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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연인과 가상현실 사랑, 영화 [그녀]가 현실화된다면?

Arthur Jung 2015. 12. 30. 10:49

영화 [그녀(Her, 2013)] 속 인공지능 연인 '사만다'가 최신 가상현실 기술을 만났을 때.

 

아내와 별거 중인 대필작가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요즘 많이 외롭다. 일상적인 공허함 속에서 밤에 잠도 잘 오지 않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음성채팅을 시도해 보지만 마음에 맞는 상대를 만나기도 어렵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세계 최초의 맞춤형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운영체제 'OS1'을 구입하게 된다.

 

테오도르는 남녀 목소리 가운데 여자목소리를 선택하고, 그의 앞에 나타난 컴퓨터목소리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는 자신이 직감을 가지고 있으며 매 순간 진화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 사만다는 책 한 권을 0.02초만에 다 읽고, 묵혀둔 메일 수천 건과 뒤죽박죽인 테오도르의 연락처를 단숨에 정리한다. 엉망진창이었던 그의 생활은 사만다의 등장으로 금세 질서를 되찾고, 스스로 생각하며 인간의 감정을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된 사만다와도 한층 가까워진다.

 

형체가 없이 그저 목소리로만 존재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만다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끼는 테오도르. 영화 [그녀(Her, 2013)]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지극히 클래식한 방식으로 표현하지만, '인공지능 연인'이라는 것 자체는 지극히 최첨단의 소재다.

 

 

"당신에게 귀 기울여주고 이해해주고 알아줄 존재"

 

언제나 우리는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을 원한다. 어렸을 때는 보통 가족들에게서 이런 걸 원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연인이 그래주길 바란다. 흔히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존재의 절대성을 부각시키기도 하며, 일반적으로 행복한 삶의 필수요소처럼 간주된다.

 

그런데 영화 [그녀]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듯이, 이런 존재를 만나기도 쉽지 않고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누구나 항상 원하지만, 정말 그런 존재와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나 짧은 것이다. 한마디로, 요구는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데 충족되기는 참 어려운 셈이다.

 

 

결국, 테오도르가 OS1을 구입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분명히 외롭고 공허한데, 아내와는 별거 중이고 어머니는 통화를 해도 자기 얘기만 하다가 전화를 끊어 버린다. 이때 맞춤형 인공지능 운영체제가 "당신에게 귀 기울여주고 이해해주고 알아줄 존재"라며 눈앞에 나타난다.

 

다른 인간들은 각자 본인 자체의 성격과 경험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고 말하지만, 사만다는 다양한 프로그램적 기반 위에서 주로 테오도르의 삶을 통해 감정적 진화를 거듭했기 때문에 그를 완벽히 파악하고 훨씬 더 잘 맞춰준다. 이런 연인이라면 누구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비록 인공지능이라고 할지라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연인의 가능성

 

영화 [그녀(Her)]의 사만다를 현실 속에서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없다는 건 다들 알고 있다. 적어도 아직은, 테오도르처럼 사만다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행복감에 빠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활동은 아주 복잡하고, 현재는 인공지능이 인간 수준의 의식과 교감 능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즘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일상생활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상식과 어린아이가 세상을 분류하는 정도의 창의성을 부여하려 노력하고 있다는데, 아마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전 세계의 다양한 회사들이 '머신러닝(machine-learning, 기계학습, 주어진 데이터를 활용해 일정한 패턴을 파악하고 학습하여 스스로 성능을 향상시키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으며, 특정 분야에서는 이미 인간을 능가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기술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변화도 인공지능 연인의 출현 가능성을 크게 높이는 데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한 사람이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범위나 횟수는 한계가 있었다. 기껏해야 주변 사람의 소개나 자신의 생활 반경 내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게 고작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온갖 SNS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이성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비약적으로 확대됐고, 특히 인기가 있는 이성은 꼭 대면접촉이나 매스미디어를 통하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세상이다. 여기서도 사이버 네트워크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하므로, 한편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큰 주목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그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렇다 보니, 일반적으로 돈과 권력이 있는 남성과 젊고 예쁜 여성은 여러 이성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소외되며 상대적 박탈감을 더 자주 느끼는 환경이 조성됐다. 단순하게 말해서 전자는 '일부다처' 또는 '일처다부'화 되어 가는 반면, 후자는 흔히 말하는 '모태솔로'가 되기 쉬운 것이다.

