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전 '짐은 곧 국가'에서 '왕권 모독'을 거쳐 '단두대의 이슬'로 끝나는 역사의 데자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대통령에 대한 모독"을 직접 언급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 당일 4월 16일의 미스테리 중에 하나인 '박근혜의 7시간(오전 10시~오후 5시) 행방불명'과 관련한 여러 의혹제기를 겨냥한 말로,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추문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자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바로 다음날 대책회의를 지시했고, 검찰은 18일에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었다.

 

검찰은 즉각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정대응' 방침을 밝히며, 유관기관 협력체계 구축 및 전담수사팀을 운용하고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허위사실 유포를 상시 적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동시에 다음 · 카카오톡 · 네이버 · 네이트 등이 모두 검찰 전담수사팀의 실시간 모니터링에 협조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리는 걸 보니, 이제 네티즌들은 피할 곳이 거의 없어진 셈이 아닌가 싶다. 바야흐로 '대통령 모독'의 본격적인 처벌 시대가 도래한 것이고, 곧 정치검찰의 '실적'이 나올 태세다.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대통령 영상(2014/09/16) 갈무리]

 

그런데 사실, 이런 상황이 머지않아 벌어지리라는 건 벌써 예전부터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이미 2012년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박근혜는 스스로 "저의 삶은 대한민국이었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그러니까 대의 민주주의 국가의 선출직 공무원에 대해 굉장히 놀랍고 예사롭지 않은 인식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한번 상상해 보자. 만약 이승만이나 전두환이 "저의 삶은 대한민국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우리 기분이 어떨지를..

 

 

2012년 "저의 삶은 대한민국이었습니다"와 2014년의 '대통령에 대한 모독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는,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박근혜의 근본적 생각이 그동안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두 발언은 결국 동일한 인식 선상에서 나온 말이며, 대선후보 수락 연설을 듣고 많은 이들이 심각하게 우려했던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말리란 걸 암시하고 있다.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다"이후 대혁명을 통해 새로운 국가체제를 건설하고, 온갖 매체를 통해 대놓고 자국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프랑스인들이 이런 상황을 보면 얼마나 비웃을까?


21세기 '대통령 모독'과 18세기 '왕권 모독'의 데자뷰

 

방금 말했듯이 유럽 절대군주의 전형이었던 '태양왕' 루이 14세(재위 1643~1715)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을 한 걸로 유명하다(물론 모든 야사가 다 그렇듯, 일부에서는 루이 14세가 이 말을 직접 하지는 않았고 철학자 볼테르가 왕을 조롱하기 위해 일부러 퍼뜨린 말이라는 얘기도 있다). 왕권의 절대성을 믿었던 루이 14세는 지상의 그 어떤 것보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신의 권력을 최상위에 두었고, 그가 무소불위의 왕권을 휘두른 72년의 세월은 유럽의 군주 중 가장 긴 재위기간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왕이 바로 루이 15세(재위 1715~1774)다. 박근혜의 '대통령 모독' 발언을 보며 루이 15세의 '왕권 모독' 사건이 데자뷰처럼 떠올랐는데, 어째서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난데없이 18세기의 프랑스 왕이 생각났는지 지금부터 찬찬히 알아보자.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유럽사를 가르친 후 하버드 대학교의 도서관장에 취임한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 1939~ )'의 저서 [시인을 체포하라(원제: Poetry and the Police, 2010)]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1749년 봄, 파리시 치안총감에게 '검은 분노의 괴물'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의 지은이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경찰에는 '모르파의 유배'라는 시의 제목 말고는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4월 24일, 루이 15세는 해군과 왕실의 업무를 관장하는 대신으로서 정부를 장악하고 있던 '모르파 백작'을 해임하고 유배시켰다. '괴물'은 루이 15세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므로 왕을 공격하는 그 시는 모르파의 편에 선 사람이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쓴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경찰이 동원된 이유였다. 공공연히 회자되는 시로 왕을 비난하는 것은 역모였고 왕권 모독이었다."

