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세계 일류 인권 감수성에 대한 단상.

 

지난 1월 말에 '애플(Apple)'은 역사상 그 어떤 기업도 달성하지 못한 최대의 분기 수익(2015년 4/4분기)을 발표했다. 이 회사는 약 석 달 동안 무려 184억 달러(약 22조 5천억 원)의 수익을 기록했는데, 이 중 3분의 2가 아이폰 판매로 얻은 것이다. 10여 년 동안 애플은 아이폰을 총 9억 대 판매했고, 작년 말 90일 동안 전 세계에서 (실제로 소비자가 아이디를 입력하고 사용한) 활성화 상태의 애플기기(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팟 터치, 애플TV, 애플 와치 등)를 모두 합하면 10억 대에 달한다.

 

애플은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Alphabet)'과 기업가치로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으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이익률(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10% 정도인데 반해 애플의 이익률은 30%에 달한다)을 기록하며 자타공인 '일류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 이후 애플을 이끌고 있는 팀 쿡(Tim Cook, 1960~ )은 2011년 8월 취임 이후 애플의 시가총액을 2배로 끌어올렸고, 세계 상장사 역사상 단일기업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애플의 CEO인 팀 쿡은 2014년 10월 30일 동성애자로 커밍아웃 했고, 현재까지 애플의 수장으로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다. 그는 커밍아웃 당시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Bloomberg Businessweek)'에 직접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출처: 비즈니스위크의 팀 쿡 기고글 갈무리(2014/10/31)]

 

"For years, I’ve been open with many people about my sexual orientation. Plenty of colleagues at Apple know I’m gay, and it doesn’t seem to make a difference in the way they treat me. Of course, I’ve had the good fortune to work at a company that loves creativity and innovation and knows it can only flourish when you embrace people’s differences. Not everyone is so lucky.

(오래전부터 전 주변 지인에게 성적 정체성을 밝혀 왔습니다. 회사 동료들은 제가 게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렇다고 저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 건 없습니다. 애플은 혁신과 창의성을 사랑하는 회사이며 각 구성원의 차이를 껴안을 때만 전체가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아는 기업입니다.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모든 이가 저 같은 행운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 원문: 비즈니스위크, 번역문: 뉴스페퍼민트

 

만약 한국에서 어떤 기업의 CEO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그는 자신의 회사 동료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을까? 그렇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 동료들은 그를 어떻게 대할까? 그리고 CEO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팀 쿡의 말대로 애플에서 일하며 커밍아웃을 한 건 행운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팀 쿡은 세계 최고의 기업인 애플의 CEO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 이후 어쩌면 흔들릴 수 있었던 애플의 입장에서도 팀 쿡은 역시 행운이었다.

 

이 글에서 팀 쿡은 '프라이버시(privacy, 사생활)'에 관한 얘기를 계속하는데, 그는 개인의 사생활과 사회의 평등을 인권과 정의의 측면에서 강조한다. 자신은 "게이였던 덕분에 소수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른 소수자 집단이 매일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며,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은 한 개인이 성적 지향성, 인종, 성별만으로 규정되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이지만, 이것만 읽어 봐도 팀 쿡은 인권 감수성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실제로 팀 쿡은 강력한 카리스마의 스티브 잡스와는 달리 포용·개방·협업의 리더십을 중시하고, 탈권위적이며 직원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잘 맺는 걸로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비주류에 가까운 삶을 살아서 그런지 공감 능력도 뛰어나고, 꽤 부드러운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애플은 2014년부터 고용시장에서 차별 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으며, 작년 보고서에는 (아직은 초기여서 백인 남성 편중 현상이 두드러지지만) 고용 차별 문제의 완화를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출처: 애플, 2015년 다양성 보고서 갈무리]

 

미국 법원, 애플은 아이폰 잠금해제를 위한 수사에 협조하라

 

미국 현지시각으로 2월 16일 연방 치안판사 셰리 핌은 지난해 12월 미국 LA동부 샌버나디노에서 발생한 장애인시설 총격 테러범 '사예드 파룩' 관련 수사를 위해, 아이폰5c에 담긴 암호화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애플이 수사당국에 "합리적인 기술 지원"을 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즉, 비밀번호를 여러 번 틀렸을 때 휴대전화 안의 정보를 자동으로 삭제하는 아이폰의 특수기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애플이 연방수사국(FBI)에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두 달 동안 FBI는 용의자의 아이폰(수사당국은 파룩이 사용하던 이 아이폰 안에 그가 범행 전에 누구와 연락하고 어디를 들렀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들어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을 잠금해제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써봤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그래서 로스앤젤레스 연방지방검찰은 사예드 파룩의 아이폰 속 자료에 접근하기 위해서 애플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법원에 요청했고, 이날 미국 법원이 애플에 일종의 '백도어(뒷문)' 제공을 명령한 것이다.