 

결국, 언제 어디서나 서로 연결되는 21세기 '초연결사회(Hyper Connection Society)'에서는 네트워크가 발달하면 할수록 사실상 연애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렇게 연애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인공지능 연인에 대한 요구가 생기는 게,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짐작건대,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이 아직은 수면 아래에 있지만 머지않아 곧 급격히 부상할 것이다. 최근에 조금씩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섹스토이'나 '사이버섹스'에 관한 부분이 성적인 측면이라고 한다면, 인공지능 연인은 감정적인 만족을 위한 대체제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진정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육체와 정신이 둘 다 중요하기에, 가까운 시일 내에 이 두 분야의 폭발적 성장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건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솔로들의 이런 요구가 어쩌면 기술 발전의 이면에서 상당히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영화 [그녀(Her)]의 테오도르가 왜 사만다에게 빠지게 되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라. 바로 이 순간, 세계 최저 출산율과 최고 자살률을 10년 넘게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도 수많은 테오도르가 살아가고 있다. 이토록 치명적으로 극단적인 사회에서, 솔로들이 섹스토이나 사이버섹스 그리고 인공지능 연인을 찾지 않을 이유는 없다.

 

가상현실 기술의 현실화, 인공지능 연인을 만나다

 

실제와 유사하지만 실제가 아닌 어떤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 혹은 그 기술이라는 의미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SF 소설 속에서만 보던 가상현실이 몇 년 간의 탐색을 끝내고 올해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 소니 · 삼성 등의 대기업과 주요 IT 업체들이 VR 기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프로토타입(prototype, 기초 형태)이 나왔고, 마침내 2016년 실제 제품 발매를 앞두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가상현실 기기인 플레이스테이션 VR(소니), 오큘러스 리프트(페이스북, 삼성 기어 VR), HTC 바이브(세계 최대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의 밸프)가 내년에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흔히 말하는 'HMD(Head Mounted Display,보안경이나 헬멧형 기기로 눈앞에 있는 스크린을 보는 영상 장치)'인데, 어느 첨단산업 분야든 '정식 출시' 한다는 건 나름대로 시장성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를 포착했다는 뜻이다.

 

자, 그럼 한 번 상상해 보자. 인공지능 기술은 말 그대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으며, 가상현실 기기는 2016년에 바로 우리가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아직은 착용감이나 콘트롤 등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내년에는 집에서도 VR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이 얘기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다음 영상을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질 것이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VR 용으로 개발되고 있는 반다이남코 게임즈의 '썸머 레슨(Summer Lesson) 트레일러

 

만약, 영상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영화 [그녀(Her)]의 사만다처럼 해줄 수 있다면? 가상현실 속에서 사만다가 언제나 우리의 말에 귀 기울여주며 내 마음을 이해해주고 알아준다면, 시덥잖은 소개팅에 감정낭비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솔로의 외로운 도시생활에서 위안 받을 수 있는 '인공지능 연인+가상현실 기기'의 유혹에 관심을 나타낼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앞으로 VR 기기를 착용하고 인공지능 연인과 만나서 얘기를 나눈다면, 우리는 그 연인의 외모와 목소리 · 성향 등을 다 선택할 수 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 하듯이, 인종에서부터 언어 ·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 눈동자 색깔부터 다리 길이까지 전부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를 수 있다. 외피는 이렇게 만들어서 가상현실로 보고, 내면은 인공지능 사만다가 되는 것이다.

 

 

이건 꿈이 아니다. 곧 우리가 집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아침에 출근해 직장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Virtual Reality 기기를 착용하고 나만의 연인과 대화를 나누는 여가 생활이 머지않았다. 이렇게 플라토닉 러브를 즐기다가 그래도 해소되지 않는 부분은, 다양한 섹스토이들이 달래 줄 것이다. 사람에게는 정신과 육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둘 다 중요하다.

 

가상현실 기기는 내년에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지금 전 세계의 천재 과학자들이 한창 열심히 발전시키고 있다. 헬조선에 살고 있는 N포세대로서 연애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가상현실 속의 인공지능 연인이 삶의 주요 요소로 자리하게 되는 날, 이는 마치 강아지와 고양이만큼이나 대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과연, 초저성장 장기불황 시대에 이미 접어든 대한민국의 솔로들에게 가상현실 속 인공지능 연인이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또 얼마나 많은 지분을 가지게 될까? 반려동물과 교감하는 사람이 있고 '애완로봇'과 즐겁게 지낼 사람이 있듯이, 우리 중 누구는 섹스토이나 가상현실 속 인공지능 연인과 친밀한 관계를 가질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아마 5~10년 이내에 자율주행 자동차 안으로 사만다가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말한다. "너는 내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