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명성에 대한 단상,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를 통해서..

 

사람들은 어떤 예술에 관해 말할 때, 흔히 해당 분야의 대표적인 예술가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 예술가가 어떤 작품을 남겼으며 그것이 갖는 의의는 무엇인지를 말하는 게 일반적이고, 나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예술세계를 접한다. 명성이 있는 예술가에 대해 아는 것이 곧 그 예술 분야에 대해서 아는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맞는 말이다. 통상적으로, 유명한 서양음악 작곡가들을 알면 소위 말하는 클래식을 아는 것이고, 유명한 화가를 알면 미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전체 역사를 보면 예술가의 명성이 그렇게 폭넓게 받아들여진 건 불과 몇 백 년 사이의 일인 듯하다. 그 이전에는 (그리스 시대와 같은) 몇몇 특수한 지점을 제외하면, 예술가의 명성이란 것 자체가 거의 없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예술가의 명성'은 단순히 다른 기술자들처럼 장인으로서 인정받는 걸 뛰어넘어, 현대적인 의미에서 '예술가'로서의 사회적인 지위와 역사적인 영광을 포함하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보면, 바흐 이전의 음악가들 중에 우리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통칭 '음악의 아버지'라는 바흐라고 해봐야 1685년생이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인간의 5~6천 년 역사에서 고작 350년도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몇 천 년을 지나오면서 여러 유물들이 사라지듯이, 음악가에 대한 기록이 없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건 무리가 있다. 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의 인물들에 대한 수많은 기록은 여전히 남아있고, 지금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예술가들에 대한 기록은 그다지 새로 발견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곰브리치가 그의 저서 '서양미술사'에서 말했듯이, 예전 사람들은 예술가들의 이름을 후세에까지 알려지도록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명성에 대해 얘기하려면, 부분적으로, 그들의 사회적인 계급에 대해서도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혹시, 명성이 있는 음악가들 중에서 부와 권력을 가진 왕족이나 귀족이었던 사람을 아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바흐만 해도 교회와 귀족의 신하로 평생을 살았고,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위대한 서양 음악가들은 중간 계급이었다.

 

그러면 우리 나라의 음악가들은 어땠을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음악가들은 악생 아니면 악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들의 사회적 계급은 천민이었다. 천민 중에서도 나라에 큰 공을 세우면 양민이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악생 또는 악공은 그 어떤 공을 세워도 죽을 때까지 양민이 될 수 없는 부류에 속하는 천민이었다. 그러니 이것만 봐도 예술가에게는 명성이란 것 자체가 있기 힘들었고, 예술가들 자신도 명성을 얻는 일에 관심을 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앞에서 말한 '예술가의 명성'이 제대로 나타나기 시작한 건 언제쯤일까? 우리는 이집트의 피라미드 벽화를 그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고, 밀로의 비너스(밀로스섬에서 발견된 비너스상)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 수많은 신전과 성당의 조각 작품들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며, 고려청자를 빚은 예술가의 이름을 알 수 없다. 고대는 물론이고 중세 봉건시대까지도 작품을 만든 예술가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인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르네상스 시대까지 오게 되는데, 어딜 가나 이름을 들을 수 있는 르네상스의 거장들, 이를테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 같은 예술가들은 확실히 우리가 지금 말하는 '예술가의 명성'을 얻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에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그들을 통해 미술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름을 이용해서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나누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위에서 예로 든 바흐나 그 이후의 음악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로 예술사라는 게 바로 위대한 예술가들의 역사가 된 것이다.

