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검장의 8월 12일 밤 9시 이후 4시간, 박근혜의 4월 16일 오전 10시 이후 7시간.

 

마약중독자는 범죄자이자 치료대상자이고, 흔히 말하는 '바바리맨' 역시 범죄자이자 치료대상자다. 마약이라고 하면 뭔가 엄청나게 심각한 범죄가 저절로 연상되는데, 물론 그런 종류의 범죄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지만 또 한편으론 그냥 혼자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잘못도 있다. 다른 모든 중독과 마찬가지로 마약중독도 문제인데(담배 중독 · 커피 중독, 심지어 오이 중독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마약중독자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특정한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개인적인 일탈에 그치는 경우도 많고, 이럴 때는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는 비극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므로, 사회적 차원에서 이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도 중요하다(한국에서는 불법인 마약이, 외국에서는 합법화하여 공개적으로 판매하고 세금을 거두기도 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미국의 명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사망 원인도 마약 과다복용으로 알려졌다. 그는 범죄자라기보다는 치료대상자였고, 그의 죽음을 범죄자의 사망이라고 하진 않는다]

 

[출처: 연합뉴스]

 

근무시간 이후 4시간 동안 개인적 일탈범죄를 저지른 제주지검장

 

지난 일주일 동안 한국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킨 '공연음란죄 혐의로 입건된 현직 검사장' 사건도 쉽게 말해 바바리맨 범죄였다. 제주지검장이 8월 12일 밤 9시 이후 약 4시간 동안 제주 일대를 배회하며 음란행위를 했고, 이것이 주변 CCTV에 찍힌 것이다. 이는 15일 저녁부터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고, 22일 제주지검장이 인정할 때까지 꼬박 일주일간 수많은 언론의 기사거리가 됐다. 두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제주지검장은 범죄자지만, 또한 치료대상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체적인 상황을 보면, 과연 이 범죄가 그렇게 한 인간의 모든 것을 공개하며 '인격권'을 침해하고 완전히 파멸시킬 정도인가 싶기도 하다(섬범죄 수사시에는 CCTV 영상 등을 증거물로 입수한 후 복사본이 유출되지 않도록 삭제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언론을 통해 다 공개되고 말았다). 물론 명백히 잘못을 저질렀고 두둔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될 때까지 그는 다른 누군가에게 특정한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숙명여대 법학과 홍성수 교수 "김 전 지검장의 행위는 물론 범죄에 해당하지만 직무를 이용한 독직범죄도 아니었고, 구체적인 피해자가 있는 경우도 아니었다")

 

 

[출처: 제주MBC(2014/08/22), 연합뉴스TV(2014/08/22)]

 

제주지검장은 근무시간이 끝난 밤 9시 이후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약 4시간 동안 여고 주변를 배회하며 혼자서 음란행위를 한 게 피의사실의 전부다. 현직 지검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위압에 의한 성폭행을 저지른 건 아니며, 특별히 어떤 사람을 향해 성적인 가해 행위를 했다는 내용도 없다. 그냥 자기 스스로 비정상적인 욕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음란행위를 한 것이다.

[제주지검장의 혐의는 '성폭력'이 아니라 '공연음란죄'다. 공연음란죄는 초범인 경우 기소유예나 정식 재판 없이 약식기소를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그는 법적으로 '바바리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셈이다]

 

 

모든 마약중독자들이 타인을 특정한 피해자로 만드는 건 아니듯이, 모든 바바리맨들이 항상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다. 우리가 여고 주위의 바바리맨을 보며 혐오스러워하고 더 이상 그런 못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를 완전히 사회와 격리시키며 아예 매장시킬 수는 없다(살인자에게도 인권은 있고, 성폭행 범죄자들도 죄값을 치른 다음엔 사회로 복귀한다). 바바리맨이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은 이상, 단순 처벌보다는 전문적 치료에 더 중점을 둬야 하는 것 아닐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당일 7시간 동안 행방불명된 박근혜

 

