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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α

[인터뷰] 한국인 최초 난민구조선 선장 김연식

YOLO 그 이상의 삶.


2015년 10월 중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peace)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Rainbow Warrior) 호’가 부산에 입항한다. 요즘도 한창 ‘뜨거운 감자’인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을 막고 원전사고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린피스와 관련된 글을 쓴 적이 있었던 나는 운 좋게도 레인보우 워리어 호의 국내 항해(부산을 출발해서 꼬박 3박4일 동안 남해와 서해 연안을 항해한 후 인천에 도착)에 함께하게 됐고, ‘환경감시선 최초 한국인 정식 선원’이 되기 직전이었던 김연식 항해사와 이때 처음 만났다.



그린피스에는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총 3대의 환경감시선이 있다(‘대형 돛단배’ 레인보우 워리어, ‘가장 크고 빠른’ 에스페란자, '쇄빙선' 악틱 선라이즈). 그때 김연식은 에스페란자 호의 항해사로 첫발을 내딛기 직전, 한국을 방문한 레인보우 워리어 호에 잠깐 탑승한 상태였다. 이 배가 인천에 도착하면 그는 곧바로 그린피스 인터내셔널 사무실이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떠날 예정이었고, 서른 셋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던 그는 고민도 참 많아 보였다.

그리고 2017년 7월 말, 3대의 환경감시선을 그동안 모두 섭렵하고 휴가를 맞아 잠시 귀국한 김연식을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다시 만났다. 그의 목소리를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들려주기 위해, 별다른 편집 없이 인터뷰 내용을 여기다 고스란히 옮겨본다.

“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한다”

지금은 그린피스의 항해사이자 난민구조단체 시와치(Sea-Watch)의 선장으로도 활동하는 그이지만, 20대 중반의 김연식은 한 지방신문의 기자로서 3년간 일하고 있었다. 그랬던 사람이 어느 순간 기자를 그만두고 백수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부산 영도에 있는 ‘한국 해양수산연수원’에 들어가 해기사 양성과정을 마쳤고, 이어서 12개월의 상선 실습에 나선다.

Q.
기자가 되고 싶어서 일단 됐는데, 그게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는 걸 느꼈잖아요? 젊은 사람들은 그런 좌절을 겪는 경우가 많을 거 같은데,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좀 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 애쓰죠. 고시공부를 한다든가, 대기업 시험을 준비한다든가, 영어공부를 하는 등 일반적인 길을 많이 선택하잖아요. 그런데 완전히 다른 길을 찾아갔어요. 본인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A.
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 걸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한번의 실패를 한 거는 기자가 되어서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사회적으로 주입 받은 것에 따라서 선택해서 그랬던 거예요. 세상에서 괜찮은 직업인 선생님, 기자, 공무원 중에서 하나를 고른 것일 뿐이고… 진짜 이상한 게, 고등학생은 서울대 가는 게 꿈이고 중학생은 특목고 가는 게 꿈이에요. 이건 꿈이 아니라 욕망일 뿐이잖아요. 제가 기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욕망일 뿐이었죠. ‘어떤 기사가 좋은 기사고, 우리 사회는 이런 문제가 있어. 나는 특정 분야의 기사를 쓰고 싶어’ 이런 자기만의 안목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단지 기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일 뿐이었던 거죠. 어떻게 집을 사는 게 꿈일 수 있고, 차를 사는 게 꿈일 수가 있어요?

사회적으로 주입 받은 거죠. ‘너 몇 등급이야, 너 어느 대학 나왔어, 너 얼마나 똑똑해?’ 공무원 시험 볼 때 급수 지원하는 거, 어떤 사람은 5급, 어떤 사람은 7급, 어떤 사람은 9급, 자기가 이미 딱지를 받은 거예요. 자기 스스로 자신을 낮춰서 9급, 내가 공부 좀 했으니 7급, 자만심이 있는 사람은 5급. 그런 걸 갖고 있는 사람은 사회가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맞출 수 밖에 없는 거죠. 이렇게 해서 수십만 명이 몇 년을 노력해도 진짜 극소수만 합격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계속 다 좌절을 하잖아요. 원래 처음부터 극소수만 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잖아요. 맨날 거기 덤비는 사람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요?

