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국, 계급사회의 불평등을 비로소 '인정'하기 시작하다.

 

올해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쓴 신조어로 '금수저(좋은 가정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헬조선(대한민국의 여러 상황이 지옥과 같다)', 'N포세대(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청년세대)'가 꼽혔다. 이 중에서 최근에 제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말이 바로 흙수저나 금수저로 대변되는 수저계급론이다.

 

원래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는 영어식 표현에서 비롯됐다고 하는데, 금수저나 은수저와 대비되는 '흙수저(가진 것 없는 서민층에서 태어난 사람)'가 헬조선 · N포세대와 맥을 같이 한다. 과거 유럽의 계급사회에서 귀족들이 은식기를 사용하고, 상류층 아이에게 유모가 은수저로 음식을 먹이던 모습을 빗댄 것이다.

 

수저계급론이 2015년 말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라는 건, 소위 말하는 보수신문의 칼럼 제목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나는 '흙수저'라 좋다]라거나 [흙수저가 금수저를 이기는 법] 같은 제목으로 연일 수저론 얘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이념이나 나이를 막론하고 불평등 문제가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불평등,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위협

 

사실, 올해 수저계급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에도 이런 낌새는 있었다. 2014년에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가 44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전 세계 태도 설문조사(Global Attitudes survey)'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평등이 제일 큰 위협이라고 답한 바 있다.

 

[출처: 퓨 리서치 센터]

 

전 세계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니까 당연히 지역적인 차이가 있고,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레바논이나 팔레스타인 같은 중동에서는 종교와 인종 갈등이 세계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에이즈와 질병은 아프리카 지역 국민들의 골칫거리였으며, 핵무기는 역시 일본과 우크라이나 등 원전사고가 발생한 곳에서 제일 위협적인 문제로 여겨졌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남아메리카 사람들은 환경오염이 가장 큰 위협이라고 답했는데, 이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결국에는 특정 국가의 지정학적 문제가 분명히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화두가 중동에서는 종교 · 아프리카에서는 질병인 것처럼, 한국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인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평등을 원전사고나 환경오염보다 더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다.

 

불평등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평등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한국 사회의 불평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다수가 가난했던 시절에 출세한 이들을 예로 들며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불만을 나타내는 상대에게 오히려 핀잔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워낙 사회적 격차가 심해지고 청년들이 힘들어 하니까, 요즘은 대놓고 이러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좀 줄어든 듯하다.

 

그 대신 최근에는 대체로 이런 식인 것 같다. "누구는 이렇게 저렇게 성공했으니 너도 열심히 해봐라", "사회 탓이나 부모 탓을 하지 말고 네가 새로운 길을 찾아라", "남들 하는 대로만 따라하지 말고 네 나름대로의 재능을 키워라" 등등.. 가만히 듣고 있으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 결국 모든 걸 개인의 문제로 한정 짓는 논리다. 사회의 변화보다는 자기계발을 중시하고, 사회적 논의를 하기보다는 그저 원론적 얘기만 반복한다.

 

[출처: 조선일보]

 

앞서 언급한 조선일보의 칼럼에서도 이런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흙수저'라 좋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를 예로 들며 "호기를 부리고, 배짱을 튕겨라"고 말한다. [흙수저가 금수저를 이기는 법]이라는 칼럼에서는 "스펙보다 열정, 학벌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을 더 본다"며 "흙수저를 탓하기보다 자신만의 승리 루트를 찾으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이 두 글에서도 '한국 사회가 불평등하다'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괜히 "한 사람의 생존과 행복을 결정하는 변수는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며 지극히 원론적인 변죽만 울리다가, "불평등한 세상에 무릎 꿇지 않아야 청춘이다"라며 순진한(?) 결론을 내린다. 또 "약자가 강자와 똑같이 스펙 경쟁을 벌인다면 질 수밖에 없다"고 순순히 인정하며, 크리스마스에 예수의 말씀을 빌어 '약자 승리의 복음'을 설파한다. '흙수저가 금수저를 이기는 법'은 결국 현실보다는 천국에 가까운 얘기인 셈이다.

