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평택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굴뚝 농성장을 방문한 후.. 

 

평택은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1시간 40분 남짓 걸리고(현금 2150원), 무궁화호 열차로는 50여 분 만에 도착한다(어른 4900원). 평택 위에는 오산시가 있고, 동쪽으로는 안성시, 아래에는 천안, 또 서쪽으로는 여러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당진시가 위치해 있다. 오산시가 경기도청 소재지인 수원시에 바로 인접해 있으니, '경기도' 평택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수도권의 변두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서울의 종로나 강남처럼 수도권 주민 누구나가 기꺼이 갈 만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밀양이나 제주처럼 여행 가듯 큰맘 먹고 갈 만큼 먼 곳은 아닌 것이다. 그냥 웬만한 회사마다 몇 명씩은 있는, 통근이 유난히 좀 오래 걸리는 수도권 직장인의 출퇴근 이동시간 정도다.

 

그리고 방조제와 항구(평택당진항)가 있는 곳이니까, 당연히 해안가 도시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해안가의 바닷바람은 한여름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시원하다기보다는 차가운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런데 지금, 한겨울인 2014년 12월 말에 바로 이 평택에 있는 쌍용자동차 공장의 굴뚝 위로 올라가서 보름이 넘게 버티고 선 사람들이 있다. 보통 사람은 아예 올라갈 엄두도 내지 못할 듯싶은 70m의 높이에다가(20층 건물 높이), 굴뚝 안에서는 매일같이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는데도 이들은 그대로 굴뚝 꼭대기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만약 이걸 누가 시켜서 한다면 거의 살인행위에 가깝고, 설사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한들 절대 허용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엄동설한에 멀쩡한 성인 남성 2명이 제 발로 굴뚝을 기어 올라가서 무려 17일째 하루 24시간을 거기서 보내고 있다. 자동차 공장 굴뚝 꼭대기에 무슨 편의장치가 있을리 만무하고(언감생심 화장실은 생각할 수도 없다), 하다못해 성인 한 명이 완전히 발 뻗고 누울 만한 공간 자체가 부족할 텐데, 이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이 두 사람의 행동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같은 인간이라면 이 정도 상황에서는 최소한 이들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는 제대로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게 말 그대로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지만,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효리와 티볼리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혹한 속에서 경기 평택 공장 내의 70m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한 시점은 12월 13일 새벽이었다. 흔히 말하는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는 워낙 오래된 사안이기도 하고, 또 소위 진보진영의 핵심 의제였기 때문에 이 때도 다수 언론에서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요즘 한국사회에서 이런 이슈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한창 기사가 나올 때만 반짝 관심을 끌 뿐이었고, 이내 '찻잔 속의 태풍'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12월 18일, 이효리가 자신의 트위터에 "쌍용에서 내년에 출시되는 신차 티볼리가 많이 팔려서 함께 일하던 직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던 회사가 안정되고, 해고됐던 분들도 다시 복직되면 정말 좋겠다"라며 "그렇게만 된다면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라는 글을 게재함으로써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거의 모든 언론에서 이 뉴스를 다뤘고(적지 않은 언론들이 이효리의 비키니 사진과 함께 기사를 내보냈다), 일반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자 곧장 실시간 검색어로 '티볼리'가 등장한 것이다.

 

결국 18일을 기점으로 13일 직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쌍용차에 눈길을 모았고, 쌍용자동차는 다음달 중순에 공식 출시되는 티볼리에 대한 사전 광고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평소와는 다르게 갑자기 주가가 상승했고, 예전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쌍용차의 신차가 정식 프로모션을 시작하자마자 핫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게다가, 쌍용자동차에서 이효리의 광고모델 공약을 거부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관련 기사들은 더 큰 폭발력을 가지게 됐다. 누구나 마찬가지로, 노동자 26명이 죽었다는 뉴스보다는 쌍용차와 이효리의 밀당이 훨씬 더 흥미롭지 않겠는가?

 

해고자와 방문자

 

이효리의 비키니 사진으로 온통 도배된 인터넷 공간보다, 장장 6년을 끌어온 쌍용차 해고노동자 사태의 냉혹한 현실이 진정 중요한 문제다. 2014년 12월 25일 성탄절 당일 오후 평택 고공농성 현장의 실제 풍경을 보면, 현재 쌍용자동차와 해고자들 간의 관계나 방문 분위기가 어떤지를 대략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타지마]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바로 앞에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실이 있고(굴뚝일보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ultukilbo), 여기서 굴뚝농성 현장 방문에 대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이날은 녹색당 당원들이 단체로 방문했는데, 하승수 녹색당 운영위원장을 비롯해서 주요 당직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필자는 녹색당 당원이 아니지만, 성탄절 당일 알게된 우연한 기회에 함께 방문하게 됐다]

 

[사진: 타지마] 

 

금속노조 사무실을 나와 5~10분 정도 걸어가면, 살벌한 철조망 너머로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의 굴뚝 두 개가 보인다.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은 오른쪽 굴뚝에 올라가 있다. 평일에는 양쪽 굴뚝에서 모두 연기가 올라온다는데, 성탄절 휴일이라 한쪽(사람이 올라가 있는 굴뚝)에서만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사진: 타지마] 

 

타지에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을 직접 방문해도 이렇게 멀리서 70m 굴뚝 위 사람의 형체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경찰들이 철조망 앞에 서있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철조망 바로 앞까지 가서 보기도 좀 꺼려지는 편이다. 여기 가보면 누구나 그렇게 느끼겠지만, 이곳은 일반적인 자동차 공장이 아니라 무슨 군수공장처럼 경계를 펼치고 있다.