예를 들어 영화감독이라면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어야 하는데, 그저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예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감독이 되어야지, 감독이 되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사람인 거죠. 저도 기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건데, 막상 되니까 기본적으로 적성도 안 맞고 내가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가는 모른 채 쓸데없는 거에만 신경 쓰다 보니까 실패한 거예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연식은 이후 4년이라는 시간을 더 부정기 화물선 선원으로 보낸다. 총 36개국 48개 항구를 다녔고, 이때의 기록은 <스물 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2015, 예담)라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그리고 서른 셋이 된 그는 또 한 번의 도전을 감행하고, 그게 바로 한국인 최초로 환경감시선의 선원이 되는 것이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김연식은 운 좋게도 그린피스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는 데 성공하고,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끝까지 망설일 '절반 이하의 연봉'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린피스는 '3개월 근무-3개월 휴식' 원칙을 갖고 있는데, 그는 서른 다섯이 된 올해에는 환경감시선 근무를 몇 개월 쉬는 사이에 시와치의 난민구조선 선장으로 활동했다(2017년 4월~6월).


[출처: Sea-Watch]


Q.
사실, 이상과 현실은 다르잖아요. 하다 보면 자기 일에 의심이 생기기도 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죠. 힘든 상선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A.
저는 선장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여행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생각했어요. 배에서 감자를 깎아도 좋고, 접시를 닦아도 좋았어요. 그런 마음으로 선원이 됐고, 3D 업종이지만 단순히 배를 타고 싶다는 게 아니라 여행을 하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5년 동안 그만두지 않을 수 있었죠.

그런데, 배에서 한국인이 할 수 있는 게 주로 항해사와 기관사 쪽이에요. 일반 선원은 국제적으로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많이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선원을 양성하는 시스템도 거의 없어요. 옛날에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서 일반 선원을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일반 선원보다는 기관사나 항해사가 되죠.

[김연식은 2010년 한국 해양수산연수원의 해기사 단기양성과정을 통해 항해사가 될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런 교육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잘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국가 지원 과정이라고 한다]

Q.
어떻게 보면, 일종의 한국에서 태어난 특권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A.
엄청난 특권이죠.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르쳐주고… 그리고 항해사가 된 다음에는 돈을 벌면서도 그 안에서의 생활이 저랑 맞았어요. 생활 자체가 다행히 잘 맞아서 저는 거의 논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5년 만에 그만둔 이유는, 제가 타던 큰 배로 방문할 수 있는 항구는 이제 다 갔다 온 거예요. 대형 상선은 갈 수 있는 데가 한정되어 있어요. 거의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 있으면 반복될 것 같고 그래서 5년인 거죠.

결국 자기한테 맞는 일이 중요한 거고, 직접 해보지 않고는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없는 거예요. 일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즐거울 수만은 없어요.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죠. 저는 5년간 상선을 타면서 그냥 잘 맞아서 탄 것도 있지만, 이걸 통해서 경제적 기반을 쌓을 수 있다. 밑져야 본전인 게 뭐냐면 최소한 돈은 벌 수 있다, 버텨보자는 생각도 있었어요.

“열정만으로는 마라톤을 뛸 수가 없다”

그는 소위 말하는 흙수저 출신이다. 김연식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소작농으로 살아왔고, 그의 말로는 “IMF도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어차피 IMF 전후가 똑같았기 때문이다. 자기 친구들 중 상당수는 비닐하우스에서 살았다고 하며, 그는 집이 못 살아서 오히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고도 말한다.

Q.
경제적 기반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A.
경제적으로 위기에 빠지면, 지속 가능하게 뭘 꾸준히 할 수가 없어요.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야 열정 있는 사람이 그 열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열정만으로는 마라톤을 뛸 수가 없어요. 마라톤을 뛰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원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배를 5년을 타고 나니까 경제적 기반이 생겼어요. 그래서 반복된 여행을 하는 것보다, 경제적 기반이 생겼으니까 꿈을 추구하는 거죠. 제가 그린피스에 올 수 있었던 이유도 이거예요. 돈만 버는 시간의 반복보다,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거잖아요. 더 이상 돈 버는 거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다른 일을 할 수가 있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그런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오래 갈 수 있지,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린피스는 지속 가능하게 활동가들의 열정을 지킬 수 있는 단체예요. 그런 면에서 선진적이고, 활동가들의 희생을 바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경제적인 문제를 해쳐나갈 수 있는 지점까지는 해결해줘요. 그렇게 시간이 지났을 때 지속성이 훨씬 더 강하고 그게 그린피스의 힘이죠.



