,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주인공이 겪는 몽환적인 경험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묘사되는 주요 장면들이 소설 속의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묘한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캐릭터성이 강한 주인공의 심리와 내러티브적으로 잘 짜인 스릴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일 텐데, 그러면서도 범죄극의 리얼리티와 판타지로서 픽션의 자유로움이 잘 조율되어 있다. 작가가 환상과 현실의 팽팽한 긴장감을 소설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Tim Bowler의 [Bloodchild]에 대해서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블러드차일드]의 내용을 통해 팀 보울러가 보여주는 기본 설정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겠다. 주인공 '윌리엄 에드워드 패트릭 블라이(윌)'는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헤이븐스마우스'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의 '포 윈즈'라는 집에서 수학 개인교사인 아버지 '크리스', 영어 교사인 어머니 '줄리'와 함께 살고 있다. 작품 전체에 걸쳐 휴대전화가 일상적으로 계속 등장하며 인물들의 생활 모습 자체에서 거의 아무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걸로 봐서 시간적 배경은 그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고,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발생하는 전체 사건의 기간 역시 아무리 길게 봐도 일 년 이내라고 짐작된다. 그러니 현존하는 영국의 해안 소도시를 배경으로 '블러드차일드'라는 영화를 그대로 찍어도 될 만큼, 이 소설은 현재 시점의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단독 주연 '윌'은 앞서 말했듯이 15살 소년이고, 난산(難産)으로 태어나 거의 죽을 뻔한 외아들이며, 병치레가 잦고 기계치에다가 불면증이 심해서 그야말로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다. 게다가 고기나 생선, 치즈나 달걀도 입에 대지 않으며, 사람들이 다치는 걸 싫어하고 동물을 무서워하며, 폭력을 아주 혐오하는.. 또 친구를 거의 사귀지 않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몇 년째 학교에도 다니지 않는다. 윌은 이상한 것들 그러니까 일종의 환상 같은 걸 보는 소년인데다가 주위 사람들을 퍽 불안하게 만드는 면이 있어서, 그의 부모는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그가 하는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종종 무아지경에 빠지곤 하며, 통제 불능이 되어 버리기도 하는 등등.. 윌은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전혀 평범한 아이가 아닌 것이다. 이런 소년이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고 자기 부모도 못 알아보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리고 윌에게만 보이는 정체불명의 소녀가 잿빛 환상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이 소설의 시작이 된다.

윌과 그의 부모 외에 이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남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고 자신감도 너무 넘쳐서 이 소년과는 전혀 맞지 않지만, 그럼에도 윌을 참 좋아하며 큰 힘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금발 소녀 '베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는 의문의 흑발 꼬마 '먹(muck은 배설물이나 흙, 불쾌한 것을 뜻함)',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떠돌이 노숙자이면서 꼬마와 정말 기묘한 단짝을 이루는 사내 '크로(crow는 영어로 까마귀를 뜻함)', 고깃배 '스핀드리프트 호'의 선장이자 베스의 아버지 '스투 파머'와 그의 부인 '로즈', 헤이븐스마우스의 술집 '시 체스트'를 운영하는 웨더비家 사람들 (어머니 '새러 웨더비', 아버지 '제프', 큰아들 '브래드', 작은아들 '미키', 회갈색 머리칼의 소녀인 막내딸 '이지 웨더비'), 마을에서 존경 받는 교구 신부이자 괴상한 아이 윌과의 대화를 즐겼으며 소년의 말을 믿어준 '존 셰퍼드', 스핀드리프트 호의 선원인 '로보'와 '데이비' 등.. 여기에 더해서, 윌이 치료를 받게 되는 '아카시아 요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 그리고 아동 인신매매조직과 경찰들도 등장한다.


[블러드차일드]에 나오는 인물들을 이렇게 다 정리해 놓으면 언뜻 복잡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소설의 이야기 구조 자체는 미스터리물치고는 상대적으로 굉장히 단순한 편이다. 전반적인 스토리는 모두 윌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윌의 움직임만 그대로 따라가면 작품 전체를 한 번에 관통해서 이해할 수 있으며, 윌의 주관적인 환상과 다른 인물들의 객관적인 현실을 일정하게 구별해서 읽을 수 있다면 앞으로 쉽게 전진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윌의 개인 심리 묘사와 소설 속의 실재 사건 서술만 혼동하지 않으면, 그다지 어렵지 않은 미스터리 스릴러인 것이다. 다만, 기본적으로 이성적인 장르에 속하는 범죄극을 (주인공 윌의 시선에서) 감성적인 판타지 코드로 풀어 나가는 색다른 방식을 사용하기에, 440페이지 정도의 그다지 짧지 않은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좀 일반적이지 않은 낯선 느낌을 독자가 때때로 받는 경우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 싶다.

