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위하여.


지난 1월 21일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6.25 ~ 1950.1.21)'이 타계한 날이었다. 오웰이 죽은 지 이제 70여 년이 다 되어 가지만, 놀랍게도 그의 글은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강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오웰의 냉철한 비판은 각 시대마다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했고, 요즘은 유럽 극우정당의 민족주의 부상과 트럼프의 당선으로 다시금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글을 잊히는 것과 기억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면, "영국의 가장 위대한 전후 작가" 조지 오웰의 글은 명백히 시대를 초월해서 기억되는 글인 셈이다.


그런데 사실, 조지 오웰은 한때 영국 식민지의 제국경찰이었다. 1922년부터 1927년까지 버마(미얀마)에서 식민지 경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으며, 때때로 버마 여자를 돈으로 사기도 했다. 버마는 1824년부터 1885년에 걸쳐 세 차례 영국과 전쟁을 치르며 완전히 영국령 식민지가 됐고, 1948년에야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버마가 영국의 식민지가 된 지 40여 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제국경찰로 약 5년간 근무한 조지 오웰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한반도에서 근무한 일본 순사와 비슷한 위치였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Burmese Days'(1934)를 비롯해 몇 편의 에세이도 남겼는데, 지금도 이 작품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출간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조지 오웰과 마찬가지로, 일제 식민지 시절 한국에 와있던 수많은 일본인들도 여러 가지 다양한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그 시대를 기억하는 것처럼, 일본인들도 똑같이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과 에세이를 보며 역사적 진실을 엿볼 수 있듯이, 한국인과 일본인의 기록 및 기억을 통해서도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이 식민지 제국경찰이었다고 해서 그가 쓴 소설과 에세이가 무가치한 게 아니듯이, 일제 식민지 시절에 관한 일본인의 기록과 기억도 우리는 잘 살펴봐야 한다. 설사, 그것이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닐지라도... 바로 이런 최소한의 합의는, 이제 일종의 '금서'가 되어버린 [제국의 위안부]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식민지의 모순


미국 노예시대 지배자인 백인과 피지배자인 흑인의 관계는 생각만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대농장을 경영하는 백인은 소수였고, 거기서 일하는 흑인은 다수였다. 막대한 부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대농장의 특성상 각 농장의 거리가 먼 경우도 많았고, 백인 입장에서 혹시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다른 백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숫자가 적은 백인들이 많은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며 광대한 농장을 관리하는 상황에서, 농장주들은 일상적인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항상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했던 백인들은 (어떤 불상사를 가져올지도 모를) 흑인들 사이의 대화를 금지시키기에 이른다. 노예로 잡혀오기 전 아프리카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던 흑인들은 서로 말조차 할 수 없는 답답한 처지에서, 야만적인 백인의 총부리 앞에 동물보다도 못한 비참한 노예생활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흑인뿐 아니라 백인의 인간성 파괴도 피할 수 없었고, 이와 같은 모순은 제국주의 식민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조지 오웰의 작품에서도 계속 등장하는 식민지 체제의 모순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한반도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박유하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는 바로 이런 식민지의 모순을 직시하는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순에는 가해자인 일본군의 모순뿐만 아니라 피해자인 조선인 위안부의 모순도 포함된다. 그래서, 한국인이 보기에는 좀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어낸다면, 분명히 얻는 게 있을 것이다.


풀리지 않던 의문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국 중심 현대 팝의 근간은 '흑인음악'이다. 도대체 흑인음악이란 게 뭘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흑인음악의 출발점을 살펴봐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백인 농장주들은 흑인 노예들 간의 대화를 금지시켰다. 노예들은 힘든 노동을 버텨내고 또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지 표현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했고, 결국 이들은 하늘에라도 대고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곧 '필드 홀러(Field Holler)'라는 노예들의 노동요 형태로 나타난다. 필드 홀러는 같은 흑인들과는 거의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원치 않는 가혹한 노동을 해야만 하는 흑인들의 고통과 답답함·설움을 신께 호소하는 영적인 노래였다.


