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리뷰어의 고백.

 

공기도 탁하고 더운 침실 겸 거실 겸 서재. 과자 부스러기와 반쯤 비운 음료수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추레한 잠옷을 입은 사람이 지저분한 책상 앞에 앉아, 먼지 쌓인 과자봉지 더미 속에서 키보드를 치려고 한다. 그렇다고 과자 봉지들을 버릴 수는 없다. 쓰레기통이 벌써 다 찼을뿐더러, 마트 영수증과 봉지들 사이에 아직 참여하지 못한 이벤트 응모권이 끼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걸 찾을 생각을 하면(그뿐 아니라 무엇이든 찾을 생각을 하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20대 중반이지만 30대 후반은 되어 보인다. 머리숱이 적고 꾸부정하며 알이 큰 안경을 쓴다(하나뿐인 안경을 습관처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쓰고 있을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영양이 부실한 상태에서 입 주위엔 하얀 버짐이 피었을 것이고, 최근에 반짝 운이 좋았다면 숙취로 힘들어 하고 있을 것이다. 때는 오전 11시 반, 계획대로라면 두 시간 전부터 일을 시작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래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한들 좌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거의 쉴 새 없이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고, 강아지는 짖어대며, 바깥의 길에선 전기드릴로 무언가를 뚫어대고, 계단에선 택배를 배달하는 사람들이 발소리를 쿵쾅거리며 오르내렸던 것이다. 방금 전엔 두 번째로 우편배달이 왔는데, 광고 전단 둘과 빨간 글씨가 박힌 건강보험료 독촉장이었다.

이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블로거다. 그는 카페지기일 수도, 기자일 수도, 작가일 수도 있다. 블로그에 글 써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대개 다 비슷하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선 리뷰어라고 하자. 과자봉지 더미 속에는 묵직한 택배 꾸러미가 반쯤 감춰져 있고, 그 안에는 상품 마케터 왈, '일맥상통'할 거라는 다섯 개의 상품이 들어 있다. 그게 도착한 것은 나흘 전이었지만, 리뷰어는 48시간 동안 도덕성이 마비되었던 탓에 택배를 꺼내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어제가 되어서야 굳게 마음먹은 한 순간, 박스를 확 열어젖히고 다섯 개의 상품을 확인한 것이다. 그의 리뷰(두 페이지 분량이었다)는 다음 날 정오까지 '입고'되어야만 했다.

그중에 세 개는 그로서는 전혀 무지한 분야의 상품이라서 적어도 두 시간은 사용해봐야 한다. 그래야 상품 제작사뿐만 아니라(물론 제작사는 리뷰어의 습성을 훤히 알고 있다) 일반 네티즌에게까지 자신을 다 드러내 보이는 황당한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오후 4시면 그는 상품을 택배 꾸러미 밖으로 내놓긴 하겠지만 여전히 살펴볼 용기는 나지 않아 애를 먹고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사용해봐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심지어 상품의 구성품들만 펼쳐놔도, 고추장이 범벅된 차가운 떡볶이를 먹어야 하는 기분이다. 그런데도 그의 리뷰는 자못 신기하게도 제때 마케터의 메일로 도착할 것이다. 어떻게든 항상 정시까지 도착하는 것이다. 저녁 8시쯤 되면 정신이 비교적 맑아지기 시작할 것이고, 오밤중이 되도록 방에 앉아(점점 더워지고 과자봉지는 점점 더 쌓여간다) 능숙한 솜씨로 상품을 한 개씩 훑은 다음 하나를 내려놓을 때마다 '이것도 상품이라고!' 소리를 덧붙일 것이다.

 

아침이면 퀭한 눈에 부은 얼굴로 고약한 표정을 짓고서 텅 빈 화면을 한두 시간 바라만 보고 있다가, 시곗바늘의 위협에 겁을 집어먹고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갑자기 키보드를 마구 두드리기 시작한다. 온갖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들이('놓칠 수 없는 상품'이니 '기능마다 활용도가 높다'느니 '무엇무엇을 할 때 특히 유용하다'느니) 자석을 따라 움직이는 쇳가루처럼 척척 제자리로 뛰어든다. 그리고 리뷰어는 리뷰를 보내야 할 때를 3분쯤 남겨두고 정확한 분량으로 마친다. 그리고 그사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시시한 상품들이 택배로 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같은 일은 또 반복된다. 하지만 이렇게 심신을 피곤하게 굴리는 이도 불과 몇 개월 전에는 고상한 포부를 품고서 이 일을 시작했다.

