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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요리와 미국식 사랑의 섬세한 레시피, 니콜모니스 [칸지의 부엌]

원제 [The Last Chinese Chef], Nicole Mones 지음, 최애리 옮김, 도서출판 푸른숲.

 

중국이든 미국이든 그리고 한국이든, 우리네 사는 세상은 결국 다 비슷한 경우가 많다. 겉모습은 좀 달라보일지라도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의도가 서로 통하는 것이고, 주변 환경에 따라 해결방법은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본적인 욕구가 유사하기 때문에 그 원인을 알고 나면 대부분은 이해 가능하다. 비록 문화적 학습과 개인적 취향으로 인해 호불호는 나눠질 수 있을지언정,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한 웬만한 상호작용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전세계적으로 매일 인터넷을 사용하고 해외여행이 빈번한 상황이라면, 예전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상대방의 문화를 알 수 있고 또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도 21세기에는 여러 문화가 혼용된 예술작품들이 점점 더 많이 출현할 테고, 전지구적인 다문화화는 차츰 그 위력이 더해지며 각 국가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걸로 보인다.

 

하지만 인간만사 모든 것이 다 장단점이 있듯이, 이런 상황 역시 동전의 양면이 있다. 모국어뿐만 아니라 외국어도 유창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의 이면에는 소수언어의 소멸이 있고, 문화산업적으로 패권을 가진 몇몇 국가의 문화상품들이 전세계인의 공감을 얻고 있는 그 이면에는 각 지역의 독특한 문화들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문제가 있다. 어차피 문화예술은 독창성으로부터 그 중요한 생명력을 얻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렇게 차별성을 가진 문화 자체가 없어진다는 건 굉장히 치명적인 단점인 것이다. 또한 국제이주기구(IOM,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에 따르면, 2005년을 기준으로 세계 인구의 35명 중 1명이 자신의 국적이 아닌 국가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여러 가지 다양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는 것 역시 무시하지 못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제노포비아(xenophobia, 악의가 없는 상대방을 단지 자기와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경계하는 심리상태, 외국인 혐오증)가 등장하며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폭력성이 분출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외국인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멸시하는 풍조가 일부 있는 게 사실이다. 다문화사회에 대한 반감의 주요 원인이 되는 단일민족사상의 허상이 이미 다 드러난 마당에, 이와 같이 극도로 부정적인 세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화인류학자들이 "지구상에 순수혈통의 단일민족이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민족은 과학적으로도 단일민족이 아닐 뿐더러 우리가 역사적으로 단일민족사상을 갖게 된 것도 겨우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오늘날과 같은 순혈주의적 단일민족사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단일민족사상 역시 지극히 비정상적인 시기였던 일제강점기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아무튼 전지구적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다문화화는 인류 생활양식의 전반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고, 이제까지 우리가 가져왔던 생활방식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이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물결이며, (산업혁명의 찬반과는 상관없이 산업화시대가 기어이 도래한 것처럼) 다문화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다문화시대는 분명한 우리의 미래로 다가올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과학기술의 발전은 여기에 촉매제가 될 테고, 미소 냉전시대 이후 세계 최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여전한 미국과 함께 양대산맥을 이루며, 이런 도도한 물결의 압박을 전방위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중화사상(中華思想)을 가진 중국이라고 하더라도 다문화와 관련된 갖가지 진통을 피할 수는 없을 테고, 세계 3대 요리(프랑스, 터키, 중국)로 손꼽히는 중국의 요리 역시 지금 이 순간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이러한 충돌과 수렴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리뷰할 미국 작가 '니콜 모니스(Nicole Mones, 1952~ )'의 [칸지의 부엌(원제: The Last Chinese Chef, 2007)]은 바로 이 시점에서 중국식 요리와 미국식 사랑의 만남을 흥미롭게 다룬 작품이며, 앞에서 좀 길게 살펴본 이와 같은 전체 사회의 흐름 속에서 그 창작 배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소설이다. 원래 제목인 '마지막 중국 요리사'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작품에는 중국 요리가 중심 소재로 등장하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소설에서 중국 요리가 차지하는 절대적인 비중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니콜 모니스라는 작가에 대해서 미리 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우리에게 생소한 Nicole Mones를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원제: Lost in Translation, 2003)]라는 영화에 관해 잠깐 얘기를 해야할 듯싶다. 너무나 유명한 영화 [대부(The Godfather)]의 감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1939~ )의 딸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 1971~ )가 연출한 이 영화는 국내에도 개봉해서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이었고 각본은 Sofia Coppola가 직접 썼으며 수많은 영화제에서 다수의 상을 받았다.