 

 

르네상스는 이처럼 중요한 변화의 시기인데, '그림 읽어주는 수녀'로 유명한 웬디 베케트(Wendy Beckett, 1930~ )의 책 [유럽 미술 산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전체 르네상스는 조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조토는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1337)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잘 아는 [신곡(La Divina Commedia)-실제로 신곡에도 조토에 대한 언급이 있다]의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의 친구이자 그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태동시킨 인물로 손꼽히는 미술가이다. 여기서부터는 '예술가의 명성'과 관련해, 조토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

 

조토와 그의 작품 자체에 대해 미학적인 측면에서 포스팅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했고, 검색만 해보면 금방 다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니 굳이 이곳에서 반복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한다. 다만 조토의 탁월함과 차별성을 알기 위해, 비슷한 시기의 다른 작품과 조토의 그림을 비교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왼쪽이 비슷한 시기 유럽의 삽화이고, 오른쪽이 조토가 그린 템페라(아교나 달걀노른자로 안료를 녹여 만든 불투명한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단순하고 평면적인 다른 그림에 비해, 조토의 그림은 훨씬 실감나고 부드러운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전의 중세 그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실제감을 느낄 수 있는 조토의 사실적 기법은 당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그의 이름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조토에 대해서 곰브리치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조토의 명성은 대단했으므로 피렌체 자치주에서는 그를 지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서로 이 유명한 대가에게 그 도시 대성당들의 종탑 설계를 위촉하려고 애를 썼다. 건물을 아름답게 만들고 영원히 남을 훌륭한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미술가를 확보하고자 경쟁을 벌였던 이들 도시가 가졌던 자부심은, 거장들로 하여금 서로 남보다 뛰어나고자 노력하게끔 자극을 주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에서는 미술가들이 원근법의 법칙을 연구하기 위해 수학으로 관심을 돌리고, 인체구조를 탐구하기 위해 해부학에 관심을 갖는 위대한 발견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발견들을 통해서 미술가들의 시야는 넓어졌다... 그들은 자연의 신비를 탐색하지 않고서는, 또 우주에 감추어진 법칙을 밝히지 않고서는 명성과 영광을 누릴 수 없는 독립적인 거장들이었다. 이러한 야심을 가지고 앞서가는 예술가들이 그들의 사회적인 지위에 불만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은 또한 미술가들을 분발시킨 또 하나의 도전이자 자극이었다. 그들은 번창하는 공방의 존경받는 우두머리로서만이 아니라 독특하고 귀중한 재능을 가진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위대한 업적을 성취하는 방향으로 그들 자신을 독려했다... 미술가들이 이러한 편견을 타파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역시 이들 후원자들이 갖고 있는 명성에 대한 집착이었다. 이탈리아에는 명예와 특권을 얻고자 안달이 난 군소 궁정들이 많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거장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많은 도시들이 경쟁했으므로 거장들은 그들 나름대로 조건을 제시할 수 있었다."

 

서양미술사 - 10점
E.H.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외 옮김/예경

 

쉽게 말해, 르네상스 시대의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던 큰 원동력 중에 하나가 이탈리아의 특수한 정치 문화적 상황이었는데, 그것이 곧 예술가의 지위 향상과 명성, 자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최초의 인물이 조토였다는 것이다. 조토로 인해서 이탈리아의 군소 궁정들이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그런 경쟁과 자부심은 다시 예술가들에게 자극을 주어 더 많은 걸작을 만들어내게 했으며, 이것이 또 예술가들의 명성을 드높였던 것이다. 결국 웬디 수녀의 말처럼, 이탈리아 피렌체는 사치스럽게 느껴질 만큼 예술적으로 풍부했고, 예술의 도시로 명성을 얻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중세와 근세를 이어주는 이 시기에 이탈리아는 유럽문명사를 다시 쓰고 있었고, 비단 예술 뿐만 아니라 전 분야의 문예부흥이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조토는 그 존재 자체가 상당히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영광은 이들보다 200년 앞서 조토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조토와 그의 친구 단테의 유산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본격적으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곧 다른 유럽지역으로 전해졌고, 그것은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중세의 종말을 가져왔다. 조토와 같은 위대한 미술가들의 역사가 곧 미술사가 됐듯이, 시민혁명 시대의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의 역사는 곧 음악사가 되었다. 조토로부터 시작된 예술가의 명성은 그들에게 정당한 위상을 가져다 주었으며, 비로소 인간 중심의 역사를 열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상으로 좀 거창하게, 예술가의 명성에 대한 짧은 생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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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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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술보노 2015.06.06 1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대학 때 수업교재로 사용하던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여기서 발견하니 괜히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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