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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있는 막말과 독설의 미학 [병신 같지만 멋지게(Shit My Dad Says)]

어느 아버지의 충고. 저스틴 핼펀 지음, 호란 옮김, 이크종 그림 [Shit My Dad Says].



요즘 인터넷상에서는 여러 가지 '막말' 동영상이 넘쳐난다고 하며, 최근에 다양한 매체에서 기사화되기도 했다. 워낙 사회가 무섭다보니 사생활 보호는 일단 뒤로 제쳐둔 채 어쨌든 범죄 예방과 증거 기록이라는 목적으로 CCTV가 도처에 많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을 누구나 사용하고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동영상은 계속 축적될 테고 이와 관련된 문제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막말 동영상도 마치 매달 잡지가 쌓이듯 점점 양이 많아지면서 그 명칭이야 어찌됐든 사람들의 입에 종종 오르내릴 테고, 제3자들은 평소에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관하여 잡담을 나누는 것처럼 각종 '막말X'에 대해 가십 거리로 대화를 나눌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의 사생활에 괜히 관심을 두는 게 우리에게 그다지 도움될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막말하는 사람들에 관련된 일련의 정보들이 이런 식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마구잡이로 노출되는 게 과연 모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항상 만성적인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 속에서 허우적대는 한국 사회의 일반 대중이 그저 마녀사냥이라도 하려고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분풀이 대상은 아닌지, 실제 상황이 어땠는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무가내로 한 개인을 욕할 게 아니라 이렇게 우리 스스로를 좀 뒤돌아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어차피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가끔 뉴스로 나오는 그 '막말X'들도 다 우리 주변 사람들이고, 예전에는 아예 없었던 인물들도 아니다. 언제나 어디에나 그런 사람들은 원래 있었고, 당사자들 사이에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며 오해가 풀어질 때도 있으며 잘못된 사실관계가 정정되기도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불완전하기에 이런 충돌 역시 자연히 불가피하고, 특별히 합의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냐를 떠나서) 어쨌든 이런 충돌의 영향과 책임은 직접 관련된 당사자들이 인지할 수 있는 사회적 범위 내에서 '우선' 최대한 처리되는 게 적절한 것 같다. 이건 얼마 전에 문제가 됐던 특정 음식점의 임산부 폭행 논란과 소위 국물녀 논란도 비슷하다. 그 당시에 임산부와 종업원 사이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어쩌다 아이의 몸에 국물이 쏟아지게 됐는지 아는 이들은 그 일과 직접 관련되어 있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뿐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이런저런 얘기들이 퍼지면서 전혀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함부로 사건을 재단하고, 소위 말하는 신상털기와 같은 악질적인 행동들까지 이어진다. 도저히 사태를 해명할 기회와 시간도 없이 삽시간에 불특정 다수에 의해 가해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의 피해는 도대체 어떻게 회복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누구라도 억울한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앞서 말한 특정 음식점이 바로 내 가게가 될 수도 있고, 국물녀가 바로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CCTV가 논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렇게 '막말'이 문제시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이 말을 하는 행위 자체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계속 말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그 말은 단지 목소리로만 표현되는 게 아니다. 어떤 관계에서 어떤 상황으로, 어떤 몸짓과 표정으로 드러나는지도 중요하고, 전체 얘기에서 어떤 부분에 속한 말인지도 서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내뱉는 욕설이 아닌 다음에야 이와 같은 종합적인 판단은 필수적이고, 설사 언뜻 듣기엔 막말이라고 하더라도 전반적인 맥락을 좀 알 필요가 있다. 과연 인터넷에 그렇게 많이 떠돌고 있다는 막말 동영상들이 얼마나 제대로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그것 역시도 보는 사람들이 각자 알아서 주관적으로 판단할 사항이긴 하지만, 당사자들이 애초에 그런 판단의 대상이 되는 걸 원치도 않았을 뿐더러 전혀 아무런 인지 과정이 없이 일방적으로 인터넷에 그런 동영상이 공개된다면, 그건 확실히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사실, 어떤 말의 진짜 수준은 그냥 말의 소리보다 그 이외에 여러 가지 복잡하게 담겨 있는 이면적인 내용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어떤 책을 볼 때도 우리는 그저 활자만을 보는 게 아니지 않는가? 거기에 담긴 메타포(metaphor)를 함께 봐야 하고, 전체 이야기 맥락 속에서 그 말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누군가 막말을 했다고 해서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개떼들처럼 달려들어 비난하는 건, 막말을 한 당사자만큼이나 정말 모자란 행동인 것이다. 그건 마치 어떤 소설에 비속어가 쓰였다고 해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덮어놓고 수준이 낮은 소설이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말의 수준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래서 이번 포스트에서는 '제대로 된 막말', '진정성 있는 독설'이 담겨 있는 책을 한 권 소개할까 한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Shit My Dad Says]이고 한국어판 제목은 [병신 같지만 멋지게]이며, 지은이는 저스틴 핼펀(Justin Halpern)이고 옮긴이는 호란(클래지콰이의 여성 보컬)에 그린이(책에 삽화가 꽤 많다)는 이크종이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어느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준 막말과 독설을 바로 그 아들이 정리해서 엮은 에세이인데, 이 내용이 참 웃기기도 하지만 여느 인생 선배의 말처럼 상당히 의미 있는 충고로 느껴진다. 이 아버지는 욕쟁이 할머니처럼 시원스럽게 욕을 해대고, (남한테 들었으면 싸움이 날 만도 한) 정도가 심한 막말과 수위 높은 독설을 마구 쏟아내지만,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아들: 다들 나더러 할아버지랑 같이 방을 쓰라는데 나는 싫단 말이에요.
아버지: 그래, 네 할아버지는 너랑 같은 방을 쓰시고 싶어할 것 같니? 그런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
아들: 모르겠어요.
아버지: 그럼 가서 여쭤보자.
.........
아버지: 이것 봐요, 아버지. 얘가 아버지랑 같은 방을 쓰기 싫다는데 아버지는 어떠슈?
할아버지: 뭐, 나도 녀석이랑 같은 방을 쓰긴 싫다. 난 혼자 쓸 방이 필요해.
아버지: (아들을 내려다 보며) 똑똑히 봤지? 너도 딱히 꿀 발라놓은 손자는 아닌 거야.

