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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α

찰리채플린과 히틀러 그리고 공산주의와 매카시즘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

공산주의와 독재채플린과 아돌프 히틀러[위대한 독재자(1940)]와 제2차 세계대전.

 

위대한 배우이자 감독 '찰리 채플린(Sir Charles Spencer "Charlie" Chaplin, 1889~1977)'은 영국 런던에서 둘 다 연극배우였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장기에는 빈민구호소를 전전할 만큼 무척 가난했지만, 그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고 그래서 어려서부터 무대에 섰다. 이미 10대 중반에 정식 극단 배우로 활동했고, 미국으로 간 뒤 20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은 수많은 세기의 거장들을 만났고, 헐리우드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20년대가 넘어가면서 시대는 '무성영화(소리가 없이 영상만으로 만들어진 영화)'에서 '유성영화(영상과 소리가 함께 나오는 영화)'로 전환되고 있었고, "무성영화가 유성영화보다 예술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던 찰리 채플린은 한동안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된다. 이 무렵 그 유명한 걸작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1936)>로 대성공을 거두기는 하지만, 무성영화는 더 이상 헐리우드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결국 그 영화가 찰리 채플린의 마지막 무성영화가 되고, 고민 끝에 그는 마침내 첫 유성영화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 1940)>를 세상에 내놓는다.

 

"실망과 근심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탈출구는 철학이나 유머에 의지하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

 

이번 글에서는 바로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해볼 텐데,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위대한 독재자>는 히틀러를 모델로 독재의 폐해를 그린 작품이다. 찰리 채플린이 제작·각본·감독·주연을 도맡았고, 1인 2역(독재자와 이발사)으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이 작품은 각종 창작물에서 자주 시도되는 '왕자와 거지(얼굴이 서로 닮은 왕자와 거지가 서로 그 신분이 바뀌어 겪게 되는 여러 사건)'의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데, 사실상 특별히 다른 줄거리가 있다기보다는 당시 서슬 퍼렇던 히틀러를 소재로 직접적인 조롱과 팬터마임(pantomime, 몸짓과 표정으로 내용 전달)을 탁월하게 결합했다는 점에서 특히 유명한 작품이다.
[오랫동안 채플린의 팬이었던 히틀러가 이 영화를 몰래 연속으로 두 번 봤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The Great Dictator>라는 영화를 깊이 있게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역사를 좀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원래 제1차 세계대전이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약 4년 동안 벌어졌었고, 그로부터 불과 20여 년 만에 전세계는 또 다시 참혹한 세계대전의 위험에 처한 것이다.

 

 

다양한 명사들과 친분이 있던 찰리 채플린은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발발하기 전에 이미 그런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고, <위대한 독재자>는 이렇게 민감한 시기(1930년대 후반)에 '검열'과 '상영 불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굳은 의지로 완성된 작품이다. 그럼 이쯤에서 전쟁에 대한 찰리 채플린의 육성을 한 번 들어보자.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나치가 무섭게 세력을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4년 동안 지속된 지옥과도 같은 1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어떻게 그렇게도 빨리 잊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우리는 전쟁의 포화에 상처입고 사지를 절단당한 환자들,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눈과 시력을 잃고 턱이 날아가고 온몸을 뒤틀며 발작을 일으키는 전쟁 불구자들을 그렇게도 빨리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전쟁에 나가 죽지도 않고 부상도 당하지 않은 자들 역시 똑같은 피해자들이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헤어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미노타우로스 같이 전쟁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먹었다. 전쟁의 폐허 뒤에 남은 것은 늙은 노인네들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은 것에 죄책감을 안고 세상과 전쟁을 증오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이런 전쟁의 상흔을 잊고 전쟁을 미화하는..."
(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My Autobiography, 1964)> 중에서 발췌)

 

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 10점
찰리 채플린 지음, 류현 옮김/김영사

 

