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고, 이념보다는 진실을 주목해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일간지 '르몽드(Le Monde)'를 창간한 위베르 뵈브메리(Hubert Beuve-Méry, 1902~1989)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이렇듯 진실이라는 것은, 꼭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2015년 10월 8일 오후,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50대 여성이 위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딱히 목격자도 없었고, 특별한 단서도 없이 그저 벽돌 하나와 '피해자가 당시 고양이집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만 확인된 상태였다. 당시에 밝혀진 사실만 놓고 보면 그 벽돌이 실수로 떨어진 건지 아니면 누군가 고의로 던진 것인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경찰 입장에서는 어차피 마땅한 단서가 없으니 일단 벽돌과 고양이집을 바탕으로 수사를 벌이기는 했지만, 좀 더 엄밀히 따져 보면 길고양이 문제 자체가 이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의 여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설사 고의적인 범죄였다고 하더라도, 범인이 과연 피해자가 '캣맘'이어서 벽돌을 던졌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이유로 그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출처: 당시 용인서부경찰서가 배포한 전단지 갈무리]

 

그런데 한국언론에서는 '캣맘 혐오증'이라는 표현까지 기사 제목에 붙여서 사건을 한쪽으로 몰아갔고, 사람들은 길고양이 문제와 관련해 여기저기서 극심한 반감을 드러냈다. 아직 사실관계가 거의 밝혀진 것이 없는데도, 인터넷 상에서는 고양이 애호가와 그외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 사건은 11살 어린이의 어처구니 없는 잘못으로 밝혀졌고, 결국 '캣맘 혐오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지난 17일 발생한 '노래방 살인사건'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지금, 작년 10월의 '벽돌낙하로 인한 50대 여성 사망사건'이 왠지 생각난다. 그때도 (아무런 근거 없이) '캣맘 살인사건'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일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했는데, 이번에는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가 크게 들썩거리고 있다. 아직 수사 초기이고 제대로 밝혀진 부분도 별로 없는데, 우리는 왜 또 이러고 있는 걸까?

 

 

정신질환자의 말 한마디가 불러온 파장

 

지난 17일 오전 1시 25분, 서울 서초구의 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인 A씨가 왼쪽 가슴 등을 수차례 칼로 찔려 살해됐다. 경찰은 사건 발생 후 현장 주변의 CCTV를 분석해 34세 김아무개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으며, 같은날 오전 10시 범행 현장에 다시 나타난 김씨를 붙잡았다. 검거 당시 김씨는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엌용 식칼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오른쪽 손바닥에는 베인 상처가 발견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사건도 여느 살인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했다" 한국언론은 용의자의 이 말 한마디를 절대 놓치지 않았고, 사건 발생 단 하루만에 이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로 굳어졌다. 수사가 이제 막 시작된 상황에서 (캣맘 살인사건 때처럼) 인터넷 상에서는 온갖 혐오의 언어들이 넘쳐나고, 벌써부터 극심한 반감 표출과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출처: 오마이뉴스]

 

그런데, 경찰이 김씨의 가족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김씨가 2008년부터 올해 1월까지 정신분열증으로 치료를 받았다는 진단서와 진료 기록이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건강보험공단에서 회신받은 진료내역과 비교해 본 결과 (김씨는) 2008년 여름부터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이래 2008년 수원 모 병원에서 1개월, 2011년 부천 모 병원에서 6개월, 2013년 조치원 모 병원에서 6개월,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까지 서울 모 병원 6개월 등 4번 입원치료를 받은 기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서초경찰서 관계자 "김씨가 2008년부터 정신분열증과 공황장애로 4차례 걸쳐 입원한 기록이 있어 '여성혐오 살인'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감정적 반응이 아닌 냉철한 대응의 필요성

 