백인들 입장에서도 힘들게 일하는 흑인들이 노래의 리듬에 맞춰 묵묵히 일하는 것(노동요의 기본적 기능)으로 비춰질 수 있었기에, 대화를 못하게 막는 대신 Field Holler만큼은 완전히 금지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구전된 필드 홀러는 흑인들에게도 전파된 개신교와 만나서 '가스펠(Gospel)'이 되는 한편, 산업의 변화와 흑인들의 도시 이주 등으로 보다 넓은 사회와 접촉하면서 '블루스(Blues)'가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가스펠과 블루스가 바로 흑인음악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원래 흑인노예들의 음악이었지만 지금은 백인들도 너무나 사랑하고 자랑해 마지않는 미국 중심 팝의 근간이 됐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은 처음에 어떻게 만들게 됐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위안부'라는 것 자체가 나타나게 된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단순히 일본군의 성욕 해소를 위해서라고 하기엔 풀리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가스펠과 블루스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생겨난 게 아니듯이, 조선인 위안부도 분명히 역사적 맥락이 있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고 매번 막히는 지점이 많기 때문에, 어쨌든 뭔가 '다른 목소리'가 필요했다. [제국의 위안부]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여러 의문점들을 상당 부분 해소시켜주는 책이다.


[출처: 연합뉴스]


'다른 목소리'를 향한 야만적 대응


박유하 교수는 25년 전 일본 유학 시절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통역을 한 이후 위안부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고, 2004년에 민족주의를 넘어 한일문제를 논의하는 한일지식인 모임을 만들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도 위안부 문제였다고 한다. 박 교수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과 함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으며, 2011년에는 일본매체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제국의 위안부]에는 이때 연재한 글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긴 세월 이어진 적극적 활동의 일환으로 2013년 8월에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했고, 책이 나온 이후에도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만남과 심포지엄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그런데 출간 10개월이 지난 2014년 6월 갑자기 위안부 지원단체가 민형사상 소송과 함께 출판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썼다(이는 사실이 아니다)며 비난하기 시작한다.


2014년 11월에는 [제국의 위안부] 일본어판이 간행되고, 2015년 6월에는 법원 판결에 따라 34곳이 삭제된 [제국의 위안부 삭제판]이 출간된다(이렇게 일부가 삭제된 책이 현재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민사 재판 1심 판결은 2016년 1월에 있었지만, 박유하 교수가 즉각 항소한 상태다. 2016년 12월 20일 형사 1심에서 검찰은 박 교수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고,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이상윤 부장판사)는 2017년 1월 25일 오후 3시에 1심 선고를 내린다. 부디, 재판부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를 바란다.



도대체 왜, 위안부 지원단체가 박유하 교수를 공격하는 걸까? 아마 [제국의 위안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어보면,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뭔가 대단히 복잡한 내막이 있는 것도 아닌 듯하고, 오히려 (집단주의와 획일성, 이분법과 비이성적인 진영 논리가 만연한) 우리의 대한민국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장담컨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와 같은 상황 자체가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보통 한국 사회에서 '다른 목소리'가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나.


박유하 교수는 책을 완전히 무료로 공개해서 누구든지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해놨으니, 『제국의 위안부』 삭제판 전문 다운로드 링크를 첨부한다. 물론 나는 무삭제판을 읽었지만(중고서점을 통해 구했다), 삭제판을 읽어도 전체적인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내 언론은 별로 관심이 없겠지만, 오에 겐자부로 · 가라타니 고진 · 우에노 지즈코 같은 일본의 저명한 지식인들도 박유하 교수의 기소를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어차피 이 문제는 길게 이어질 테고, 다음 번에는 세부 내용도 집중적으로 정리해 볼 생각이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첫 번째 글을 반성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걸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너무 무관심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었는데도, 적극적으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검찰의 구형이 있은 다음에야 뒤늦게 책을 구해서 읽어본 걸 나는 반성한다. 그저 책을 썼다고 검찰이 학자에게 징역 3년을 구형하는 이런 야만적인 일이 다시는 없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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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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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이 2017.01.25 1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읽어 봤습니다.기자님의 책의 내용도 기자님의 기사도 모두 관점의 차이인거 같습니다.
    책의 내용이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주장하는 관점을 유화시켜논거 뿐이네요.
    기자님의 기사을 읽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을 다 읽어 봤는데 역시나네요.
    저자도 기자님도 모두 부끄러워 하셨음 좋겠습니다.

  2. sowhat 2017.01.25 2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천천히 읽어봐도 이해가 안되서요

    1. '식민지의 모순'이 근거라면 근거라고 쓰신거 같은데..
    식민지 시대에서 두 집단 모두 상황에 의해 변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말씀하시는건가요?

    2. '풀리지 않던 의문들' 이거 제가 한마디로 요약해 볼까요?
    백인들이 흑인들의 대화를 금지시키는 상황에서 필드홀러 즉, 흑인음악이 탄생했다.
    위안부도 이유없이 생겨나진 않았다.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고" 분명 역사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네?

    3. 기자회견을 통해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썼다(이는 사실이 아니다)며 비난하기 시작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네이버에 '자발적 매춘부' 검색해보시면,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 로 빗댄" 뉴스 쏟아지는데 저 수많은 기자들이 다 생각없이 쓴거겠죠?





