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반 에이크의 거울, 그리고 222년 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거울.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의 위대한 걸작 [아르놀피니의 초상(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 Arnolfini Portrait, the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1434)]과 관련된 방송을 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바로 MBC의 '신비한TV 서프라이즈'라는 방송인데, 그에 따르면 Jan van Eyck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577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그림"이라는 것이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의 실제 내용이야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금방 알 수 있고 방송에서 다룬 걸 굳이 블로그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그림에 등장하는 '볼록' 거울에 대해서는 참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기에 한 번쯤 자세히 다뤄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아울러, 얀 반 에이크의 작품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의 [시녀들(Las Meninas, The Maids of Honour, 1656)]에 등장하는 '평면' 거울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Jan van Eyck (좌)와 Diego Velázquez (우)의 Self Portrait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거울 자체의 역사에 대하여 좀 알 필요가 있을 듯하다. 16세기 중반까지도 거울은 볼록한 형태로만 제작되었으나, 독일에서 발명되어 베네치아에서 완성된 신기술로 인해 점차 평면거울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거울을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한 것은 15세기 거울 제작자들과 같은 길드에 소속되어 있던 플랑드르(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 화파 화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화법인데, 지금 소개하는 북유럽 플랑드르 미술의 아버지이자, 대상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는 자연주의를 창시한 화가인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은 거울이 등장하는 아주 유명한 그림 중에 하나이다. 바로 앞의 설명대로, 거울 제작자들과 같은 길드에 속해 있던 이 플랑드르 화가의 15세기 중반 작품 안에 그려진 거울은 당연히 볼록거울이다.

그리고 222년 후, 당시 마드리드의 왕립 컬렉션이 소장한 [Arnolfini Portrait(the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를 눈여겨 본 이가 있었는데, 그는 17세기 유럽 바로크의 거장이면서 후세의 인상주의와 사실주의 화가들의 귀감이 되었던 스페인의 대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였다. 그가 1656년에 그린 불후의 명작 [시녀들(Las Meninas)] 역시 거울이 등장하는 아주 유명한 그림인데, 이 17세기 중반의 작품에는 (위에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평면거울이 그려져 있다. 15세기 얀 반 에이크의 볼록거울과 17세기 벨라스케스의 평면거울. 기술의 발달에 따라 거울의 종류는 바뀌었지만, 두 화가가 자신의 작품에 어떤 식으로든 '의미 있는' 거울을 그려 넣었다는 것은 222년의 시차를 두고 둘 다 똑같이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아르놀피니의 초상]과 [시녀들]의 '거울'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자.

얀 반 에이크, [the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1434. 패널에 유채, 82 x 60cm, 런던 내셔널갤러리

Jan van Eyck의 명작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15세기에 그려졌다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 만큼 너무나 정확하고 섬세하게 묘사된 그림이다.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그림의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원근법과 빛을 이용한 입체감이 표현되어 있으며, 저명한 미술사학자 E. H. 곰브리치(Ernst Hans Gombrich, 1909~2001)가 그의 저서 [서양미술사]에 적었듯이 "그림 전체가 가시적인 세계의 거울처럼 될 때까지 끈기를 가지고 미세한 세부까지 묘사하면서 자연의 환영을 만들어 낸" 것이다. 현실의 세세한 부분들을 비춰주는 거울을 창조하기 위해 얀 반 에이크는 회화의 기법도 개량했고, 결국 서양미술사에서 '유화의 발명자'로 길이 남게 되었다.

 

유럽 미술의 거장들 - 10점
스테파노 G. 카수 외 지음, 안혜영 옮김/마로니에북스

 
또한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수의 비평가들은 위 그림을 부부의 결혼(또는 약혼) 기념 초상화라고 보지만, 일부 다른 이들은 화려한 샹들리에와 조각이 들어간 가구, 베네치아제 거울과 고급 유리 묵주, 동방에서 온 카펫과 스페인산 오렌지 등을 예로 들며 이것은 그저 부부의 재산을 과시하기 위한 그림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리고 작품 속의 몇몇 정황을 바탕으로 등장인물들의 정체에 대한 논란도 있으며, 특히 그림의 한가운데에 등장하는 거울에 관하여 많은 추측과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데, 아래는 [The Arnolfini Wedding(The Arnolfini Marriage, The Arnolfini Double Portrait)]의 거울 부분을 확대한 것이다.



