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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 삼성의 결정적 분기점이 된 중국시장의 성패

이론적으로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차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시장이 애플과 삼성을 갈랐다.

 

예전부터 스마트폰 시장을 논할 때, 삼성과 애플(Apple)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소프트웨어(iOS)와 하드웨어(iPhone)를 둘 다 가졌지만 제품군이 얇고 좁은 시장에서 강한 애플,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구글(Android)에 의존하지만 상대적으로 다양한 하드웨어와 광범위한 시장 공략으로 성공한 삼성에 대한 얘기였다. 이런 관점의 결론은 대부분 애플이 소프트웨어도 함께 가졌기 때문에 일단 유리한 건 분명하나, 삼성이 얼마나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하드웨어를 적재적소에 출시할 수 있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전통의 강자 '노키아(Nokia)'나 비즈니스폰의 대명사 '블랙베리(BlackBerry)' 등이 몰락하는 것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전체 스마트폰 시장의 85%를 안드로이드 계열 스마트폰이 차지하게 되면서, 삼성은 (애플이 시장점유율 45%를 유지한 북미지역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스마트폰 제조사가 되었다. 아마도 2012년 상반기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가 그 정점이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작년 4분기에 애플이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는 대화면 아이폰(아이폰6, 아이폰6 플러스)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기존의 예상과는 다르게, 삼성이 아닌 애플이, 그것도 혁신적인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새로운 하드웨어를 통해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애플은 아이폰6 출시에 힘입어 작년 4분기에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30%나 성장한 사상 최고의 매출인 746억 달러(약 80조4천억원)를 기록했으며, 순익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세계 상장사 역사상 단일기업 최대 실적). 반면에 갤럭시S5가 부진했던 삼성은 3년 만에 가장 낮은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1년 전보다 매출은 9.8% · 영업이익은 31.9%가 감소한 실적이다.

 

[출처: 연합뉴스]

 

애플과 삼성, 전세계 순위 ≒ 중국시장 순위

 

전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으로만 보면 2014년 4분기에 삼성과 애플은 둘 다 비슷하게 7,450만 대를 팔아치웠지만(공동 1위), 삼성은 전년 동기 대비 1,150만 대나 줄어들었고 애플은 무려 2,350만 대가 늘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될 부분은, 애플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중국에서의 매출이 2.5배 이상 증가했다는 점이다. 원래 중국에서는 2011년 이후 삼성이 줄곧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4분기에는 아이폰6의 애플이 갤럭시노트4의 삼성을 꺾고 더 많은 스마트폰을 판매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삼성은 중국시장 1위가 되면서 2011년 하반기에 애플을 따돌리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 업체가 됐다. 그리고 이번엔 정반대로, 중국시장 1위 자리를 놓치면서 애플에 따라잡혔다. 사실 각 조사기관별로 중국업체 '샤오미'의 중국내 순위가 좀 달라서 정확한 시점은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전체적으로 보면 삼성과 애플의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순위와 중국시장 순위가 바뀌는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결국, 중국시장의 성패가 애플과 삼성의 결정적 분기점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중국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꼭 스마트폰이 아니라 다른 제품들도 마찬가지 아니냐? 중국시장 점유율 1위 업체가 전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건 그리 놀랄 만한 일이 못 된다."라고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만큼 중국시장 자체가 엄청나고, 대다수 글로벌 기업들이 이곳에 역량을 집중한다. 하지만 애플과 삼성을 비교함에 있어서, 중국시장은 꽤 특이한 점들이 몇 가지 눈에 띈다. 애플이 2014년 4분기에 미국시장에서 판매한 아이폰보다 중국에서 팔아치운 아이폰이 더 많다는 걸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삼성과의 차별성을 논할 때 애플의 중국시장은 분명히 뭔가 특별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애플 따라하기 바쁜 중국기업들

 

요즘 중국시장에서 점유율 1 · 2위를 다투는 기업은 애플과 삼성이 아니라, 애플과 '샤오미(Xiaomi, 小米)'다. 중국업체 샤오미는 불과 2~3년 만에 급성장한 거대 IT기업으로서(설립된 지 불과 5년 정도밖에 안 됐다), 2014년 3분기에 총 1,800만 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하며 LG를 제치고 전세계 스마트폰 판매대수 순위에서 3위를 차지했다. 물론 1 · 2위인 삼성이나 애플과는 매우 큰 차이가 나는 3위였지만, 샤오미의 2013년 3분기 판매대수가 불과 520만 대였으므로 실로 엄청난 성장세라고 볼 수 있다.

 

[출처: Reuters]

 

이런 샤오미가 아이폰을 대놓고 모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회장 레이쥔(Lei Jun)은 스티브 잡스(Steve Jobs)까지 그대로 따라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샤오미의 회장은 잡스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색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신제품 발표회를 열고, 자신을 잡스와 같은 혁신적 창업가로 포장한다. 비단 샤오미뿐만 아니라,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있는 중국의 수많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상당수는 애플의 '짝퉁'으로 포지셔닝 하는 데에 전혀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이들이 만든 스마트폰의 외형과 기능은 마치 애플의 복제품에 가깝지만, 가격만큼은 삼성과 비슷하다. 

 

 

애플은 중국인들에게 럭셔리 브랜드

 

최근에 중국의 시장조사기관 Hurun Research는 부유층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애플은 샤넬이나 루이비통·에르메스와 같은 쟁쟁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을 다 제치고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명품 선물로 뽑혔다. 이는 남녀가 동일했는데, 순위에 든 다른 기업들이 대부분 사치성 소비재 생산업체들인 점을 감안하면 더 대단하지 않은가? 이 조사에서 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건 삼성 역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삼성도 중국 내에서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신경을 많이 쓴 듯한데, 그럼에도 애플의 위상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출처: Wall Street Journal]

 

럭셔리에 더해진 애플 특유의 감성 마케팅

 

애플의 광고는 예전부터 새로운 게 나올 때마다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에 애플이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절을 맞아서 새로 공개한 광고는 과연 어떨까? 따로 긴 말이 필요없다. 그냥 보면 된다.