가뜩이나 불평등이 만연한 한국사회의 여성들이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했다"는 용의자의 말을 듣고 분개하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안 그래도 성차별과 여성혐오 문제가 심각한데, 이런 사건까지 벌어졌으니 마치 '방아쇠'와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살인이 여성혐오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진정으로 말하건대, 지금 이 시점에서는 좀 더 냉철한 시각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우선,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정신분열증 환자와 대화할 때, 우리가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걸 감안하고 어느 정도는 걸러서 들어야 한다. 근원적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과는 별개로, 오류 가능성이 높은 정신질환자의 횡설수설에 우리가 마구 휘둘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지기 전까지는 항상 신중해야 하고, 최대한 냉정하게 판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설사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했다"는 김씨의 말이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장 '여성혐오 범죄'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이토록 심각한 사건이 고작 범죄자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단순하게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당연히 사건 현장의 실제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이뤄져야 하고, 이제까지 김씨가 살아오면서 어떤 경험을 했고 그 일들 속에서 과연 주변의 여성과 남성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만 진짜 여성혐오 범죄인지, 아니면 그저 정신질환자가 홧김에 저지른 묻지마 살인일 뿐인지를 판단할 수가 있다.

 

 

물론, 아직까지 밝혀진 게 별로 없는 상황에서도 이 사건은 정신분열증 환자가 홧김에 저지른 묻지마 살인이면서 동시에 여성혐오 범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사건 발생 단 하루만에 여성혐오 범죄라고 아예 단정을 짓고 다들 휩쓸려 들어가 버리면(지금 한국언론의 거의 모든 초점이 여기에 맞춰져 있다), 이 사건의 다른 측면, 이를 테면 정신질환자 관리라든가 묻지마 범죄에 대한 사회적 논의 같은 것들이 제대로 조명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서둘러 결론을 내려버리고 한쪽으로 몰고가면 속은 편할지 몰라도 우리 사회에 별로 도움은 안 된다.

 

또 근본적으로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비열함'과 '여성혐오'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즘의 원칙과 가치를 들먹이며 이 두 가지가 결국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단지 이론적인 얘기고 실제 사건과 관련해서는 좀 엄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는 꼭 여성혐오가 아니더라도 이와 같은 비열함이 전반적으로 팽배해 있는데, 거의 차이가 없는 사안에도 강자인 정치인과 상대적으로 약자인 연예인에 대해 너무나 다른 잣대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 걸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이 진정으로 우리 사회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 정신분열증 환자의 말 한마디를 그냥 액면 그대로 믿기 전에, 실제 사건의 내용이 어떠했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철저히 밝혀야 한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용의자의 말 한마디와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것 외에 특별히 여성혐오 범죄라고 단정 지을 만한 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지금 시점에서 무조건 여성혐오로 몰아가는 건 확대해석일 수밖에 없고, 별로 신중하지 못한 맹목적 동조에 가깝다. 이렇게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서로 혐오의 언어로 싸우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출처: 연합뉴스]

 

이념 자체보다는 진실이 중요하다

 

