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2014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매년 12월 마지막주와 1월 첫째주가 맞물리는 시기에는 연말연시 자체의 부산함 외에도, '올해는 넘기지 말아야지'와 '새해에 새로 시작해야지'가 겹치면서 참 많은 일들이 짧은 시간에 일어난다. 특히 2014년 마지막주의 3일, 그러니까 12월 29일(월) · 30일(화) · 31일(수)에는 사회적으로 볼 때 굉장히 의미심장한 장면 세 가지가 펼쳐졌다.

 

이 일들은 2015년의 우리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기에, 다이나믹 코리아의 새로운 이슈들이 마구 쏟아져서 묻히기 전에 꼭 한번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이 중에는 우리가 지금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집중해서 지켜봐야 할 문제도 있고, 한동안 별로 신경을 못 썼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일도 있으며, 앞으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진정 무엇이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도 있다. 그럼, 2014년의 마지막을 장식한 결정적 장면 세 가지를 날짜별로 정리해 보자.

 

12월 29일 국회,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 선출

 

국회는 29일에 본회의를 열었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른 특별조사위원 총 17명(여야 추천 각 5명 + 대법원장 및 대한변호사협회장 지명 각 2명 + 희생자가족대표회의에서 선출한 3명) 중에서 여야가 추천한 10명의 특별조사위원 선출안을 가결 처리했다. 이로써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은 완료됐으며, 이들은 1월에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후 최대 1년 9개월의 진상조사 활동을 벌이게 된다.

 

 

그런데, 이 조사위원들 중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공정성과 독립성을 이유로 처음부터 교체를 강하게 요구했던 인물이 그대로 포함되어 있다. 특히 새누리당이 추천한 고영주 대표(방송문화진흥원 감사)는 작년 6월 열린 방문진 이사회에서 MBC의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오보'와 관련해 "해경이 79명을 구조했는데 (문화방송은) 왜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보도하느냐", "선박 회사에 비판을 집중하는 게 아니라 정부를 왜 끌고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면서 정부를 두둔해 비판을 받았다.

 

역시 새누리당이 추천한 차기환 대표(방송문화진흥원 이사)도 작년 7월 자신의 트위터에 "세월호 일부 유족들의 요구가 너무 지나치다. 사망자 전원 의사자 인정(의사자 개념에 맞지 않는다), 피해자 형제자매까지 특례입학 인정, 유가족 평생 생활 지원을 요구하는데 진상규명에 동의하는 여론을 저 무리한 요구에 동의하는 걸로 확장 해석하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며 전혀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전파해 물의를 일으켰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기도 했다.

 

[차기환, 고영주 (출처: PD저널)]

 

사실, 12월 29일의 국회 통과로 세월호 조사위원에 확정된 이 두 사람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단순히 몇몇 발언의 잘못 때문만은 아니다. 고영주 변호사는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을 담당했던 공안검사로서, 검사직에서 물러난 이후 '통진당해산 국민운동본부'의 상임위원장을 맡으며 통합진보당 해산청원을 주도한 인물이다(이 단체는 헌재 판결 이후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고영주는 작년 1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부림사건은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명백한 의식화 교육사건"이라고 말했지만, 지난 9월 대법원은 부림사건 재심청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차기환 변호사는 세월호 이전에도 일베의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퍼나른 전력이 있고, 얼마 전에는 세월호 유가족 폭행 사건에서 대리운전기사 측 변호를 맡기도 했으며, 2012년 김재철 사장과 MBC노조가 대립할 때에는 김재철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걸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차기환 역시 통진당해산 국민운동본부의 공동위원장이다.

[이완기 민언련 대표 "차 이사는 유가족 폭행사건에서 대리기사 쪽 법률대리인 ...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인사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진실을 은폐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

 

[출처: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 페이스북(bluepaper815)]

 

이 두 사람 외에도 새누리당이 추천한 조대환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수위원회 전문위원이었고,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7.30 재보궐 선거 때 부산에서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며, 황전원 전 대변인은 박근혜 캠프에서 공보특보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러니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들에 대해 독립성과 공정성을 문제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고영주와 차기환은 강한 반대 속에서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이 됐고, 우리는 2015년에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중해서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어쩌면, 세월호 진상규명의 첫 단추는 2014년 12월 29일에 이미 잘못 채워졌는지도 모른다.

 

12월 30일 군사법원, 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 연제욱 · 옥도경 선고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30일에 국군사이버사령부의 2012년 대선개입과 관련해 정치댓글 작성 의혹으로 기소된 연제욱 전 사이버사령관(소장)에게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준장)에게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연제욱과 옥도경은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 요원들이 지난 대선 기간을 포함한 2010~2013년 인터넷상에 특정 정당과 정치인들을 비판·지지하는 댓글을 작성하는 작전을 펼친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이를 승인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군사법원은 두 사이버사령관의 정치관여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북한이 북방한계선 등에서 위협을 계속하고 사이버상에서도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으므로 사이버심리전의 현실적 필요성은 인정된다"며 "적법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이 온전히 피고인의 책임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작전 총괄 담당자였던 박모 사이버사 심리전단장(3급 군무원)도 선고를 유예했고,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심리전단 소속 정모씨(4급 군무원) 역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결국, 사이버사령부의 선거개입을 지휘한 4명에 대해 전부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진 것이다.