[참고로, 삼성이 중국에서 집행한 광고를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니 갤럭시S5의 광고모델이 전지현과 김수현이었다]

 

 

광고 퀄리티가 미국 본토의 애플 광고 수준을 거의 능가한다(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바 있는 허안화 감독이 연출했단다). 분위기는 상당히 중국적이지만 담긴 메시지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퍽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굉장히 감성적인 포인트가 잘 살아있다. 그리고 아래 영상은 어떤가?

 

 

기왕 본 김에 하나 더 보자. 위는 2015년 1월 31일 오픈한 충칭 애플스토어(애플이 직접 운영하는 오프라인 매장) 홍보 동영상이고, 밑에는 1월 24일 오픈한 '아시아 최대 규모' 서호의 애플스토어 홍보 동영상이다.

 

 

앞서 말했듯이, 애플의 최대 시장은 이제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애플은 중국 정부와의 협력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자사 제품들에 대한 보안 심사를 받는 것에 동의했으며(중국당국의 심사를 받는 첫 외국 IT기업), 향후 2년 동안 중국 내에 무려 40개의 애플스토어를 개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애플은 지난 1월 중국에 3곳의 애플스토어를 새로 개점한 데 이어, 춘절 전까지 새롭게 2곳을 더 오픈할 예정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애플스토어가 아예 없다]

 

중국시장에서 삼성이 애플에 뒤질 수밖에 없는 이유

 

자 이쯤 되면 애플이 중국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는 다 설명된 것 같고(영상 속의 '빨간' 사과를 보라!), 중국인들도 애플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증명된 듯싶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대로, 럭셔리 브랜드 이미지에 더해진 애플 특유의 감성 마케팅과 (전세계 16개국에만 있는) 애플스토어의 공격적인 오픈, 최대한 중국 정부에 협조하고 중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 등이 한데 모여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전분기에 비해 중국내 애플의 매출액이 무려 157%나 상승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현재 애플은 한국에 한 개도 없는 애플스토어를 중국내에서는 모두 15개 운영중이라고 하는데, 입점 지역들은 주로 연안의 경제 수준이 높은 대도시들이란다. 영상을 봐서 알겠지만, 우리가 흔히 선입견으로 갖고 있는 촌스러운 중국의 이미지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여기가 중국이라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저곳의 애플스토어만 놓고 보면 전혀 그런 걸 느낄 수 없다. 한마디로, 중국에 들어간 애플 자체가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애플의 (삼성이나 중국업체들은 가지지 못한) 고급스러운 아우라는 강력한 것이고, 어쩌면 중국인들은 바로 이런 점에 열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중국기업들은 애플을 따라하느라 여념이 없고, 부유층은 애플을 럭셔리 브랜드로 인식하며, 애플 자체도 중국시장을 굉장히 중시하고 있는 상황. 콧대 높기로 정평이 나있는 애플이 중국시장에 대해서만큼은 특별대우를 해주고 있는 셈인데(애플 CEO 팀 쿡 "중국인들은 애플 제품을 사랑하며, 자사도 중국시장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 샤오미를 비롯해 중국의 많은 스마트폰 제조사들 역시 '프리미엄폰의 최강자'인 애플과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만만한 중저가 하드웨어 업체' 삼성을 타겟으로 삼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이미 내린 걸로 보인다.

아마도 애플과 중국업체들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삼성의 점유율은 지금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을 테고, 자칫 잘못하면 전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에서도 3위권으로 내려앉을 수 있다. 불과 한 3~4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은 애플을 쫓아간다는 비아냥을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중국업체들이 대놓고 애플을 따라하는 상황이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가진 '원조' 애플은 그대로 맨 앞에 서있을 수 있는 반면, 하드웨어만 가지고 악전고투하던 삼성은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에 밀려 고전하는 중이다. 중국업체들과 삼성의 기술격차는 거의 사라졌지만, 애플과 그외 기업들 간의 감성격차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적인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주요 부품 중에는 삼성이 제조하는 것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스마트폰이 많이 팔리면, 삼성의 부품 매출도 함께 상승한다. 삼성이 만든 스마트폰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져도, 그 중 일정 부분은 부품 수익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다. 애플도 삼성의 중요한 고객이고, 중국 제조사들 역시 삼성의 부품을 쓴다. 그러니 삼성이 설사 중국시장에서의 실패로 인해 애플에게 따라잡혔다고 한들 지금 당장 큰 위기에 빠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위기가 찾아온 바로 이 순간, 오히려 삼성은 결정적 전환점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예를 들어, 현재 삼성은 그저 위탁생산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2014년 기준으로 전세계 AP(Application Processor, 중앙처리장치에 해당되는 모바일 기기의 핵심 부품) 시장의 52.9%를 차지하고 있는 '퀄컴(Qualcomm)'을 넘어서기 위한 장기적인 투자에 발 벗고 나서는 건 어떤가? 마치 소니나 애플을 따라잡기 위해 긴 시간 노력했듯이 말이다.

 

어차피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구글이나 애플을 이길 수 없다면, 나름 삼성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부품 분야에 집중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스마트폰 완제품 시장에서는 이미 1등을 해봤으니, 스마트폰 핵심부품 시장에서 삼성이 PC 부품 시장의 '인텔(Intel)'과 같은 존재가 되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어쨌든 전체 스마트폰 시장을 애플과 중국업체들이 양분할 게 뻔한 상황에서, 2015년은 삼성에게도 굉장히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