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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영화 [아마데우스] 속 두 인물의 관계

영화 [아마데우스] 감독판 집중 탐구 - 3. 캐릭터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기본적인 합의를 하나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영화 [아마데우스]에는 주인공이 두 명 등장하는데, 익히 알고 있듯이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다.


픽션인 영화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든지 간에, 이것은 명백한 허구이며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 이 영화 때문에 살리에리와 관련된 음반 판매량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얘기도 있지만, 작품 속의 내용을 실제 역사와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 1984)] 감독판 집중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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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Amadeus, Director's Cut, 1984)
미국 | 드라마 | 180분 | 감독 : Milos Forman | 원작, 각본 : Peter Shaffer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8세기 말의 비엔나는 모든 서양 음악가들에게 꿈의 도시였으며, 그 자체로 Western Music의 역사를 만들어가던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경쟁도 심했을 테고, 음악가들 사이에 스승이나 친구도 많았겠지만 라이벌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 살리에리는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과 같은 저명한 음악가들과 활발히 교류했고,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뿐만 아니라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와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의 스승이었다. 심지어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아들에게도 음악을 가르쳤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죽기 직전까지 (모차르트가 죽고 나서도 33년이나 더) '음악의 도시' 비엔나의 궁정악장이었던 살리에리. 좀 유별난 데가 있던 천재 모차르트와 어쩌면 라이벌 같은 구도였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여러 오페라나 연극 그리고 영화의 출발점이 된 그런 불명예스러운 얘기들은 거의 다 그저 소문에 불과한 것들이다.


특히 [아마데우스]의 내용은 탁월한 극작가인 '피터 쉐퍼'가 만들어낸 이야기이며, 감독인 '밀로스 포먼'의 뛰어난 연출력을 통해 정말 그럴싸하게 보였을 뿐이다. 이것만 확실히 짚고 넘어간다면, 영화를 좀 더 편하고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영화 속의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관계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상상해보도록 하자.


작품 속에도 여러 장면에서 드러나지만 살리에리는 이탈리아 태생 작곡가이고,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태생 작곡가이다. 영화 안에는 모차르트의 죽음 이후 32년 동안 살리에리 자신이 고통 속에서 살았다는 대사가 나온다. 모차르트의 사망연도와 살리에리의 사망연도를 비교해보면, 살리에리가 신부에게 과거 이야기를 하는 이 영화의 현재 시점은 1823년 정도이고, 살리에리가 73세이며 사망하기 2년 전쯤이라는 것을 대략 유추해볼 수 있다.

 

자, 한 번 생각해보자. 나이 차이가 6살밖에 나지 않는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그들은 둘 다 당시 음악계의 중심 도시였던 비엔나에서 부와 명성을 얻길 원했다. 두 사람의 재능있는 음악가가 동시대에, 같은 장소에서 인정받기를 원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정받는다'라는 것은 비엔나의 황제와 귀족들에게 선택받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살리에리와 모차르트가, 요제프 하이든 또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는 또 다른 관계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하이든은 비교적 동시대 작곡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훨씬 많은 하이든은 자기 음악활동의 큰 부분을 헝가리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악장으로 보냈고(1761년부터 런던으로 가기 전인 1790년 즈음까지 무려 30여 년간 에스테르하지의 작곡가로 지냈다), 모차르트가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쯤에는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뒤였다. 그러므로 하이든은, 어린 모차르트나 비엔나의 궁정음악가인 살리에리와 맞부딪힐 일이 비교적 적었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베토벤은 자기 인생의 많은 부분을 비엔나에서 보냈기에, 살리에리나 모차르트와 같은 장소에서 활동한 음악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베토벤은 살리에리나 하이든에게 실제로 작곡을 배웠을 정도로, 나머지 사람들의 후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것은 베토벤이 과연 고전주의 작곡가인지 낭만주의 작곡가인지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 이견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분명한 고전주의 작곡가인 살리에리나 모차르트와 경쟁할 일이 크게 없었다고 짐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저명한 유대계 독일 사회학자인 노베르트 엘리아스가 지적했던 것처럼, 모차르트는 '궁정사회의 시민음악가'였기에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어쩔 수 없이 황제와 귀족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생존이 가능했으며, 시민혁명이 본격적으로 사회를 바꾸기 전에 사망했다.


반면에 베토벤은 시민혁명의 모든 것을 향유했고, 그에게 있어 '인정받는다'라는 것은 단지 황제나 귀족들에게만 선택받는다는 게 아니라 부르주아 시민들과의 금전적 관계도 발생했던 것이다. 이처럼 상황이 다른 여러 작곡가들에 비해 살리에리와 모차르트는 상대적으로 특수한 관계로 바라볼 수 있으며, 다양한 작품들에서도 바로 이 점에 일정 부분 착안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 다른 측면에서 상상해 볼 수도 있는데, 살리에리는 1766년에 비엔나 궁정으로부터 초청받아 계속 그곳에 머무르며 활동하고 있었고, 모차르트는 그로부터 15년쯤 뒤에야 비엔나에 제대로 입성한다. 영화에서도 보면, 당시 비엔나에서 음악권력의 많은 부분은 이탈리아 출신의 음악가들(황제 옆의 오페라 극장장, 교회 악장 등)이 차지하고 있었고, 이탈리아 출신의 살리에리가 비엔나에서 궁정악장으로서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스트리아 출신의 모차르트가 뒤늦게 등장한 것이다. 그는 오만방자하지만, 천재성을 가진 캐릭터이다. 당연히, 이탈리아 출신 음악가들의 눈에는 모차르트가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그런데 이 시기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이 또한 영화의 긴장을 한층 더 높이는 역할을 한다. 대사로도 표현이 되지만, 오페라에 사용될 언어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이탈리아어와 독일어 사이에서 고민하고, 황제가 이웃나라의 여동생(마리 앙투와네트) 얘기를 하며 시민들을 자극할 만한 소재를 가진 공연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니 이탈리아 출신과 오스트리아 출신의 시각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에서 긴장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그것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간단한 음식을 먹는 사소한 장면(모차르트가 돈을 빌려 달라고 말할 때 살리에리가 대접한 '크리마 마스카르폰'이라는 이탈리아 간식을 먹는데, 그 때 살리에리는 자신의 애국심까지 들먹인다)에서도 그대로 표현되고 있으며, 영화 곳곳에 크리마 마스카르폰 같은 장치들이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고도로 잘 짜여진 에피소드들이 이 작품의 탁월한 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긴 러닝타임과 알면 알수록 깊이감 있게 느껴지는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끝까지 긴장과 재미를 잃지 않는 핵심적 요소가 아닐까 싶다

 

 

이상으로, 줄거리 · 음악 · 캐릭터 이렇게 세 번에 걸쳐서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 1984)]에 관한 집중 탐구를 해봤다. 이는 결국 본작을 추천하기 위함인데, 이 영화는 객관적으로 아주 훌륭한 작품이고 개인적으로도 무척 인상 깊게 본 영화다.


작품이 만들어진 지 무려 30년이 지났지만(1984년작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지금 봐도 상당히 흥미롭고 탄성이 절로 나올 것이다. 이런 영화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반복해서 즐겁게 볼 수 있으며, 볼 때마다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 몇 십 년 뒤에도 여전히 그럴 것이며, 진정한 영화예술의 '고전'으로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