 

[연제욱, 옥도경 (출처: 연합뉴스)]

 

군의 2012년 대통령 선거 개입이 분명한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군사법원은 이들에게 모두 면죄부를 준 셈이다. 연제욱에게는 "30년 이상 군생활을 성실히 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집행유예(유예기간중 잘못 없이 그 기간을 경과할 경우에 선고한 유죄의 판결 효력을 상실하게 하여 형의 선고가 없었던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제도), 옥도경에 대해서는 "지난해 6월 국방부 지시로 작전 중단 지시를 내린 점을 고려했다"며 선고유예(경미한 형의 선고를 해야 할 경우에 선고를 미뤘다가 2년 동안 죄를 짓지 않을 경우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소송을 종료하는 제도).

 

과연 이런 군대를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한 조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건 말 그대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고, 헌법정신을 유린한 행위다. 도대체 어떻게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고 국가의 기강을 뒤흔든 이들에게, 군 검찰의 구형보다도 훨씬 낮은 판결을 내릴 수가 있는가? 12월 30일 군사법원의 선고는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재판만큼이나 어처구니 없는 판결이며, 이젠 민간법원이나 군사법원이나 할 것 없이 대한민국에서는 그 어떤 법적 정의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박근혜가 당선된 2012년 대선의 불법·부정 행위에 대한 진상규명은 더 요원한 일이 됐고, 아마 2015년에도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12월 31일, 씨앤앰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종료

 

너무나 우울하고 분통 터지는 장면 두 가지를 살펴봤지만, 2014년의 마지막 날에는 그래도 희망적인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176일간의 노숙농성과 49일간의 고공농성을 이어왔던 씨앤앰 해고 노동자들이 사측과의 고용승계에 잠정합의하면서, 드디어 이날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 광고판에서 내려온 것이다. 이 사태는 간접고용 노동자인 케이블기사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후 사측과 포괄협약에 합의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중에 원청 씨앤앰과 협력업체가 이를 무시한 채 임금삭감을 단행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출처: 뉴시스]

 

이에 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지부 ·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는 현장투쟁을 벌였고, 사측은 조합원 전원의 고용승계를 거부하며 노동자들이 대량해고됐다. 18개 협력업체가 직장을 폐쇄하며 노조를 압박했고, 600여 명의 노동자가 길거리에 나앉으며 노숙농성을 벌였다. 참 힘든 상황이었지만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 옆에는 정규직 동료들이 있었고, 해고자들을 지지하는 케이블 가입자들이 있었으며,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계·종교계도 합세했다. 6개월 간의 치열한 파업과 노숙·단식·고공농성이 이어졌고, 마침내 씨앤앰과 노조는 해고자 전원 재고용과 새해 공생협력을 위한 고용위원회 구성 등을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2014년의 한여름부터 한겨울까지 이어진 투쟁이 결국, 2015년 1월의 공생협력 고용위원회 구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연대 그리고 일반 소비자들이 공개적으로 표시하는 지지의 중요성이다. 씨앤앰 사태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조와 적극적으로 협력했고, 지역 케이블 가입자들은 본사를 직접 방문해 직장폐쇄와 대량해고의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을 향한 정규직과 소비자들의 도움이 없었던들, 12월 31일의 감동을 느끼기는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출처: 민주노동조합총연맹 김진숙 지도위원 트위터(@JINSUK_85)]

 

지금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의 굴뚝 위에서는 고공농성을 계속하고 있고, 밀양에서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이 추운 겨울날 눈보라 속에서도 여전히 송전탑 반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팽목항에는 아직도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있으며, 삼성전자서비스센터·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을 비롯해 여러 곳의 노동자들이 2015년 바로 이 순간에도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한시라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은, 안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과 비정규직의 근본적인 이해관계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밖에서는 소비자들이 부당한 자본의 폭력에 맞서는 노동자들을 능동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2015년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비정규직이 될 수 있다.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그리고 밀양 송전탑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 전력 소비자들 다수가 모여사는 대도시에 전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세월호 진상규명이 왜 중요한가? 이번에 제대로 진실을 밝혀야 우리 사회의 안전한 존립을 위협하는 대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권여당은 상식적으로 극히 부적합한 인물들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이들은 박근혜에게 이번달에 임명장을 받은 후 곧 활동에 들어갈 테고, 2012년 대선에서 국가기관들의 조직적 정치개입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 세월호 조사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의 2014년 마지막주는 국회의 어이없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 선출 유가족들의 한숨과 눈물, 군사법원의 말도 안 되는 봐주기식 판결로 인한 민주주의의 심각한 훼손때문에 마구 휘청거렸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연대 ·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씨앤앰 해고 노동자들은 사측과의 합의를 이끌어내며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르지 않고, 노동자와 소비자가 다르지 않고,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진상규명과 세월호 학살의 진실을 밝히는 게 절대 다르지 않다. 결국 우리의 참여와 연대를 통해 해결해야 될 문제들이며, 시민 각자가 스스로 깨닫고 직접 행동에 나설 때만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2015년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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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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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늙은도령 2015.01.06 0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월호 조사위원회 명단은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았는데 좋은 정보 얻고 갑니다.
    박근혜 정말 너무하네요.
    으.... 열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