한국에서는 종종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노동단체 활동가들이 정작 최저임금도 못 받고 밤낮으로 일한다.” 얼마 전에 2018년도 최저임금이 예년에 비해 꽤 많이 올랐을 때에도 각 시민단체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활동가들의 임금 확보 문제로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국의 시민단체들도 이토록 후진적이고 ‘열정페이’에 의존하는 시스템에서 이제는 좀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출처: Greenpeace]

[출처: Greenpeace]


Q.
기자가 되고 싶어서 실제로 기자가 됐지만, 그건 진정한 꿈이 아니라 욕망이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항해사가 됐고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만족하고 계신데, 기자가 되어서 실패한 것과 선원이 되어서 만족하는 것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가 뭘까요?

A.
기자가 돼서 어떤 기사를 쓰겠다는 목표가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어서 실패한 거예요. 선원이 된 건 이제 여행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고, 그런 목표가 있는 사람은 다른 걸 해도 그걸 이룰 수 있어요. 그래서 난 꼭 이게 아니어도 되는 거죠. 기자들 중에는 기자를 못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사라져야 되는 거죠. 결국은 뭐가 돼도 직함에 매달리고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 자리가 주는 달콤한 유혹, 많은 돈 그런 거에 중독되는 거죠.

광화문의 많은 직장인들이 자기 회사 목걸이를 퇴근하고도 차고 다니더라고요. 자기가 어디 다닌다는 걸 다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소속감은 자기 스스로 가지면 되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그걸 보여주려는 게 크거든요. 그건 자기 정신이 거기에 분산되어 있는 거죠. 물론 그렇게 보여주고 싶은 걸 꼭 나쁘다고 할 순 없겠죠. 그런데 공무원이 참 웃긴 게 뭐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뭘 할지 몰라요. 그냥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거잖아요. 공무원이 되는 건데 선한 의지가 있냐고 물어보면, 국민을 위해서 서비스 할 마음은 하나도 없고 그저 자기 직업적 안정. 그게 탐관오리랑 뭐가 달라요?

자본이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사람을 컨트롤 하는 거죠. 선생님이 되는 사람도 안정된 직장을 위해서 선생이 되고, 이런 무한 악순환의 반복인 거예요. 사회 기초부터.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이런 불안감은 자본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또 국가의 공백, 내가 나중에 아팠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 ‘결국 돈을 모아야 되겠구나’ 이렇게 되는 거죠.

“대단히 만족스럽고, 대단히 외로워”

김연식은 환경감시선 항해사로 시작해, 얼마 전에는 한국인 최초 난민구조선의 선장이 됐다. 보통 사람과는 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였지만, 마냥 그렇게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한국사람이었고, 항해가 없을 때는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Q.
일반적인 한국인의 생활과는 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이라든가 만족감은 어때요?

A.
대단히 만족스럽고, 대단히 외로워요. 일단 나 혼자니까 거기서 이런 일을 하다가 우리나라에 오면 너무 달라요. 내가 사는 곳은 이런데 딴 데서 엉뚱한 짓 하고 있나?

한국은 세계적인 이슈에서 봤을 때, 일본이랑 닮았어요. 일본 사람들은 세계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별로 생각을 안 해요. 자기들끼리 잘 하는 거, 남한테 별로 관심이 없어요. 저는 일하면서 일본 사람들을 별로 본 적이 없어요.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역할이 작아요. 그냥 자기 혼자 공부 잘하는 애야. 옆에서 누가 무슨 일 있어도 그냥 자기 혼자 잘하는 애죠.

우리나라 사람들도 비슷해요. 단일민족 의식, 난민에 배타적이고... 그래도 일본은 돈이라도 많지, 한국은 뭘까? 우리나라 돈이 해외에서 얼마나 푸대접을 받는데. 달러를 가지고 가야지 원화를 직접 현지 돈으로 바꾸면 가치가 많이 떨어져요.