 

서양 역사에서 대중의 '여론'이라는 것이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념화되는 18세기 후반 직전에(즉 '여론'이라는 용어 자체가 등장하기도 전), 당시 유럽의 수도나 마찬가지였던 파리에서 벌어진 이른바 '14인 사건'에 대한 절대왕정의 반응은 '왕권 모독'이었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루이 15세 때의 이 사건을 전후로 한 시기가 지나고 루이 16세(재위 1774~1792) 때가 되면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발생한다. 도대체 서슬 퍼런 절대왕정 시대에 이 '왕권 모독'의 의미는 무엇이었고, 대중의 여론은 어떻게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을까? 로버트 단턴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루이 15세를 비방하는 시를 낭송한 혐의로 한 의대생이 체포되면서 '14인 사건'이 시작되었다. 바스티유에서 취조를 받는 동안 그 학생은 자신에게 시를 건넨 사람을 자백했고 그 사람이 구속되었다. 구속된 이 역시 시의 출처를 자백했고, 경찰은 불법적인 시 암송에 가담한 혐의로 밀고된 14인을 잇달아 체포해 바스티유의 감방에 집어넣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탄압하는 것은 경찰의 일반 업무에 속한다. 하지만 경찰은 14인을 추적하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했다. 게다가 경찰에 체포된 사람들은 평범하고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파리 시민들이었고 베르사유의 권력투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경찰의 수사는 분명한 질문을 유발한다. 파리 당국은 물론이고 베르사유 당국은 왜 시를 추적하는 일에 그토록 열을 올렸을까?"

 

[출처: 로버트 단턴 [시인을 체포하라] - 시 여섯 편의 전파 양상]

 

이게 바로 프랑스 대혁명을 40여 년 앞둔 18세기 중반 파리에서 벌어진 일이다(위 그림을 잘 봐둬라. 앞으로 대한민국 검찰이 '칼춤'을 추면, 이 그림과 같은 도표 안에 우리 주변 누군가의 이름이 들어갈 수도 있다). 파리시 치안총감에게 왕권 모독 혐의가 있는 시의 지은이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경찰은 곧장 수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구속된 이들은 평범한 파리 시민들이었고, 베르사유와 파리 당국이 과도한 열을 올린 것과는 달리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관련된 시들의 내용은 왕의 내연녀인 '퐁파두르 후작부인'과 관련된 조롱이 주를 이뤘는데, 이런 확인되지 않은 풍문들은 시를 통해 파리시 곳곳에 전파되었다]

 

루이 15세와 그 내연녀 퐁파두르 후작부인은 과연 무엇이 그리도 두려워 이렇게 난리를 쳤을까? '내연녀'라고 하니까 요즘 시중에 나도는 어떤 남자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 질문은 지금도 똑같이 던져볼 수 있을 듯하다. 박근혜는 과연 무엇이 그리도 두려워 검찰까지 동원하며 이 난리를 치고 있을까? 말로는 왕권 모독 또는 대통령 모독이라고 하지만, 그 모독이 정말 공식적인 왕권과 정권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는 것인가? 아무튼 14인 사건은 당시 파리시민들 사이에서 굉장한 파란을 일으켰고, 이후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루이 16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절대군주도 무시하지 못한 여론의 힘, 역사의 교훈

 

우리가 18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의 왕권 모독 사건을 통해 주목해야 할 점은, 비로소 이때부터 파리 시민들은 왕이나 귀족 같은 일부 극소수 권력자들의 생각뿐만 아니라, 그저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주변사람과 같은 다수 일반인들의 생각이 어떤지가 중요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르네상스 시대 이후 인문주의의 발달과 인쇄술의 발명을 위시해 근대적 사상들의 발전은 이때쯤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시와 노래를 통해 대중을 관찰하고 또 스스로 대중으로서 의사소통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었다. 당시 유럽의 수도나 마찬가지였던 파리에서 벌어진 14인 사건은 바로 이런 변화의 상징적인 징후였다.