    책 읽어봐라, 거기에 다 있다.. 무슨 책 광고하시는거라면 그러려니하는데

    부끄러운 줄 아세요.. 정말 소름돋고 갑니다.

  3. youryours 2017.01.25 2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그 시대상황 생각하면 뭐... 있음직한 일이겠죠 기자님?

  4. 하하 답도 없내 2017.01.25 2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 기삿글 보는 내내 멧돌의 손잡이를 찾게되내요... 뭔 말도 않되는 망말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말이라고 떠드시는 건지... 제국주의 시대에 일어난 모든 일들엔 시대적인 상황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그에대한 이유가 있다라.. 사상이.. 참으로 위험한 분이내요.

  5. 정현창 2017.01.25 2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안부가 생겨난 데에는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역사적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계시죠.
    당시의 상식으로 이해가는 역사적 이유였다고 책을 읽은 기자님께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설사 그렇다고 양보하더라도 지금으로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넘어오게된 데에도 분명 역사적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6. 무무 2017.01.26 0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들 보니까 책 읽어보지도 않고 개떼처럼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네요. 저도 처음에 뉴스 접하고 처벌해야지 왜 무죄 판결이 나왔을까 하다가 두가지 관점에 대한 글들을 읽고 잠시 생각을 보류해뒀습니다. 그 책을 읽어보지 않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애국자인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중에 책을 보고 말하시는것 같은 한 분 빼고 나머지 분들은 뭘 가지고 개처럼 달려 드는지 웃기네요.

  7. 정의와자유 2017.01.26 0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에 대한 덧글은 아닙니다.

    역사적 문맥이 달라 그 당시 그래서는 안 되었지만 그럴 수는 있었겠다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죠. 역사적 문맥 속에서 이해하려면 이해하지 못할 사건은 드물겠지요. 시간적 거리가 있는 만큼 우리 일이 아니니 고통도 덜하니까요. 그래서 가끔 판단이 어려울 때는 정신적 육체적 폭력이냐 아니냐, 정의냐 아니냐의 기준, 즉 아주 기본적인 인권의 기준에서 보면 인간 역사의 어떤 사건들이 명료하게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었는지 구분이 될 것입니다.

    http://www.nocutnews.co.kr/news/4535734

    삭제된 내용이 일부 있다고 하네요.

  8. 소코 2017.01.26 1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한부는 결론적으로 강제성과 속임수를 근거로 한 조선여성을 착취한 일본군대의 기만적이고 변태적인 악랄한 행위가 맞습니다.이런 것을 구분 하지 못하는 것은 글을 쓴 저자가 인식에 문제가 많다는 거죠..

    꼭 그 당시 조선이 아니더라도, 일본이 전쟁한 동남아나 만주, 중국 등에서 일어난 일본군에 여성학살과 선간필살(먼저 강간 후, 반드시 죽인다는 뜻)등의 행위등 으로 잘 알수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그 유례가 아주 드문 만행 이죠..

    참고로 제국의 위안부란 책을 읽고 댓글 써
    봅니다

  9. 학생 2017.01.26 2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우리나라는 법률과 양심에 의한 판사의 판단에 너무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주어진 질서 내에서의 결과는 승복해야 하는 것이고, 그에 불만이 있거나 결과를 다시 뒤집고 싶다면 사회가 정한 절차에 따라 추가적으로 진행하면 되는거죠. 저는 대학 과제를 통해 해당 책을 접했는데, 결론적으로 박유하님의 표현방식이 전적으로 옳은 방식이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정대협이 말하는 것 같은 반역사적인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위안부 할머님들을 위시한 단체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자신들을 정치세력화 하고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왔는지 그리고 그들은 왜 이렇게 미친것마냥 자신들의 존재감을 위해 어그로를 끄는지 ....저는 오히려 이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댓글의 앞쪽 부분에 비이성적으로 대응 하는 것 같다고 적었는데 방금 설 연휴 이후 규탄집회를 기획중이라는 기사를 보고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적 앞에 철저히 이성적인 것 같네요...

  10. 필명 2017.01.27 0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들이 위안부로 가봐라.. 참고로 가해자는 반성이 없다... 위안부가 어떻게 해서 갔든 지금 해결이 안되는 근본 원인은 일본의 반성이 없는 것...