2014년 4월 16일은 우리 모두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크나큰 아픔으로 기억된다.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대한민국 국민 300여 명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하고 수장시킨 비극적인 날이며, 그 처참한 광경을 우리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상처로 오랫동안 남을 테고, 이 문제를 사회 전체적으로 어떻게 감내하고 진상규명 하는가가 앞으로 한국의 미래에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세월호특별법이 중요하고, 참사 당일 관련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일은 진상규명에 필수적인 작업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직후인 4월 1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려 7시간 동안이나 국정 최고책임자인 박근혜의 행적이 불분명하다. 이때는 정말 두 말할 나위 없이 너무나도 결정적인 '골든타임'이었고, (이후 여러 보도를 통해 이미 확인됐듯이) 바로 이 시간 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대처를 잘 했다면 아마 수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다시피 박근혜 정권은 피해자들의 구조를 위한 그 어떤 대책도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다. 이런 무책임과 무능력이 바로 '사고'를 '학살'로 확대시킨 핵심적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출처: JTBC뉴스(2014/06/02)]

 

도대체 박근혜는 7시간 동안 뭘 했을까? 누가 보더라도, 주중 평일의 한가운데인 수요일의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공무원들이 한창 일할 때 아닌가? 제주지검장처럼 밤 9시 이후에 뭘 했느냐고 묻는 게 아니다. 박근혜도 사람인데 일과시간 이후엔 휴식도 해야 하고, 사적인 용무를 보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유일무이한 공적 책무의 화신인 대통령에게 일반적인 사생활이란 게 보장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개인적인 시간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참사 당일인 4월 16일 박근혜의 공적인 7시간 행방불명은 전혀 다른 얘기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해도, 세월호 사고 소식이 박근혜에게 이르면 오전 9시쯤 아무리 늦어도 10시에는 보고가 되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오후 5시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서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엉뚱한 소리를 한 것 외에, 박근혜가 참사를 보고 받은 이후 중대본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무려 7시간 동안 뭘 했는지 제대로 밝혀진 게 하나도 없다. 오죽하면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이라는 기사(사실, 산케이 보도 내용의 상당 부분은 '조선일보' 칼럼을 인용한 것이다)까지 썼을까?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김기춘이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알지 못한다"라고 답한 것도 (평소 비서실장의 스탠스를 감안하면) 굉장히 이상하고, 얼마 전에 해명한다고 내놓은 청와대의 답변도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청와대는 박근혜가 10시부터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고 했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대통령 주재 대책회의가 한 번도 없었고, 그저 박근혜의 침묵과 무반응·부작위 속에서 소중한 골든타임이 다 지나가 버렸다. 설사 청와대의 해명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뜯어보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무슨 바보와 로봇의 조합도 아니고, 그 중요한 시기에 어떻게 이토록 전혀 아무 일도 안하고 7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가 있는가? 이 정도면 거의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출처: 오마이뉴스(2014/08/13) -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비서실 답변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행적이 '국가안보'라고 말하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일일 행적도 백악관 홈페이지에 가면 누구나 다 찾아볼 수 있다. 18살 짜리 미국 청소년도 오바마의 행적을 알 수 있고, 테러범도 역시 동선을 정리해볼 수 있다. 그날 오전부터 저녁까지 누구와 함께 어디서 뭘 했는지 매일같이 확인할 수 있고,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행적 또한 일본 신문에 분 단위로 보도된다. 오바마와 아베의 4월 16일 행적은 모두가 알고 있는데, 도대체 왜 박근혜의 4월 16일 행적은 4개월도 더 지난 현재까지 우리가 몰라야 하는가?

 

과연, 미국 백악관의 국가안보 의식이 청와대보다 못할까? 매번 느끼는 거지만, 한국의 청와대나 국정원은 미국의 백악관이나 중앙정보부만큼 뭘 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국가안보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쓸데없는 비밀만 양산해 낸다. 지금까지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 국정원이 참 창피할 때가 많았는데, 이걸 보면 청와대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그 중요한 시간에 비서실장이라는 인간은 대통령의 행적을 알지 못한다고 하며, 7시간 동안 보고만 할줄 알았지 다른 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청와대한테 어떤 기대를 하는 것도 일종의 '사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적 일탈과 공적 행방불명, 한국 사회 언론의 죽음과 정치 실종의 증거