 

[사진: 타지마] 

 

보름이 넘는 기간 동안 고공농성이 이어지고 있으며 지상에서는 동료들이 그 자리를 24시간 교대로 지키고 있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면 변변한 천막도 없이(평택시청이 불허했단다) 그저 통나무를 때는 난로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평택의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은 오랜 바깥 생활을 거치며 몸살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사진: 타지마] 

 

굴뚝농성 현장에 도착하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관계자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초기에는 화장실이 제일 큰 문제였는데, 며칠 전 산악인들이 쓰는 간이 화장실을 올려줬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조합원들이 굴뚝 밑까지 가서 식사를 직접 올려줬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허락해주지 않아서 많이 불안한 상황. 이마저도 하루 세 번은 안 되고, 아침 저녁으로 두 번만 식사를 전달해 줄 수 있단다.

 

[사진: 타지마] 

 

그래도 요즘은 스마트폰을 통해서 화상통화를 할 수 있고, 방문자들은 쌍용차 조합원의 도움을 받아 김정욱 사무국장 및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직접 인사를 나눌 수 있다. 굴뚝 위에서도 망원경을 통해 지상의 방문자들을 본다고 하며, 굴뚝인 두 사람(김정욱 트위터 @kju71, 이창근 트위터 @Nomadchang)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할 때도 많다.

 

[사진: 타지마] 

 

[사진: 타지마]

 

사실, 쌍용차 평택공장 고공 농성장을 직접 방문해서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엄동설한에 70m 굴뚝 위에 제 발로 기어 올라가 고생하고 있는 농성자들을 향해 그저 멀리서 손을 흔들어줄 수 있을 뿐이며, 지상에서도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거의 전부다. 그래서 오히려 너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고, 그냥 약속장소가 좀 멀게 잡혔다는 생각으로 한나절 갔다 오면 된다.

[쌍용차지부 후원물품: 경기 평택시 칠괴동 588-2 상가A동 104호, 후원계좌: 농협 351-0598-5886-83 김정우, 재정사업: 참대리운전 전국 1577-6406]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은 그 누가 오든 환영할 테고, 농성 현장에 가면 지금 실제로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며, 그 동안 가졌던 궁금증을 풀 수도 있다. 플래카드와 군고구마 사진의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듯이, 굴뚝 위의 성탄절은 생각보다 훨씬 더 밝고 따뜻했다.

일반 시민과 인기 스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은 아직도 자기들을 해고한 기업을 '우리 회사'라고 부르며, 쌍용차를 '우리 차'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들은 주변사람들에게 쌍용자동차에서 몇 년 만에 나오는 신차 티볼리를 사라는 권유를 자주 한단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해고자들이 억울하고 분해서라도 불매운동을 벌일 것 같은데, 이 노동자들은 지금도 쌍용차 공장을 자신들이 돌아갈 일터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쌍용자동차 측은 티볼리 판매의 최대 호재인 이효리 효과를 스스로 거부했고, 굴뚝 위로 가장 기본적인 삼시세끼 식사를 올려주는 것조차 막고 있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이효리의 티볼리 발언이 여러 측면에서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필자 역시 이효리의 사회활동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유보적인 입장이다. 인기 스타가 그저 트위터에 한마디 했다고 너무 호들갑을 떠는 언론도 불만이고, 실제 티볼리의 품질과 상품성보다는 이효리의 광고 여부가 너무 가십성으로 더 주목을 받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쌍용차 해고자 문제는 한국의 노동 현실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사안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인터넷으로 그냥 티볼리만 검색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성탄절에 평택 쌍용자동차 굴뚝농성장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 힘도 없지만 필자 같은 시민이 한 10000명만 고공농성장을 직접 방문하고, 이효리 같은 스타가 1명이 아니라 한 10명만 되면 어떨까? 인기 스타들은 그들대로 쌍용차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일반 시민들은 또 우리대로 지하철이나 기차를 타고 시간날 때 주변사람들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평택을 방문한다면? 아마 지금보다는 상황이 훨씬 더 나아질 것이다.

 

이효리 혼자서만 티볼리 광고 얘기를 하면 인터넷에 그녀의 비키니 사진으로 도배가 되지만, 인기 스타 10명이 쌍용자동차 얘기를 하면 그건 사회적 연대의 표시로 나타난다. 녹색당 같이 원래 그런 단체에서만 평택 고공농성장을 방문하면 대중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가지만, 어떤 특정한 소속이나 당적이 없는 평범한 일반 시민 다수가 가족들과 함께 굴뚝농성 현장을 방문하면 그건 대중과 주류 언론이 주목하는 사회 현상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친구·동료들과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 건, 어쩌면 특별히 거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지하철 요금 2150원과 기차 요금 4900원, 그리고 누구나 지니고 있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애정만 있으면 된다. 평택은 생각보다 무척 가깝고(서울역에서 지하철 1시간 40분, 기차 50분), 그냥 한나절 동안 직접 행동할 마음만 있다면 가능하다. 곧 새해가 시작되는데, 좀 더 밝고 따뜻한 2015년을 위해서 이번 주말에는 주변사람들과 함께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으로 한 번 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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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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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늙은도령 2014.12.30 0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존이 정말 힘겨운 세상이 됐습니다.
    성장할수록 가난해지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단지 몇 권의 책만 읽어도, 아니 주위만 둘러봐도 성장과 개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텐데....

  2. 욱브레가스 2014.12.30 1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멀지않습니다! 정말 가까이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3. ㅎㅎㅎㅎ 2015.01.20 1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효리 쌍용차 영업 '꼼수광고'에 일침
    http://srook.net/sportskh/635573606885781250?pag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