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수가 없는 박원순, 실질적 3당이 된 정의당.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결과는 상당히 의미심장했고, 향후 정치판의 흐름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나 파급력이 낮은 걸로 인식됐던 지방선거지만, 이번만은 무척이나 특별한 결과로 인해 굉장한 지각변동이 이어질 걸로 보인다. (남북관계의 거대한 변화 및 대통령 지지율 상승과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아마도 민주화 이후 치러졌던 선거 중 가장 일방적이고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한 선거였을 텐데, 오히려 그것이 다수 유권자들의 선택을 지극히 노골적이고 극명하게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일단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그렇게 많은 후보와 선거구가 있었는데도 극소수 몇몇 군데를 제외하면 절대 다수는 거의 다 별다른 경합이 없었다. 대부분의 당선자가 과반수 득표를 했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더블 스코어' 이상의 압도적인 승리가 많았다(출구조사 결과도 실제 결과와 거의 다 일치했다).


[출처: SBS 뉴스 6.13 지방선거 특집방송 갈무리(2018/06/14)]


그래서 선거결과 분석에도 딱히 복잡한 얘기가 필요 없을 정도다. 유권자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본다면 대세에 영향을 줄 만한 결정적인 고민거리가 없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냥 자연스럽게 유권자들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표가 모였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선거 이후 반복적으로 불거지는 선거위반사범 문제가 이번에는 조금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6.13 지방선거는 다툼의 여지 자체가 적었던 좀 특이한 선거였다.


이슈는 없었지만, 투표율은 높았다


다들 알다시피, 후보자간 접전이 뜨거울수록 투표율은 상승한다. 그저 기분상 그런 게 아니라, 전문적인 연구 결과들을 보더라도 경합도가 높을수록 실제로 투표율이 올라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방금 말했듯이 전체적으로 별다른 경합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투표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제6회 56.8% -> 제7회 60.2%).



이는 지난 2016년 4월 13일에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와 비교해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투표시간이 20시까지인 대선과 달리 총선과 지선은 투표가 18시에 마감된다. 투표종료 시간이 같았던 20대 총선, 게다가 경합지역도 많았던 2016년의 투표율이 딱 58%였다. 그나마 19대 총선보다 상승해서 이 정도였다는 걸 감안하면,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을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다.


[출처: 포털사이트 Daum 4.13 국회의원선거 특별페이지 갈무리(2016/04/13)]


이런 결과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당연한 말이지만, 투표율이 낮아지면 대표성이 떨어진다. 투표율이 높다는 건 그만큼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투표율 40~50%의 선거결과보다는 투표율 60~70%의 선거결과가 민심을 훨씬 더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전반적으로 별다른 경합이 없이 과반수 득표자가 많았다는 건, 한마디로 유권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확고한 흐름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흐름이 바로 6.13 지방선거에서 제일 주목되는 측면이다.


2020년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정의당이 기대되는 이유


오랫동안 거대 양당체제로 운영됐던 대한민국 국회가 근래에는 한동안 다당제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선거전 119석 -> 선거후 130석), 자유한국당(112석 -> 113석), 바른미래당(30석), 민주평화당(14석), 정의당(6석), 민중당(1석), 대한애국당(1석), 무소속(5석).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정계개편은 불가피해졌고, 채 2년도 남지 않은 21대 총선은 아마 지난 스무 번의 국회 구성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어쩌면 완전히 새로운 정치지형이 출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출처: 포털사이트 Daum 6.13 지방선거 특별페이지 갈무리(2018/06/14)]


21대 총선 예측을 위해 가장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지표로서,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광역비례의원 정당별 득표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투표와 달리 광역비례의원은 후보자가 아니라 정당명을 보고 기표를 하게 되어 있다. 광역단체장 득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며 싹쓸이를 했지만, 각 정당별 광역비례의원 득표율은 약간 다르다. 우리는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비교해 보면 다들 알겠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득표율보다 광역비례의원 득표율이 대체로 낮다. 그외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은 (특정한 몇몇 지역을 빼면) 대부분 엇비슷하고 별로 특이할 만한 사항이 없는 편이다. 그런데, 정의당은 확실히 좀 다르다. 상대적으로 정당별 득표율에서 보이는 수치가 눈에 띌 만큼 훨씬 더 높다. 게다가 비교적 고르게 전국적인 득표율을 보이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3등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그 수치 자체가 크게 높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다른 야당과는 달리) 전국정당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전체 17개 광역단체 중 거의 절반에서 10% 정도의 적지 않은 득표율을 달성했다. 득표율 수치로만 보면 가장 비슷한 바른미래당은 곧장 당 대표가 사퇴했고, 광역단체장은 물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완패했다. 민주평화당은 고작 지역정당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자유한국당은 끝 모를 추락 속에서 돌파구가 전혀 없이 망연자실한 가운데, 정의당은 나름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준 셈이다.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은 총 37명의 당선인을 배출했고, 이전에 비해 지지율이 2배 넘게 상승했다. 선거 결과를 언뜻 보면 다당제에서 더불어민주당 일당체제가 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번에 가장 큰 변화는 정의당이 실질적인 제3당이 됐다는 것이다. 어차피 자유한국당은 제1당은 고사하고 현재의 모습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도 없는 처지다. 한마디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고 볼 수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바른미래당 역시 당의 진로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할 입장이고, 민주평화당은 이미 정의당의 지지율보다 낮으며 전국정당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렇다면 결국 (정의당을 제외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견제할 반대정당 하나만 남고 그 외에는 다 흡수·통합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우파정당이 하나 만들어질 테고, 이 정당은 곧바로 원내 제2당(제1야당)이 된다. 물론 나머지 군소정당 한두 개가 더 생길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한창 성장 중인 정의당의 지지율을 넘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정의당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얼마나 참신한 인물을 많이 발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미 정의당 자체의 존재감은 일정 수준 이상 올라왔고, 전국적으로 지지자들도 고르게 퍼져 있다. 남은 쟁점은 과연 정의당 국회의원 후보로 누가 나설 것인가 하는 걸로 귀결된다. 2020년에 정의당이 공천만 잘 한다면, 독자적인 교섭단체 구성과 함께 명실상부한 원내 제3당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1대 총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정의당은 새로운 인물찾기를 당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출처: JTBC 뉴스룸 '[인터뷰] '바지 투쟁' 승무원, 서울시의회로..정의당 권수정' 갈무리(2018/06/14)]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우려되는 게 있다. 다른 좌파정당의 활동을 보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인데,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듯이) 정당의 선거운동은 시민단체의 활동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선거에서 당선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 시민단체에서 특정 이슈에 대해 캠페인을 펼치듯이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시민단체는 바로 그 이슈만 신경 쓰면 되지만, (강제성이 수반되는 법을 만드는) 정당은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서 다양한 입장을 함께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특정 이슈에 대해 파이팅이 넘치는 건 당연하겠지만, 정치가 그저 싸우자는 게 아닌 다음에야 정당의 선거운동은 단지 파이팅만으로는 절대 성공적일 수가 없다.


