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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사회의 한국인에 대한 21세기형 대답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단일민족사상을 극복하고 다문화사회의 능동적인 일원이 되어야 하는 이유.



제일 먼저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공유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듯하다.

- 2011년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23을 기록해서 전세계 222개 나라 가운데 217위를 차지했다.
- 현재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은 10년내에 실질적인 인구 감소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 현재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80만 명에 이르고, 2001년 이후 해마다 평균 1만 명의 외국인이 한국인으로 귀화하고 있다.
- 2011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전체 혼인의 11%가 국제혼인이며, 따라서 다문화가정 출생 자녀들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많이 놀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대한민국의 엄연한 현실이다. 좀 더 말하자면, 이미 2008년에 학교 교과서에서 단일민족사관은 폐기되었고 2009년부터는 그 자리를 다문화 교육이 대치했으며, 빠르면 2013년부터는 소위 '다문화사병'들이 국토방위의 최전선에 투입된다고 한다. 바야흐로 다문화가정 출신들도 이제는 명실상부한 '한국인'으로서 제대로 된 권리와 의무를 다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다문화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고, 정말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분명한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인데, 아무래도 이 사안은 우리 사회 자체의 기본적인 모습이 바뀌는 문제이다 보니 여러 가지 다양한 층위에서 일종의 불협화음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로, 이런 사회 갈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쪽은 바로 언론이다. 한국의 수많은 언론매체 중에서도 특히 <SBS 스페셜> 제작팀은 2006년과 2011년 두 차례([단일민족의 나라, 당신들의 대한민국(2006년 11월 5일 방송)], [당신들의 대한민국 2: 10대의 초상(2011년 2월 20일 방송])에 걸쳐 다문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번 포스트에서 소개할 책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는 두 번의 다큐멘터리 방송을 통해서 미처 다 전달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모두 정리한 것이며, 최신 자료를 바탕으로 2012년 3월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처음에 짧은 프롤로그와 파트1 '단일민족이라는 위험한 신화', 파트2 '당신들의 대한민국', 파트3 '여러분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짧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전문서적이 아니기에 쉽게 읽을 수 있고, 또 텔레비전 방송에서 출발한 책이기에 핵심적인 내용이 굉장히 명료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이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TV 시청을 통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순기능의 최대치를 도서의 형태로 재구성했으니, 아무래도 시간적 제약이 있는 다큐멘터리보다 더 많고 넓은 내용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자 그럼,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한민족은 단일민족인가?

 

SBS 스페셜이라는 방송의 특성상, 다문화사회를 조명하는 데 있어서 실제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에 대한 인터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비주얼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전달 방법이 당사자들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여러 '이방인'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제작진은 그들이 한국에 살면서 한결같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게는 특정 지점 즉 마지막까지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 단단한 벽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단일민족사상'이며, 2006년에 첫 번째 방송을 준비하면서 SBS 스페셜 제작팀은 이와 관련된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설문 내용은 '우리 민족을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는가?'이고, 조사 결과 62.5%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단일민족사상을 믿고 있는 것이다. 제작팀은 이 시점에서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 맞을까?" 또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사상'을 갖게 된 것은 놀랍게도 일제 식민 통치와 관련이 깊다. 책에서는 이것을 과학적,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논증하고 있으며, 주제 자체는 사실 좀 어려운 내용인데 그걸 무척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 놓았다. 무려 62.5%의 한국인이 믿고 있다는 단일민족사상의 허와 실에 대해서 이토록 간단명료하게 정리한 것만 해도 이 책의 존재 이유가 충분할 듯싶고, 조금이라도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역사적, 과학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팩트'들도 많고, 우리가 단일민족사상과 관련해서 이제까지 얼마나 맹목적이었는지를 금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수확이고, 한 발 더 나아가 실생활에서도 더 이상 단일민족사상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엄청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하지만, 문화인류학자들이 "지구상에 순수혈통의 단일민족이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닐 뿐더러, 우리가 단일민족사상을 갖게 된 것도 겨우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다른 콤플렉스와 마찬가지로, 단일민족사상 역시 지극히 비정상적인 시기였던 일제강점기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단일민족사상은 계속 유지되기보다는 앞으로 사라져야 할 이념인데, 위에서 말했던 한국사회의 '다문화화'는 단일민족사상을 극복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중요한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이주기구(IOM,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에 따르면, 2005년을 기준으로 세계 인구의 35명 중 1명이 자신의 국적이 아닌 국가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다문화화는 대한민국이나 일부 선진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유행이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인류 생활양식의 전반적 변화이고, 이제까지 인류가 가져왔던 생활방식 자체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21세기에 과학적으로 근거도 없고 역사적으로 정통성도 없는 단일민족사상으로 인해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한반도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 이웃인 이주민들을 차별한다면, 대한민국은 세계속에서 완전히 고립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폐쇄성과 배타성에서 벗어나 좀 더 열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단일민족사상에 내재해 있는 잡종 콤플렉스와 순혈주의를 극복하고 자민족 중심주의를 타파하며 다양성과 공존의 정신을 확대해 나가야만 한다. 이것이 인류의 보편적인 사상에도 맞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상에도 적합한 태도인 것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에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초상이 그대로 그려지는 부분들도 많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만날 똑같은 사람들하고만 같이 있으면, 자신들이 도대체 뭘 잘못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면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또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를 개선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말 좀 잘하면 친구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없어져요. 사라져요. 영어로 얘기 안 하면... 저한테 관심 있는 것보다는 영어에 대한 관심이 많으니까."