  11. 응원합니다. 2017.01.27 0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설이 너무 길지만 요약하자면 제국시절에 그럴수밖에 없었고 위안부는 사기에 속아넘어간 할머니들이란 글이란 점에서 공감합니다. 저는 일본어가 가능해서 일본뉴스를 봅니다. 위안부 할머니 39명중 29명이 10억엔이라는 합의금이 아닌'지원금'에서 수령해 갔다고 일본매체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게 그들의 명예라면 참으로 부끄럽지 않을 수 없는 행태입니다.

  12. Greedy 2017.01.28 1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함은 댓글에서 충분히 증명되네요. 설사 일본 극우세력과 주장 내용이 유사하다고 해도 그것을 토론과 대화, 근거로서 승리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이런 문제만 던저지면 댓글엔 항상 애국자와 정의의 사도가 울분에 넘쳐 욕설로 자신만의 독립운동을 하죠. 하지만 그건 독립운동이라기보단 다른 생각을 비판하지 못하는 무능함에서 출발하는 학습적 전체주의의 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13. 2017.01.28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1 2017.01.29 17: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론의 마녀사냥 선동에 놀아는 무지렁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런 치들은 싹 다 차단먹여야 날뛰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리고 박유하 교수 책은 논란거리 토론거리는 되도 아예 틀린 얘기를 쓴 것도 아니고
    나름 가치있는 얘기를 쓴 것이라 생각합니다.

  15. 엔젤워싱턴 2017.02.24 17: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민족은 이성10% 90%감성인 선동에 약한민족입니다. 친일파라고하면 친일파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남들 가는대로 따라가는게 한국인의 습성이라 그핏줄을 타고난 한국인들이 고쳐지겠습니까? 다른시각이라하면 다 매국노라고 생각하는게 지금세태죠.. 백날 소리쳐봐야 소용없습니다. 저 5000만국민들 눈엔 일본은 무조건나쁜놈으로보일뿐 지금도 보세요. 아베신조가 신사참배하고 군국주의부활싴키는데, 한국인들은 비난만하고 어떻게 일본보다 강해질지는 생각하지않아요.

  16. 나그네 2017.03.06 2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댓글란도 다 한국인의 모습이 보이면서
    난 다르다 그들보다 낫다며 비난만 할 줄 아는 모습에 아려옵니다.
    이 나라에 희망이 있을가요.ㅠㅠ

  17. ㄴㄴ 2017.03.14 15: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이 싹틀 수 있었느니 뭐니 하는 개소릴 나보고 수용하란 건지? 성노예 피해자는 한국인만 있는것이 아닐텐데? 네덜란드 쪽 피해자 이야기는 개무시하고 그저 민족주의가 싫으니까 2대전 말기 일본의 광기넘치는 제국주의를 정당화하자?
    물론 님은 위의 제국주의 운운 어쩌는게 지나친 비약이라고 말하겠지만, 역사왜곡이란건 보통 수십년에 걸친 물타기와 물타기의 누적으로 이루어진다는걸 볼때, 그리고 일본넘들의 위안부에 대한 기본적 입장을 볼때 이런 소위'객관화'프레임을 용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난 매우 회의적임.

  18. ㅋㅋ 2017.09.28 1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되게 길게도써놨네요ㅋㅋㅋ 지들 할머니가 위안부에 있다오셨어도 야만적이니 뭐니 떠들수있을지 모를일이지만 중립과 객관을 아무데나 갖다붙히는 것이야말로 피해자를 한번더죽이는 야만적 행위라는걸 좀 아셨으면 좋겠네요 걍 지나가려다 댓글보니 기자님기자님 하길래 이런 인간도 기자를하는구나 어처구니가없어서 남깁니다 하긴 저딴 망상글도 학서라고 책파는 인간이 학자라고 분류되는데 기자라고 다 기자다운건 아니겠죠^^

    • 허허 2017.10.27 14: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좀 곱게 하시길. 일반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지 찬찬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일본을 마음껏 비난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보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19. 한국의 젊은이 2017.10.27 1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의 젊은이가 문제입니다 이나라는

    이제는 자신들이 꼰대라는 걸 알아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이글을 읽고 욕을 하겠죠

    그런걸 생각하면 몇년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광고가 있습니다.

    모두가 yes라 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광고에서

    왜 no라고 말하기 힘든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한국의 우매한 젊은이들은

    그런 한국사회의 편견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자신들이라는 걸 알까요?


  20. 규윤아빠 2017.10.27 2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제10위 부국임에도 원정녀가 세계를 누비는것은 어떻게 봐야하는지,,자기선택이라 비난하지말자고 하겠죠,,그럼 그당시 정말로 강제로만 끌려만 갔을까 의심이 들지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나,,같은 여성으로 욕을먹고있는 박유하교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