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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자동차가 불러올 혁신의 진정한 의미

도로 교통의 미래에서 무인자동차는 일부분, 전체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1월 6일부터 9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 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열리고 있다.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CES에서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과 함께 올해 가장 주목을 받는 분야는 바로 '무인자동차'다. 가전전시회에 왠 무인자동차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자동차는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과 결합해 가전제품화 되어 가고 있다. 바야흐로, 사물인터넷을 통한 '스마트홈'과 무인자동차의 '스마트카'가 (스마트폰 이전과 이후처럼)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날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인자동차를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동운전 차량(또는 자율주행 자동차)'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단순히 차 안에 사람이 없다는 뜻의 '무인(無人)'이 아니라 실제 주행을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벌써 구글에서는 완전히 컴퓨터로만 운행하는 콘셉트의 자동차(핸들, 가속페달, 브레이크와 같은 기본 조작장치가 아예 없다)를 작년에 공개한 바 있고, 이번에 CES에는 세계 유수의 완성차 업체들이 참가해서 최신의 무인주행 기술들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박람회 기간인 요즘 국내언론에서도 다수의 기사들이 나오고 있으며, SNS 상에서도 많은 얘기가 오간다.

 

[구글과 메르세데스벤츠의 무인자동차]

 

그런데 관련 기사들을 보면, 너무 무인자동차에만 집중한 나머지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설명해 놓은 글들이 많은 것 같다. 무인자동차 자체도 물론 흥미롭고 신기하지만, 일반 도로에서 무인자동차가 제대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전체 매커니즘에 대한 설명이 없으면 괜한 오해를 불러오기 십상이다. 이런 기사들의 댓글에서도 '신호등을 어떻게 인식하냐?'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물음부터 시작해, 작은 오해에서 출발한 댓글이 점점 더 커져서 '교통법규 안 지키는 한국에서는 매일 사고 나겠다'라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물론, 지금 당장 무인자동차가 상용화 되기에는 기술적으로 또 법적·제도적으로 무리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무인자동차가 가져올 파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당연히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가 필수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인자동차 기술은 현재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공용도로 위의 시험운행을 진행하고, 관련 기술 여러 개가 이미 신차에 적용되고 있다. 자동차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히 관련된 문제인 만큼, 이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나온 여러 정보와 기사들을 나름대로 종합해서, 무인자동차가 불러올 혁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좀 정리해보고자 한다.

 

 

세 가지 쟁점: 교통체증, 운전자, 그리고 교통사고

 

무인자동차를 본격적으로 논하기에 앞서, 우선 몇 가지 얘기를 잠깐 하고 넘어가는 게 도로 교통의 미래에 관해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는 데에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맨 먼저, 교통체증은 왜 생길까? 보통 이 물음에 대해서 사람들은 취약한 도로 사정이나 특정한 운전자의 잘못을 떠올리겠지만, 실제로 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관련 연구 결과, 교통체증의 대부분은 '다수의 평범한 운전자들' 때문에 발생하는 거라고 한다. 예를 들어 운전자들이 자동차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못한다거나, 병목지점을 앞두고 지나치게 일찍 한쪽 차선으로 몰린다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인간이 직접 운전을 하는 한, 교통량 자체가 현저히 적은 도로가 아니고서야 교통체증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인 셈이다.

 