정의당도 성평등 관련 이슈로 한동안 큰 홍역을 치른 적이 있고 아직도 그 여파가 남아있는데, 앞으로는 시민단체와 정당의 차이를 망각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파이팅 넘치는 활동이 사회운동으로서는 당연히 의미가 있겠지만,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의원으로 선택 받기 위한 선거운동으로서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당선을 목표로 하지 않고 그냥 하나의 상징적 활동으로만 생각한다면 상관이 없다(결과적으로는 정의당 후보와 득표율이 비슷했다). 하지만 '중도' 집권여당 그리고 '우파' 제1야당과 함께 당당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가 전체를 이끌어가는 게 목표인 '좌파' 원내정당이라면, 특정 이슈에만 갇혀서 단조롭기 그지없는 캠페인만으로 선거운동을 펼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가장 유력한 박원순


지난 대선을 다시 떠올려 보면 (당선자인 문재인을 빼고) 더불어민주당의 '빅3'라고 할 수 있는 후보들은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정도였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은 바야흐로 일당 독주체제에 가까운 환경을 구축했고, 현재와 같은 분위기라면 앞으로도 계속 남북관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일은 좀 걸리겠지만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고 남한 사람들의 북한 방문이 활성화되며 다양한 경제협력이 이뤄지면, 한반도의 경제가 전체적으로 활황 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2020년 총선도 별로 걱정할 이유가 없고, 집권 연장도 크게 무리가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의 빅3가 현재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들 알다시피, 안희정은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났다. 우리 사회는 날이 갈수록 성평등이 점점 더 확장될 게 분명하므로, 성평등의 측면에서 가장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른 안희정이 다음 대선에서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내용은 좀 달라도 이재명 역시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성추문에 휩싸이며 지울 수 없는 커다란 내상을 입었다. 비록 경기도지사에 당선되기는 했지만, 예상컨대 이재명은 딱 여기까지일 것이다. 더 이상 올라가기는 힘들 테고, 잘하면 경기도지사를 한두 번 더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자들의 임기가 2022년 6월 30일까지니까, 박원순은 최장수 서울시장의 기록을 그 전에 끝내고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원순이 지금 얼마나 유리한지는 비슷한 시기에 정치인이 된 안철수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3선에 성공한 박원순은 과반수 득표를 달성했지만, 안철수는 20%도 득표하지 못하면서 3위에 머물렀다.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과 나란히 섰던 안철수가 이제 박원순의 적수도 되지 못한다. 이명박근혜 시대를 거치며 온갖 방식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은 검증과 사찰을 받은 박원순은 이번에 또 서울시장이 됐으니, 남은 4년 동안 서울시장으로서 균형감을 잃지 않고 큰 불상사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될 것이다.


이렇게 6.13 지방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21대 총선과 20대 대선의 향방을 예측해 보았다. 구태의연한 이념에 빠져 시대착오적으로 수구적 행태를 보이는 자유한국당이 '지는 해'라면, 2000년 민주노동당부터 시작해 이제는 시민단체가 아닌 진짜 정당으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한 정의당은 '뜨는 해'다. 2020년 총선은 대한민국 '좌파' 정당의 20년 역사에서 일대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정의당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도전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김대중-노무현의 제1기 '중도' 대통령의 시기를 지나서 중간에 '반동'의 시기가 있었지만, 어쨌든 국민들은 이를 극복하고 탄핵과 조기대선으로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다. 1997년 IMF와 김대중 당선 이후 4반세기가 흘러 202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박원순으로 이어지는 제2기 '중도' 대통령이 지금 한국사회의 현실을 볼 때 제일 잘 어울리는 게 아닌가 싶고, 개인적인 이상을 듬뿍 담아 좌파와 중도 대통령 후보의 열띤 경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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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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