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 α

재즈 피아노의 매력, 피아노 트리오 음악 듣기

재즈 피아노 트리오, 관악기와 구별되는 피아노만의 다른 길.

재즈(Jazz)는 피아노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즈의 역사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래그타임(Ragtime, '흩뜨려놓은 리듬', 흑인의 리듬 개념과 역동적 연주법이 사용되는 초기 재즈의 연주 스타일, 흑인 피아니스트 '스콧 조플린(Scott Joplin, 1867~1917)'이 대표적인 래그타임 연주자이다)이고, 그것은 주로 피아노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초기 재즈 밴드에 피아노가 없었던 적도 있지만, 거의 모든 음악 장르에서 기타와 피아노를 애용하듯, 재즈에서도 피아노는 역시 중요한 악기다.

다만 Jazz에서는 트럼펫이나 색소폰 같은 강렬한 관악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대개 피아노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여타 장르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피아노가 연주되는 경우도 많다. 아무래도 관악기가 원초적인 강렬함으로 음악을 주도하다 보니, 그 자체가 관악기적인 접근 방식을 따라가며, 피아노 본연의 화려함보다는 상대적으로 약간 투박한 연주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교적인 클래식 피아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스타일의 연주가 좀 불만족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피아노는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갖는 것이며, 오히려 그것이 재즈 피아노만의 자유로운 매력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재즈 피아노가 이렇게 관악기적인 스타일로만 연주되는 것은 아니다. 피아노를 통해 재즈를 하는 이들 중에도 물론 탁월한 기량을 가진 이들이 많고, 테크닉적으로 서양 클래식 피아노의 유산을 두루 섭렵한 연주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통적인 피아노 테크닉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도, 분명 재즈적인 감성과 스타일로 이 악기를 연주하며 자기만의 개성과 열정을 유감없이 표현했다. 이런 재즈 피아니스트들은 관악기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특출한 재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독주자 쪽에 가까운 편이며, 빅 밴드보다는 트리오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관악기 위주의 재즈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재즈 피아노 트리오(trio, 세 명으로 구성된 밴드)의 연주를 추천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색소폰(saxophone, 목관악기)이나 트럼펫(trumpet, 금관악기) 소리는 좀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왠지 피아노(piano, 건반이 있는 타현악기)가 중심이 되는 재즈는 훨씬 편안하게 들으며 좋아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관악기보다 피아노 소리가 더 익숙해서 그런 것 같고, 피아노가 트럼펫이나 색소폰의 연주보다는 비교적 부드럽게 느껴져서인 듯하다.

[왼쪽부터 Art Tatum, Bill Evans, Keith Jarrett]


그래서, 이번 포스트에서는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연주를 3곡 정도 들어보려고 한다.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대표적인 세 명이 주도하는 연주를 들어볼 텐데, 그렇다고 무조건 말랑말랑하고 듣기 편하기만 한 곡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나름대로 생각하기에 재즈 피아노라는 전체적인 그림에서 어느 정도 맥락을 가질 수 있는 작품들을 선택했고, 그러다 보니 단순히 '듣기 좋은' 피아노 연주곡이라기 보다는 '탁월한 재즈' 피아노 연주곡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래에 소개되는 곡들은 분명히 뛰어난 작품들이며, 제대로 듣는다면 정말 괜찮은 경험이 될 것이다. 어쨌든 관악기와는 다른 식으로 듣기 편한 재즈 피아노 곡인 것은 분명해 보이니, 지금부터 훌륭한 피아니스트 Art Tatum, Bill Evans, Keith Jarrett의 연주를 들어보자.

- Art Tatum Trio

Art Tatum - Indiana

[The Complete Capitol Recordings of Art Tatum (1949~1952)]


Slam Stewart (bass)

Everett Barksdale (guitar)
Art Tatum (piano)

아트 테이텀(Art Tatum, 1909~1956)은 그 이전의 재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천재적인 테크닉을 가진 연주자였으며, 위대한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에 비견될 정도의 비르투오소(virtuoso, 표현기술이 특별히 뛰어난 기악 연주자)였다. 'King of Ragtime' 스콧 조플린(Scott Joplin)이 가장 초기에 피아노 연주자로서 큰 족적을 남긴 이후, 아트 테이텀은 많은 재즈 피아니스트들에게 계속 큰 영향을 끼쳤던 스승과도 같은 존재이며, 관악기에 기대지 않는 재즈 피아노의 전범을 세운 인물이다. 반주가 아닌 솔로 피아노의 기교를 강하게 표출했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기량을 바탕으로 트리오 연주도 즐겼다.

[수입] The Definitive Art Tatum - 10점
Art Tatum/Blue Note


Art Tatum Trio의 Indiana를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피아니스트가 완전히 주도권을 잡고 작품 전체를 리드하고 있으며 베이시스트와 기타리스트가 다른 한 편에서 곡의 밑바탕을 채우고 있다. 아트 테이텀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라운 테크닉을 보여주고 있는데, 마치 각각의 음들이 모두 생생하게 살아서 날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전반적으로 피아노가 베이스나 기타를 압도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으며, 이 때까지는 재즈 피아노 '트리오'로서의 자체적인 완성도에 대해서는 좀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이전 세대의 래그타임 거장들처럼 무반주 솔로를 선호했던 Art Tatum을 포함해서, 나머지 두 악기 연주자들 역시 이런 재즈 피아노 트리오와 같은 연주 형태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뤄내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 미숙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Bill Evans Trio

