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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자유 민주주의· 필요할 때만 '자본주의 시장경제', 비정상국가 대한민국의 현실.

 

2014년 2월 6일, 우리는 언뜻 보면 다른 듯하지만 결국엔 같은 장면 두 개를 동시에 보게 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6일 공직선거법 위반 및 직권남용 등으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나 증인들의 증언 등 간접사실로 김 전 청장이 실체를 은폐하고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허위수사발표를 지시했다고 보기엔 부족하다"고 밝혔으며, 권은희 전 수사과장의 진술에 대해서도 "진술의 상당 부분이 다른 증인의 진술과 배치되고 오히려 권 증인의 증언이 객관적 사실관계와 어긋나는 것이 많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또 하나, 6일 현재 개봉영화 가운데 예매율 1위 · 전체 영화 중 예매율 3위를 기록하고 있는 <또 하나의 약속>이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들의 외면 속에 개봉했다. 전국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상영관은 100여 곳이 채 안 되며, 방송 3사 영화 프로그램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이 작품을 아예 소개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실화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약속>은 갑작스런 상영관 축소와 대관 취소에 시달리고 있으며, 흔히 말하는 주류 언론들은 이 영화의 외압 논란을 약속이나 한 듯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이 두 장면이 한국 사회의 참담한 수준을 어떻게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충격적이지만 이미 예견된 무죄, 일시적인 잘못이 아니라 지속적인 타락인 이유

 

법원이 김용판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야권과 법조계는 한목소리로 재판부를 질타하고 나섰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결과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고 전문가들도 대부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될 만큼 그 정도가 좀 심한 것뿐인데, 기본적으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도대체 왜 그런지, 지금부터 하나씩 정리해 보도록 하자.

 

2013년 6월, 채동욱 전 검찰총장 하에서 검찰은 김용판을 기소할 당시 '구속 의견'을 냈다. 그런데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나서서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이런 법무부와 검찰의 충돌이 언론에 자세히 보도되기도 했다. 결국 법무부의 의지가 관철됐으며, 이는 곧바로 청와대의 개입 의혹으로 불거졌다.

[2005년에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X파일 당사자들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모두 불기소 처리하는 한편, 이를 보도한 이상호 기자와 노회찬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장본인이 바로 황교안 검사다. 결국 노회찬은 의원직을 상실했고, 이상호는 MBC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9월 초, 소위 말하는 보수 언론으로부터 갑자기 '채동욱 혼외자 보도'가 터져 나왔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1999년 한 여성과 만나 2002년 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아 기르고 있다는 기사였고, 법무부는 이걸로 채동욱을 감찰하겠다고 나섰다(관련 보도에 따르면, 이때는 감찰관 부재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누군가 아이의 개인 기록을 불법 열람했고 이것 자체가 현재 검찰의 수사 대상이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다시피 채동욱은 이미 물러났고, 이는 정권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했다는 의혹으로 번질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10월, 검찰의 국정원 사건 특별수사팀장인 윤석열 검사와 조영곤 전 서울지검장이 정면충돌했다. 황교안과 채동욱처럼 조영곤과 윤석열도 외압 의혹 때문이었고, 채동욱이 옷을 벗었듯이 윤석열도 끝내 수사팀에서 배제됐다(지금은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다. 수사팀 부팀장이었던 박형철 검사는 난데없이 지방으로 발령이 났고, 함께 수사를 하던 평검사들마저 해체됐다. 법조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공소유지가 제대로 될리가 없다"는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6일의 재판 결과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론인 셈이다.

 

자, 김용판 전 청장을 구속시키려던 검찰총장과 특별수사팀장과 수사팀이 모두 국정원 수사에서 배제됐다. 아니 단순히 배제된 정도를 넘어서 한마디로 아예 박살났다. 누구는 그만뒀고, 누구는 징계받았으며, 누구는 지방발령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는 김용판이 유죄를 받는다는 게 오히려 더 신기한 일 아닐까? 이건 대한민국 사법부의 일시적인 잘못이 절대로 아니다. 수개월 간 계속 이어진 타락이고, 검찰에 이어 법원마저 권력에 완전히 무너졌다는 걸 뜻한다. 그러면 사법부 전체가 권력에 종속됐다는 말인데, 이게 과연 정상적인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한국은 이제 삼권분립, 사법부의 독립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이미지 출처: Guardian 누리집 기사 화면 갈무리]