이걸 보면 알겠지만, 원래 전체 그림의 크기 자체가 그다지 크지 않은 상황에서 거울은 작품의 극히 일부분일 뿐인데도, 얀 반 에이크는 굉장히 정밀하게 볼록거울을 표현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거울의 위에는 라틴어로 "Johannes de eyck fuit hic(1434년 얀 반 에이크가 여기에 있었다)"라고 화가의 이름이 써넣어져 있으며, 거울의 테두리에는 예수의 수난 장면이 열 개나 새겨져 있고, 그 중심에는 부부와 두 명의 남자가 함께 있는 방의 내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 남자 중에 한 명은 바로 이 그림을 그린 얀 반 에이크로 여겨지는데, (뒤바뀐 방안의 풍경이 일그러지면서 비치고 있는) 볼록거울 속의 공간은 가히 눈을 의심하게 될 정도로 혁신적인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거울을 통해서 얀 반 에이크는 (아르놀피니 부부와, 그들을 보면서 화면을 창조하는 그림 밖의 자신을 동시에 드러냄으로써) 그림 속의 공간이 화가가 존재하는 현실의 공간과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은 아주 특별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런 중요한 현장에서 Jan van Eyck는 마치 증인처럼 생생하게 현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순간에 화가는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작품 안에 써넣을 정도로 진지하게 임하고 있으며, 서양미술 역사상 최초로 회화에서 사실성을 완전하게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얀 반 에이크의 위대함이고, 그의 작품 [아르놀피니의 초상]이 당시에 어느 누구의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초상화와 장르화, 정물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이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디에고 벨라스케스, [Las Meninas], 1656. 캔버스에 유채, 318 x 276cm,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다음으로, Diego Velázquez의 걸작 [시녀들]에 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자. 앞서 말했듯이, 얀 반 에이크의 [The Arnolfini Wedding(The Arnolfini Marriage, The Arnolfini Double Portrait)]은 222년 후에 스페인 마드리드의 왕립 컬렉션에 있었고, 벨라스케스는 아마도 이 작품을 알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Las Meninas(The Maids of Honour)]에도 거울이 등장하며, Velázquez 역시 이것을 전체 구도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림의 제목인 'Meninas'는 당시 잠정적 왕위계승자였던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공주를 둘러싸고 있는 시녀들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작품에는 공주와 시녀들뿐만 아니라 (예상되는 바대로) 뒤쪽 벽의 거울 속에는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게다가 이 그림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 왼쪽에 등장하는 벨라스케스 본인의 모습이다. 화가는 거대한 캔버스를 세워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한데, Velázquez는 그림 밖의 관람자가 마치 주제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자신의 시선을 던지고 있지만, 사실 그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이 작품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화가가 그림 속에 등장할 수는 없을 테고, 굳이 상상해 본다면 (그림 속 거울이 아닌) 가상의 거울에 또 다시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만약에 벨라스케스가 지금 그리고 있는 것이 왕과 왕비라고 한다면, 그들은 그림 속 거울에 비친 자기들의 모습과 그런 자신들을 그리는 화가를 동시에 보고 있는 게 된다.

다른 한편,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시녀들] 자체를 생각한다면 Velázquez는 카메라와 같이 외부에서 현실의 한 순간을 그대로 담은 셈이 되는데, 이것 역시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지만 벨라스케스가 자신의 천재적인 묘사력으로 최대한 리얼하게 시각화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하나의 그림 안에 시간과 공간이 복잡한 시선으로 얽혀 있는데, 동일한 화면상에 절대 놓일 수 없는 존재들이 한꺼번에 표현되고 있는 것이며, [Las Meninas]는 거울을 이용해서 캔버스 안의 세계가 그림 밖으로 확장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도대체 어떻게 벨라스케스는 사진이 발명되지도 않은 이 때 이토록 기발한 시도를 할 수 있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작품은 정말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모두가 완전히 만족할 만큼 명쾌하게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렇게, MBC의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수수께끼의 그림 중에 하나로 다룬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아르놀피니의 초상(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 Arnolfini Portrait, the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정리해 보고, 이 작품을 222년이 지난 다음 접한 후 동일하게 거울을 이용해서 신비로운 효과를 내고 있는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의 [시녀들(Las Meninas, The Maids of Honour)]에 관해서도 함께 살펴 보았다.

 

서양미술사에서 언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두 거장의 위대한 명작을 텔레비전 방송을 계기로, 이렇게 나름대로 '얀 반 에이크의 거울'과 '벨라스케스의 거울'에 대해 공부하게 된 건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고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미디어에서 다양한 경로로 의미 있는 배움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연예오락뿐만 아니라, 이런 것 또한 미디어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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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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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호 2012.02.17 2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예술이라는 말밖에 안나옵니다. .

  2. Char 2013.07.22 1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흠 좋아 :) Arthur님 포스트 읽으며 보니 더욱 흥미롭고 놀랍습니다!

  3. 푸디탯 2015.06.03 1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 작품을 직접 감상했는데,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그야말로 넋을 놓고 보았습니다.

    지극히 정교하고사실적인 묘사에 부부가 서 있는 창 밖의 풍경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창 밖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싶은 충동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저 시대 저 장소로 돌아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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