 

사실 수사당국과 IT업체들이 '고객정보 제공' 문제와 관련해 충돌(암호화 해제 논쟁)하는 건 요즘 전 세계에서 계속 반복되는 일이다. 21세기는 지구촌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서로 연결되는 '초연결사회(Hyper Connection Society)'이고,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계속 들고 다니면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다른이들과 소통한다. 통신기술의 발달로 전세계 곳곳에 있는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온갖 정보를 주고받고 공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사적인 얘기도 데이터로 모두 기록되기 때문에, 각 개인의 스마트폰 속 정보는 '인권'의 측면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한 번 상상해 보라. 자신의 카톡 대화내용과 쇼핑 목록, 검색 리스트와 방문 기록을 누군가 몰래 본다면 어떨지를.. 이런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남기며, 내가 모르는 사이에 경제활동에서부터 인간관계 심지어 이념과 사상까지 노출될 위험이 있다. 누구든지 스마트폰과 빅데이터의 도움만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거의 다 알 수 있다. 핑계야 어떻든 각국 정부는 결국 이걸 원하는 셈인데, (우리가 인류 역사를 통해 무수히 경험했듯이) 만약 이런 기술이 범죄자의 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그건 한마디로 재앙이다.

 

애플, 우리 고객들의 보안을 위협할 수 있는 명령을 거부한다

 

예전에도 팀 쿡은 "암호화와 관련한 논쟁으로 우리 시민권이 다시 공격받고 있다"며 "암호화를 수시로 풀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백도어와 관련해서는 "암호화 대화에 일단 한 번 백도어를 달면 공권력이든 테러범이든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며 단호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경찰이 쓰라고 매트 밑에 문 열쇠를 숨겨두면 도둑이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숨겨둔 열쇠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 전체에 엄청난 불안요소로 작용할 테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

 

 

그리고 이번에 법원의 잠금해제 백도어 제공 명령이 나오자마자, 애플은 공식 홈페이지에 곧장 팀 쿡의 이름으로 "A Message to Our Customers(고객들께 드리는 글)"을 올렸다. 평소에 대중과의 소통보다는 깜짝 발표를 즐기고 공개적인 논쟁보다는 내부회의나 법정을 주로 이용했던 애플이지만, 정보인권과 관련한 정부와의 대립(이런 상황에서는 여론의 힘이 필수적이다)에서는 좀 이례적으로 공개 편지를 내놓는 방법을 택했다. 지극히 애플스러운 타이포그래피로 공식 홈페이지에 실린 이 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출처: 애플 공식 홈페이지 Customer Letter 갈무리]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has demanded that Apple take an unprecedented step which threatens the security of our customers. We oppose this order, which has implications far beyond the legal case at hand.

(미국 정부는 우리 고객의 보안을 위협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할 것을 애플에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법적 문제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이런 명령을 거부합니다)

 

This moment calls for public discussion, and we want our customers and people around the country to understand what is at stake.

(지금은 이 문제에 대한 공공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며, 우리는 지금 위험에 처한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 고객과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Compromising the security of our personal information can ultimately put our personal safety at risk. That is why encryption has become so important to all of us.

(개인정보 보안에 대한 타협은 결국 우리 개인의 안전을 위협하게 됩니다. 암호화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For many years, we have used encryption to protect our customers’ personal data because we believe it’s the only way to keep their information safe. We have even put that data out of our own reach, because we believe the contents of your iPhone are none of our business.

(오랫동안 우리는 암호화를 통해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왔습니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그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그 정보를 우리 애플도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당신 아이폰에 담긴 정보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죠)

 

Now the U.S. government has asked us for something we simply do not have, and something we consider too dangerous to create. They have asked us to build a backdoor to the iPhone.