예로 들기에는 좀 약한 감이 있지만(책 전체적으로 욕설도 꽤 나오고, 굉장히 웃기는 상황도 많다), 어쨌든 이 아버지는 이렇게 단도직입적이고 거의 포장하지 않은 막말을 어렸을 때부터 아들에게 했고, 어른이 된 아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자기 아버지의 독설을 가감 없이 에세이에 실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이 책이 나오게 된 특이한 과정과 거의 모든 내용의 투톱 주인공인 아버지와 아들(핼펀 부자)에 대해 좀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음은 책에 직접 수록되어 있는 저자 소개다.


지은이 소개부터 웃긴다. 위의 이미지 그대로이고, 아래 빨간 글씨로 설명되어 있는 내용도 이채롭다. 따로 무슨 말을 붙이지 않아도 이것 자체로 [병신 같지만 멋지게(Shit My Dad Says)]라는 책의 특별함과 전반적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등장인물 소개.


이것도 마찬가지로, 굳이 별도의 설명이 없어도 이 아버지와 아들의 캐릭터를 단박에 느낄 수 있는 삽화와 코멘트인 것 같다. 말 그대로 이 책은 곳곳에 아버지의 막말로 점철되어 있는 에세이고, 옮긴이 호란이 말하듯 주인공 아버지의 욕설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될 정도로 각종 욕과 '똥'이 난무하는 텍스트를 가지고 있다. 앞서 소개에서 본 것처럼 이 책의 원래 시작은 트위터였고, 140자에 미처 다 담지 못한 내용을 책으로 정리하며 하나의 제대로 된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트위터(@Shitmydadsays), 팔로잉 1에 팔로워 3백만 명이 눈에 띈다]

블로그의 글을 모아서 출판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트위터의 글을 정리해서 책을 낸 경우는 별로 못 본 것 같은데, 트위터의 특성상 아무래도 이것 자체는 욕설이 가미된 일종의 격언에 가까웠던 듯하다. 반면 책은 그리 길지 않은 17편의 에세이 모음인데, 그 차례를 보면 이렇다.


