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워치(Apple Watch)가 스마트시계의 현재라면, 뉴 맥북(MacBook)은 노트북의 미래.
마침내 애플이 자사의 첫 스마트워치와 새로운 맥북을 발표했다. 실제로 공개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플의 '시계'에 주목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애플의 '노트북'이 더 눈길을 끌었다.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애플 워치가 작년 9월에 전체적인 디자인이나 기능 등 기본 사양이 이미 발표된 탓도 있겠지만, 스티브 잡스(Steve Jobs) 때처럼 철저한 비밀유지를 바탕으로 단 하나의 굉장히 인상적인 물건을 공개하는 전략을 애플이 더 이상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에 정식 발표된 애플 워치는 6개월 전에 공개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생각보다 가격이 높다는 것 외에 특별히 새로운 점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나마 가격과 함께 관심이 모아졌던 배터리 지속시간도 18시간 정도로 평범한 편이고(시계인데 매일 충전을 해야 한다), 공식 출시 날짜도 4월 24일이니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예전 같으면 1차 출시국(미국, 호주, 캐나다, 중국, 프랑스, 독일, 홍콩, 일본, 영국 등 총 9개국)에 한국이 없는 걸 아쉬워할 법도 하지만, 워낙 맥빠진 발표여서 그런 안타까움도 많지 않은 듯하다.
전세계에서 애플의 신제품 공개를 학수고대하던 사람들 중에는 애플 워치에 실망한 이들도 있을 텐데, 알고 보니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이번 행사에서 처음 공개된 뉴 맥북은 그저 맥북 시리즈의 통상적인 업그레이드 수준이 아니라 거의 완전한 새 버전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제까지 발표된 그 어떤 맥북보다도 더 얇고 가벼우며 조용하지만, 그러면서도 굉장히 뛰어난 화면해상도(2304×1440 레티나 디스플레이)와 대용량 저장소(256GB SSD) · 놀라운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다.
[출처: 애플 스토어]
어떻게 보면, 작년 9월의 공개행사가 애플 시계를 위한 거였고 이번 발표는 애플의 새로운 노트북을 위한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Apple Watch와 MacBook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두 기기에 대한 애플의 접근방식 자체가 아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원래 노트북은 만들고 있었지만, 시계는 만들지 않았던 애플. 이 접근방식의 차이가 애플 워치와 뉴 맥북이라는 신제품의 성격과 방향성에도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테고, 지금부터 중점적으로 살펴볼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애플답지 않은 다양한 옵션의 '시계', 적극적으로 타협하는 Apple Watch
애플 워치는 기본적으로 모든 스마트워치가 다 제공하는 기능들(문자 메시지, 이메일 확인, 각종 알림 등등)이 가능하고, 일반 전화통화 및 무전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 웨어처럼 음성명령을 내릴 수 있고, 애플페이나 음악재생도 가능하다. 연동된 각종 앱도 사용할 수 있고, 인스타그램이나 위챗 같은 SNS 이용도 당연하며, 심장박동 측정처럼 약간의 헬스케어 기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이런 것들은 다른 스마트워치에도 거의 다 있기 때문에 애플 워치만의 특별함이 되기는 힘들다.
그래서인지 애플 워치는 옵션이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저 여러 개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화면 크기에서부터 재질 · 색상은 물론이고 시간 표시방식과 시곗줄 종류까지 선택할 수 있다. 기존에 애플이 표방했던 일종의 통일된 이미지(멀리서도 한눈에 구별되는 애플의 디자인 아이덴티티)와는 좀 다른 접근방식인데, Watch에서 애플은 기능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패션 아이템적인 측면도 매우 중요하게 고려한 것 같다. 아직까지는 굳이 스마트워치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애플 워치를 제안한 셈이다.
이제까지의 애플은 신제품을 낼 때 놀라운 기술적 혁신으로 미래를 열어젖혔고, 자기들만의 통일된 디자인으로 애플 고객들이 항상 프리미엄 제품을 쓰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식하며 서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애플 사용자들끼리는 언제나 서로를 금방 알아봤고, 세대는 다를지언정 동일한 디자인의 애플 기기를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다양한 사람, 똑같은 애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계를 처음 만든 애플은 이 원칙을 깨버렸다. 기술적으로 미래가 아닌 현재에 충실했고(기존 스마트워치의 기능과 별 차이가 없다), 한 사람이 다양한 애플 워치에 관심을 가지도록 했다.
