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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고갈은 이미 시작되었다! [장기 비상시대(The Long Emergency)]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석유 없는 세상 그리고 우리 세대에 닥칠 여러 위기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은 850단어로 만들어진 연합군의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모국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상호이해를 위하여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베이직 잉글리쉬'라고 칭하며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당시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래의 제국은 의식(意識)의 제국이다." BBC에 재직하던 조지 오웰(George Orwell, Eric Arthur Blair, 1903~1950) 역시 베이직 잉글리쉬에 흥미를 가졌고, 이것이 그의 소설 [1984]에 언급된 '뉴스피크(Newspeak)'라는 전체주의적 언어를 만들어낸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또한 해군 장관이었던 처칠은 석탄을 이용하던 영국의 전함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때마침 전부 석유식으로 전환했다. 이로써 영국 전함들은 석탄을 동력으로 하는 독일 선단에 비해 이동 거리와 속도가 크게 향상되었고, 결국 연합국 선박들에 대한 독일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윈스턴 처칠과 관련된 이 두 가지 이야기는 값싼 석유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James Howard Kunstler, 1948~ )의 저작 [장기 비상시대(The Long Emergency) - 석유 없는 세상, 그리고 우리 세대에 닥칠 여러 위기들 (2005)]를 이해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래의 제국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석유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모든 지구인들에게 말이다.



2011년 12월 현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상식에 입각한, 그러니까 주변에서 흔히 '정상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보통 사람들은 석유 고갈 문제에 대해서 대부분 '인류의 창의력과 시장경제가 화석 연료 문제의 해결책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석유 문제에 대해서는 시장의 요구에 따라 다른 연료나 시스템이나 기술이 나타나서 우리를 구해줄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는 태도인 것이다. 처칠이 말했던 '의식의 제국'은 그런 낙관론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상식'은 어느 한 국가나 민족, 계층에 국한된 인식이 아닌 전세계적으로 지극히 일반적인 관념이다. 책 내용 중에서도 이처럼 보편적인 (그러나 근거 없는 환상에 가까운) 인식을 보여주는, 저자가 직접 경험한 하나의 일화가 등장한다.

"나는 캘리포니아의 전설적인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본사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 구글 본사 건물은 교외의 업무 단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디즈니에서 만든 피노키오 영화에 나오는 환상의 섬 흉내를 낸 듯했다 ... 내가 장기 비상시대와 관련된 문제를 떠들어댄 것도 그곳이었다 ... 그들 중 일부는 백만장자일 터였다. 내가 다 떠들고 난 뒤 질문과 논평 시간이 이어졌는데, 몹시 흥분한 청중 몇몇이 자리를 박자고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있잖아요.. 우리한텐.. 기술이 있거든요!" 그들로서는 세계의 에너지 위기가 항구적으로 계속됨으로써 모두가 곤란을 겪게 된다는 생각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 나는 그들이 인생은 비극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최첨단 업종에 종사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술의 바람을 일으키며 IT업계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구글 본사의 엘리트 직원들조차, 석유 고갈과 미래에 대한 경고에 관해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의식의 제국에서 너무나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마도 석유 고갈과 관련한 거의 모든 논의에서 인류의 위기에 대해서 지적하는 이들은 이런 식으로 일종의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많을 테고, 이는 어딜 가나 일반적인 현상일 것이다. 만약 책 속에서 공들여 설명하고 있는 화석연료의 딜레마와 석유 생산 정점 도달의 증거 제시, 대체연료와 관련된 착각('4장 석유 이후-대체 연료는 왜 우리를 구해줄 수 없는가'에서 조목조목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과 자연의 역습에 대한 안내가 의식 있는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 못한다면, 이 문제는 언제 어느 때고 대부분 이렇게 무시와 무관심으로 남겨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는 이 문제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했고,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고군분투했다. 그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파고들었고, 드디어 그런 노력이 하나의 정수로 나타난 게 바로 이번에 리뷰할 [장기 비상시대(The Long Emergency)]라는 책이다. 저자는 석유시대의 진실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거나 아주 무지한 사람들에게 '가짜' 상식이 아닌 '진짜'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사실에 근거해서 화석연료의 기본 원리와 석유생산 기제, 대체 연료가 우리를 구해줄 수 없는 명백한 이유와 석유 없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종합하여 깊이 있게 분석하고 있다. 자신이 구글 본사의 강연에서도 실패한 설득을 [장기 비상시대(The Long Emergency)]를 통해 전면적으로 다시 시도하고 있고,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쓴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석연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사회에서의 석유 고갈