 

결국 이 무렵부터는 최고 권력인 루이 15세조차 파리 시민들이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얼굴이 수척해'질 정도로 진정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며, 귀족과 관료들은 매일같이 여론의 향배를 주시하며 일종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여론이라는 것이 정책 결정에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하는 게 가능해졌고(물론 아직까지 '여론'이라는 말을 사용하진 않았다),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권력자들을 비판했다. 바야흐로 대중의 여론이 어떤 힘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며,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그로부터 40여 년이 더 걸렸다) 뭔가 혁명의 인프라가 구체적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이에 대해 로버트 단턴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8세기 중반 파리는 혁명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하나의 효율적인 의사소통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대중에게 사건을 알렸으며 그에 대해 나돌던 세간의 논평을 전했다. 의사소통은 심지어 정보를 전파하고 받아들이는 행위가 공적 사건에 개입한다는 공통된 의식을 구축함으로써 '대중'을 형성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자, 프랑스 대혁명 전 파리 시민들은 시와 노래를 통해 대중에게 사건을 알렸고 그에 대해 나돌던 세간의 논평을 전했다. 그럼 2014년 대한민국 국민들은? SNS를 통해 대중에게 각종
 사건을 알리고, 정권에 대해 나도는 세간의 논평을 전한다. 사실, 1749년 봄에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부른 이들은 특별히 '혁명'을 염두에 두고 모두 그런 행위를 한 건 아니었다. 체제 전복적인 사상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있었고, 관련된 여러 편의 시들 중에는 그저 별 의미 없이 말장난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도 있었다. 마치 요즘 SNS 이용자들이 단순히 그냥 재미로 여러 가지 다양한 콘텐츠들을 퍼나르는 것처럼..

 

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루이 15세와 퐁파두르 후작부인은 경찰을 동원하며 과도한 열을 올렸고, '왕권 모독'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평범하고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파리 시민들"을 잡아들였다. 아마 절대왕정의 군주로서 대중의 부정적 여론 자체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부정적 여론이 생기고 확산되는지 그 원인을 파악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그저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파리 시민들을 권력을 이용해 찍어 누르고 위협하며 베르사유에 대한 비판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파리 시민들은 당시로서는 효율적인 의사소통 체계를 이용해 공적 사건에 개입하고 있었고,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마침내 대혁명을 통해 절대군주를 쓰러뜨린다.

 

 

결국 부정적 여론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아무리 '왕권 모독'이라고 처벌해봐야 근본적으로는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런 처벌이 빈번해질수록 시민들은 시와 노래로 부조리한 왕권을 한층 더 조롱했고, 원래는 별 관심 없이 말장난이었던 사람들까지 다른 시민들의 처벌에 자극 받게 된다. '짐은 곧 국가'였던 절대왕정조차 일반 시민들을 '왕권 모독'이라고 처벌하면서 균열이 생겼고, 급기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물며 겨우 5년의 임기가 정해져 있는 21세기 대의민주주의 국가의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은 더 말해 무엇하랴.

 

