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거스 디턴 [위대한 탈출] 번역서 왜곡과 국정교과서 강행은 결국 한 몸?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1945~ )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이론에 대해서 국내 일부 언론은 거의 '오보'에 가까운 소개를 했다. 주로 소위 말하는 보수경제지들이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불평등이 성장의 동력"이라는 이론을 주장했다고 곡해했다. 그러면서 평등을 주요하게 다룬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케티와 정반대되는 앵거스 디턴의 이론에 노벨위원회가 손을 들어줬다고 썼다.

 

 

   관련글 - 2015/10/14 - 한국언론의 노골적인 오보, 이대로 괜찮은가? [클릭]

 

 

하지만 이후 몇몇 보도를 통해 분명히 확인된 것처럼, 앵거스 디턴은 단순히 불평등을 옹호하는 입장이 전혀 아니다(노벨경제학상 수상 이후 앵거스 디턴은 첫 공개 발언에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맥락에서 불평등이 확대되는 현재의 추세는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국내 일부 언론과는 달리 해외 언론들은 토마 피케티의 저작이 앵거스 디턴의 연구에 빚지고 있으며, 두 학자의 연구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소개하고 있다.

 

[출처: 한국경제 '노벨경제학상에 '위대한 탈출' 저자 앵거스 디턴'(2015/10/13) 기사 페이지 갈무리]

 

과연, 어떤 불순한 의도나 노골적인 목적이 있지 않고서야 어쩌면 이렇게 완전히 엉뚱하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이론을 소개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앵거스 디턴의 책 중에서 유일하게 국내에 번역 출간(2014년 9월)된 [위대한 탈출]의 출판사가 바로 한국경제신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 경제학자 중에서 의혹을 제기한 이가 있었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이상한지를 블로그에 정리하기도 했다.

 

 

[출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김공회 연구위원 블로그 갈무리]

 

이렇듯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한국경제신문출판사는 10월 20일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 번역 왜곡 논란에 대한 출판사의 입장 전문'을 자사 블로그에 게재한다. 그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기술적인 누락(편집상의 문제)은 인정하면서도 "왜곡의 의도나 시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경제신문이 "논란이 일어난 만큼 부제는 원제 그대로 살리고, 빠진 부분을 되살려서 완역본을 준비하겠다"는 입장 발표를 한 이후에도 [위대한 탈출] 원문 왜곡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고(오히려 더 많은 누락, 변형 의혹이 제기됐다), 마침내 프린스턴대 출판부와 앵거스 디턴의 공식 입장이 발표됐다.

 

[출처: 프린스턴대 출판부 입장 발표 갈무리]

 

[출처: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정태인 소장 페이스북 갈무리]

 

결국, 한국경제신문출판사가 번역 출간한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은 아예 '회수'가 되어야 할 정도로 완전히 엉뚱한 번역이었던 것이다. 앵거스 디턴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자 한경이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주장과 정반대'라고 설레발을 쳤던 것도, (프린스턴대 출판부와 디턴의 공식 입장에 비춰보면) 전혀 근거 없는 얘기인 셈이다.

[이쯤 되면, 이미 책을 구입한 사람들은 한경에 '불량품'에 대한 환불 요구를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앵거스 디턴과 프린스턴대 출판부의 허락을 받지 않은) 한경의 [위대한 탈출] '한국어판' 서문을 주목해야 한다. '피케티 VS 디턴, 불평등을 논하다'라는 제목의 이 서문은 (프린스턴대 출판부와 앵거스 디턴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다른 불평등에 관한 저작과 대비해서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주장과 정반대'라는 한국경제신문 보도의 근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출처: 앵거스 디턴 [위대한 탈출] 한국어판 서문 갈무리]

 

[출처: 경제학자 오석태 페이스북 갈무리]

 

[출처: 조선일보 칼럼 ''공급자 입맛대로' 좌편향 역사 교과서' 갈무리]

 

자, 보다시피 [위대한 탈출] 한국어판 서문을 쓴 사람은 '좌편향 역사 교과서' 운운하며 국정교과서 지지 칼럼을 쓴 인물이다. 프린스턴대 출판부와 앵거스 디턴에 의해 '제거되어야 할' 서문으로 지목 받은 글을 쓴 사람과 소위 말하는 보수신문에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글을 쓴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사실, 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듯하다.

지금도 기사 내용을 못 믿는 건 물론이고 도대체 책의 번역이 정확히 됐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인데, 앞으로 아이들은 권력층의 입맛에 맞는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고 어른들은 도무지 신뢰하기 힘든 번역서를 계속 보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불통과 단절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국내 번역본에 함부로 누락과 변형이 가해진 것(또 이를 바탕으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이론을 국내 언론이 엉터리로 소개하는 것)과 수많은 역사학자 및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려고 하는 것, 이 둘을 과연 동떨어진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같은 목적을 가진 행위이고, 바로 지금 이 순간 한국사회에서 전방위적인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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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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