비슷한 이유로, 다른 사건이나 인물들이 중간에 개입하지 않고 오직 윌의 심리만 몽환적이고 반복적으로 길게 서술되는 장면에서는 페이지를 계속 넘기기가 약간 버거운 순간도 있는 것 같다. 주로 소설의 중간 부분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질 텐데, 초반에는 기억을 잃어버린 윌에게 (원래는 알았지만 지금은 모르는) 여러 인물들에 대한 소개와 배경 설명이 필요하기에 새로운 소규모 사건들이 연이어지고, 종반에는 이제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중심 사건이 실체를 드러내기에 전체적인 의문이 풀리는 다양한 대화가 오가지만, 중반에는 기억을 하나씩 회복하고 사건의 핵심에 점점 더 접근하는 윌이 대체로 혼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좀 지겨운 독백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어느 정도 시점까지는 예외 없이 답보 상태를 유지하게 되고, 그런 답답함 자체가 독자들에게 흥미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큰 요소여서, 태생적으로 좀 불가피한 측면이 아예 없는 건 아닌 듯하다. 다만, 윌에 대한 특성 파악이 이미 다 끝난 상태인 중간 지점에서도 여전히 그것을 이용해서 유사한 사건과 대화가 되풀이되며 지지부진한 모습을 노출하는 건, 요즘 세대 독자들이 보기엔 솔직히 좀 짜증스러운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중반부 이야기가 더 정리된 형태로 표현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차피 어떤 예술이든지 작품의 완성도라는 건 끝이 없는 일이란 걸 상기한다면, 약간은 이런 식의 아쉬움도 남는다.

[국내에 출간된 팀 보울러의 다른 작품들]

Tim Bowler의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감성적인 순수함을 모토(motto)로 하고 있으면서도 이 시대의 엄혹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다. [Bloodchild]에서 발생한 범죄는 결국 아동 인신매매로 밝혀지는데, 이는 결코 우리 세계와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다. 2011년 6월에만 해도 10대 소녀들에게 돈을 미끼로 강제 임신시킨 뒤 높은 가격에 아기들을 팔아온 '아기공장(베이비 팩토리)' 조직이 나이지리아에서 적발되었으며,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sation, ILO)는 2010년에 전 세계적으로 최소한 1230만명이 강제노동과 상업적 성노역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들은 거의 여성과 아동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더 안타까운 건 지금도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인신매매로 팔려가고 있고, 끝이 안 보이는 빈곤으로 인해 해당 지역의 어른들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블러드차일드]에 그대로 나오는 아동 인신매매 조직의 행태는 엄연한 사실이고, 그렇게 납치 또는 매매된 아동들은 소설의 배경인 영국을 포함해 유럽전역에 공급된다. 한편 남미와 아프리카의 코코아나 커피 생산 그리고 성매매 문제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이 노예 노동, 아동 인신매매 및 강제 노동과 관련돼 줄곧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전 세계에서 매년 엄청난 양이 생산되는 달콤한 초콜릿과 최대의 기호식품인 커피 소비의 이면에는 아동 인신매매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영국이나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초콜릿과 커피를 먹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이런 불편한 진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치 팀 보울러의 소설 속에서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인 헤이븐스마우스의 평범한 주민들이 결국에는 추악한 아동 인신매매 조직원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아동의 노동력 착취를 바탕으로 생산된 초콜릿과 커피를 즐기며 '뭔가 잘못되어 있는 병든' 사회를 살아가는 건 아닌지, 이 작품을 읽으며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더 나아가, 요즘 사회적으로 중요한 키워드 중에 하나인 '공정 무역'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면, 이 책의 저변에 깔려있는 근원적인 문제의식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2011년 6월 27일 조선일보 보도 내용]

그리고, 리뷰를 끝마치기 전에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작품의 번역에 대한 얘기인데, 솔직히 말해서 좀 어색한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Tim Bowler의 원서를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으로 뭐라 지적하긴 힘들지만, 전체적인 소설의 흐름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튀는 한국어 표현들이 꽤 있었던 듯하다. [Bloodchild]가 한 번에 술술 잘 읽히지 않는 데에 이것도 한몫을 했지 않을까 싶은데, 전반적으로 몰입을 저해할 정도로 곳곳에서 이상한 문장들이 있었고, 특히 주인공 윌과 다른 인물들 사이의 대화에서 그런 불편한 느낌이 자주 들었다. 심한 경우에는, 과연 저자가 영어로 실제 이렇게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물론, 어떤 언어든 소설을 번역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단지 혼자만의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인상을 받은 건 분명한 것 같다. 팀 보울러의 다른 책에서는 부디 이런 느낌이 없었으면..

블러드 차일드(Bloodchild) - 10점
팀 보울러(Tim Bowler) 지음, 나현영 옮김/살림


이렇게, 팀 보울러(Tim Bowler)의 [블러드차일드(Bloodchild, 2008)]에 대한 나름의 리뷰를 해보았다. 위에서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이 작품은 초반부가 상당히 흥미롭고 세심하게 시작하며, 종반부에서 미스터리가 풀리는 것도 굉장히 깔끔하고 의미 있게 처리되어 있다. 작가는 판타지 스릴러적인 색깔과 심리 범죄극의 포맷을 절묘하게 믹스매치시키고 있으며, 주인공의 환상과 소설 속 현실의 위화감 없는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은 이 작품의 최대 미덕이라고 할 수 있고, 동시에 어떤 신선함까지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작가는 그저 픽션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 시대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직시도 소설 속에 그대로 담음으로써 절대 회피하지 않는, 그리고 엔딩에서 주인공의 선택을 통해 진지한 고민이 있는 심리 스릴러를 만들어 냈다. 무엇보다 소설적으로 탁월한 구성이 마음에 들었고, 현실에 관한 작가의 통찰력과 뛰어난 묘사력도 인상적이었다. 아직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팀 보울러의 최신작 [Buried Thunder]도 하루 빨리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