일단 '대통령 모독' 운운하며 검찰을 동원해 위협하고 정권에 대한 비판의지를 약화시키려는 목적인 듯싶은데, 도대체 왜 박근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온갖 추문들이 생기는지 그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하는 먼저 아닌가? 작게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의 7시간 행방불명' 의혹을 명확하게 풀어주면 되고, 크게는 (이미 법원에서 혐의가 입증된) 2012년 대선에 조직적으로 불법 개입한 이명박 정권의 국가기관들과 당시 박근혜 선거대책본부의 유착 의혹을 한 점 의구심 없이 해소시켜주면 되는 것 아닌가? 분명히 명심해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절대군주도 '왕권 모독' 운운하며 시와 노래의 창작자와 전파자를 처벌한 게 끝내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SNS가 일상화된 지금, 이토록 효율적인 의사소통 체계를 과연 통제할 수 있을까? 2014년 대한민국의 SNS에는 보니, 에두아르, 몽탕주, 뒤자스, 알레르, 주레, 뒤 쇼푸르, 기아르, 르 메르시에, 보상쿠르, 시고르뉴, 모베르, 트랑셰, 뒤 테로, 바르몽 등이 수십 수백 명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까지는 "평범하고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민주시민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처벌하면, 더 강력한 비판자들 수천 수만 명이 다시 생길 것이다. '저의 삶은 대한민국이었습니다'에서 '대통령 모독'을 거쳐 '탄핵 · 하야'로 최후를 맞고 싶지 않다면, 부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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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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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약 2014.09.27 0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보라는 이름의 구역질나는 짐승새끼들 이런 주장을 펼치면 간간히 진보 특유의 감성팔이에 넘어간 놈들은 이같은 사실을 전적으로 부정하며 게거품 쳐물고 염병하기 십상이다. 이유인즉 진보새끼들은 뻑하면 고인 추모하고 질질 쳐 울며 인간미로 개같이 포장하는것이 일상사인데,자칭 진보 병신새끼들은 이런 개수작에 쉽게 넘어가니 나오는 병신같은 현상들이다.진보들 입장에선 비인간적인 것은 보수지 진보가 아니고 진보는 늘 사람을 앞세우며 사람중심의 인간미를 중요시 하는 포지션정도로 인식하고 있는게 자칭 진보새끼들 한계라 일어나는 일들이다.아닌게 아니라 진보는 늘 '사람'을 앞세우고 입버릇처럼 '사람중심'을 표방하곤 해왔다. 그런데 이것은 함정이 도사린 표현이라 맥락을 잘 알고 받아들여야만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문제다. 진보가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떤 인간미의 의미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국가와 대립되는 개념의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국민은 국가에 속한 사람인데 사람은 people이고,이 피플은 곧 인민을 의미한다.고로 좌파가 강조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떤 인간미를 중시해서 사람중심이 아니라 국가부정의 의미를 담은 국민과 대비되는 '사람'강조인걸 알아야 한다는것이다. 고로 좌파가 이지랄인 이유도 애초 좌파는 국가를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착취도구로 보기 때문에 타도 대상이라 나오는 현상인데 이 맥락을 못따라가고 있는게 실정이다. 이런 속내를 감추고 사람을 강조하면 이게 무슨 인간성을 중시하는걸로 여겨 홀라당 넘어가는 븅신들이 한트럭이고,이 좌파 개새끼들은 이런 인식 착오적인 상태를 교정하려 하기보단 이런 인식착오적인 것이 잘 먹힌다는것을 이용해서 억지눈물짜내기,감성팔이로 승부수를 걸고 있는게 현재의 모습들이다. 거기다 이게 단순 어휘의 면밀한 의미에 대한 착오가 아니고 내용적으로 정 반대가 되니 그게 더 문제다. 좌파는 근본적으로 인간성을 부정하는 새끼인데 국민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강조한 '사람'이 인간미처럼 착각되니 거기에 더 문제가 있다는것이다.좌파의 최핵심을 이루는 이론적 근간이 도대체 뭔가? 좌파의 최 핵심근간은 단연코 유물론이다.물질이 정신을 선도하고 물질이라는 하부구조가 정신이라는 상부구조를 지배한다는게 좌파의 가장 핵심적 이론 토대다.그렇기에 역사도 유물사관으로 재정리하고,공산주의가 폭력혁명을 제창하는것도 별거 없다. 애초 물질이 정신을 선도하니 부자들은 자기돈을 스스로 내놓을수 없고,그러니 노동자들끼리 규합해서 부자들을 타도하고 뺐자는게 공산주의 초기이론이며,이런게 나오는것도 결국 유물론이 근간이 되서 나오는 일들이다.그런데 이런 인간의 정신을 거의 부정하다시피하는것을 이론으로 삼는 새끼들이 인간성을 추구한다? 애초 좃까는 소리고 이새끼들 이론은 사실상 짐승새끼들 이론이다.

  2. ㅂㅈㅂㄷㅈ 2014.12.29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밀어주기가 있으면
    당기는 것도있어야지
    오마이갓 인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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