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에 이어 현대까지, 서울에 지어지는 두 개의 마천루가 박원순을 진퇴양난에 빠뜨리다.

 

저번 달 30일, 현대자동차그룹은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지난해 9월 10조5500억원을 들여 매입)에 대한 개발 구상과 사전협상 제안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고 한다. 관련 보도를 종합하면, 현대자동차는 한전 부지에 그룹 사옥을 포함한 업무시설·전시컨벤션 시설·호텔·판매시설 등을 조성하겠다고 제안했는데, 현대차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역할을 하게 될 신사옥은 지상 115층(높이 571m)의 초고층 건물로 계획되어 있다.

 

이는 2016년 말 완공 예정으로 잠실에 건설 중인 롯데월드타워(123층·555m)보다 16m 더 높은 국내 최고층 빌딩으로서, 한국에서 현존 가장 높은 건물인 인천 송도 동북아무역센터(68층·305m)보다는 무려 266m나 더 높은 '마천루(하늘을 찌를 듯 높이 지은 건물, skyscraper)'가 된다. 애초에 현대차 본사 사옥의 완공 시기는 2021년으로 계획됐다는데, 서울시의 인허가 과정이 별 문제없이 진행된다면 내년 하반기에 착공해서 2020년쯤 '조기' 완공할 수 있다고 한다.

 

[출처: 경향신문(2015/02/15), <현대차 ‘571m 마천루’ 2020년에 조기 완공>]

 

그리고 제2롯데월드의 사례에서 이미 본 것처럼, 2020년이 되기 전에도 초고층 빌딩인 신사옥 외의 주변 건물들은 '조기' 개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롯데그룹이 하는데 현대그룹이 못할 일은 없지 않은가? 건축허가 과정에서부터 조기개장한 현재 시점까지 제2롯데월드 주변과 롯데월드타워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도 이곳의 거대쇼핑몰들은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발걸음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모두들 불안해 하지만 말이다.

 

하인리히의 법칙과 마천루의 저주

 

재난과 관련해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는 게 있다. 미국 보험사에 근무하던 하인리히라는 사람이 산업재해 사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알아낸 통계적 법칙인데,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하며, 산업재해가 발생해 중상자가 1명이 나오면 벌써 그 이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명의 경상자가 발생했고 또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이미 300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법칙을 제2롯데월드에 적용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삼풍백화점이나 세월호를 포함해서 모든 참사의 역사가 분명하게 증명하듯, 재앙은 경고 없이 오지 않는다.

 

[출처: 국민TV(2014/12/16), <제2롯데월드 인부 추락사…벌써 3번째 사망 사고>]

 

한편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라는 말도 있다. 1999년에 도이치뱅크의 분석가 앤드루 로렌스가 100년간의 사례를 분석해 내놓은 가설로서, 과거 사례를 보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초고층 빌딩 건설 프로젝트는 주로 돈줄이 풀리는 통화정책 완화 시기에 시작되지만 완공 시점엔 경기 과열이 정점에 이르고 버블이 꺼지면서 결국 경제 불황을 맞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1931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102층, 381m)이 완공되면서 대공황이 깊어졌고, 말레이시아는 페트로나스타워(88층, 452m)가 완공된 99년에 금융위기로 휘청거렸으며, 두바이 역시 부르즈칼리파가 완공된 2009년 경제 위기를 맞았다.

 

마찬가지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마천루 붐이 불었던 중국도 벌써 부동산 가격 거품이 국가적 골칫거리가 된 상태고, 이는 세계 경제에도 상당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부동산 경기 침체 이전에 여러 곳에서 초고층 빌딩 건설 계획을 세웠지만, 지금은 아예 사업 포기 상태에 처한 곳이 많다

 

원래는 서울과 수도권에 총 10여 곳의 초고층 빌딩 건설 계획이 있었지만, 롯데월드타워를 뺀 나머지 계획들은 현재 백지화 됐거나 파산 직전 상태에 처해 있다고 한다. 사실 롯데월드타워도 롯데라는 대기업만 아니었으면 사업 자체가 현실화되기 힘들었을 텐데, 대한민국의 재벌 특혜 구조는 여기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롯데월드타워 계획은 끝내 취소되지 않았고, 또 이번에 서울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이 본사 신사옥 건설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마천루의 저주는 단순히 결과론이라기보다, 초고층 빌딩을 짓는 과정 자체가 일정 부분 원인이 되어서 발생하는 재앙이기도 하다. 마천루는 보통 20~30층 오피스 빌딩 건축비의 3~4배 정도가 들 정도로 건축비가 비싸고, 그래서 100층 이상 빌딩은 경제성을 맞추기가 몹시 어렵다.