무엇보다 찰리 채플린은 확고한 '반전주의자'였다. 가증스러운 아돌프 히틀러가 전쟁이라는 광기를 부추기고 있는 시대에, 그는 히틀러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먼저 히틀러로 분장하고 대중들을 향해 뜻을 알 수 없는 모호한 말로 열변을 토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한다. 반대로 뜨내기로 분장해서는 거의 아무 말로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 이게 바로 <위대한 독재자>에 대한 찰리 채플린의 기본 구상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유성영화를 만들 계획인 그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도 없었고, 2년을 노력한 끝에 드디어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하지만 이런 '나치 체제에 대한 증오와 경멸'은 나중에 찰리 채플린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시련을 가져다 준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The Great Dictator>는 개봉되었는데(현재 시점에서 생각하면 언뜻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당시에는 미국에서조차 '반나치' 영화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그래서 시사회 일정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으며, 마땅히 상영할 곳도 많지 않았다),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평단의 반응은 엇갈렸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영화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독재자(원래 이발사)의 '아주' 긴 연설이다. 2013년에 읽어도 굉장히 인상적인 연설인데, 당장 전쟁 중인 상황에서(이미 나치 독일에 의해 프랑스가 무력화됐고, 영국이 필사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던 때) 이것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을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그래서,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은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연설 '전문'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미안합니다만 나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군요. 그건 내 할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다스리거나 정복하고 싶지도 않아요. 가능하다면 모든 이들을 돕고 싶어요.
우리는 서로 돕기를 원합니다. 인간이란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불행이 아니라 행복에 의해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서로 증오하고 멸시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대지는 비옥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음에도 우리는 그 방법을 잊어버렸습니다. 탐욕이 인간의 영혼을 좀먹고 세상에 증오의 벽을 쌓아 우리를 불행의 나락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우리는 빠르게 발전했지만, 서로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풍요를 가져다 준다는 기계는 우리를 가난으로 내던졌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를 냉소적으로 만들었고, 우리의 지혜는 우리를 비정하고 냉혹하게 만들었습니다. 생각은 많이 하지만 감정이 부족합니다. 기계보다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인류애입니다. 똑똑한 머리보다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것이 없다면 삶은 폭력으로 점철될 것이고,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비행기와 라디오는 우리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문명의 이기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인간의 선의, 우리 모두의 형제애를 회복하라는, 즉 서로 하나가 되라는 외침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내 목소리는 전 세계 수백만 사람들, 절망에 빠진 수백만 남녀노소들과 죄 없이 고문당하고 투옥되는 체제의 희생자들의 귀에 닿을 것입니다. 내 말을 듣고 있을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절망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닥친 불행은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이며, 인간의 진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빈정거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증오는 사라질 것이고, 독재자는 죽을 것이며, 그들이 국민에게서 빼앗은 권력은 국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인간이 필사의 존재인 한 자유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병사들이여! 당신을 기만하고 노예로 만든 그리고 당신의 삶을 통제하고 당신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고 생각과 감정까지 통제하는 이런 짐승들에게 당신의 몸을 내맡기지 마시오. 이런 기계와도 같은 정신과 마음을 가진 기계적 인간들, 몰인정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맡기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기계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인간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인간애를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미워하지 마십시오. 사랑 받지 못한 사람만이 증오합니다. 사랑 받지 못한 사람, 몰인정한 사람만이 사람을 증오합니다.
병사들이여! 굴종을 위해 싸우지 맙시다. 자유를 위해 싸웁시다. 누가복음 17장에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 속에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떤 인간도 어떤 집단도 아닌, 모든 인간 속에 하느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당신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힘, 기계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복을 창조할 수 있는 힘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고, 모험 가득한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는 힘도 갖고 있습니다. 이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 힘을 사용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로 단결합시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 싸웁시다. 모든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버젓한 세계를 만듭시다. 젊은이에게는 미래를, 노인에게는 노후를 보장하는 세상을 만듭시다.
물론 짐승들도 우리에게 이런 공약을 내걸고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들은 공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지킬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독재자들은 자신들만 자유를 만끽할 뿐 국민들은 노예로 만듭니다. 세계를 해방시키기 위해 싸웁시다. 국가 간의 장벽을 허물고 탐욕, 증오 그리고 불관용을 제거하기 위해 싸웁시다. 이성의 세계, 과학과 진보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세계를 위해 싸웁시다. 병사들이여,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단결합시다.
한나, 내 목소리가 들립니까? 당신이 어디에 있건 저 위를 올려다 보세요. 저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한나!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희망의 해가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둠에서 걸어 나와 밝은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탐욕과 증오 그리고 무자비함을 극복한 인정 많은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 위를 올려다보세요. 한나! 인간의 영혼에 날개가 돋고 마침내 날기 시작했습니다. 당신과 나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영광된 미래를 향해서 말이오. 봐요, 한나! 위를 봐요!"

 

 

이게 바로 찰리 채플린이 첫 유성영화에서 진정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고, 그가 직접 쓴 자신의 철학이며, 영화 <위대한 독재자>가 남긴 유산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세상은 위대한 감독이자 배우 찰리 채플린을 그저 순수하게만 봐주지 않았다. 이 작품이 영국과 미국에서 흥행 신기록을 세우고 있을 무렵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고(1941년 12월 초) 미국의 '태평양 전쟁'이 시작됐는데, 모스크바 외곽에서 히틀러의 나치 대군과 대치하고 있던 러시아는 강력한 독일군의 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미국과 영국을 향해 유럽(북프랑스)에 '제2전선'을 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제2전선 구축에 대한 미국내 반발이 있었고(1944년 6월 6일에야 미군은 북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한다), 급기야 '러시아 전쟁구제 미국위원회'는 반나치 영화를 만든 찰리 채플린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전쟁 자체를 반대했지만 슬프게도 세계대전은 이미 발발해버렸고, 그는 이런 '돈키호테식 모험'을 거부할 만한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결국 찰리 채플린은 러시아에 대한 지지 연설을 하게 됐으며, 눈치 보면서 몸을 사리는 여러 명사들과는 달리 (나치 체제에 대한 증오와 경멸을 품고 있었던) 그는 열과 성을 다해 멋진 연설을 해낸다.