 

박근혜의 4월 16일 일과시간 행적은, 절대 사적인 시간이 되려야 될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주지검장이 퇴근하고 밤에 개인적 범죄를 저지른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골든타임 7시간 동안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국정 운영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모든 공무원들이 일하고 있었을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행적을 박근혜는 분명히 밝혀야 할 의무가 있고, 국민들은 그 내용을 알 권리가 있다. 특히 그때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의 골든타임이었고, 박근혜 정권의 무능력과 무책임 때문에 사고가 학살로 돌변한 바로 그 시점이었다.

 

만약 전쟁이 났는데 대통령이 몇 시간 동안 행방불명이 되면, 그것 자체로도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300명이 넘는 국민이 수장된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의 7시간은,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만 하는 진상규명의 대상이다. 한국 언론은 제주지검장의 사적 일탈 4시간은 그토록 인격권을 침해하며 무자비하게 헤집으면서, 대통령이 공적 역할을 내팽개친 7시간은 왜 하나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이거야말로 철처하게 모두 공개해야만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인데, 이걸 앞장서서 추적해야 할 언론은 제주지검장이 음란행위를 몇 번 했는지나 반복해서 보도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기자라는 인간들은 어쩌면 이토록 비겁하고 수준이 낮을 수 있는지..

 

세월호 참사 현장의 '기레기(기자+쓰레기)'들을 보며 진작에 한국 언론은 죽었다는 걸 알았지만, 요즘 보면 기레기들은 제대로 반성할 줄도 모르는 것 같다. 세월호 사고가 참사로 확대된 데에 기자들의 책임도 분명히 적지 않은데, 잠깐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듯하더니 별로 변화된 게 없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제주지검장의 CCTV를 그대로 뉴스 화면으로 사용한 것도 모자라, 체포 당시 '베이비로션'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경찰의 의도성 다분한 망신주기를 어떠한 거름망도 없이 언론들은 기사로 확대재생산하는 짓을 벌였다(이 로션은 사건 자체와 아무런 관련성이 없었다).

 

[출처: 연합뉴스의 세월호 관련 보도 - 4월 24일 기사와 8월 22일 기사]

 

그리고 세월호 집회를 축소 보도하는 태도도 국정원 대선개입 집회를 외면할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유족인 김영오 씨의 단식을 겉치레로 보도하는 관점도 마찬가지다. 교황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닐 줄 알았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황의 진심에는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연합뉴스는 김영호 씨가 병원으로 이송되자마자 "점심부터 식사를 하기로 했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명백한 '오보'였고(단식은 중단되지 않았다), 이상호 기자에게 '개새끼'라는 소리까지 들은 세월호 특별취재팀의 한심한 행태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 실토한 꼴이 됐다]

 

 

그리고 언론의 죽음에 더해서, 대한민국 정치의 실종은 또 어떤가. 박근혜의 7시간 행방불명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으면, 정치권이 나서서 사실 확인을 하는 게 당연하다. 어차피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대한 견제는 기본적으로 입법부에서 해야 하는 일이고, 정식 수사 전에 그걸 살펴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정치권이다. 처음부터 정치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의혹을 규명했으면, 괜히 산케이신문이 "누구와 만났을까?" 따위의 기사를 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방패막이가 되기에만 바빴고, 야당은 제대로 파헤치지도 못하고 허수아비처럼 멀뚱대기만 했다. 그러다가 어처구니 없이 세월호특별법을 합의했고, 결국 유가족들의 반대로 표류하고 있다. 물론 외국인 교황보다 못한 한국인 대통령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야당 국회의원들의 정치력 부재와 여당 국회의원들의 '대통령 바라기'도 정치 실종에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도 말했듯이 이제 제도권 정치 세력들의 힘으로는 세월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고, 어떤 식으로든 국민들이 직접 나서야만 할 때가 됐다. 지금부터라도 언론의 제주지검장 사냥 같은 지저분한 이슈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정작 중요한 세월호 학살 진상규명에 모두가 관심을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신고
The Story of ART

Posted by Arthur Ju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