본격적인 얘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의 상식을 한 번 점검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듯하다. 우리는 지금 화석연료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거의 모든 것은 값싼 석유의 혜택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생필품과 안락과 사치와 기적은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식으로든 값싼 화석연료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난방이나 에어컨, 자동차, 비행기, 조명, 의류, 녹음된 음악, 영화, 슈퍼마켓, 의료 수술, 국방 등등 모든 게 전부 그렇다. 심지어 원자력발전소라는 것도 건설이나 정비, 핵연료의 추출이나 가공의 모든 과정을 값싼 석유에 의존하고 있으며, 농업 자체도 현재의 대규모 관개를 바탕으로 한 기술집약적 재배 방식은 석유 없이는 절대 가능하지 않고 비료나 농약의 원재료도 모두 석유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다 못해 경운기나 트랙터를 하나 움직이는 데에도 석유가 꼭 필요하다. 

게다가 값싼 석유를 이용한 농산물 운송시스템이 없다면, 우리는 단 하루도 우리의 식탁을 음식으로 채울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 몇몇 나라에서는 운송시스템의 중단으로 인해 일반 시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상점의 식품코너가 완전히 텅텅 비어버려서, (식탁에 올릴 음식의 재료를 살 수가 없게 되어) 말 그대로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적도 있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석유가 없는 세상이 얼마나 큰 위기로 느껴질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좀 더 냉정하게 보자면, 아마도 저유가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현재 만상적인 고유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에너지 위기와 결부된 식량 위기가 언제라도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설상가상으로 폭우나 가뭄 등과 같은 (이제는 일반화되어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상적인 기상 이변까지 동시에 나타난다면, 그때는 정말 재앙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시련이 우리에게 닥칠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또한, 석유는 무한정 존재하는 자원이 아니다. 석유는 아주 오래된 유기물인데, 이 생성 과정의 발단이 되는 유기물은 3억 년 전부터 3000만 년 전 사이에 지구의 조건이 오랫동안 석유가 생성되기에 적합했던 때 호수와 바다의 얕은 유역에서 번성했던 것으로 보이는 식물인 조류(藻類)다. 모두 알다시피,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서 만들어진 석유는 지구상 어디에나 있는 게 아니라 몇몇 특수한 지역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그것을 인류는 화석연료시대 200년 동안 마구 캐내어 사용했고, 생성되는 데에 몇 천만 년이 걸렸던 석유는 단 200년 만에 생산의 정점(묻혀 있는 모든 석유의 절반을 뽑아낸 도달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제까지 우리가 소비한 그 절반은 '제일 취하기 쉬웠던 절반, 가장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던 절반, 가장 질이 좋고 값싸게 정유할 수 있었던 절반'이라는 점이다. 앞으로는 우리가 석유를 추출하는 데에 더 많은 비용,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진짜 현실이 어떤지 제대로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여기서 세계의 석유 현황에 대해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가 책에서 직접 소개한 몇 가지 사실들을 그대로 옮겨보면, 우리가 현재 실제로 처한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2007년 6월 15일 세계일보 보도]

- 세계 전체의 석유 발견은 1964년에 정점에 도달한 뒤로 줄곧 하락 추세를 보여왔다.
- 석유 사용률은 1950년 이후로 엄청나게 증가했다. 세계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율은 우리의 석유 사용률과 같은 추세를 보였다(석유 때문에 인구 폭발이 가능했던 것이다).
- 세계는 지금 한 해 270억 배럴의 석유를 사용하고 있다. 만일 지금의 비용률과 생산율로 남아 있는 석유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뽑아낼 수 있다면(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남은 석유의 총량은 37년이면 바닥날 것이다.
- 남아 있는 세계 석유의 총량 중 상당 부분은 개발이 불가능할 것이다.
- 석유생산 정점을 지나면, 세계의 석유 수요는 생산 능력을 초과할 것이다.
- 정점을 지나면, 남은 양은 매년 2~6퍼센트 정도씩 고갈되어갈 것인데, 그 사이에도 세계의 인구는 한동안 늘어날 것이다.