이 세상 그 어떤 인간도 완벽하지 않듯이,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이념도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이념이라는 건 언제나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단순하지 않듯이 사회문제 역시 단순하지 않을진대, 이념에 빠진 사람들은 모든 걸 그 이념의 틀로 바라보며 복합적인 원인을 한 가지로 환원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이 세계엔 어떤 이념에서 말하는 것 외에도 중요한 일들이 많고, 각각의 문제는 다 그 나름대로의 원인과 해법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세상 만물이 시시각각 변화하듯이, 이념도 항상 변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이념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 모든 일을 하나의 이념으로 설명하려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벽돌낙하로 인한 50대 여성 사망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건의 실체가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기레기들의 말만 듣고 정말 '캣맘 살인사건'이라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길고양이 문제의 심각성을 얘기하며 동물복지를 소리 높여 외쳤고, 곳곳에서 날카로운 언어의 충돌이 벌어졌다. 물론 진짜 캣맘 살인사건이었을 수도 있고, 동물복지 역시 참 중요한 사안이다. 이때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동물복지가 한 단계 더 발전했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일이고, 이를 위해 노력한 이들은 마땅히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캣맘 살인사건은 진실이 아니었다. 동물복지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사건이었고, 이를 주장한 사람들은 한순간에 '신중하지 못한 기레기 동조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일과 관련해 우리 사회의 동물복지도 딱히 개선되지 않았다. 그저 동물복지를 외쳤던 이들과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경멸만 남았을 뿐이다. 도대체 왜 이들은 사실관계도 밝혀지지 않은 사건에 대해 이토록 격렬한 반응을 보였을까? 당연히,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 고양이 애호가로 살아오며 지속적으로 받았던 스트레스와 문제의식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는 분명히 길고양이 문제가 있고, 이들도 좋은 의도를 갖고 동물복지를 주장했을 것이다. 다만, 캣맘 살인사건과 관련한 모든 일련의 행동들은 진실에 기반한 게 아니었다. 그냥 일반적인 문제의식과 동물복지에 대한 신념, 그리고 헬조선 '분노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서의 울분이었을 따름이다. 이 중에서도 아마 동물복지라는 훌륭한 도그마가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이 이념이 옳은 게 분명한데, 이에 반하는 인간들의 말에 자신이 위축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평소였다면 또 다른 문제였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건 이념과 관계된 일이었고 명분이 충분했다. 이들이 나중에 사실관계가 드러난 이후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번에 노래방 살인사건도 비슷하다. 용의자가 정신질환자라는 게 드러나기 전에 이미 사람들은 '여성혐오 범죄'라는 틀로 성급하게 이 사건을 규정해버렸다.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많은 이들이 강남역으로 가서 "여성선택살인" "여자라 살해당했다"느니 하며 벌써부터 이곳 저곳에서 감정적으로 격한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물론, 진짜 여성혐오 범죄로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용의자는 어차피 정신분열증 환자이고, 소위 말하는 정상인 또는 일반인 남성의 관점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과연,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사회 전반의 여성혐오 문제와 결부시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될까? 냉정하게 말해,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용의자를 그냥 '미친놈' 정도로 생각할 한국의 많은 남성들이, 이번 사건과 연관지어 여성혐오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의 주장에 얼마나 수긍할까? 유감스럽게도 이번 사건은 그저 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개인적 일탈 수준에서 정리될 가능성이 높을 듯싶다. 너무 이른 시점에 여성혐오 이슈로 부상하는 바람에 대중들은 냉철한 판단을 하기도 전에 이미 선입견을 가져버렸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한국언론이 묻지마 범죄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정신질환자 관리 문제를 제대로 다뤄주기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참 여러모로 아쉬운데, 그래도 부디 경찰의 수사라도 잘 이뤄져서 보다 많은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진실은 어느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라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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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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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식 2016.12.17 2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캣맘 사건은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을지 몰라도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 혐오 범죄임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듯 합니다/ 일단 가해자는 엄마도 여자다.라며 엄마가 넣어준 옷도 입지 않았다고 하죠. 여성이 나를 싫어하고 무시해서 살인했다는 말도 합니다. 조헌병임을 들어서 이는 그냥 정신적 질환으로 인한 범죄라고 하시는 주장이었는데 실제로 조헌병의 범죄 연계율이 있다는걸 아시나요? 마치 음주로 인한 심신 미약의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질러 이는 '술'때문이라고 일반화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게다가 조헌병 말고도 정신병 증상을 포함해 장애가 있는 경우의 범죄율은 총 5퍼센트에 달합니다.정확한 출처는 모르겠으나 정부 산하기관 조사 수치였습니다. 그 5퍼센트중에서 강력범죄가 차지하는 수는 얼마나 될까요? 생각해보면 매우 적을것이라고 유추도 가능하겠죠. 조헌병이 원인이라는 듯 기사와 글을 써내려가는 분이 많아서 정신적 질환으로 병을 앓고 계신 환자분들에 대한 일반화가 이루어짐으로써 많은 분들이 편견과 차별으로 아픈 나날을 보냅니다. 여성혐오 범죄를 정신적 질환으로 일어났다고 축소하지 말아주세요. 그분은 여자라서 살해당하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