 

그리고 연이어서 찰리 채플린은 러시아를 위한 제2전선 구축 지지 연설을 또 하게 되고, 그의 말대로 '정치라는 눈사태에 휩쓸려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폭풍전야처럼 당장에는 별일이 없었지만, 이와 관계된 일련의 활동은 찰리 채플린이 끝내 미국에서 추방되는 사태(1952년)를 몰고 온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상은 바야흐로 '냉전(Cold War)'의 시대에 접어든다. 미국과 소련은 전세계를 놓고 양대 초강대국으로서 날카롭게 대립했으며, 미국에서는 소련의 공산주의에 대한 일종의 ‘공포’가 퍼진다. 그리고 1950년대 초반, '매카시즘(McCarthyism,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이라는 반공산주의 테러가 미국에서 발생하고 만다(사실 전쟁 직후인 1940년대 후반부터 문제가 시작됐고, 찰리 채플린은 '반미활동조사위원회' 소환을 비롯해 몇 년 간 계속 시달린다). 수많은 진보적 예술가들이 매카시즘의 광기 속에서 탄압 받았고, 아나키즘적인 이상을 갖고 있는 '자유인'이며 전체주의처럼 자본주의도 비판한 찰리 채플린 역시 '공산주의 동조자'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당신은 공산주의자인가요?"
"아닙니다."
"당신은 왜 미국 시민이 되지 않습니까?"
"제가 국적을 바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 자신이 세계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스 아이슬러를 아십니까?"
"예, 압니다. 제 친한 친구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음악가이기도 하고요."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것도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 것은 개의치 않습니다. 그와의 우정은 정치와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은 공산주의자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제가 누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은 제 개인의 문제입니다. 제삼자가 관여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살인광 시대(Monsieur Verdoux, 1947)> 개봉을 앞두고 미국 기자단과 찰리 채플린의 질의 응답)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도 '빨갱이 색출'은 무분별하고 근거 없는 권력층의 '반대자 탄압' 도구였는데, (위에서 말한 '정치적' 행위들을 포함해서) 미국 시민도 아니었고 영화 검열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며 종교도 없이 미국 사회를 대놓고 비판하는 찰리 채플린은 너무나 딱 맞아 떨어지는 먹잇감이었다. 그리고 해방 직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당시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들 중 상당수는 공산주의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비록 찰리 채플린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수많은 명사들과 어울린 그의 주변에는 실제 공산주의자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분명한 건, 찰리 채플린이 매카시즘의 희생자였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최근의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사태와 똑같은 일을 찰리 채플린도 그대로 겪었다. 사상 검증의 대상이 되어 버린 <살인광 시대(무슈 베르두)> 역시 미국내 보수 단체의 시위로 인해 상영 취소가 이어진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만든 영화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무슈 베르두>는 정치적인 탄압으로 인해 수익은 고사하고 제작비 회수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고, 다음 작품인 <라임라이트(Limelight, 1952)> 개봉 직전에 그는 미국에서 추방된다. 배에 타고 있는 상태에서 추방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찰리 채플린은 다시 미국에 입국하려면 이민국에 출두해서 자신의 '정치 노선'과 부도덕한 행실에 대한 몇 가지 혐의에 관해 먼저 해명을 해야만 했다. 결국 그는 이듬해 미국 영주권을 포기했고(스위스로 이주), 1972년에 헐리우드에서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을 때까지 무려 20년 동안이나 미국에 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건 일종의 '망명'이 아닐까 싶다.

 

 

자, 이렇게 흑백 고전명작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때부터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를 거쳐 <무슈 베르두(살인광 시대)>와 <라임라이트(Limelight)>까지의 찰리 채플린을 정리해 보았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그는 '반전주의자'였고 그래서 히틀러를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 <위대한 독재자>를 만들었다. 찰리 채플린의 세계관은 이 작품 마지막의 연설에 잘 표현되어 있으며, 연설 '전문'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시피 지금 2013년 대한민국 국민들을 향해서 그대로 말해도 될 만큼 탁월한 사상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을 보다 보면, 우리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이 꽤나 자주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를 약간만 한국의 현재 상황에 맞게 각색해도 상당히 괜찮은 작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찰리 채플린은 매카시즘의 희생양이 됐고, 요즘 '신종 매카시즘'이 창궐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1947년에 <살인광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천안함 프로젝트>도 시련을 겪었다. 그럼 주변을 좀 둘러보자. 제2, 제3의 찰리 채플린이 없는지.. 이런 데자뷰와 '독재' 속에서 매일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위대한 독재자>를 볼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예전에 봤다면, 지금 한 번 더 보는 것도 좋다. 아마 전에 봤을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다를 것이다. 현실과 영화의 절묘한 만남!

 

이 작품은 찰리 채플린의 유머나 철학에 걸맞게 '희극'이다(물론 실제 역사는 '비극'이었다). 암울한 우리 사회에 지쳐있는 모든 이에게 강력 추천한다. 위대한 지성, 칼 마르크스는 말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그리고 찰리 채플린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