최근에 대규모 유전이 새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혹시 들은 적이 있는가? 탐사 작업은 계속 하고 있지만, 경제성 있는 새 유전을 찾아낸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화석연료가 일반화되기 전 몇 천 년 동안 10억도 되지 않던 세계 인구는 단 두 세기만에 70억이 되었다. 쉽게 말해, 매장량에 한계가 있는 석유는 줄어들고 있는데 (화석연료 경제를 바탕으로 해서)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보면, 석유의 혜택을 누린 기간은 무척 짧았고, 아주 예외적인 시기였으며,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오직 단 한 번만 있을 수 있는 특별한 사건이다. 석유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 인류는 과연 70억의 인구를 부양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장기 비상시대(The Long Emergency)]가 심각하게 제기하는 질문의 요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해서, 현재와 같은 경제시스템을 가지고는 절대로 한동안 계속 늘어날 인구를 제대로 부양할 수 없다. 믿기 힘들고 부정하고 싶은가? 하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이미, (위의 몇 가지 현황에서 보듯이) 석유 고갈은 시작되었다.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한국의 현실

이쯤에서, 쿤슬러의 저작으로부터 한 발 뒤로 물러나 한국의 현실을 잠깐 살펴보자. '자유 시장적 세계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그렇다. 현재 한국의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인 한미FTA의 논리적 기반이 바로 자유 시장적 세계화이다. 금융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추상화된 경제 활동을 가장 상위에 두며, 월스트리트의 이른바 '창조적' 금융 수단을 바탕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핵심에 FTA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세계화니 FTA니 하는 용어들을 들먹이느냐 하면, 이 책의 저자가 한미FTA의 시대착오적인 추진의 근거가 되는 미국의 몰락을 [장기 비상시대(The Long Emergency)]가 출간될 당시인 2005년 말에 정확이 예견했기 때문이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2008년의 금융 위기를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는 미리 예상했고, 석유 고갈 문제를 논하면서 이것도 함께 경고했던 것이다. '의식의 제국'시대에 우리는 왜 화석연료시대의 종말을 직시하지 못하고 환각에 빠진 채 자원을 낭비하고 있으며 그것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시련을 가져다 줄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저자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자유 시장적 세계화와 석유 고갈에 대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무시'를 하나의 유사한 맥락으로 동시에 고발한다.

[2011년 10월 17일 한겨레 보도]

결국, 몰락해가는 미국과 FTA를 맺은 한국은 장기 비상시대에 (미국과 FTA를 맺지 않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욱더) 엄청난 고난을 경험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져버렸다. 석유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었기에 가능했던 미국의 교외 개발 경제와 세계화는, 20세기 말이 가까워질수록 수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농지 파괴, 도시 쇠락, 우울증 만연, 학교 총기 난사 사건, 유행병 같은 비만증 등등)를 드러냈고, 급기야 마지막 투기처였던 주택에 대한 부실한 담보 대출과 그에 연동된 파생 상품의 버블 붕괴로 인해 21세기 초에는 최악의 금융위기로 되돌아온 것이다. 지금도 그 원흉인 월스트리트는 99%의 시민들이 점령하고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전지구적인 자연의 역습과 순차적으로 계속되는 각국의 금융 위기는 석유생산 정점을 지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인류의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이런 엄연한 현실 앞에서 한국은 너무나 어처구니없게도 세계화의 망령에게 벗어나지 못한 채 한미FTA를 체결하고 말았다. 석유 고갈 시대에 이런 FTA가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지, 그리고 우리 사회를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지에 대해서 저자는 미국에서 벌어진 다음과 같은 비극을 직접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동네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속임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월마트나 그 비슷한 기업들은 돈과 완력으로 작은 타운들의 값싼 변두리 땅에 '슈퍼스토어'란 것들을 차려놓고 지역의 모든 소매상들을 망하게 만들었으며, 흔히 그곳의 중산층 대부분을 몰락시켰다. 그리고 미국의 대중은 헤어드라이어를 몇 달러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점을 누리기 위해 그런 대기업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형 마트 쇼핑은 중산층의 몰락을, 그리고 중산층이 지역사회와 맺은 연고가 끊어지는 것을 정당화했다. 미국인들은 1년 내내 하루하루가 월마트 스타일의 크리스마스 같은 것이라는 환상에 속았다. 천문학적이라 할 부수적인 비용은 생각지도 않고서, 엄청나게 싼 제조품을 마음껏 누리는 데 정신이 팔렸던 것이다."