 

한편, 이와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짱돌을 들어라"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세력을 구성하며, 적극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라는 말이다. 이 역시 맞는 말이긴 한데, 그런다고 꼭 행복해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21세기 다원사회에서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각 개인이 자신의 시간을 들이고 싶은 부분은 다양할 텐데, 과연 이렇게 정치적 집단의 형태로 의사를 표출하자고 말하는 게 대중에게 언제까지 호소력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특정 분야에 과도하게 집중된 '압력'을 완화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다. 대표적인 예로, 공무원이나 몇몇 대기업에 편중된 관심도 좀 줄여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이런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한 쪽만 다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여기에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이 지나치게 높고, 어떻게든 이 좁은 문을 통과하려고 자신의 특권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필사적인 경쟁 속에서 극단적인 생존 방식이 발달하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

 

 

결과적으로 돈이든 빽이든 뭐라도 하나 '가진 사람'이 유리하고, 그외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들 모두는 그저 한낱 '인간'일 뿐이고, 경쟁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조금이라도 더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나은 부분을 무기로 활용하기 위해 발버둥치기 마련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그걸 앞세우는 것처럼, 돈이 있거나 빽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이용하게 된다. 이런 비정상적인 압력을 단지 짱돌만 든다고 해소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획일성'도 헬조선 · N포세대의 주요 요인 중 하나다.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사회

 

어쨌든, '계급사회' 대한민국의 불평등은 이제 국가 전체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 모든 걸 개인의 문제로 한정 지으며 자기계발을 중시하고 원론적 얘기를 반복하는 보수세력의 시선이든, 아니면 정치세력을 구성하여 적극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에 맞서라는 진보세력의 시선이든, 둘 다 불평등이 고착화된 한국 사회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수저계급론이 부상한 2015년은 한국이 본격적인 신(新) 계급사회로 간주되기 시작한 첫 해로 기억될 듯하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관련조사 결과에서도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 가능성(계층이동)에 대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0명 중 단 2명에 불과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올해 내놓은 자료를 봐도, 저소득층이 중산층 이상으로 올라선 비율(빈곤탈출률)은 고작 22.6%로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출처: 통계청, 연합뉴스]

 

이젠 그 누구도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됐는데, 이걸 단순히 "너만 잘하면 돼" 또는 "이건 다 사회 탓이야"라고 말하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무시한 채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행태는 최고 자살률과 최저 출산율을 절대 막지 못할 테고, 시대의 흐름과 구성원들의 획일적 선택 문제를 도외시한 채 집단적 해결에만 몰두하면 그 어떤 변화도 이루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에 갇힐 것이다.

 

이미 초저성장 장기불황 시대에 접어든 한국은 앞으로 새로운 소득보다는 기존에 보유한 자산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테고, 경제적 기준에서의 불평등이 완화되기는 사실상 힘들 가능성이 높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다들 '일자리 창출'을 떠들어 대지만) 솔직히 말해서 첨단기술의 시대에 일자리의 수가 늘어나기도 어렵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한 사람이 평생 한 두 가지 일만 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부(富)에 대한 관점, 경제 관념, 직업관 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 해야 한다.

 

지금 자신이 속한 계급이 달라지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며,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여러 직업의 수행을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남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 선택했다가는, 평생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끝날 것이다. 자기가 최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고 유쾌하게 할 수 있는 일을 골라야 하고, 인생의 각 시기마다 자신의 소득에 맞춰서 생활 방식 자체를 나름대로 재설계해야 한다.

 

계급사회에서 획일적인 삶을 살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자기만의 독자적인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들 각자가 이렇게 주체적인 선택을 하다 보면 한국 사회의 특정 분야에 과도하게 집중된 비정상적인 압력도 자연히 완화될 테고, 경쟁이 약화되면 극단적인 생존 방식이나 무리한 도전도 저절로 줄어들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 속에서 사회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좀 더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으며, 상대적 박탈감에 대해서도 유연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사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개념은 20세기 경제개발 시대에나 어울리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에서 도대체 '개천'이 어디인가? 또 '용'이라는 건 도대체 뭔가? 어떤 사람의 성공이라는 건 타인이 일방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인데, 과연 어떻게 살아야 개천에서 난 용으로 사는 걸까? 진정으로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획일화된 가치와 계급을 탈피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체계를 세우고 계급의식을 확립하며 인류 보편적 정의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2015년은 계급사회의 불평등을 우리 모두가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던 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그 누구도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부정할 수 없게 됐으며, 초저성장 장기불황 시대에 이 사안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향후 오랫동안 계속될 길고 긴 침체기에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법과 제도를 개선할 수 있을지도 이와 직결되는 문제다.

 

바야흐로 한국 사람들이 계급사회의 불평등을 분명히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년부터 우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사회의 고질병인 획일성을 거부하고, 특권은 솔직하게 인정하며, 각자가 자기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 누군가 말했듯, 한 개인의 성공에 특권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걸 서로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젠 대한민국의 불평등이 단지 경제적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거라 믿으며, 2016년에는 계급사회의 불평등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사회 전반적 논의가 본격화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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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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