각 제목들이 참 재밌지 않은가? [병신 같지만 멋지게]의 추천 코멘트에서도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자주 '딴지일보'와 '나는꼼수다'의 김어준이 떠올랐다. 저스틴 핼펀의 아버지가 한국에 산다면 꼭 김어준 같을 것 같다. [Shit My Dad Says] 주인공의 말투를 한국말로 바꿨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 말투가 김어준일 듯하고, 책 속의 사건들이 김어준에게 그대로 일어난다면 아마 그도 비슷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나꼼수'보다 '나는꼽사리다'를 더 즐겨 듣는 편이긴 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나꼼수에서 들을 수 있는 김어준의 말투와 억양을 그대로 대입해서 상상해 보았다]

지금까지 [병신 같지만 멋지게]와 관련해서 이것저것 소개했지만, 일단 이 책은 웃기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활자도 큼지막하고 여백과 그림이 많다. 책 무게도 가볍고, 내용 자체도 그리 무겁지 않다. 어느 때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데,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웃게 되니 기분전환에는 아주 그만이다. 다시 한 번 무척 개인적인 말을 하자면, 이 책은 화장실에서 볼일 볼때 읽는 걸 추천한다. '똥'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도 하지만, 각 챕터가 한 번 화장실 갈 때마다 보기에 딱인 분량이고 키득키득 막 웃다 보면 원래 화장실에 들어온 목적도 좀 더 쉽게 달성된다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Shit My Dad Says]를 화장실에서 읽으면 한 마디로, 정신적인 카타르시스와 육체적인 배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저 가볍기만 한 건 아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 책은 일종의 충고이고, 비록 겉보기에는 막말이고 독설이지만 그 메타포를 놓치지 않는다면 상당한 의미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주인공 부자의 이야기를 보고 이 아버지의 말투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마치 김어준의 말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꼰대들처럼.. 하지만 누구 말대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주목해야지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봐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어떤 토론을 할 때 주로 태도를 문제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말투와 태도보다는 그 얘기의 내용과 의도, 진정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욕 자체가 기분 나쁠 수도 있고, 막말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이기에 누구도 이걸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김어준이 '나는꼼수다'에서 욕을 섞어가며 하는 말들이 그저 기분 나빠하고 말 일은 아니듯이, 이 아버지의 막말들도 그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거부감을 느끼기만 하고 말 일은 아닌 것 같다. 좀 다른 얘기일 수도 있고 너무 극단적인 예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공공장소에서 누군가 어떤 막말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무조건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인지도 가끔은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단지 '저질스럽게 왜 저래'가 아닌, 도대체 왜 저러는지, 어떻게 저런 막말까지 나오게 됐는지를 (무턱대고 일방적으로 비난부터 하기 전에) 전체 맥락이나 당사자의 입장을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보는 게 항상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실수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 아닐까?

병신 같지만 멋지게(Shit My Dad Says) - 10점
저스틴 핼펀(Justin Halpern) 지음, 호란 옮김, 이크종(임익종) 그림/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이렇게 저스틴 핼펀(Justin Halpern)이 짓고, 호란이 옮겼으며, 이크종(임익종)이 그린 [병신 같지만 멋지게(Shit My Dad Says)]의 추천 포스팅을 해봤다. 유머는 원래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다. 대부분, 설명이 필요한 유머라면 그건 이미 좋은 유머라고 하기 힘들다. 재즈팬으로서 루이 암스트롱(Louis Daniel Armstrong, 1901~1971)의 유머감각도 좋아하는데, 그게 무슨 설명이 있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저 느끼는 것이고, 이 책도 그냥 읽어보면 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막말 속에 담긴 진실, 유머 안에 깃든 진정성을.. 좌우지간, 이 포스트는 김어준의 추천 코멘트로 마무리하겠다.

이 책이 증명하는 건 하나다. 야로 없는 삶의 애티튜드가 가지는 압도적 쾌감.
흔히 천박하거나 무례하다 오인받는 이 태도는, 인생에 대한 통찰과 묵직한 지성은 물론이거니와 오로지 스스로 품위 있는 자만이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통쾌한 경지다. 브라보!
- 김어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