"사회 때문에. 백인 여자하고 같이 있으면 스스로 출세했다고 생각하죠, 자랑스럽게 여기고. 백인 우호주의니까 당연한 거고... 흑인하고 있으면 인생 실패했다고 생각할 거니까, 나도 기분 나쁘고 그 사람도 기분 나쁠 것 아니에요?"

"한국 사람들은 자기 나라보다 레벨이 높은 나라에서 온 사람한테 친절한 거가 많아요, 제가 보기에는. 나라가 가난하고 자기보다 못살면 얘기하는 것도 그렇고, 너무 차이가 나요."

솔직히, 이런 예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인간적인 교류가 아닌 자신의 언어 실력 향상을 주목적으로 외국인을 억지로 사귀려 하고, 백인에게는 친절한데 흑인이나 동남아시아인들에게는 함부로 대하며 소위 '못사는 나라' 출신의 이주민들은 업신여기는 경우도 많다. 과연 이렇게 창피한 행태를 보이고도 세계화 시대의 선진 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는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문화 반대론자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들을 크게 '삶의 범주'와 '민족 인종의 범주'로 나눈 다음에, 두 가지 반대 입장을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합리적으로 반박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특히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주목하는데, 어른들의 잘못된 이념이 어떻게 이 죄 없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실제 사례들을 통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다르다는 게 절대 나쁜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 어른들의 편 가르기와 같은 진짜 나쁜 행태를 우리 한국 아이들이 (차별과 왕따를 통해) 똑같이 흉내를 냄으로써 수많은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학교에서 얼마나 힘겨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게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말 그대로 (원주민 자녀나 이주민 자녀 할 것 없이) 모든 아이들을 다 망치는 동시에, 이중 언어를 포함해서 무척 다양한 재능을 가진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우리 스스로 거부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미래를 우리가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미래는 원주민 아이들과 이주민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당신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국제경쟁력의 핵심에 이 아이들이 서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있어 행복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망률이 낮고 출생률이 턱없이 낮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사회가 고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는 총체적인 국가경쟁력 약화를 불러오게 되고, 심지어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데이비드 콜만 교수는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인구 문제로 소멸하는 첫 번째 나라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내놓았단다.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고령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면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고령인구 부담 때문에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실성 있는 출산장려 정책이 시행되는 동시에 다문화사회의 구성원들이 소외와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인식이 전환되어야 하는데, 요즘 시골을 보면 서울보다 훨씬 더 국제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다문화가정이 많고, 이들의 일상 속에서는 이미 단일민족신화가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는 다문화화에 있고, 얼마나 다문화사회로의 이행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느냐가 향후 우리 삶의 수준을 결정하게 될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인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누군가는 우리보다 앞서서 많은 이주민들을 받아들인 유럽의 부정적인 다문화 현실을 거론한다. 그러면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브레이빅의 테러에 대한 말도 나오고, 제노포비아(xenophobia, 악의가 없는 상대방을 단지 자기와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경계하는 심리상태, 외국인 혐오증)라는 용어도 등장한다.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에는 이와 관련해서 논리적인 설명과 함께, 비교적 근래에 탄생한 단일민족사상에 비 반만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진정한 슬로건이었던 '홍익인간(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이념을 들면서 정서적인 호소력도 갖추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제시하기도 하며, 다문화가정의 2세들을 한국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한국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2등 국민으로 만들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도 말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다문화가정 1세대인 한국관광공사 사장 이참의 퍽 의미 있는 말도 전한다.

"한국에서 독일 제품이 비싼 값에 팔린 것은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로 이주 노동한 한국인들이 그 사회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고 돌아와 독일 제품을 입으로 홍보한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외국인 근로자에게 잘해주면 우리 사회에 많은 혜택이 돌아올 것입니다."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 10점
SBS 스페셜 제작팀 지음/꿈결

 

마침내, 우리 앞에는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질문이 하나 남았다.

"누가 한국인입니까?"

2006년에 SBS 스페셜 제작팀이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한국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모습이 달라도 국적이 같고 한국인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우리 한민족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에서 서술하듯, 앞으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는 다음과 같은 합의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한국인이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을 자기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국인이다. 한국사회에 봉사하고 한국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은 한국인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지켜나가는 모든 사람이 한국인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배타적인 이념을 버려야만 하는 현실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그리고, 선택의 여지는 사실상 없다. 2012년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귀화 외국인, 다문화가정의 자녀들, 외국인 근로자, 중간입국 자녀, 외국인 거주자)은 130만 명에 이르고, 결혼하는 10쌍 중 1쌍 이상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이 흐름을 거부하려고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갈등과 대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우리 스스로 '다문화사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주민들과 함께 능동적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어 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