[출처: Sea-Watch]

[출처: Sea-Watch]


Q.
본인이 외롭다고 그랬잖아요. 물론 한국에서 집단이나 다수가 하는 일과는 좀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은 다 외롭겠지만, 해외에 나갔다가 한국에 들어오면 세상 자체가 달라지고 공기가 달라지는 그런 느낌 많이 들죠? 그럴 때마다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뭐예요?

A.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하는 생각. 내가 하는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이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마을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저 멀리 북극에 가서 북극곰 지킨다고 하고... 내가 허망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로컬이 있고 글로벌이 있는데, 그런 양극단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죠.

Q.
근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나는 그냥 한국에 살고 있을 뿐이지, 지구인이고 코스모폴리탄이다. 세계시민으로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잖아요.

A.
그렇죠. 제 상황이 그건데, 우리 동네에서 아무것도 못하면서 지구의 어디를 가고 구체적으로 뭘 하고… 이건 너무 추상적인 말이죠. 내가 어디에 있든지 거기서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외국에 있을 때와 한국에 있을 때 사이의 괴리감. 여기서는 그냥 ‘무직자’일 뿐이니까, 제가 뭔가를 찾아야 되는 상황인 거죠. 이 시간을 어떻게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까? 사실 한국에 있지 않고 어디 다른 나라에 있을 수도 있는데, 저는 한국이 좋고…



평범한 한국인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이지만, 옆에서 직접 지켜본 김연식은 한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처럼 비슷한 고민도 많이 하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집을 사는 게 별로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남들처럼 집을 사려 하고, 결혼 역시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애 낳은 문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계속 생각한다.

결국, 이 세상 누구나 인간이라는 존재로서의 근원적 모순은 동일하게 갖고 있다. 지구상 그 어디에서 환경감시를 하든 또 난민구조를 하든, 어쩔 수 없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김연식은 여전히 갖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의 개인적 성격 측면에서도, 흔히 우리가 예상하는 ‘어딜 가서든 그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무슨 얘기든지 남들과 잘 대화하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다. 사실 이런 건 핵심도 아니고 필수적인 요건도 아니건만, 우리는 언젠가부터 남다른 활동을 하는 이들을 정형화된 선입견의 틀 속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김연식을 실제로 만나보면, 뭔가 특별하다거나 낯선 느낌보다는 같은 동네사람처럼 친근하고 그냥 우리처럼 똑같은 한국인이다.



“YOLO, 지속 가능하지 않아”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말은 ‘헬조선’이었지만,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뭘 하든 ‘YOLO(You Only Live Once)'를 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부분 “한 번뿐인 인생, 현재를 즐겨라”는 퍽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지만, 해외에서는 주로 “인생 한 방,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 정도의 약간 부정적 뉘앙스를 갖고 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언제나 “욜로!”를 외친다.

Q.
경제적 기반에 대한 관점이나 한국에 와서 평소에 하는 생각을 들어보면, 소위 말하는 ‘보수적인 시각’도 일정 부분 가지고 계셔요. 한국인 최초의 환경감시선 항해사나 난민구조선 선장 활동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에는 무조건 “돈 같은 건 상관 없다. 꿈과 용기가 제일 중요하다”라는 식으로 말할 듯한데, 별로 그렇지 않으시네요?

A.
그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고. 예를 들어 히말라야 원정을 하기 위해서는 훈련도 정말 열심히 매일 꾸준히 해야 하고, 경제적인 것 역시 뒷받침이 되어야 하고, 날씨에 대해서도 상당히 보수적으로 안전을 고려해야 해요.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오늘 무리한 상황이 있으면 자제시키고… 선장이나 대장 이런 사람들은 보수적일 수 있어요. 큰 관점에서 도전 전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작은 부분은 보수적인 거죠. 도전과 보수적인 건 다르다고 할 수 없어요. 목적 앞에서는 양쪽을 다 취할 수 있는 거죠. 왜냐 하면, 오늘 선원들이 쉬어야 내일 천 명을 구할 수 있으니까. 당장 쉬지 못하면 그들을 못 구할 수도 있고, 우리가 사고가 날 수도 있어요. 그런 거에 대해서 보수적이고 냉정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있죠.