 

자기검열과 외압, 시민들의 정신까지 오염시키고 있는 삼성의 공화국 지배

 

2월 6일 개봉된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사망 실화를 다룬 영화이고, 이 영화의 배급사는 당초 300개관을 목표로 배급을 진행했다고 한다(<부러진 화살>이 245개관, <남영동 1985>가 308개관에서 개봉했단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달랐다. 채 100개가 안 되는 상영관을 확보했을 뿐이며, 한국의 주류언론과 방송3사 영화프로그램에서는 소개조차 되지 않고 있다(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현지시각 5일에 이 작품을 온라인판 머리기사로 다뤘다). 이게 왜 심각한 문제인지, 지금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1월 22일 개봉한 <수상한 그녀>는 예고편 조회수가 90만 건이었고(관객수 450만 돌파), <또 하나의 약속> 예고편 조회수는 100만 건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대중들의 관심이 높았다는 말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서 2014년 2월 6일 현재박스오피스 1~2위를 다투고 있는 <겨울왕국>(1월 16일 개봉)과 <수상한 그녀>는 둘 다 700개 정도의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다. 실제로 이 두 영화가 2월 7일 실시간 예매율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또 하나의 약속>이 실시간 예매율 3위다. 그런데, <또 하나의 약속> 스크린수는 겨우 150개 정도에 불과하다.

 

보통 박스오피스 10위권 내에 드는 다른 영화들의 평균 스크린수는 300개 쯤이고, 박스오피스 10위인 <조선미녀삼총사>도 스크린수가 200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보다 더 중요한 상영횟수는 <수상한 그녀>와 <겨울왕국>이 3000회가 넘는 반면, <또 하나의 약속>은 650회에 그친다. 같은 날 개봉한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의 스크린수는 350개가 넘고 상영횟수는 1700회 이상이다. 그러니 개봉영화 가운데 예매율 1위 · 전체 영화 중 예매율 3위를 기록한 <또 하나의 약속>보다 스크린수나 상영횟수가 2배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위에서 말했듯이, <또 하나의 약속>은 상영관 축소와 대관 취소가 이어지고 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지방의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이 대관 확정일 이틀을 앞둔 지난 5일 롯데시네마로부터 돌연 대관 불가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또 서울대로스쿨 인권법학회 학생들도 롯데시네마에서 단체 관람을 하는 것으로 3일 확정했었으나, 4일 오전 사과 인사와 함께 상영 취소 연락을 받았단다. 배우 팬클럽 멤버들도 대관 신청을 하고 두 시간 후에 취소 결정을 통보 받았고, 다른 극장체인 메가박스는 영화 개봉을 이틀 앞두고 상영관수를 15곳에서 3곳으로 대폭 줄이기도 했다(메가박스 일부 상영관은 예매를 마친 관객들한테 '상영 취소'를 통보하고 환불 조처까지 했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2월 7일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 통합전산망 누리집 갈무리]

 

만약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또 하나의 약속>은 스크린수나 상영횟수가 크게 늘어나야 한다. 그게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에 부합한다. 하지만 대관 취소와 상영관 축소가 이어지고 있으며, 대중들은 이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왜, 극장들은 예매율도 높고 대관 신청도 계속되는 영화의 상영을 꺼리고 있을까? 게다가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대중의 관심이 높은 이 영화를 다루지조차 않고 있다. 사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은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 당시와 거의 똑같다. 그때도 출판사들은 출간을 거부했고, 신문사들은 광고를 마다했다.

 

자,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삼성을 생각한다> 역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았고, 결과적으로 15만 부 넘게 팔렸다(출판사도 제법 돈을 벌었다고 한다). 하지만 책을 출간하겠다는 출판사는 없었고, 가까스로 출간된 책은 광고비를 줘도 광고 자체를 할 수 없었다. 그 많은 출판사들이 다 이 책이 팔릴지 몰랐을까? 절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삼성에 겁을 먹고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럼 광고를 마다한 신문사들은? 물론 알게 모르게 외압이 가해졌을 수 있지만, 전부 다 외압이 직접적 원인은 아닐 것이다. 이것도 '알아서 기는' 것이다. <또 하나의 약속>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기검열과 외압 사이에서, 돈을 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영을 꺼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영화가 제작되고 개봉되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오로지 개인 기부금과 크라우드 펀딩만으로 제작된 첫 한국영화라고 한다. 제작 과정부터 굉장히 어려웠고, 개봉한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부러진 화살>이나 <남영동 1985>보다 더 어렵게 제작됐고, 개봉관수도 더 적다). <또 하나의 약속>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찍으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안 될 거야'였단다. 이미 한국 사회는 일개 사기업일 뿐인 삼성의 힘을 무서워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에서 너무나 당연한 이익 추구 활동마저 포기할 만큼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삼성의 공화국 지배는 시장경제 원리를 따르는 일반 시민의 합리적 정신까지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는 셈이다.