어떤가? 요즘 바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정말 비슷하지 않은가? 우리가 무심코 이용하는 대형 마트나 SSM(Super SuperMarket, 기업형 슈퍼마켓), 프랜차이즈 편의점으로 인해 동네 상점의 상당수는 문을 닫고 있으며, 그것은 곧바로 중산층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쉽게 말해, 원래는 중산층이었던 자영업자들이 완전한 주인으로서 주체적인 경제활동을 해오던 것이 대기업에 의한 일종의 기업식민주의에 압도당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고작 하청노동자로 전락하면서 중산층이 점점 더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고, 비용은 사회화하면서 이익은 사유화하는 한미FTA가 정식으로 발효되면 이런 비극은 점점 더 가속화되고 고착화될 것이다.

[2011년 10월 11일 서울경제 보도(좌), 2011년 12월 18일 세계일보 보도(우)]

자영업자뿐만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얼마 남지 않은 농민들마저 그 수가 크게 줄어들 테고, 나중에는 식량 자급의 아주 기본적인 기반조차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화석연료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이 때, 대형마트만 남고 외국 자본으로 움직이는 거대 농업기업만 존재하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지를.. 한 마디로 말해서, 장기 비상시대에는 대형마트라는 것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 왜 안 그렇겠는가? 전세계 각지에서 값싼 생산품을 석유경제의 기반 위에서 먼거리를 운송해와서 판매하는 대형마트는,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석유를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 벌어지면 절대로 계속 유지될 수가 없는 시스템이다. 거대 농업기업도 마찬가지다. 석유가 없는데 어떻게 대규모 관개 농업을 기본으로 하는 거대 농업기업이 생존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아마 한미FTA로 인한 농업 기반 파괴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하며 절망할 수도 있으리라.


장기 비상시대에 인류의 생존 방법

다시 책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석유 고갈이 현실화되면 전세계는 엄청난 충격을 받을 테고 매우 감당하기 힘든 혼란을 겪을 것이다. 그러면 인류는 장기 비상시대를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가 말한 내용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 전반적으로 우리의 생활은 갈수록 지역화되고 그 규모가 축소될 것이다.
-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많은 나라들의 경제는 농업에 중점을 두게 될 것이다.
- 세계적으로 일하는 가축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
- 결국 인류는, 마천루의 대도시가 아닌 생산적인 농지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을 이루어 살게 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한국은 크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현재 한국은 전세계적으로도 손꼽힐 정도로 높은 초고층 빌딩 건축 계획을 여러 개 추진하고 있는데, 장기 비상시대에 이런 건물들은 절대로 제대로 관리될 수가 없을 것이다. 겨울에 난방이 되지 않는 마천루, 여름에 냉방이 불가능한 마천루를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요즘 추진되는 한국의 마천루들은 그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 전국적인 대형 할인점과 함께 소비문화 자체도 몰락할 것이다.
-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 앞으로 살게 될 장소는 걸어다닐 수 있고, 자연적인 냉난방이 가능하며, 스스로 고쳐 쓸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 21세기에는 다른 데로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생활이 위주가 될 것이다.
- 지금과 같이 자원 낭비적인 자동차 및 고속도로 시스템은 붕괴할 것이다.
- 대규모 교육 사업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테고, 학교 교육 연수도 짧아져야 할 것이다.
- 장기 비상시대에는 그에 맞도록 사상, 도덕, 태도가 급변할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가 영위했던 수많은 편의를 포기해야 함은 물론 삶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근거 없는 낙관론을 버리는 '의식의 개혁'이 필수적이고, 향후에 있을 거대한 변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그것만이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임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므로..

장기 비상시대(The Long Emergency) - 10점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지음, 이한중 옮김/갈라파고스

이렇게,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의 역작 [장기 비상시대(The Long Emergency) - 석유 없는 세상, 그리고 우리 세대에 닥칠 여러 위기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리가 진정 분별력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석유 고갈시대를 진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며,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점차 줄여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이제 선택의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볼 수 있으며,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적절하게 노력한다면 분명히 다가올 장기 비상시대에 좀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을 테지만,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그리 멀지 않은 시간 내에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겪으며 인류의 생존 자체가 큰 위기에 빠질 것이다. 석유는 유한한 자원이며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 하나만이라도 정확하고 냉정하게 인식하는 사회가 하루 빨리 오길 바라며, [파랑새(L'Oiseau bleu, The Blue Bird, 1908)]의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의미심장한 말을 끝으로 이 글을 마친다.

 
"스페인 종교재판에서, 건전한 양식과 건전한 균형을 갖춘 사람들의 의견은 '이단자들을 너무 많이 태워 죽여서는 안된다'는 식이었다. 한편, 그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고 상식 밖이라는 평을 받은 사람들의 의견은 '사람을 태워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