그저 이분법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거예요. 도전을 하면서도 지속가능성을 생각하고, 개인적인 삶에서도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하고. 지속성 있는, 한결 같은, 꾸준한 활동을 위해서는 필요하죠. 한 번 뛰고 말 게 아니라, 마라톤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러니까 달리는 사람이 여럿 있는데, ‘욜로’는 단거리 선수인 거고. 무조건 마라톤이 위대하다는 건 아니에요. 근데 비유를 하자면 그렇죠. 꾸준히 평생 러너로 있으려면, 한두 번 하고 말 게 아니기 때문에. 저는 이런 일을 오래할 자신이 있는데, 욜로는 너무 지속 가능하지 않아요.

Q.
그렇게 된 이유도 너무 미래가 암울하니까 그런 반작용이 있는 것 아닐까요?

A.
전 세계적인 현상이죠 사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그건 하나의 트렌드라고 해야 되나, 거기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 얘기할 순 없고. 그런데 이게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그냥 잠깐 반짝이는 하나의 패션으로 끝나는 거겠죠. 욜로를 통해서 개인적인 만족을 얻는 건 할 수 있어요. 근데, 욜로를 통해서 사회적인 뭔가를 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지속가능성을 바탕으로 긴 시간 꾸준히 사회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으려면, 그렇게는 안 되죠. 그리고 욜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저 즐기자, 자유!



Q.
도대체 자유란 게 뭘까요? 아무튼 남들이 보기에 자유롭게 살고 계신데, 본인이 자유롭게 산다는 걸 언제 가장 실감해요?

A.
글쎄요…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뭔가 하고 싶은 욕망이 없을 때? 진정으로 자유를 느낄 때는 오히려 그런 욕망이 ‘객관화’가 되거든요. 여행으로 치면, 내가 진짜 발리를 가고 싶어? 내가 진짜 유럽을 가고 싶어? 내가 자유롭다면 언제든지 갈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만약 내 휴가가 한 주밖에 없다면 한정이 되고, 약간 오바와 과장이 생겨요. 일 년에 일 주일의 시간을 내서 유럽을 간다고 그러면, 사실 여행이란 건 현실이고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뭔가 판타스틱한 나라가 따로 있는 건 아니거든요. 이걸 사람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 내가 한정된 시간에 많은 자금을 투입해서 갔으니까 스스로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애쓰는 거죠. 자기가 의미 부여를 해서 뭔가 특별한 걸 찾고, 자기가 특별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그걸 특별하게 기록하고, 사진을 찍고… 어떻게 보면 인위적인 생산과정이죠. 그게 착각일수도 있고 허상일수도 있는데, 내 자유와 욕망에 관해서 의미 부여를 하다 보면 그게 과장이고 오바가 되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양념되지 않은 걸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억지로 뭘 인위적으로 하지 않죠.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는 여행의 90%는 그저 여행사가 짜놓은 각본에 따라가는 것일 뿐이에요. 진짜 여행이라는 건 자기가 마음이 열려 있고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면서 어디든 갈 수 있어야 되는데, 한국인들이 가는 데는 뻔하잖아요. 그걸 지구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극히 일부분일 뿐인데, 제 생각에는 우리나라 여행자의 절반 이상이 다 그런 곳만 갈 거예요. 그건 결국은 누가 짜놓은 길을 그냥 쫓아가는 거지, 진짜 자기가 눈을 열고 세상을 자유롭게 걷는 게 아니잖아요.

Q.
그런데 요즘 욜로족을 보면, 어떻게든 스케줄을 맞춰서 그렇게 쫓기듯이 여행을 하다 보니까 오히려 더 의미 부여를 하게 되잖아요.

A.
물론 여행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이 있을 거고, 저의 시각은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여행은 어딜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주제와 소재가 있으면 주제가 중요한데, 소재에 함몰돼서 어딜 가서 뭘 봤다가 중심이 되면 이건 정말 지루한 여행이에요. 에펠탑을 보고 사진을 찍어서 자기 인스타그램에 올리는데, 그런 장면을 보고 가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사진밖에 남길 게 없는 여행은 정말 슬프고 그런 여행이라면 차라리 안 가는 게 낫죠.