내가 과장하는 것 같은가? 정기적으로 리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묻고 싶다. 방금 내가 묘사한 방식과 다르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느냐고. 어쨌든 모든 블로거가 대체로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상품을 무차별적으로 평하는 일을 오랫동안 한다는 건 유난히 달갑지 않고 피곤한 노릇이다. 그것은 별로 필요없는 물건을 칭찬하는 일일 뿐 아니라, 그냥 두면 아무 반응도 불러일으키지 않을 상품에 대한 관심을 계속해서 억지로 만들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무리 지겨워한다 해도 리뷰어는 상품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사람이며, 매년 수천 개씩 쏟아지는 상품들 중에 서른 개나 마흔 개쯤에 대해서는 기꺼이 리뷰를 쓰고자 한다. 해당 분야 최고 수준인 사람이라면 그중 다섯 개에서 열 개 정도를 꼽을 것이며, 두세 개만 택할 수도 있다. 그 나머지 리뷰는 아무리 양심적으로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본질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조금씩 웹 상에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리뷰어들 대다수는 자신이 소개하는 상품에 대해 부적절하거나 오도하는 리뷰를 하게 된다. 회사들은 전보다 신문이나 잡지 담당자들의 비위를 거스르는 것도, 내는 상품마다 한바탕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부족해진 지면과 다른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리뷰의 수준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런 현상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리뷰를 꾼들에게 안 맡기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곤 한다. 전문 상품이야 전문가가 리뷰를 해야겠지만, 그 나머지 상당수의 리뷰의 경우엔 아마추어가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상품은 다양한 네티즌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심한 비판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생각은 시큰둥한 전문 필자보다 확실히 값질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케터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마케터는 언제나 해당 분야의 '선수들'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

모든 상품은 리뷰를 받을 수가 있다고 당연시하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되기 어렵다. 아무 상품이나 닥치는 대로 리뷰를 하다보면 대부분의 상품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상품과 일종의 관계를 맺고 보면 대부분의 상품이 얼마나 별로인지를 알게 된다. 객관적이고 참된 리뷰는 열에 아홉은 '이 상품은 쓸모없다'일 것이며, 리뷰어의 본심은 '나는 이 상품에 아무런 효용도 못 느끼기에 블로그 때문이 아니면 이 상품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일 것이다. 하지만 네티즌은 그런 상품을 돈 주고 사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이유가 있겠는가? 그들은 어떤 상품을 사용해보라는 권유와 안내를 원하며, 어떤 식이든 평가를 원한다. 그러나 가치의 문제가 언급되자마자 평가의 기준은 무너져버리고 만다. '아트릭스'는 좋은 컴퓨터폰이고 '옴니아'는 좋은 스마트폰이라고 말한다면 '좋다'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리뷰어라면 누구나 이런 유의 말을 적어도 한 달에 두세 번씩은 한다.

내가 보기에 최선의 방법은, 평범한 상품은 그냥 넘어가고 중요해 보이는 소수의 상품에 대해 아주 알찬 리뷰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곧 나올 신상품에 대해 한두 줄 정도의 짧은 소개를 해주는 건 유익할 수 있되, 흔히 하듯 한 페이지 정도의 중간 길이로 쓰는 리뷰는 리뷰어가 원하는 작업이라 해도 무익한 것이 되기 마련이다. 리뷰어는 대개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지 않으며, 매주 자잘한 리뷰만 쓰다보면 이 글 앞머리에 나오는, 잠옷 차림으로 심신을 피곤하게 굴리는 사람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 10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윗글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집에 실려 있는 '어느 서평자의 고백(Confessions of a Book Reviewer, 1946년 5월 '트리뷴'지에 게재)'을 요즘 리뷰어의 상황에 맞게 바꾼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 꽤 재미있는 글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위드블로그에서 [위드블로그 바로알기 캠페인 제1탄]으로  '당첨은 싫어요'라는 캠페인을 하길래 갑자기 생각이 나서 패러디해 보았다.

위드블로그에서도 계속 지적하는 부분인 것 같은데, 리뷰어를 선정할 때 리뷰 자체의 수준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 추첨을 하거나 그냥 방문자수가 높은 블로그를 뽑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런 경우 위의 패러디 글에서와 같이, 솔직하지 않고 단지 '리뷰를 위한 리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저 어느 정도의 길이를 보여주기 위한 미사여구와 과다한 이미지로 채워진, 실질적인 내용은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리뷰가 나오기 쉬운 것이다. 이런 상황이 상품제작사든, 리뷰어든, 그 리뷰를 보는 사람이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조지 오웰의 말처럼 또 위드블로그에서 강조하듯이, 제대로 된 리뷰가 되기 위해서는 아무 상품이나 닥치는 대로 리뷰를 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하고, 각 상품마다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 정직하게 리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상품과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당첨'시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해당 상품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리뷰를 잘 쓸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무조건 리뷰의 개수가 많은 게 능사가 아니라, 단 몇 개의 리뷰가 있더라도 충실하게 쓰인 리뷰가 그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의미가 있고, 상품제작사에게도 좀 더 나은 상품으로 개선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리뷰를 신청하는 사람들도, 과연 그 상품에 대한 리뷰를 자신이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한 번쯤은 스스로 생각해보는 게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두가 서로에게 결국에는 도움이 되는 블로고스피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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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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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2 2011.05.03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어느 서평자의 고백'을 시대에 맞게 바꾼거 딱 들어맞네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