 

{나중에 확인된 바로는, 출판사인 푸른숲의 착오로 이 부분은 잘못 홍보가 된 것이라 한다. 니콜 모니스의 소설 [Lost in Translation]과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 [Lost in Translation]은 제목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작품이란다. 외국소설을 번역해서 출간한 회사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다니, 다음부터는 아무리 출판사의 공식 홍보라고 하더라도 따로 확인 작업을 재차 거쳐야 할 듯싶다}

 

니콜 모니스는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원작자인데, 그녀의 첫 번째 소설 [Lost in Translation(1999)]의 매력에 빠진 소피아 코폴라가 이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위에 작가의 나이를 보면 알겠지만, 첫 작품이 비교적 늦게 나온 편이다. Nicole Mones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졸업 후 중국으로 건너가 18년간 직물사업을 했다고 하는데, 이 기간 동안 틈틈이 써두었던 소설이 큰 주목을 받게 되면서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변신했다고 한다. 자, 18년간 중국에서 사업을 했단다. 이것만 봐도 미국인 니콜 모니스가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높을지는 쉽게 예상이 가능하다. 게다가, [Lost in Translation]의 출간 이후 1999년부터 중국 요리 칼럼을 기고하면서 중국 전역을 탐방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두 번째 소설은 무려 '중국 도자기'를 소재로 한 [A Cup of Light(2002)]라는 작품이었으며, 세 번째 소설이 바로 [The Last Chinese Chef]이다. 어떤가? 이만하면 웬만한 한국인보다 훨씬 더 중국을 잘 알 것 같지 않은가? 요리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니콜 모니스는 한마디로, 중국 자체에 대한 단순한 이해를 뛰어넘어 '중국 요리'에 관한 한 전문가인 셈이다.

 

 

이 서평의 제목을 '중국식 요리와 미국식 사랑의 섬세한 레시피'라고 정했는데, 미국인 작가가 중국 요리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이제 설명이 된 듯하고, 여기서부터는 이 작품의 또다른 축인 '사랑'에 대해서 좀 살펴보고자 한다. Nicole Mones는 '중국식 요리'에 대한 묘사를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건 일종의 situation(위치, 입장, 처지, 상황)으로 작품 속에서 역할을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충돌과 수렴을 반복하고 있는 중국 요리 자체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시추에이션을 반영하고, 규정하며,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소설이란 건 인생의 의미를 반추해보는 것일 텐데, 등장인물들이 가진 삶의 고민은 현재 중국 요리가 처한 혼란스러운 상태를 통해 그대로 표출된다. 여러 가지 다양한 중국 요리는 각 인물들의 희노애락을 묘사하고, 때론 골칫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위로가 되기도 한다.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이 말이 언뜻 이해가 잘 안 되겠지만, 지금부터 하게 될 character에 대한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식 사랑'이 바로 캐릭터를 통해 표현되고 있으니 말이다.

 

[칸지의 부엌(원제: The Last Chinese Chef)]에는 주인공 남녀가 한쌍 등장한다. 여자는 미국인이고, (니콜 모니스와 같은) 요리평론가이며,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40대 초반의 '매기 매켈로이'라는 중년 여성이다. 남자는 중국계 미국인이고, 중국 황실 요리 대가(황제의 숙수)의 손자이면서 자신도 요리사이며, 평생 미국에서 살다가 불과 몇 년 전에 중국 전통요리를 하겠다는 일념하에 중국을 찾아온 30대 후반의 '샘 량'이라는 미혼 남성이다. 이 두 사람은 미국이 아닌 중국에서 첫 만남을 갖는데, 여기에 각자 한 가지씩의 장애물이 출현한다. 매기에게는 죽은 남편을 향해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한 중국인들이 등장하고, 샘에게는 자기 가문과 자신의 성공이 걸린 요리경연이 등장하는 것이다. 미국인과 중국계 미국인, 요리평론가와 요리사, 과부와 연하남, 그리고 친자확인소송과 요리경연.. 매기와 샘은 중국 요리 앞에서 서로 얽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중국에서 친자확인소송에 휘말린 요리평론가 매기 매켈로이는 중국에서 요리경연에 나서야 하는 요리사 샘 량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주인공의 주변인물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듯한데, 먼저 매기가 중국에 온 뒤 함께 친자확인소송에 대응하게 되는 변호사 사무실 소속 인물들이다(죽은 남편은 변호사였고, 남편이 중국을 왔다갔다할 때 같이 일했던 동료가 베이징의 변호사 사무실에 있다). 그 다음은 샘이 중국에 온 뒤에 중국 전통요리를 배우기 위해 만나는 요리의 대가들과 친인척들이다(황궁 요리사였던 샘의 할아버지와 관련된 인물들이며, 젊었을 때 샘의 아버지와도 가까웠던 요리사들이다). 이 외에는 죽은 남편의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중국여성과 그 집안이 꽤 비중 있게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중국 사회의 현실과 나중에 밝혀질 진실을 밀도 있고 현장감 있게 표현하는 데에 상당히 효과적인 장치가 되고 있다. 어쨌든 전체 등장인물들은 대충 이 정도이고,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주요 갈등은 친자확인소송과 요리경연에서 발생한다. 중국에서 매기와 샘이 이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는데, 기본적으로 태생이 미국인지라(작가도 미국인이고, 주인공들도 미국 출신) 사랑 자체는 미국식에 가깝다.