(지금 미국 정부는 우리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만들기에 너무 위험하다고 여기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이폰에 대한 백도어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we fear that this demand would undermine the very freedoms and liberty our government is meant to protect.

(우리는 이러한 요청이 우리의 정부가 보호해야 하는 완전한 자유와 해방의 가치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명합니다)

- 원문: 애플 홈페이지, 번역문: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고객들께 드리는 글'과 팀 쿡의 이전 발언에서 드러난 대로, 이 사안은 단순히 기술적인 보안 이슈가 아니라 우리의 '프라이버시(privacy, 개인정보)'에 관한 문제다. 우리가 게시판에 쓴 글이나 소셜미디어에 남긴 댓글 · 주고받은 이메일이나 추천한 콘텐츠를 살펴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만약 여기에 여러가지 신상정보까지 더해진다면(공권력은 이미 신상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건 정말 본인도 깜짝 놀랄 만큼의 파괴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데이터를 권력자나 범죄자가 확보한다면, 우리의 인권과 자유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모든 사람들의 기기에 담긴 개인정보에 접근할 권력"은 실로 막강한 힘이고, "프라이버시를 저버린 채 우리의 메시지나 건강 정보, 개인 금융 정보, 위치 추적 정보를 가로채고, 심지어 나도 모르게 휴대전화 마이크와 카메라에 접근할 수 있는 감시 소프트웨어" 앞에서 일반 시민은 그저 철저하게 무력할 수밖에 없다. 암울한 SF에 등장하는 감시·통제 사회는 바로 이런 기술을 거대 권력이 광범위하게 이용하면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잘 알지 않는가.

 

획일성과 낮은 인권 감수성, 다양성과 높은 인권 감수성

 

한국에서도 카카오톡 사찰 논란에 이은 사이버망명을 겪었다시피, 국내 사법기관들도 IT업체들의 협조를 통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2014년 한 해 동안만 해도 통신사업자들이 각종 수사기관(경찰ㆍ검찰ㆍ국정원 등)에 협조한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 건수는 문서 수 기준으로 25만 9184건에 달하고, 전화번호(또는 ID) 수 기준으로는 무려 1028만 8492건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IT기업들이 몰려있는 미국의 경우, 2013년에 컴퓨터 기술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 NSA)의 무차별적인 개인정보 수집 사실 폭로 이후 여러 업체들의 '투명성(Transparency)' 보고서 발간이 이어졌다.

 

 

보통 투명성 보고서에는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각 국가 사법기관의 개인정보 제공 요구 · 게시물 삭제 요청 · 저작권 및 상표권 관련 고지 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최근에는 대표적인 국내 포털들도 해외 IT업체들처럼 투명성 보고서를 내고 있지만, 국가기관들의 주타겟이 되는 이동통신사들(KT, SK텔레콤, LG유플러스)은 단 한 곳도 투명성 보고서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이통사들이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도대체 얼마나 갖고 있는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고, 수사당국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어떻게 동의를 구하는지도 우리는 잘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한국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나도 모르게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상황이 발생해도, 그렇게 프라이버시가 침해됐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인권 감수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극소수 재벌 대기업이 독점한 이동통신 시장을 이용하며 우리는 애플을 마냥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팀 쿡과 애플의 사례를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그들의 인권 감수성도 결국 그 구성원들의 다양성에서 나오는 셈인데, 한국처럼 획일적이고 양극화가 심한 사회에서는 인권 감수성도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팀 쿡이 애플의 CEO 자리에 있으면서 동성애자로 커밍아웃을 할 때 발표했던 글을 보면서 이 얘기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한국의 기업들 중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실천할 수 있는 회사가 과연 나올 수 있을까..

 

"We’ve taken a strong stand in support of a workplace equality bill before Congress, just as we stood for marriage equality in our home state of California. And we spoke up in Arizona when that state’s legislature passed a discriminatory bill targeting the gay community. We’ll continue to fight for our values..
(우리는 애플이 자리한 캘리포니아에서 동성결혼을 지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연방 의회 앞에서 고용평등법을 지지하는 강고한 태도를 고수해왔습니다. 애리조나 주 의회가 게이 공동체를 겨냥한 차별 법률을 통과시켰을 때 우리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계속할 것입니다)"

- 원문: 비즈니스위크, 번역문: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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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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