 

그런데도 몇몇 지역에서 이런 사업이 추진되는 것은 흔히 말하는 '랜드마크'와 경기 활황에 대한 판타지가 상당 부분 작용하는 것이며, 대부분 사업 과정에서 무리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한데, 이미 초저성장 장기불황 시대에 접어든 지금 한국에서 국내 굴지의 재벌인 롯데와 현대가 위험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마천루를, 이 나라에서 가장 복잡한 도시 서울에 겨우 3km 거리를 두고 비슷한 시기에 2개나 짓겠다고 나선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제2롯데월드 건설 과정 중에 얼마나 많은 무리수와 특혜가 있었나?

 

 

애초에 허가부터가 나기 힘든 상황이었음은 물론이고, 건축 도중에도 주변의 싱크홀 · 석촌호수 수위 저하 · 비행기 충돌 우려 · 교통대책 부실 문제 등등이 계속해서 불거졌다. 여기에 더해서 현대차 신사옥까지 2016년 말에 착공하겠다니 말 그대로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마천루의 저주를 처음 착안한 앤드루 로렌스는 이렇게 말했단다. "기업이 제일 큰 빌딩을 짓겠다고 공언하고 첫삽을 뜨면, 당장 그 회사 주식을 팔아라"]

 

서울시장 박원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울시로부터 작년에 임시사용 승인을 받아 부분 개장하고 저층부 영업을 개시한 제2롯데월드는 끊임없이 사고가 터지며 시민들의 불안감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 마침내 지난 1월 7일 박원순 시장의 입에서도 '제2롯데월드에 사고가 재발하거나 안전대책이 미흡할 경우, 사용 중지나 사용승인 취소를 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거대 쇼핑몰 입주상인들의 이해관계가 이미 결부된 상태고, 얼마 전 롯데 신동빈 회장도 제2롯데월드 안전관리위원회에 그룹 부회장과 주요 계열사 사장 등 '실세'를 직접 투입했으니, 서울시가 지금 당장 무슨 조치를 취하기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제2롯데월드 문제는 박원순 시정 2기의 커다란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외적으로는 (박원순이 대선 지지도 1위인 한) 여권의 공세에 계속 시달릴 테고, 내적으로는 시민들의 제2롯데월드 불안감에 응대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2015년 박원순의 서울시장직 수행은 진짜 좌불안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제 현대자동차그룹의 신사옥 조성 계획에 대한 사전협상과 건축허가 검토까지 올해와 내년에 걸쳐 긴 시간 해야 할 테니, 이중 삼중으로 참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지금 당장 대형사고가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제2롯데월드, 그리고 2016년에 완공하고 또 2016년에 착공하는 롯데월드타워와 현대차 신사옥.

 

한 도시에 초고층 빌딩이 하나만 있어도 부담스러운데 2개가 연달아 있으니, 마천루의 저주 측면에서 보면 대한민국 서울은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춘 셈이다. 마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두 가지 이상의 악재가 동시에 발생하는 심각한 위기 상황)'처럼, 2014년 7월 1일에 시작된 박원순 시장의 두 번째 임기를 롯데월드타워와 현대차 신사옥으로 인해 촉발된 마천루의 저주가 완전히 쓸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출처: 서울시]

 