 

앞서 말했듯 이 소설은 공간적 배경이 중국이고, 주인공 둘의 관계에서 매개체가 되는 것이 중국 전통요리다. 이 작품에서 중국 요리는 그저 음식이 아니다. 남자주인공 샘 량의 정체성이자 목표이며, 중국계 미국인인 그가 전통을 철저히 깨우치면서도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야 할 중요한 가치다. 샘은 미국에서는 중국인으로 취급을 받았고, 중국에서는 외국인으로 간주된다. 중국 현지인들보다 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황실요리를 하지만, 정작 중국 본토에서는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문화혁명을 거치며 오랜 전통을 심각하게 훼손당한 중국 황실요리와 그 모습이 닮아 있고, 샘의 situation 자체가 중국 요리의 현재를 대변한다. 한편, 여자주인공 매기 매켈로이에게 중국 전통요리는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슬픔 속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치유의 약물이며, 샘이 해주는 요리는 삶에의 의지와 사랑을 되찾게 되는 신비로운 묘약이다. 미국 요리에는 없는 무언가가 중국 전통요리에는 있으며, 샘을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중국 요리도 알아간다. 미국인인 매기가 중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샘을 통해 중국 요리의 깊은 가치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매기가 샘과 사랑에 빠짐으로써, 중국 전통요리의 진정한 맛을 알아가는 situation은 다문화사회에서 중국 요리의 희망적인 미래를 대변한다. 어쩌면 이런 결론은 작가인 Nicole Mones의 중국 요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칸지의 부엌(The Last Chinese Chef) - 10점
니콜 모니스(Nicole Mones) 지음, 최애리 옮김/푸른숲

 

이상으로 니콜 모니스(Nicole Mones)의 소설 [칸지의 부엌(The Last Chinese Chef)]에 대해 나름대로 전반적인 정리를 해보았는데, 리뷰를 마치기 전에 개인적으로 좀 싫었던 점과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을 한 가지씩만 말하고 끝내려고 한다. 위에서 적었듯이 니콜 모니스의 첫 번째 소설이 영화화됐고 그것이 한국에 개봉을 했으며, 개봉명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였다. 소설이든 영화든 원래 제목은 [Lost in Translation]인데, 솔직히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제목은 작품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작가의 다른 소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니콜 모니스는 제목을 비교적 단순명료하게 짓는 편이다. 그런데 한국어 개봉명은 그렇지 못했고, 영화의 분위기와도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칸지의 부엌]도 마찬가지다. 대체 왜 이 작가의 작품만 이런 식으로 제목을 바꾸는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의 한국판 제목도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소설의 마지막 챕터 제목이기는 하지만, 사실 [칸지의 부엌]은 한국인에게 그 어떤 의미도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한다. '칸지'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일 텐데, 도대체 [칸지의 부엌]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봐도 소설 전체적으로 그렇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냥 원제인 '마지막 중국 요리사'로 하든가, 차라리 간단하게 '샘의 부엌'으로 하는 게 나을 뻔 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한국판 제목 빼고는 다 좋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건, 표지 디자인이었다. CD나 블루레이가 안의 내용물을 감싸는 외부디자인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는 데 반해, 책은 상대적으로 이런 부분에 신경을 덜 쓰는 듯하다. 기껏해야 표지 그림을 특색 있게 하든가 흔히 말하는 띠지를 더하는 게 고작인데, 이 책은 앞표지에 사선으로 절개를 하고 그것을 접어서 끼운 다음에 안쪽에 작품 속에서의 인상적인 문구를 넣었다. 여기에 더해, 그 뒷면에는 작가 소개를 하면서 테두리에 무늬가 들어간 종이를 덧대어 붙였다. 작은 부분이지만 심플하면서도 디자인적으로 신경 쓴 흔적이 보이는 게 썩 마음에 들었다. 아무튼 책 제목은 좀 불만이었지만 소설의 내용 자체는 상당히 재밌었고, 원문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번역도 특별히 이상한 건 없는 듯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바람은, 니콜 모니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소설도 출간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Lost in Translation]과 [A Cup of Light]도 꼭 읽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