 

 

비정상국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권은희와 <탐욕의 제국>

 

이제 정상적인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삼권분립 · 사법부의 독립이 완전히 무너졌고, 시민들은 사익 추구도 마다할 정도로 일개 재벌 대기업의 힘에 공포를 느낀다. 외국 언론도 온라인판 머리기사로 다루는 한국 영화를 우리 언론은 아예 외면하고, 정권은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은 대놓고 찍어낸다. 어쩌면 채동욱과 윤석열이 당했듯이, 권은희 수사과장 역시 무사하긴 힘들지도 모른다.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사태처럼 <또 하나의 약속>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시련을 당하고 있으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편한 시간에 용이한 장소에서 이 영화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말로만 '자유 민주주의' · 필요할 때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외치던 대한민국은 끝내 이렇게 추락하고 말았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근본적인 얘기들은 일단 차치하고, 여기서는 그래도 좀 구체적인 말을 해보자. 전에도 관련 포스트에서 말했듯이, '특별검사제' 자체가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이제까지 여러 특검이 있었지만 결과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별 검사를 임명해봐야 그놈이 그놈이었고, 어떻게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무력화되기 일쑤였다. 게다가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검찰총장과 특별수사팀장까지 찍어내는 판국에,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별검사라고 별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검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의 현실만 보면 특검에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현재까지 드러난 내용보다는 더 많은 부분을 밝혀낼 수 있으며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어떤 사건이든 수사 착수는 빠르면 빠를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당장에라도 특검 실시는 꽤 의미가 있고, 경찰보다는 검찰의 수사결과가 더 나았고 아마 검찰보다는 특검의 수사결과가 조금이라도 더 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정권 출범 1주년(2월 25일)을 앞두고 한동안 국민들의 관심도가 낮아진 이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서, 반드시 관련자들을 다시 무대 중앙에 세워야만 한다. 그래야 자유 민주주의의 파괴에 대해서 우리가 절대 무관심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수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약속>은 우리들 각자가 좀 불편하더라도, 제발 극장에 가서 보자. 물론 애써서 찾아보지 않으면 가까운 상영관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을 테고, 교차 상영 등으로 인해 관람 가능한 시간을 맞추기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극장에 가서 봐야, 한국 사람들이 삼성의 노예가 아니란 걸 보여줄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변호인>보다 <또 하나의 약속>이 더 큰 의미가 있다. 이미 <변호인>은 정치적인 의사표명이 어느 정도 완료된 상태이고, 이제부터는 <또 하나의 약속>을 통해 경제적인 의사표명을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가 하나 더 있다. <탐욕의 제국>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써, 삼성 반도체 피해자들이 삼성으로부터 산업 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을 기록한 작품이다. <탐욕의 제국>은 지난 2012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다큐멘터리 옥랑문화상, 관객상과 전주국제영화제 관객상을 받았고, 2013년 인천여성영화제 초청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가 3월 6일에 개봉하는데, 어쩌면 극영화인 <또 하나의 약속>보다 정상적인 개봉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천안함 프로젝트>도 다큐였다). 그러니까 2월에는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 3월에는 <탐욕의 제국>을 찾아서 보면 된다. 우리들 각자가 이렇게 직접 나서서 움직이지 않으면, 한국은 절대로 비정상국가 상태를 벗어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존재는 바로, 권은희와 <탐욕의 제국>이다!

 

The Story of ART

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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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넛메그 2014.02.09 2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봉 후에도 평이 기대보다 좋은 편이더라고요.
    너무 목적의식에만 편중되면 관객의 반응도 떨어지기 마련인데,
    작품성과의 비율도 적절히 배합했나봅니다.
    그러면 악조건이어도 흥행에 실패할 이유가 없죠.
    한 번 보고 확인해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