[출처: Greenpeace]


Q.
말씀하신 것처럼 자유와 여행에 대해서는 관점이 다양할 수 있을 듯한데, 보통사람들이 보기에 김연식의 삶은 큰 도전과 변화도 있었고 뭔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일반적인 특성도 되게 많이 가지고 있잖아요? 주변사람들은 본인을 어떻게 봐요?

A.
좀 특별하게 보긴 하는 것 같아요. 일단 삶의 패턴이 다르니까. 근데, 저는 똑같아요. 남들이 갖고 있는 콤플렉스도 비슷하게 있고, 보이는 거나 학벌에 신경 쓴다거나…

Q.
남들이 김연식을 바라보는 시선 같은 건 어떻게 받아들여요?

A.
직업적인 정체성으로 인한 특별한 시선은 때론 즐기기도 해요. 그게 아니면 버틸 수가 없죠. 왜냐 하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해외에서 활동하다가 한국 오면 너무 허망한데. ‘이 일이 무슨 의미가 있지?’라고 했을 때 너무 다르기 때문에.

Q.
그게 어떻게 보면 좀 사소할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심리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는 거네요?

A.
맞아요. 제가 제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누군가가 좋게 평가를 해주면, 내가 3개월 동안 한국음식도 못 먹고 24시간 배에 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봐주면 좋구나 하고 자신감을 얻는 것도 있고. 그게 아니면 심리적으로 버티기가 힘들죠. 이게 뭐 숫자적으로 플러스 마이너스 이런 게 없는 거니까. 의미를 찾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일이거든요 기본적으로. 이번에 ‘스토리펀딩’ 같은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해주면, ‘아, 이게 되는구나!’ 위안을 얻고. 힘이 되고.

[김연식은 얼마 전에 카카오 스토리펀딩을 통해 “지중해를 헤매는 쿠르디의 친구들”이라는 난민구호 관련 캠페인을 진행했다. 여기에는 500건이 넘는 후원이 이어졌고, 천만 원에 가까운 후원금을 달성했다. 펀딩 성공 이후 그는 꼬박 며칠 동안 혼자서 리워드 아이템인 시와치 티셔츠 배송 작업을 했다]

[출처: Sea-Watch]

[출처: Sea-Watch]

“내가 가진 것을 남을 위해 사용하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Q.
김연식의 인생에서 첫 번째 도전이 항해사가 되어 상선을 타게 된 거였고, 상선을 타면 돈도 많이 벌잖아요. 그런데 또 금방 두 번째 도전으로 환경감시선 항해사가 됐어요. 절반 이하의 연봉을 받으면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뭐예요?
 
A.
초조함? 스무 살에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저 스스로 살아왔는데, 그렇게 산 지난 15년이 너무 짧은 거예요. 아, 15년이 이렇게 짧은데 앞으로 15년을 한 번 더 살면 50세인 거잖아요. 할 수 있는 걸 천천히 할 수도 있어요. 근데 당장 초조함이 생기는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50세는 많은 경험을 쌓고 뭔가를 다 이루고 진짜 어른이 되는 거예요. 반대로 육체적으로 원기 왕성하게 정열적으로 뭘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말이기도 하죠. 그래서 지금 당장, 할 수 있을 때 바로바로.

그린피스 같은 경우도 상선을 타면서 돈과 시간을 반복하는 것 같아서, 그렇다면 이걸 빨리 그만두자. 왜냐 하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그린피스 일이 바로 내 앞에 있기 때문에, 시간이 없으니까 더 재미있는 걸 당장 하자. 예전에 신문사에 있을 때 제가 존경하는 선배가 있었는데, 55세에 돌아가셨어요. 50대 중반에 돌아가시는 분들을 너무 많이 봤어. 인생이 결국 뭐 10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언제든지 죽을 수도 있고…

Q.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바가 아니잖아요. 다 알지만 연봉이 계속 올라가면서, 더 많은 돈을 벌면서 그냥 계속 그렇게 살아가잖아요. 이렇게 사는데, 이 지점에서 남들처럼 살지 않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세요?

A.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 TED 강연을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어느 순간 공허함을 느낀다. 전 지구적인 마음의 병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성공을 위해 살아가요. 그래서 성공한 사람은 많은데, 의미 있는 삶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허망함을 느끼는 거예요.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지금 네 손에 뭐가 있는지를 봐라. 지식, 배경, 인맥, 젊음, 시간, 돈, 능력, 기술, 몸… 이걸 널 위해서만 쓰면 성공할 수 있다. 근데, 이것을 남을 위해 사용하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거기서 얘기하는 게 이거예요.