[출처: 애플 스토어]
도대체 왜 그랬을까? 팀 쿡의 애플은 스마트워치를 만들면서 명백히 '시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한 사람이 기능적으로 동일한 여러 개의 IT기기가 필요한가?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은 여러 대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시계는 다르다. 그 날 패션에 따라 여러 개 중에서 하나를 골라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애플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고, IT기기로서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계로서 접근한 것이다. 결국, '똑같은 사람, 다양한 애플'이 됐다. 그래서 디자인도 수많은 선택지가 있고, (지금까지의 애플 제품들은 가격이 딱 정해져 있었던 반면) 애플 워치의 가격은 옵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렇다면, Apple Watch는 앞으로 어떻게 세대를 거듭하며 진화해 나갈까? 아마도 기존의 애플 라인업과는 좀 다른 길을 갈 테고, 애플에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예상컨대 세대가 바뀌더라도 핵심 부품외에 시곗줄 같은 것들은 계속 호환이나 교체 서비스가 제공될 가능성이 높고, 명품 시계처럼 프리미엄이 붙을 수도 있겠다.
이게 가능한 건 애플 워치가 기능성 IT기기라기보다는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시계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인데, 또 그런 이유로 우리가 지금 당장은 애플이 만든 시계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어차피 애플 워치의 가치는 그 내용물이 아니라 껍데기(재질과 시곗줄 종류)가 결정하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애플은 작년에 고급 패션브랜드인 '버버리(Burberry)'의 CEO를 리테일 수장으로 영입했고, 팀 쿡은 그녀를 "이 직책에 전세계에서 가장 적합한 책임자"라고 추켜세웠다]
[출처: 애플 스토어]
애플답게 고집스런 사양의 '노트북', 타협하지 않는 새로운 MacBook
자, 그럼 이번 신제품 발표의 진짜 주인공 뉴 맥북을 살펴보자. 일단 색상부터 애플 워치와는 달리 '정통파'라는 걸 확실히 드러내는데, 이제까지의 애플이 계속 그래왔듯이 단출하게 실버·골드·스페이스그레이 이렇게 딱 3가지 뿐이다. 가격도 언제나처럼 핵심사양(CPU, 저장용량)에 따라 159만원과 199만원짜리가 있고, 화면은 앞에서 말한 바대로 무려 2304x1440 해상도(226ppi)인 12인치 Retina 디스플레이다. 고작 12인치가 웬만한 20인치 데스크탑 모니터보다 더 과한 해상도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애플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 눈이 좀 아프더라도 최상의 디스플레이를 똑똑히 경험해야 한다. 왜냐면, 이건 Apple의 맥북이니까..
그리고 두께와 무게는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얇고 가볍다. '11인치' 맥북에어의 두께가 17.3mm였는데, '12인치' 뉴 맥북은 겨우 13.1mm다. 게다가 제일 얇은 곳은 불과 3.5mm 이고 상판 디스플레이에서 가장 두께가 얇은 부분은 무려 0.88mm라고 하니(오죽하면 애플 스스로도 '불가능할 정도로 얇은'이라고 표현했다), 약간 허풍을 보태자면 맥북에 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무게도 0.92kg밖에 안 나간다는데, 이렇게 얇고 가벼운 노트북을 만약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 괜한 걱정까지 하게 된다. 지금까지 나온 랩탑 중에 이보다 더 얇고 가벼운 컴퓨터는 거의 못 본 것 같은데, 과연 이렇게까지 얇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근데 또 CPU는 태블릿에 많이 쓰는 저전력 '인텔 Core M 프로세서'란다. 이전에 나온 맥북 에어에 'Intel Core i5 · i7'이 들어간 걸 감안하면 좀 의외의 구성이고(Core i5 · i7보다 Core M이 더 낮은 사양이다), 다른 건 대부분 다 높은데 중앙처리장치만 사양이 낮은 걸 보면 이번 맥북은 특히 저전력에 중점을 둔 듯하다(발열이 적어 냉각팬이 없는 최초의 맥북이며, '애플의 표현에 의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맥북 라인업의 상징과도 같은 걸로 여겨지던, 애플 로고를 밝혀주는 라이트까지 없앴다. 그래서 엄청나게 얇아지고 가벼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배터리 유지시간은 기존 맥북과 동일한 쾌거를 이룩했다(분명히, 애플 워치와는 궤를 달리한다). 이쯤 되면 사양에 대해서는 진짜 극단적인 집념을 부렸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새로운 맥북에는 포트(각종 기기를 연결하거나 충전할 때 쓰는 구멍)가 단 하나밖에 없다. 