Bill Evans - Someday My Prince Will Come

[Portrait In Jazz (1959)]

Scott LaFaro (bass)
Paul Motian (drum)
Bill Evans (piano)

아트 테이텀이 전위에서 새로운 연주 방식에 대한 담금질을 시작한 지 약 8년 뒤에 드디어, 피아노 트리오를 진정으로 완성시키는 재즈 연주자들이 등장한다. 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재즈 피아니스트는 빌 에반스(Bill Evans, 1929~1980)였고, 자신의 바로 앞 세대인 Art Tatum의 혁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는 아트 테이텀과 마찬가지로 탁월한 기량을 가진 연주자였으며, 하드 밥의 중심에서 활동한 극소수의 백인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다른 하드 밥 피아니스트들과는 달리 아주 섬세하고 감성적인 스타일을 가진 음악가였다.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한 빌 에반스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했고, 현재까지 가장 위대한 재즈 피아니스트 중에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수입] Bill Evans Trio - Portrait In Jazz [24-Bit Remastering] - 10점
빌 에반스 트리오 (Bill Evans Trio) 연주/Fantasy


1. Come Rain or Come Shine

2. Autumn Leaves
3. Witchcraft
4. When I Fall in Love
5. Peri's Scope
6. 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
7. Spring Is Here
8. Someday My Prince Will Come
9. Blue in Green

Bill Evans Trio의 [Portrait In Jazz (1959)] 앨범은 재즈계의 스테디셀러이자 불후의 걸작으로 남아 있으며, 재즈 입문자와 마니아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필청 음반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곡들이 담겨 있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연주곡들로 채워져 있다. 그 중 한 곡인 Someday My Prince Will Come을 들어보면 50년대 초 아트 테이텀 트리오와는 달리, 피아노 외의 두 악기가 단지 보조적인 역할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일정한 주도권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베이스와 기타가 아닌 베이스와 드럼으로 구성되며 서로 균형을 맞추고 있고, 이런 편성은 이후 대다수의 재즈 피아노 트리오에서 채택하게 되면서, 비로소 관악기에 의존하지 않는 재즈 트리오의 완성형이 출현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 Keith Jarrett Trio

Keith Jarrett - Life between the Exit Signs

[Life Between the Exit Signs (1967)]

Charlie Haden (bass)
Paul Motian (drum)
Keith Jarrett (piano)

현존하는 재즈 연주자들 중에 가장 광범위한 인기를 얻고 있는 이가 누구일까? 감히 말하건대,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Keith Jarrett, 1945~ )을 첫 손가락에 꼽겠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엄청난 인지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제일 비싼 개런티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키스 자렛이 처음으로 리더로서 앨범을 발표한 해는 빌 에반스가 [Portrait In Jazz (1959)] 앨범을 발표한 지 8년 뒤인 1967년이다. Keith Jarrett은 당시에 Bill Evans를 존경했으며, 불의의 사고로 Scott LaFaro가 죽은 뒤 흩어진 완벽한 트리오의 남은 한 사람 Paul Motian과 함께 자신이 리더인 피아노 트리오의 데뷰 음반을 녹음한 것이다. 여기에 참여한 또 다른 한 사람은 나중에 팻 매스니(Pat Metheny, 1954~ )와도 같이 공연하게 되는 걸출한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 1937~ )이었다.

Keith Jarrett - Somewhere Before Anthology The Atlantic Years 1968-1975 (2CD) - 10점
키스 자렛 (Keith Jarrett) 연주/워너뮤직코리아(WEA)


물론 현재의 Keith Jarrett Trio는 개리 피콕(Gary Peacock, 베이스)과 잭 드조네트(Jack DeJohnette, 드럼)로 구성되어 있고 역시 현존 최고의 재즈 피아노 트리오로 인정받고 있는데, 이런 키스 자렛 트리오는 출발부터 남달랐던 것이다.
<지금 각종 포털사이트에는 Keith Jarrett, Gary Peacock, Jack DeJohnette의 앨범 목록을 클릭하면 68년에 나온 [Somewhere Before] 음반이 나오는데, 이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사실, 이 때는 Keith Jarrett, Charlie Haden, Paul Motian이 Atlantic Label에서 트리오로 활동했던 때였고, 현재의 키스 자렛 트리오가 만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 1943~ )의 ECM(Edition of Contemporary Music) Records에서 정식 트리오로서 앨범을 내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1983년부터이다>
아무튼 빌 에반스 트리오의 영향은 키스 자렛으로 전해졌고, 이후에 구성원이 바뀌기는 했지만 원숙한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명맥은 현재까지도 키스 자렛 트리오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이상으로,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전범을 만들었던 아트 테이텀 트리오부터 시작해서, 그 8년 뒤에 재즈 트리오의 완성형을 보여준 빌 에반스 트리오를 거쳐, 또 8년 뒤에 그대로 명맥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최고의 피아노 트리오로 활동하고 있는 키스 자렛 트리오까지 다 살펴보고, 그들의 음악을 하나씩 들었다. 결국, 재즈 피아니스트의 계보도 Art Tatum에서 Bill Evans 그리고 Keith Jarrett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며, 이들의 행보가 곧 재즈 피아노 트리오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밖에 비가 많이 온다. 부디, 좋은 재즈 트리오 연주곡과 함께 평안한 나날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