제가 가진 것 중에 항해사 면허증이 있는데, 이걸 남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한 거죠. 돈이 아니라 의미 있는 항해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었어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있었고, 국경 없는 이사회도 배가 있었는데, 그린피스가 저와 제일 잘 맞았던 거죠. 제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린피스와 매칭이 잘 돼서. 방법은 많은 것 같아요. 자기 손에 뭐가 있는지 보면,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자기가 돈이 있으면 기부를 하고, 시간이 있으면 봉사활동을 하면 되고. 더 창의적으로 할 수도 있겠죠. 그건 각자에게 달린 일이고.

Q.
그럼 앞으로 15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 같아요?

A.
제가 3개월마다 맞는 휴가 3개월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내느냐가 과제죠. 참 신기한데, 계속 생각지도 못한 게 떠오르는 게 뭐냐면, 상선을 탈 때는 제가 그린피스에서 일할 줄 몰랐어요. 점점 확장성이 생기는 거예요. 한번 확장을 하니까, 확장성이 계속 열리는 거 같아요. 배를 타니까 그린피스를 갈 수 있었고, 그린피스에 가니까 난민구조를 하는 시와치에 대해서 알게 되고, 거기에 직접 닿을 수 있는 계기가 생기고. 그린피스만 할 때에는 제가 난민구조를 하게 될 줄 생각도 못했죠. 항상 상상하지도 못한 기회가 점점 더 확장이 되는 것 같아요. 이번 스토리펀딩도 그렇고요. 더 재미있어지고 있어요.

Q.
그린피스에서 시와치로 가게 된 과정도 좀 얘기해 주세요.

A.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에 독일 출신 동료가 있었는데, 시와치가 독일에서 만들어진 단체예요. 이것도 제가 말한 내가 손에 가진 걸로 할 수 있는 걸 찾은 건데, 제가 그때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 동안 그린피스 휴가였어요. 그러니까 시간이 있고, 제가 스토리펀딩에 썼듯이 “세상에 배를 몰 수 있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삯 없이 배를 몰 사람은 드물다.” 그게 핵심인 것 같아요. 배를 몰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거기서 (무보수로) 일할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럴 시간이 있는 사람도 드물고. 제가 시간이 있고 그런 쪽에 기술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게 충족이 되면서 ‘아, 내가 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던 거죠.

시와치 같은 경우 이런 사람들이 다 거기로 모이는 거예요. 1년에 16번 미션을 수행하는데, 선장이 16명 필요한 거고, 항해사도 16명이 필요하죠. 심지어 비행기 삯도 시와치와 제가 분담을 하는데, 거기는 다 유럽사람들이기 때문에 저가항공사는 이탈리아에서 몰타까지 7만 원이면 가고 우리나라 제주도 가는 거랑 비슷하거든요. 독일에서는 30만 원이면 티켓 끊는데, 제가 갑자기 아시아에서 간다고 하니까 100만 원이 넘고. 아마 시와치에서 당황했을 거예요. 이 사람을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 (웃음)

[출처: Greenpeace]

[출처: Sea-Watch]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한국사회는 시험 잘 치는 젊은이를 최고로 여겼다. 모든 사람이 다 칭찬하고, 모든 언론이 다 주목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여기에 더해서, 창업해 돈 잘 버는 젊은이에 대한 집단주의적 성찬이 이어졌다. 말로는 젊은이들의 다양한 도전을 응원한다면서도 시험 잘 치는 사람과 창업해서 돈 잘 버는 사람에 대해서 계속 얘기하고, 마치 이런 극소수 젊은이들의 삶이 ‘정답’인 것처럼 반복적으로 주입하고 있다. 어쩌면 최근의 YOLO 현상은 이런 획일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한 ‘소외’와 교육의 장기적 실패로 인한 ‘사고의 단순화’가 빚은 신드롬인지도 모른다.

