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풍속화의 대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 얀 스텐(Jan Steen).
5월은 축제의 달이라고들 하는데, 미술에서도 일종의 축제를 다룬 작품들이 있다. 보통 일상 생활의 장면들을 묘사한 그림, 흔히 말하는 풍속화(genre painting)에서 그런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주로 종교화를 그리던 화가들이 이제 풍속화를 그리게 된 것도 어느 정도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고 한다.
16세기 우상숭배를 반대하는 종교개혁으로 인해 더 이상 종교적인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어진 북유럽의 미술가들은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려고 애썼고, 결국 자신들의 특별한 솜씨를 보여주는 전문화의 길로 나섰다. 그래서 작품의 주제를 어느 한 부분으로 한정해서 의도적으로 개발한 그림들이 등장했고, 그 중에 하나가 위에서 말한 풍속화가 된 것이다.
16세기 플랑드르(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 최고의 풍속화가는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 1525년경~1569년)이라고 하는데, 자손들이 다 화가였고 이름이 같은 인물도 있기 때문에 이 화가의 이름 뒤에는 통상적으로 the Elder를 붙인다. 그에 대해서는 별로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고 작품 수도 그다지 많지 않지만, 그림을 하나 둘 보면 볼수록 관심과 흥미가 더 커지는 화가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될 사람이 아닌가 싶고, 그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면 각 작품마다 정말 이야깃거리가 많은 브뤼겔의 그림 한 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피터 브뤼겔, [농가의 결혼식], 1568년경. 패널에 유화, 114 × 164 cm, 빈 미술사박물관
위 작품은 농가에서 축제라고 할 수 있는 결혼잔치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을 단지 먹고 마시는 잔치에 대한 그림으로 본다면, 그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작품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는 좀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고, 그러고 나면 여기에 얼마나 많은 삶의 진실이 담겨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일단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결혼식 자체는 이미 끝난 뒤인 듯하고,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거창하게 말하자면 피로연쯤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먹는 건 기껏해야 스프와 음료 그리고 테이블 위에 빵 조각이고, 그것마저도 앉아 있는 사람이나 문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그리 넉넉해보이지도 않는다. 언뜻 보면 전체적으로 특별히 주인공이 있는 그림 같지는 않지만, 몇몇 인물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게 된다. 그것은 브뤼겔 작품의 감탄스러운 구도와 놀라운 묘사 덕분인 듯한데, 그 인물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자.
먼저, 결혼식이라고 하니 신랑과 신부를 찾아보면 가운데 녹색천 앞에 앉아 있는 여자는 신부라는 걸 알겠는데, 도무지 신랑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신부의 얼굴이 상당히 인상적인데 즐거운 표정이라 하기에도 뭔가 이상하고 그렇다고 불행한 것도 아닌, 참 오묘한 표정이다. 결혼식인데 신랑은 안 보이고, 신부는 전혀 주인공의 모습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두 번째로 왼쪽의 백파이프를 들고 있는 남자와 아래에 자기 접시를 손가락으로 긁어 먹는 아이를 보면, 일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백파이프 남자는 잔치에 연주를 하러 온 것 같은데 그의 시선은 두 남자가 운반하는 음식을 향하고 있고, 아이는 누구 하나 챙겨주지 않는 상황에서 빈 접시를 끌어안은 채 바닥에 앉아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축제에서도, 가난한 농가의 잔치는 이토록 애처로운 장면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왠지 이 장소에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복장을 하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검은 옷의 남자가 있다. 옆에 있는 수도승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남자는 이곳의 농부들과는 달리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며, 다른 사람들처럼 음식을 먹고 있지도 않다. 마치 이런 별 볼 일 없는 음식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이며, 그와 마찬가지로 이 결혼식 자체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이..
이 작품을 그린 브뤼겔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고, 그림은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신랑도 없이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무명의 신부, 잔치에 와서까지도 그렇게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남자와 아이, 그리고 이들과는 태도가 완전히 딴판인 방관자를 보면 분명히 어떤 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으며, 축제에서조차 그 진실을 완전히 벗어날 순 없다는 걸 피터 브뤼겔은 깊이 이해하고 있던 예술가가 아니었을까.
잠깐 다른 얘기를 해보면, 이 작품을 현대에 와서 패러디한 그림이 있는데 그것은 대표적인 프랑스 만화인 아스테릭스(Asterix)에 등장했다. 제24권 [Asterix in Belgium]의 한 장면이었으며, 한국에서도 [아스테릭스, 벨기에에 가다]란 제목을 달고 출간된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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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브뤼겔이 사라진 이후, 플랑드르에 또 한 명의 대가가 나타나는데, 그는 얀 스텐(Jan Havickszoon Steen, 1626년경~1679)이었다. 브뤼겔이 축제의 이면을 사회적인 측면에서 다루었다면, 한 세기쯤 뒤에 활동한 얀 스텐은 그것을 개인적인 측면에서 다뤘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어쩌면 이것 또한 전체 역사를 볼 때,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오며 전반적으로 '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얀 스텐 역시 일상 생활의 묘사를 통해 화가로서의 솜씨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풍속화로 표현했는데, 원화를 보면 누구나 그 작품들의 화려한 색채들이 주는 따사로움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번 글에서 브뤼겔의 작품은 요모조모 뜯어봤다면, 얀 스텐의 작품은 그림 그대로를 편하게 감상해보도록 하자.
방금 말했듯이 개인적인 측면에서 축제의 이면을 다룬 얀 스텐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이해하기가 좀 쉬운 편일 것 같다. 왜냐하면 일상에서 우리가 지금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들을 그는 작품에서 드러내고 있고, 그런 것들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림을 보고 저절로 느껴지는 것들을 자유롭게 상상하면 될 듯하다.
얀 스텐, [성 니콜라스 축제], 1665년경. 캔버스에 유채, 71 × 82 cm,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얀 스텐, [세례 잔치], 1664년경. 캔버스에 유채, 89 × 109 cm, 런던 월리스컬렉션
이상으로, 축제의 달이라는 5월에 풍속화로서 축제의 이면을 다룬 화가인 피터 브뤼겔과 얀 스텐에 대해 알아보았다. 축제를 사회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든 개인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든, 그저 축제 자체의 즐거움에만 매몰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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