물론 오디오 포트는 따로 있지만, 충전 · 외부저장소 · 디스플레이 · HDMI 등 이 모든 기능을 오직 한 개의 구멍으로 다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건 'USB-C'라는 이름의 신개념 포트인데, 여기에 마우스를 꽂아버리면 동시에 충전을 하지는 못하는 셈이다. 사실 좀 황당하지 않나? 아무리 얇은 걸 원하기로서니 일반 노트북은 양쪽에 몇 개씩(뒤에도 있다) 있는 포트가 오로지 단 하나밖에 없다니 말이다. 그렇지만 애플은 이렇게 만들어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애플스토어에서 전용 액세서리를 판매한다(79달러). 마치 그런 게 바로 애플이라고 말하듯이, 그리고 이게 바로 노트북의 '미래'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출처: 애플 스토어]
우리가 뉴 맥북에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
스마트워치를 처음 만들어보는 애플은 IT기기로서의 혁신보다는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다양성을 추구했고, 자신들의 본령인 노트북에서는 지독할 정도의 고집을 부렸다. 이것만 봐도 우리가 무엇을 더 집중해서 봐야 할지 짐작되고도 남는데, 여기서 눈에 띄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구글도 크롬북 신제품인 '픽셀'을 이번에 내놨는데, 픽셀에도 USB-C 포트가 들어갔다(단, 덜 극단적인 구글은 2개 넣었다). 애플의 맥북뿐만 아니라 구글의 크롬북에도 장착됐으니, 향후에 USB-C가 보편화되는 건 이제 시간 문제 아닐까? 애플도 노트북의 미래라고 말하지 않았나.. 어쩌면 노트북이 다시금 모바일 시대의 중심으로 진입할지도 모르겠다.
애플 워치와 관련된 대부분의 사항은 2014년 9월에 발표됐고, 공개행사 전 많은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 발표 내용을 보면 6개월 전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뉴 맥북은 공개행사 전까지만 해도 그냥 다른 해처럼 통상적인 관심을 받는 데 그쳤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상당한 혁신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또 6개월 뒤에 어떤 평가와 새로운 발표가 있을지 기대되는데, 팀 쿡의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있던 때의 애플보다 순간적인 파워는 약하지만 연계해서 밀고나가는 힘은 더 강한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잡스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팀 쿡이 앞으로도 계속 애플을 이끌고 나갈 테니(2011년 8월 취임 이후 시가총액을 2배로 끌어올렸다), 팀 쿡의 패턴에도 좀 익숙해질 필요가 있을 듯싶다.
2007년 초 아이폰을 발표할 날짜가 임박했을 당시, 그때까지도 아이폰은 여전히 버그 투성이였고, 시스템다운이 아주 잦았다. 애플 스탭들은 언제 다운될지 모를 아이폰을 보면서 계속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로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 스티브 잡스의 집요한 성격과 완벽을 요구하는 스타일은 주변의 많은 이들을 힘들게 만들었다(잡스는 일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담당직원을 노려보며 "당신이 회사를 망치고 있어. 이번에 실패하면 당신 때문이야"라는 심한 독설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내 2007년 1월 9일 잡스의 아이폰 발표는 성공적으로 이뤄졌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애플의 담당 엔지니어 6명은(체중이 급격히 불어나거나 가정생활에 지장이 발생하기도 했다) 잡스의 아이폰 프리젠테이션 장면을 지켜보면서 자기가 맡은 분야의 설명이 무사히 끝나면 차례대로 독주를 마셨다. 아이폰 발표가 다 끝났을 무렵 이들은 술병을 다 비웠고, 그날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있었다.
완벽주의자였던 잡스가 애플 워치나 뉴 맥북을 발표했다면 애매하게 요즘과 같은 식으로는 절대 하지 않았겠지만, 벌써 대화면 아이폰으로 대성공을 거둔 바 있는 팀 쿡(Tim Cook)의 애플은 '비밀과 완벽'보다는 '안정과 실리'를 더 추구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딱 적절한 수준의 준비와 배분 · 딱 필요한 만큼의 관심과 흥미를 영리하게 잘 컨트롤하며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의미는 좀 다르겠지만, 어쨌든 Apple은 2011년 10월 5일(스티브 잡스 사망일)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 역시 무섭고도 놀라운 회사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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