그렇다면, 운전자에게 보다 정확한 정보와 신호만 주면 교통 상황이 금방 나아질까? 이 문제와 관련해 상당 부분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는데, 바로 FedEx · DHL과 함께 세계적인 물류회사로 손꼽히는 UPS의 택배기사 관리시스템이다. 이 회사는 택배기사들이 움직이는 모든 동선과 모든 도로를 데이터로 남기고, 택배기사는 항상 작은 컴퓨터를 들고 다니며 배송상황을 기록한다. 매일같이 수십 군데 배송을 책임지는 택배기사의 트럭에는 수많은 센서가 장착되어 있으며, 모든 운전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데이터센터로 전송되는 것이다. 이렇게 구축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UPS는 가장 효율적인 배송방법을 고안해냈고, 그 내용은 항상 택배트럭 운전자에게 전달된다. 그랬더니 실제로 배송시간이 줄어들었고, 택배기사들이 하루에 배달하는 택배의 개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한마디로 운전자를 통제할 수 있다면(이와 동시에, 위와 같은 감시를 운전자들이 과연 받아들일까 하는 쟁점도 있다), 그 이동의 결과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사례는 UPS 택배기사들에 관한 것이지만, 만약 도로 위의 모든 운전자들에게 이걸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관련 데이터를 차량에 부착된 컴퓨터로 전송하고 아예 이 컴퓨터가 직접 운전을 하게 만들면? 다른 게 아니라, 이게 바로 자동주행 차량이다. 이런 식으로 컴퓨터가 운전을 하게 되면, 자동차의 속도는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되고 병목지점을 앞두고서는 가장 적절한 시점에 차선변경을 시도할 테니, 교통체증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인자동차가 시판되면, 차량 운행으로 먹고 사는 '직업 운전자'들은 어떡하나?

 

게다가, 무인자동차 운행 중에 사고가 발생해서 다른 사람이 다치거나 죽으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할까? 차량제조사와의 분쟁은 일단 차치하고, 민사상 책임은 어쨌든 차량 소유주에게 돌아가겠지만, 형사상 책임을 논하자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현행법상 컴퓨터를 범죄혐의로 기소할 수는 없을 텐데, 무인주행장치가 부착된 자동차에 사고를 당한 사람은 과연 가해자를 누구로 지목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무인자동차가 공용도로를 달리다가 사고가 났을 때, 이를 접하는 다른 운전자나 행인들이 느낄 공포심은? 일단 이런 문제들은 뒤로 넘기고, 무인자동차 자체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

 

 

자동차만의 변화가 아닌, 전체 도로 교통시스템의 변혁

 

이제까지 자동운전 차량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그저 자동차의 변화에 대해서만 주목하기 쉬운데, 사실 무인자동차가 불러올 혁신은 이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지금은 자동차가 그냥 단일 개체로 운행되지만, 미래의 자동차는 모두 네트워크의 일부로서 움직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개별 자동차 한 대 한 대가 모두 교통시스템의 일부로 통합된다는 뜻이다. 교통상황이 중앙 통제센터에서 각 차량에 즉각 전달되고, 이 자동차는 탑승객의 목적지로 가장 안전하고 빠르게 가는 방법을 실시간으로 탐색할 것이다. 그러니 신호등을 따로 인식한다기보다는, 차량과 교통 신호체계가 항상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UPS 데이터센터와 택배트럭이 매일 정보를 교환하듯이, 해당 도시의 교통 통제센터와 각 무인자동차가 계속해서 신호를 주고 받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도로 자체도 아마 현재와는 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작년에는 '태양광 도로(태양광 패널이 이식된 육각타일로 도로를 포장하는 기술)'가 공개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재작년에는 뉴욕시가 도시 곳곳의 도로에 퍼져있는 맨홀을 이용해서 무선으로 전기자동차를 충전시키는 실험 계획을 발표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기술들은 단순히 도로에서 태양광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한다거나, 맨홀을 이용해 차량을 충전시킨다 정도로 끝나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이런 도로들은 그 위를 운행하는 자동차와 곧바로 연결되어 각종 데이터를 교환하며, 도로상황이나 표지판과 같은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갱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다. 결국, 이 도로 위의 무인자동차들과 교통 통제센터가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다.

 

[태양광 도로의 이미지 사진(출처: Solar Roadways)]

 

물론 이렇게 전체 시스템이 완성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릴 테고, 건설비용 확보나 관련 법규 개정에도 많은 진통이 따를 것이다. 일례로, 작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통국이 각종 테스트를 위하여 시험운행 중인 자동운전 차량의 '무인자동차 면허'에 관해 발표한 주요 요건은 다음과 같다.