두 거대한 빌딩은 아마도 주변 상권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테고, 모든 것이 한 곳에 집중된 상태는 언제나 위험 부담이 크고 단 한 번의 사고로 인해 모두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는 법이다. 불과 3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건물들을, 초저성장 장기불황 시대의 서울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박원순 입장에서 무턱대고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서울시민 인권헌장'이 무산된 사례에서 보듯이 안 그래도 요즘 박원순은 지지세력 확장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데, 굳이 이런 문제들로 껄끄러운 분위기를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 특별히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 한, 롯데월드타워나 현대차 신사옥 건설을 서울시가 막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기존 박원순 지지자들의 성향을 감안하면) 이런 토건사업은 잘해봐야 본전이지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엄청난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사안이긴 하다. 그럼에도 박원순 시정에서 마천루 건설이 별다른 걸림돌이나 견제 없이 그대로 진행될 수 있는 이유는 한국사회 자체가 원래 개발 계획에 굉장히 호의적인 나라이고, 박원순 주변이나 서울시 공무원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필요하다면 싸움을 피하지 않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 故 노무현 대통령조차 이런 측근들과 딱히 충돌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는데(노무현 정권 때는 주로 골프장이 많이 들어섰다), 남들과 싸울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일을 더 하는 박원순 시장 같은 사람은 오죽하랴. 기본적으로 토건중시 사회에서 박원순 혼자서만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나..

 

결국, 큰 꿈을 꾸고 있는 박원순의 최대 위기가 하인리히 법칙과 마천루의 저주를 통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제2롯데월드에서 또다시 사고가 터지고, 야권 최강후보에게서 끝내 마땅한 약점을 찾지 못한 여권이 이걸 집중 거론한다면? 이는 이명박의 과오를 덮고, 박원순에게 덤터기를 씌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1월 7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박원순-문재인-김무성의 '3강' 구도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는데, 이명박이 물꼬를 트고 박원순이 2개를 짊어진 이 '괴물'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결정적인 상처를 남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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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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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즈 2015.02.02 17: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명박 참 많이 해먹는군요. 롯데월드에서부터 세월호까지 사고가 터지는 곳마다 사라지지 않는 이름. 이명박. 그 이름도 징글징글합니다.

  2. 늙은도령 2015.02.02 1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원순이 요즘 들어 고민이 많을 것입니다.
    풀어야 할 숙제는 많은데 만만치 않거든요.
    그도 조금씩 느끼는 것이 있을 테지요.

  3. 물타기한국 2015.10.13 07: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명박 오세훈이 토목공사 잔뜩 벌이고 서울을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른바 한국보수층은 박원순이 브랜드가 없고 ..말하자면 토목공사도 안하고 슬로건이나 비주얼적인 성과가 없다는 주장...이룬 게 없다한다. 박원순은 욕먹어 가며 묵묵히 빚을 줄이고 정권과 기업이 세운 마천루를 후속 행정으로 지원하고 기대심리에 가득한 연관 산업 종사자들을 챙겨야한다. 그러나 욕은 박원순이 먹는다. 박원순의 행정가로써의 진보보수 개발보존의 이분법을 회피한 합리성, 다양한 시민들을 아우러야하는 현실적 고려는 그대로 그의 한계로 지적당한다. 이게 성실하고 상식적인 행정가적 인물들보다 기회주의 정상배가 득세하게하는 한국적 풍토다. 박원순에게 마천루는 그의 공약도 핵심 정책도 아니다. 그저 행정가로써의 떠맡겨진 관리대상일 뿐이고 설령 애물단지가 된다해도 이른바 씽크홀 침수 붕괴가 되지않는 이상 그 본원적 책임은 시장에게 가는게 아닌 단지 시장실패의 문제요 토목 지상주의 한국사회 공동의 책임이다. 직설해서 박원순이 어떤 명분과 권한으로 마천루를 공사중지 시킬 것인가? 그것은 기업과 정권이 초행정적 심지어 초법적 차원서 이뤄놓은 것이고 야당시장에게 후속책임을 맡기고 쳐놓은 덫 (프레임)일 뿐이다. 이킬레스 건이 아니다. 그건 태생적이고 치명적 약점을 말한다. 아킬레스건이란 이명박이 세우고 오세훈이 이어받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 뉴타운 같은 걸 세운자들이 지닌 태생적 약점을 말한다.그들은 그걸 피하고자 시장직을 내던지고 선거와 주민투표를 승부수로 던졌다. 하난 더 출세하고 더큰 파문을 던졌고 하난 책임을 회피하며 유유자적한다. 그러나 양식을 지닌 우리국민들은 마음속에 기억할 것이고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습관상 존대체를 못 쓴 점 사과드리고 자유롭게 등록케 해 언로를 터 주신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