Q.
한국에서는 극소수만 성공할 수 있는 일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매달리고 있잖아요. 어쨌든 이런 삶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계신데, 끝으로 한국의 젊은 사람들에게 혹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음… 상상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제까지 우리나라에 항해사가 몇만 명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그린피스를 생각 안 했어요. 그냥 이전에 어른들이 해오던 대로, 배를 얼마 타면 뭐가 되고, 또 몇 년 타면 1등 항해사가 되고, 병역특례 끝날 때 1억 5천을 벌어서 그만 두거나, 선장이 되면 그 다음에 ‘항해사의 꽃’ 도선사가 되고, 뭐 이런 식으로 다 정해져 있는 거예요. 배를 5년 타면 얼마, 10년 타면 얼마, 자기가 사업하고 싶으면 몇 년을 타면 되겠다. 그런 식으로만 생각하지, 배 타는 걸로 이런 활동을 할 생각을 안 해요.

그린피스 말고 다른 국제 NGO도 많은데, 배를 타면 국제적으로 뭘 할 수 있는 기회도 많고.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재밌는 건 제가 그린피스 첫 항해사가 되고 나서, 그린피스 인사담당자가 하는 말이 '한국에 이렇게 해기사가 많은 줄 몰랐다'는 거예요. 제 이야기를 뉴스로 보고 줄줄이 지원한 거죠. 개인적으로는 개척자가 된 것 같아 뿌듯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참 안타까워요. 다른 길도 많이 있는데 따라만 가는 거니까요.

그저 남들이 정해놓은 트랙에서 빨리 뛰려고만 하는데, 그 트랙이 아닌 다른 길이 있다는 생각을 안 해요. 꽃밭이 옆에 있는데, 꽃밭으로 갈 생각은 안 하고 트랙을 빨리 뛸 생각만 하는 거죠. 근데, 상상력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도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어떻게 보면 항해사 면허증이 나에게는 큰 기술 중에 하나구나. 이걸 어떻게 남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거예요.

선한 의지를 갖고 찾다 보면 상상력이 발휘돼서, 전혀 생각지 못한 새로운 길이 보이는 거죠. 시각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든 글 쓰는 사람이든 운전하는 사람이든, 각자의 영역에서 남들이 여태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 아주 조그만 상상력을 발휘해서 자신만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더 나은 일은 다 있어요.



Q.
어떻게 하면 그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뭔가 좀 다른 길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는 방법.

A.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욕망이 아니라 의미 있는 꿈. 그리고 아무리 많은 기회를 봐도 ‘이건 내 것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보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눈을 열고 다양한 걸 많이 봐야죠. 근데 보면서 ‘이건 우리가 갈 길이 아니구나. 한국 항해사가 할 일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한 거죠. 자기 한계를 두는 것도 있고…

예전에 중동 가는 거 가지고 박근혜를 비판 했었잖아요. 전 굳이 비판할 것도 없는 거 같아요. 만약 나라가 젊은이들을 판다고 그러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냥 안 가면 되는 거잖아요. 자기가 선택해서 가는 거지. 나라가 거기 가는 걸 도와주겠다는 거고, 가는 게 괜찮으면 가는 건데. 그걸 왜 그렇게 거부해요? 사람들이 중동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건데, 싫으면 안 가면 되잖아요. 자기 마음이죠. 그걸 팔아먹는다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되게 경직되어 있는 거죠. 안 가면 되는데. 제가 봤을 때는, 갈 사람은 자기가 알아서 어디든 다 가요.


[출처: Greenpeace]


그의 마지막 말 “갈 사람은 자기가 알아서 어디든 다 간다”에 속하는 사람이 바로 김연식이다. 우리가 이 좁은 땅에서 맨날 남들 하는 대로만 하면서 살고 기껏해야 가끔 여행가는 걸로 마음을 달랠 때, 그는 스스로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나도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배를 탈 거냐는 나의 물음에 “당분간은 탈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가서 하겠다”라고 대답한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참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일주일 뒤, 김연식은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Esperanza) 호’가 있는 스페인 빌바오(Bilbao)를 향해 출국했다.

부디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길 바라고, 3개월 뒤에 귀국할 때에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맘껏 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 그가 자신의 책에서 고백했던 바대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여전히 부끄럼이 많고 바보 같은 구석”이 있는 사람일 테지만, 지금 그가 하는 활동은 그 어떤 일보다도 멋진 일이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