 

- 무인자동차 제조사의 정해진 직원들만 신청할 수 있다.
- 적어도 5백만불의 대인, 대물 보험에 들어 있어야 한다.
- 테스트 운전자는 언제나 즉각적으로 차를 콘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 테스트 운전자는 운전 경력 3년 이상 면허 소지자로, 1점 이상의 벌점이 없어야 하고, 상해사고 기록이 없어야 한다. 또한 지난 10년간 음주운전 경력이 있는 운전자는 제외된다.

[출처: 테크니들(http://techneedle.com/archives/16494)]

 

아직은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극소수 기업들만의 문제지만, 자동운전 차량의 시판 계획이 구체적으로 잡히면 아마 굉장한 논쟁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체 도로 교통시스템이 무인자동차와 통합되기까지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텐데, 전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그 전에 미리 자율주행 차량을 앞다퉈 시장에 내놓을 게 뻔하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법규들은 어쨌든 정비되겠지만, 자동주행장치를 보유한 운전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구입을 원하는 이들은 당연히 요건이 완화되길 바랄 테고, 그외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아직은 믿을 수 없는 무인자동차에 맡기길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인자동차 자체가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사태는 훨씬 더 심각해진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직업 운전자들은 자동주행 차량의 등장에 당연히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출발지와 도착지가 사전에 확정되어 있고, 운송시간이 곧 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일반 자가용보다 화물 트럭에 무인주행장치가 먼저 적용될 수도 있는데, 산업적으로 보면 이건 어마어마한 파장을 몰고올 수밖에 없는 문제다. 어쩌면 10~20년 안에 무인트럭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컴퓨터가 운전하는 고속버스를 우리가 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스마트폰이 바꿔놓을 세상을 우리가 잘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자동차의 미래, 우리의 선택

 

앞에서 UPS의 택배기사 관리 시스템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곳의 노동조합은 회사와 협상을 할 때 회사가 직원들을 추적하는 방식도 협상한다고 한다. 그래서 UPS는 데이터에만 의존해서 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는 없으며,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데이터를 수집할 수 없다. 또, 택배기사들이 하루에 배달하는 택배의 개수가 늘어나면 그 만큼 더 보상을 받는다. 무인트럭과 관련해서도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이와 비슷한 조건을 제시할 수는 없을까? 어차피 화물을 싣고 내릴 때나 주차할 때 · 돌발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누군가 사람이 필요할 텐데 직업 운전자들이 연대해서 이 일을 확보한다면, 자동주행장치가 오히려 트럭 운전자들의 근무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교통부는 2020년 쯤에는 무인자동차가 상용화 단계에 진입할 걸로 보고 있다는데, 그래도 역시 운전자는 필요하다. 물론 거의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게 되겠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여전히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기계만 덩그러니 있는 것보다는 그래도 안에 사람이 타고 있는 게 상대적으로 덜 공포스럽지 않겠는가? 게다가 법적으로도 이렇게 하는 게 무인자동차 사고 처리에 훨씬 더 수월할 테고, 책임소재 규명에도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무인자동차가 생겼다고 해서 기존의 트럭 운전자들을 당장 실업자로 만들어 버리거나, 원가절감을 이유로 위험한 산업현장에서 무조건 무인주행장치에만 의존한다면, 이건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인간에게 독이 되는 경우가 아닐까? 사실 무인자동차와 전체 교통체계가 완전히 통합되고 지형과 도로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마침내 인간이 직접 운전하는 것보다도 자율주행장치가 더 안전하게 되는 시점이 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교통사고 자체가 드문 일이 될 테고, 무인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감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결국 무인자동차가 보여주는 청사진은, 운전이라는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세탁기가 없었던 과거에는 인간이 일일이 다 빨래를 해야 했지만, 현재는 그저 세탁기에 빨랫감을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된다. 운전도 이와 똑같아지는 것이다. 사람은 그냥 무인자동차에 타서 이동하는 동안 다른 일을 하고, 실제 운전은 컴퓨터가 하게 된다. 세탁기를 사용함으로써 인류가 세탁에 쏟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듯이, 자동주행장치를 사용함으로써 높은 집중도가 요구되는 운전에서 해방되어 더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무인자동차가 불러올 혁신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